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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낮도 길고, 밤도 길어요 : 세월호 4.16 공방

그 곳에서는 행복하길 바란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 아이들을 향한 엄마들의 마음 그 곳에서는 행복하길 바란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 한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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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 한참 추웠던 겨울, 안산에 위치한 세월호 분향소에서 경민 엄마(전인숙)를 만났다. 1월 15일에 다녀온 추운 팽목항에서 미수습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을 소개해준 고마움에 찾아간 그곳에서 그녀는 대외협력분과장으로 일하면서, 유난히 바쁘게 활동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경민 아빠랑 방에 멍하니 앉아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있는데 동생이 들어와서 입에 무언가를 넣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조금 자고, 다시 눈 떠서 앉아 있고. 그렇게 반복하다가 그 알약이 수면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앉아 있지 않고,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그냥 누구든 만나서 세월호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사실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힘든 일이지만, 잊히면 안 되는 이야기니깐. 내가 힘들어도 자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잊지 말아 달라고 외치는 것이 가장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서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아이가 올라온 날이 되면 너무 힘들어요. 어떤 엄마들은 온종일 연락도 안 되고, 아이를 온전히 기억할 수 있지만, 저는 그게 안 될 때, 힘들죠. 어딘가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오늘이었구나. 내 아이가 올라온 그 날. 바로 오늘이었구나. 그런 날은 누구랑도 이야기하기 싫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바쁘고 힘든 날. 집에 들어가서 잠도 안 오죠. 낮도 정말 길었는데, 밤도 길더라고요."

둘째 아이와도 같이 와요. 집에서 보이는 우울한 모습이 영향을 미칠까봐요.
▲ 4.16 공방의 풍경 둘째 아이와도 같이 와요. 집에서 보이는 우울한 모습이 영향을 미칠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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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는 그녀들이 있었다.
▲ 4.16 공방 그 곳에는 그녀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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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따라 들어간 세월호 유가족 휴게실 한쪽에 마련된 4.16 공방. 앞에서는 아빠들이 청바지를 뜯고 있었고, 엄마들은 수를 놓고 있었다. 함께 앉아서 수를 놓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어떤 엄마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어떤 엄마는 웃고 있었다. 아이의 흔적이 남겨진 집에서는 도저히 하루를 지낼 수 없을 것 같아서 이곳에 나왔다는 그녀들이었다.

엄마들은 수를 놓으며 이야기를 나눈다면, 아빠들은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분향소 앞에 목공소 하나를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아빠는 의자를 만들고 있었다. 제법 튼튼해 보이는 원목 의자에는 세월호가 그려져 있었다. 공방에서 배우는 목공기술을 가지고 여러 좋은 원목 가구들을 만들어 가며, 아버지들은 그렇게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직접 머릿속에 구상을 하고 의자를 만들어요. 내 아이가 이 의자에 앉는다고 생각하고 말이죠. 기뻐할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요.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은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요."

다시는 볼 수 없다고 해도, 잊지 않으려구요. 기억에서 내 아이는 그 모습 그대로니깐요.
▲ 내 아이가 앉을 의자 다시는 볼 수 없다고 해도, 잊지 않으려구요. 기억에서 내 아이는 그 모습 그대로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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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잊혀지면 완전히 사라질까봐. 그게 두려웠어요.
▲ 그리움의 의자 내 아이가 잊혀지면 완전히 사라질까봐. 그게 두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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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렇게라도 나와서 웃을 수 있는 거예요: 세월호 연극 <그녀와 그의 옷장>

추운 겨울, 광화문.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태로 인해 연극인들이 판을 벌인 블랙텐트에 그녀들이 떴다. 경비원으로 함께 근무하는 오랜 직장동료. 둘 중 한 명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놓인 편하게 웃지 못할 콩트 같은 우리네 현실들을 그녀들이 연기한다.

"늘 슬픈 얘기로 사람들은 울리기만 했으니, 이제는 조금 웃음을 드리고 싶다며 연기를 시작했다." - 2학년 3반 정예진 어머니

연극은 삶의 생존을 위해,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버려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희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문연기인은 아니기에 조금은 어설픈 컷들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이 연극의 묘미이다. 일반인들이 연기하는 일반인의 삶들. 오랜 친구와의 우정보다 일자리를 두고 갑작스레 벌어지는 혈투와 은밀한 뇌물 공세까지. 모른 척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우리는 그저 애써 웃어보려고 한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겠다고 외치는 주인공에게 아내는 이렇게 외친다.

"누군 이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아시오. 당신이 의리 찾는다고 이 꼬락서니 좀 보시오. 옷장이 옛날 작업복으로 넘치는데, 동료가 뭐고 의리가 뭐요. 가족이 가족 생각하는 게 잘못된 건가. 그놈의 의리 찾다가 또 길거리에 앉으면 되니깐."

공연이 열린 광화문 블랙 텐트라는, 문체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극인들이 직접 연출하고, 공간까지 만들었다는 데에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연극이었다. 세월호의 엄마들은 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고 한다. 감정표출 하나 제대로 하며 살아갈 수 없는 삶의 막힌 벽 속에서 그녀들이 소진되고 있을 때 연극이 그녀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은 그녀들은 오히려 일반 시민들에게 세월호를 알리고,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 살아서 밝혀야 하는 진실이 있으니깐. 그래서 하는거에요. 이 연극
▲ 그와 그녀의 옷장 살기 위해서, 살아서 밝혀야 하는 진실이 있으니깐. 그래서 하는거에요. 이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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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텐트에서 광장이 열리다
▲ 블랙리스트가 만든 블랙텐트 블랙텐트에서 광장이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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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연극을 하는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요. 이거 안 하면 뭐할까요. 살아야만 끝까지 볼 수 있는데. 어떻게든 살아내야죠. 살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살기 위해서."  - 동혁이 어머니

"우리 아들 사진이 광화문에 있는데 매일 희미해져 가요. 끝까지 가야 하는데..." - 수인 어머니

#3. 언제 이 목도리를 다 뜰 수 있을까요 : 이웃, 그리움을 만지다

지난 2월 중순쯤 서울시민청 지하 갤러리에서 세월호 엄마들의 삶을 만났다. <세월호 엄마들의 뜨개전시, 그리움을 만지다>라는 이름으로 치유공간 이웃에서 함께 진행한 엄마들의 뜨개질을 전시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뜨개질을 할 수 있었을까. 한 엄마가 말했다.

"사람들은 목적이 있어서 뜨개질하잖아요. 누군가에게 주려고. 근데 저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냥 했죠. 너무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무엇이라도 해야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끝이 없이 길어지고 있어요. 뜨개질도 그렇고. 그리움도 그렇고."

"보통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고 하잖아요. 근데 아닌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워지는 거죠."

수 없이 놓여진 뜨개질은 그리움을 만지고, 보고, 느낄 수 있게 한다.
▲ 그리움을 만지다 전시전 수 없이 놓여진 뜨개질은 그리움을 만지고, 보고, 느낄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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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요.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리움이 고였습니다.
▲ 시간과 그리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요.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리움이 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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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을 수놓은 많은 뜨개질. 고마움을 표현한 목도리. 세상이 온통 차갑게 그들을 대할 때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엄마들은 뜨개질로 표현했다. 뜨개질하는 동안은 숨을 쉴 수 있었다고 한다. 무기력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안심되었다고 한다. 뜨개질이 본인을 살렸다고 한다.

한켠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고마운 이들에게 선물하고자 하는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 지나는 제 애인이었어요. 늘 껴안고 뽀뽀하고, 한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은 사이었죠. 보고 싶어도, 또 보고 싶어서 방과 후 수업하지 말고 그냥 오라고 한 적도 있어요. 지나가 오기를 기다리며 베란다를 서성이다가 먼발치에서 지나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저도 모르게 하트와 손 키스를 날리게 돼요. 그렇게 애틋한 우리 지나를 제 품에 안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잠수사님을 꼭 만나서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데 성함도 연락처도 몰라서 고맙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카디건으로 대신 전합니다. 서툰 솜씨로 뜬 작품이라 색깔도 빨갛고, 치수도 너무 커요. 그렇지만 제 마음을 전할 길이 이것밖에 없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조심스레 전합니다. 잠수사님의 가족 중에 이 옷이 맞는 분이 있기를. 그래서 이 옷을 기쁘게 받아주시기를..." - 잠수사님 가족에게 송지나 엄마가

이 옷이 당신에게 꼭 맞기를 바랍니다.
▲ 고마워요. 잠수사님 이 옷이 당신에게 꼭 맞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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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를 방문한 시민들은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모두가 기도의 공간에 앉아 끝없는 그리움의 목도리를 뜨는 아이의 서툰 뜨개질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세월호는 사건이었다.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고, 미수습된 9명의 희생자는 여전히 차가운 바닷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작년인가요. 재작년인가요", "불행한 일이지만, 직접 책임은 없다"라고 말이다.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고였으며, 불행하고 운 없는 사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세월호는 무엇일까. 당신에게 세월호는 어떤 의미인가.

잊지 않겠다고 했다. 많은 시민이 다짐했고, 그리고 기억하겠다고 노란 리본도 가방에 달고 다녔다. 그런데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할까를 곰곰이 다시금 생각해 볼 시점이다. 진상규명이 되면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일까. 세월호 희생자는 305명(희생자 304명과 교사 1명)이 아니었다. 그들을 기억하고 그리움을 매일 만지고 있는 엄마들. 죽는 것이 삶보다 어렵다고 말하는 희생자들의 가족의 삶. 그것을 우리가 함께 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잊지 않는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 아프지만, 기억되고, 잊히지 않아야 할 세월호가 두 번은 가라앉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움을 공유한 사람들
▲ 한통의 편지 그리움을 공유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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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잊혀지는게 아니라, 더해가는 거래요.
▲ 그리움을 만지다 전시전 그리움은 잊혀지는게 아니라, 더해가는 거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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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세월호 공방에서 만든 원목제품이나, 수공예품은 전시 및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 세월호를 여러 공간에서 기억하고자 하는 모든 시민에게는 뜻깊은 작품이 될 것이다.
*세월호 연극팀 엄마들은 새로운 세월호 법정과 같은 연극을 준비 중에 있다. 연극을 보고자 하는 기관들의 신청이 있으면 어디든 와서 공연하고자 한다.
*세월호 국민조사특위가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각개각층의 시민들이 모여서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면 된다.



태그:#세월호, #트라우마, #416공방, #세월호연극, #세월호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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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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