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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날이다. 쓰는 데 불편함이 없어서 잊고 지냈다. 부산 큰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멀리 살면서 작은 것까지 늘 마음을 써 주는 형님이다. 태양열 새는 것 어떻게 조치를 취했냐고 묻는 전화였다. 아차! 싶어 얼른 옥상으로 올라 가 보았다.

두껍게 덮혀 있던 얼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플라스틱 호스 상단 부분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상단 부분이라곤 했지만 정확히 어디서 물이 새는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 전문가인 형님에게 보냈다.

​형님의 상세한 설명이 뒤따랐다. 플라스틱 호스(이것을 엑셀이라 했다) 1m, 이음 나사 1개, 쇠톱 등을 준비해 놓고 보일러 기사를 부르라고 했다. 출장비는 5만 원 정도 생각하면 될 거라고 했다. 기계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인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전문가인 부산 큰형님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물 새는 부위를 붉은 색으로 표시하여 급히 전송했다.
▲ 도움을 받기 위해 찍어 부산 큰형님에게 보낸 사진 전문가인 부산 큰형님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물 새는 부위를 붉은 색으로 표시하여 급히 전송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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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계 공포증이 있다. 전기, 수도, 보일러,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겁부터 난다. 명색이 가장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고칠 엄두도 못 내고 수리 센터 전화 번호 찾기에 바쁘다. 이런 나를 볼 때마다 아내가 하는 말이 있다. 공대생과 결혼 안 한 걸 후회한다는 것, 사위는 반드시 공대 출신을 택하겠다는 것. 글쎄, 마음에 있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맘대로 될지 의문이다.

​작년엔 이런 일이 있었다. 하수구가 막혀 불편함을 한참 느껴야 했다. 하수구 뚫어 주는 설비 사무소를 찾아 갔다. 대충 설명하고 비용을 물어 보니 가 봐야 안다고 했다. 도구를 챙긴 기사와 함께 집으로 왔다.

​막힌 곳을 찾는 중에도 비용이 머리를 맴돌았다. 한 십 만원? 우리 집의 사정을 헤아려 그 절반 정도 받을 수도 있겠지. 많아 봐야 15만 원은 넘지 않을 거야. 그런 궁상을 떨고 있는데 하수구가 뚫렸다. 물이 시원하게 콸콸 흘러내랬다.

​소요된 전체 시간은 오는 때부터 계산해도 채 30분이 안 될 것이다. 막혔던 곳이 뚫려 물이 시원하게 빠지고 있는데도 기사는 투덜거렸다. 이렇게 찾기 힘든 하수구는 일 시작하고 처음이라는 둥, 자기니까 찾았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온종일 걸려도 못 찾았을 거라는 둥,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렵게 비용을 물어 보았다. 기사가 말하기를 다른 집 같으면 30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25만 원 만 달라고 했다. 선심 쓰듯 말하는 그와는 달리 내 마음은 한 쪽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예상을 훨씬 벗어난 고액 수리비였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억센 다짐을 했다. 앞으로 이런 일로 사람을 부르지 않겠다고. 그 사이 고장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수도꼭지가 새는 것은 이웃 교회 집사님이 고쳐 주었고, 또 변기 고장 난 것은 자칭 만능 해결사라는 선교사님이 수리해 주었다.

​그리고 태양열 플라스틱 관이 터진 사건(?)에 직면한 것이다. 전문 기사를 부를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쳐 보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넉넉한 가정 경제라면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사람을 부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용기에 불을 지폈다.

태양열 온수기 관 공사에 사용된 공구들이다. 몽키 스패너 작은 것 하나는 맞지가 않아 이웃 집에서 큰 것으로 빌려 와야만 했다.
 태양열 온수기 관 공사에 사용된 공구들이다. 몽키 스패너 작은 것 하나는 맞지가 않아 이웃 집에서 큰 것으로 빌려 와야만 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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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벽은 철물점에서부터 만나야 했다. 주인장은 출타 중이고 부인이 가게를 보고 있었는데, 내가 말한 구매 물품을 알아듣지를 못하는 거였다. 보일러 관을 얘기하니 비닐 호스 쪽으로 안내하고 관이음나사를 말하니 엉뚱한 기계 나사 코너를 안내하는 식이었다.

​마침 물건을 사러 온 다른 손님의 도움으로 철물점 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드디어 시공(?)에 돌입했다. 내겐 어려운 일이니 거창하게 시공이란 표현을 써도 무방하리라. 보일러실에 가서 옥상 태양열 탱크로 올라가는 물을 잠궜다.

​연장통에서 몽키를 두 개 찾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봄이라고 하지만 바람이 세찼다. 아내도 외출하고 없기 때문에 완전히 혼자 하는 독작업(獨作業)이었다. 아무리 기계에 문외한이지만 나름대로 일의 순서를 정했다.

​먼저 관을 싸고 있는 보온재를 걷어 낸다. 물 새는 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새는 관을 좀 길게 잘라 낸다. 그리고 새 관을 이음 나사로 연결한다. 마지막으로 물탱크에 꼭 맞게 잘라 내고 이은 다음 나사를 조여 준다.

​구상은 거창하게 했지만 실제는 녹록지 않았다. 당장 관을 잘라 내는 것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정확한 위치를 잘라야 하는데 톱이 상하로 왔다 갔다 제 마음대로였다. 벌써 이마에 송알송알 땀이 맺혔다. 그 직업을 하는 데도 시간을 꽤 잡아먹었다.

수리를 마무리하고 찍은 태양열 온수기 모습이다. 꼼꼼하게 살펴 봐도 물 새는 곳이 없었다.
 수리를 마무리하고 찍은 태양열 온수기 모습이다. 꼼꼼하게 살펴 봐도 물 새는 곳이 없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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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나사를 접점으로 해서 관을 연결하는 것인데, 이것도 쉬운 게 아니었다. 몽키 두 개 중 하나는 크기가 맞지 않아 쓸모가 없었다. 앞집에 가서 큰 몽키를 빌려 와서 작업을 해야만 했다. 서로 엇갈리게 돌려 조여야만 물 샐 틈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작업이 남았다. 이건 정말 내겐 고난도 작업이다. 이은 관을 물탱크에 꼭 맞게 자르는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 머리를 썼다. 매직으로 표시 선을 그은 다음 라이터로 그 부분을 녹여 톱이 잘 먹힐 수 있도록 했다. 일머리는 궁리할수록 는다는 옛말이 있다. 맞는 것 같다.

​드디어 작업 성공! 탱크에 관을 잇고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최대한 조였다. 그리고 벗겼던 보온재를 다시 입히고 고무줄로 묶었다. 처음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런 대로 봐 줄 정도는 되었다. 겨울을 넘겼으니 보온의 의미보다는 햇볕 차단의 용도면 족할 것이다.

​보일러실로 내려가 차단시킨 물을 다시 털었다. 이은 관을 꼼꼼하게 살펴봐도 새는 곳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한 인문학도의 태양열 관 연결 작업이 성공리에 끝난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대견하다. 하루 새 수십 번을 옥상 태양열 작업장을 오르내렸다. 내가 해낸 작업이 신기해서, 힘든 줄도 모르고….


태그:#인문학도, #기계치, #태양열 온수기, #몽키 스패너, #수리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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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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