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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강정마을회관에서 민변 변호인단과 제주해군기지 전국대책회의가 함께 ‘정부의 구상권 청구 관련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지난달 6일 강정마을회관에서 민변 변호인단과 제주해군기지 전국대책회의가 함께 ‘정부의 구상권 청구 관련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 제주해군기지 전국대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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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민변 동료변호사와 함께 제주 강정마을을 찾았다. 강정 주민들에 대한 정부의 손해배상 및 구상금 청구 소송과 관련한 주민 간담회가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도착한 마을회관에는 수십 명의 주민이 굳은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2016년 3월 국가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참여한 평화운동가, 종교인, 단체(아래 '주민 등'이라고 한다)를 상대로 소송 가액 34억 원이 넘는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였다. 국가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주민 등의 공사 방해 행위로 공사가 지연되어 건설사인 삼성물산에 272억 여 원의 추가공사대금을 지급하는 손해를 입었고 그중 34억 여 원을 주민 등이 배상하라는 것이다(손해배상 청구). 두 번째 주장은 이른바 구상금 청구이다. 삼성물산이 입은 손해에 대해 국가와 주민 등이 각자 채무가 있는데 국가가 주민 등의 채무를 대신 갚아주었으니 주민 등이 그 돈을 국가에게 주라는 것이다(구상금 청구).

국가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한 보복 소송

이미 해군기지 건설공사는 끝난 터였다. 주민 등은 공사 반대를 이유로 이미 집행유예나 수백만 원에 이르는 벌금 등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 했지만, 해군기지를 막지 못한 채 몸과 마음은 지친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정부는 공사가 이미 끝난 시점에서 주민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까지 제기한 것일까. 정부의 제대로 된 설명도 없고 상식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점이다. 추측건대, 감히 정부 시책을 막아서면 어떤 고생을 하게 되는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것이 아닐까. 성주 사드 배치 강행이나 제주 제2 공항 건설 같은 향후 사안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얘기도 나오는 이유다.

국가가 정부시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마을 주민들을 100명 넘게 피고로 삼아서 수십 억 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드물다. 미국에서는 이를 '전략적 봉쇄소송'(SLAPP)으로 규정하여 규제하여 왔다. 전략적 봉쇄소송은 "공적인 관심사나 사회적 중요성이 있는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정부나 기업의 사업에 반대하는 개인의 의견표명에 대하여 정부나 기업이 그 개인이나 단체를 상대로 제기하는 민사소송"를 말한다.

원래 공적 논쟁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을 법정으로 이동시켜 공적 논쟁을 봉쇄하고 개인의 의견표명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소송을 악용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전략적 봉쇄소송에 해당하면 소송을 각하하거나 법률 등을 통해 소송을 제한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본격적인 판단이 없지만, 우리 법에서도 상대방을 괴롭힐 목적으로 소송 제기를 남용한 경우 '소권 남용'으로 소송이 각하될 수 있다.

국가는 과거 공적 의사 표현을 억압하는 방법으로 주로 형사처벌을 사용하였으나 요즘은 거액의 민사소송을 빈번하게 활용하고 있다. 노조가 파업하면 회사가 거액의 민사소송과 가압류를 통해서 노조원과 가정의 경제적 뿌리를 뒤흔들어 파업을 중단시켜 왔던 관행을 이제 국가가 따라 하는 셈이다. 그래서 강정 소송의 의미는 결코 강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이런 소송을 할 수 있는가?' 이것이 이 소송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생각해보자. 국가는 국민에 대해 형사처벌은 물론 행정처분, 과태료, 과징금, 이행강제금 등 정책을 관철할 모든 법적 수단을 이미 가지고 있다. 그러한 국가가 국책사업을 반대한 주민에 대해 공사지연에 대한 재산상 손해배상까지 제한 없이 청구할 수 있게 된다면 이제 국민은 도저히 국가의 시책에 반대할 수 없게 된다.

헌법적으로 설명하자면, 헌법 제10조에서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기본권 보장 의무자인 국가가 기본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정치적 기본권 행사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의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위헌성이 큰 것이다.

법적으로도 무리한 소송

강정 주민 등에 대한 국가의 민사소송은 법적 관점에서도 허술하고 무리한 소송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 등이 공사 반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대개 집회를 하거나 공사 차량 앞에 앉아 있는 정도다. 국가는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이를 공사현장 점거, 공사 차량 출입저지, 해상작업 중인 선박 공사 방해로 표현하며 주요한 불법행위 내용으로 기술하였다. 정부는 주민 등의 그런 행위로 공사가 지연된 것이고 그 피해액이 34억 원 이상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주장 자체가 논리적 비약이다.

법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원고는 불법행위와 손해 발생 및 손해액, 인과관계에 대해 입증책임을 진다. 원고인 국가는 121명에 이르는 피고들이 각각 언제, 어디서, 어떤 행위를 했는지, 그로 인하여 공사가 어떻게 방해되었는지, 그 각각의 손해액이 얼마인지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이는 가능한 일도 아니고 소장에도 그런 입증을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국가가 상사중재 판정을 통해 삼성물산에 지급했다는 272여 억 원 중에서 주민 등이 책임져야 할 액수가 왜 34억 원이라는 것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국가는 형사판결에만 기대어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마구잡이로 주민들을 피고로 삼아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결과 소송 제기 후 1년 가까이 지나도록 송달조차 완료되지 않았다. 국가가 주민에 대한 보복 목적으로 급하게 소송을 제기하였음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국민에게는 가혹하고, 기업에는 약한 국가

이처럼 국가는 강정 주민 등에게 가혹하고 집요하게 보복을 하고 있다. 그러면 국가는 과연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다했는가. 우선 지적할 문제는 해군기지 공사는 해당 지역 주민들이 오랫동안 유지하여 온 터전과 생활환경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고, 환경침해를 유발하며, 안보적으로도 많은 논란이 있는 문제였다. 따라서 주민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당연히 있어야 했다. 그런 비용이 예산에도 포함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국가는 애초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고 정보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절차를 강행하였다. 주민들이 사업 초기에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오히려 주민을 이간질하기에 급급했고, 국가가 당연히 부담해야 할 행정비용을 주민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삼성물산에 272억 원을 지급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삼성물산이 상사중재를 신청하여 올 경우 국가는 중재를 거부하고 법원 소송으로 진행할 것을 요구할 수 있었다. 상사중재는 법원 판결과 달리 항소, 상고가 자유롭지 못한 단심제이다. 만약 국가가 소송으로 다투었다면 국가는 항소, 상고를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급액을 적지 않게 낮출 여지도 있었다.

또한, 만약 소송이었다면 심리와 감정 등 절차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중요한 사안인 만큼 언론도 취재하여 진행의 적절성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해군은 중재합의를 하고 조용히 중재절차를 진행했다. 중재판정 내용 역시 삼성물산이 최초 신청한 금액과 주장 내용이 대부분 인정되었고, 단심으로 확정되었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최선의 방법으로 건설사의 요구에 대응하여 국민의 세금과 국가의 예산을 아꼈는지 매우 의문이다. 국가는 기업에 대해서는 약한 자세로 임하고, 주민 등에게는 가혹하였다.

국가 스스로 취하하는 것이 최선

강정 주민에 대한 소송은 명분도 실익도 없는 보복 소송이다. 지난 2016년 10월 25일 국회의원 165명이 강정 구상금 청구소송 철회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였다. 개별 소송 사안에 국회가 결의안을 내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만큼 이 소송의 문제점이 크다는 것이다(다만 새누리당 후신인 자유한국당의 의사일정 보이콧으로 결의가 지연되고 있다).

이 소송은 박근혜 정부가 아직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을 때 밀어붙인 것이다. 적폐청산의 대상이다. 더 큰 망신을 자초하기 전에 국가가 스스로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가 강정에 연대를 계속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제주 강정마을 일출
 제주 강정마을 일출
ⓒ 강정마을 지킴이 박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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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글을 쓴 송상교 변호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아래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구상금, #국방부, #강정마을, #제주도, #구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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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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