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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칭 '교통 오타쿠',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가 연재합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그런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역전' 하면 생각나는 보통의 이미지가 아닐까. 전남 화순 능주역 앞의 역전슈퍼. 굳게 닫힌 앞문과는 달리 현재 영업중이다.
 '역전' 하면 생각나는 보통의 이미지가 아닐까. 전남 화순 능주역 앞의 역전슈퍼. 굳게 닫힌 앞문과는 달리 현재 영업중이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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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한민국에 가장 먼저 정착한 '브랜드'가 있다면 바로 '역전'(驛前) 브랜드가 아닐까. 누가 먼저 사용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확실한 것은 조선시대의 역참 앞 주막부터 역전 '브랜딩'이 시작했을 것이다. 폭발적으로 '역전' 브랜드가 만들어진 것은 분명 철도가 처음 우리 앞에 도래했을 때일 것이다.

1899년 경인선 개통 이후, 1905년 경부선/경의선 개통 이후 엄청난 수의 기차역이 사람들 앞에 '뙇' 하고 나타났기 때문. 다른 지역으로 걸어가거나, 마소의 힘을 빌리는 대신 기차에 몸을 싣기만 하면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었기에, 이윽고 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역세권 프리미엄'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역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겨난 도시가 바로 대전광역시와 신태인읍이고, 작은 항구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했던 영산포와 목포, 부산, 그리고 군산은 항구와 철길을 모두 받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역 인근은 상업도 발달하여, 우체국, 식당, 상회 등 다양한 업종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형태가 가장 비약적으로 나타난 모습이 바다내음 물씬한 마산역 앞 역전시장, 동래의 새벽시장이 아닐까.

'지상 최강 브랜드'이자 한국 소매경제를 한동안 이끌었던 최강 대기업(?), 역전(驛前) 이야기를 한다. 한 때는 가장 '핫 했던' 역전 브랜드가 대도시권 외에서는 이름을 잃고, 소도시에서는 수요가 적어 이름을 떼어내야만 했던 모습을, 하지만 이 역전 브랜드가 부활하는 모습을 담는다.

마산역 앞 마산역전시장. '역전' 단어의 갯수가 몇개인지 세어보자.
 마산역 앞 마산역전시장. '역전' 단어의 갯수가 몇개인지 세어보자.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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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대의 대기업 '역전그룹'을 아십니까

간이역을 찾아다니는 사람 사이에서는 '국내 최고의 대기업은 역전그룹'이라는 농담이 전해진다. 어떤 역을 가든, 심지어는 영업을 하지 않는 역 앞에 가도 '역전상회', '역전슈퍼' 등의 상호를 가진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있고, 승강장만 놓여있고 열차가 하루 세 번 다니는 간이역 앞에도 역전 브랜드가 시장을 '잠식'했으니 말이다.

사실 '역전'이라는 단어는 일본의 '에키마에'에서 온 단어이다. 유럽이 이미 개발된 도시를 따라 Y자 모양의 터미널역을 만들어왔던 데 반해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철도를 개설했다. 한국 역시 개화기 이후 철도를 개설하면서 개설된 역을 따라 신도시가 개발되었다. 자연스럽게 역 앞은 중심지가 되었고, 상업/경제/주거가 층층이 쌓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역전은 수탈의 상징이었다. 일제가 쌀/소금/광물 등 다양한 물자의 수탈을 위해 군산역(현재의 군산화물역) 앞에 지은 은행 건물부터 부산잔교역(현 부산역 주박기지) 앞에 지은 부산 동양척식주식회사까지. 역에 일제가 수탈한 물자들이 모이고, 돈을 벌기 위해 적수공권으로 상경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풀떼기를 떼 장나가는 노인들이 3등석 표에 짐보따리를 싸고 타는 등 수탈의 상징이자 '돈'이 굴러가는 곳이 역전이었다.

해방 이후 피난길에 '역전'을 들르는 사람이 늘었다. 또 혹시 찾아올 지 모르는 가족을 위해 역전에 집을 꾸리고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리고 역전에는 여전히 왜정 때 세워진 관공서와 은행이, 전화교환국과 우체국이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역 앞은 지역의 통신, 상업, 산업, 경제, 정치의 중심지였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 들어온 사람들이 역 앞에 시장을 꾸리며 순천, 제천 등의 역전시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은 가게 이름으로 보기 시작한 '역전' 브랜드는 시장, 관공서, 우체국, 은행을 모이게 한 하나의 움직임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지금은 그 때와 많이 달라졌다. 역전의 모습을 상기케 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마 '역전' 브랜드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역전 브랜드가 '자생경제의 상징'이지만 '비통의 상징' 그 자체라는 것이다.

아마 역전시장 중 가장 '성공했을', 1913 송정역시장
 아마 역전시장 중 가장 '성공했을', 1913 송정역시장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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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우범지역化... 집창촌, 범죄, 노숙자로 사람 떠나기도

한때 비통의 상징이었던 역전은 해방 이후, 전쟁을 거치면서 우범지역이 되었다. 전쟁과 멀리 떨어진 지역의 역전에서는, 일본인들이 급히 떠난 빈자리를 피난민과 빈민들이 채웠다. 풀빵가게에서 하루 일당을 다 털어 풀빵으로 밥을 먹기도 하고, 미군 차 앞을 따라다니는 거지들이 미군 차에서 떨어진 C레이션 앞에서 '아귀'마냥 싸우기도 했다. 영화 <국제시장>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전쟁이 끝나 안정이 다가오자, 땅의 원주인이 속속 나타났고 이들은 산 위로, 천변으로 들어갔다. 빈자리는 한동안 폐가만이 들끓었는데, 어느 새 '양공주'라 비하받던 성노동자들이 채웠다. 청량리역, 영등포역, 서울역 인근의 집창촌이 이렇게 형성되었던 것이다. 1955년 11월 29일 동아일보의 '무방지지대' 특집 르포를 찾아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밤 늦게 지방에서 올라오는 기차가 서울역에 닿으면 으레 보따리를 옆에 끼고 사람의 파도에 밀려 역에서 나와 어리둥절 갈 곳을 몰라 주춤거리는 촌색시가 한두명 아니 눈여겨보면 여러 명 보인다. 영낙없이 교활한 할멈의 꼬임에 빠지기 마련-'사정이 참 딱하여보이는구나 얘. 우리집 건넌방이 비었으니 나하고 가서 하룻밤 지내자'

(중략) 그 할멈을 쫓아나서면 이촌색시는 그날 밤으로 간단한 절차를 밟아 악과 윤락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중략) 그 중에도 남대문과 양동주위는 서울역에서 나오는 '무제한의 공급' 때문에 그대로 "윤락의 현관문". - 동아일보 1955년 11월 29일 제 3면 중 일부"

한국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성장한 사창가는 주변의 '범죄 수요'를 또 끌어왔다. 포주 주변을 지키는 '어깨'부터, 소매치기 어린아이, 한 푼만 달라는 거지까지, 지금은 집회와 시위 때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경찰서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1960년 이들 범죄를 잡겠다는 계획을 냈으나 보기 좋게 실패해 각 언론의 조롱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고속버스가 개통하여 서울역보다 더욱 편리한 위치인 종로에서 승객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연히 기차는 점점 '우범지역만 골라가는 천덕꾼' 신세가 되었다. 서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우범지역' 안으로 걸어들어가야만 했다. 80년대 후반 이후 '마이카' 시대가 오면서 터미널도 사이 좋게 우범지역이 되는 '끔찍한' 사태가 일어났지만, 역전은 이전의 '정치/경제/문화/통신의 중심' 역할을 영영 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역전에 혁신도시가 들어서며 '기적적'으로 영업이 재개된 원주 반곡역.
 역전에 혁신도시가 들어서며 '기적적'으로 영업이 재개된 원주 반곡역.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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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역전... 다시금 문화/지역경제의 중심으로 

역전의 부활은 뜻밖의 곳에서 이루어졌다. 2004년 KTX가 개통하면서 노후한 역사를 새로이 고쳤다. 지자체가 신경써서 주변 환경을 정비하니 주변의 범죄 역시 어느 정도 잡히기 시작했다. IMF 사태로 인해 쏟아져나온 노숙자들이 새로운 문제로 드러났지만, 이전의 '무정부지대'나 다름없었던 당시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

KTX가 개통하며, 역은 그간 어려웠던 각 지역 간의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좋은 창구가 되기 시작했다. 대전의 대표 빵집 성심당이 전국의 '빵돌이'들에게 알려진 것도 KTX를 통해서였고, 부산의 오래된 어묵집인 삼진어묵집에서 '오뎅을 빵처럼 만든다'는 사실이 전국의 '분식덕후'들에게 알려진 것도 KTX를 통해서였다.

역전에 많은 투자가 다시금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95년 영등포역에 롯데백화점과 기차역이 같이 있는, 국내 최초의 민자역사 건설이 이루어진 이후 대구역, 청량리역, 용산역 등 다양한 철도역이 민자역사로 재개발되었다. 민자역사는 역 자체를 커다란 소비경제권으로 만들었다. 영등포역은 과거의 우범지역이라는 인식을 떨치고, 두 개의 커다란 쇼핑몰과 작은 매장들이 모인 부도심으로 재성장했다.

제조업이 중심인 지역에는 공단 앞 선로로 화물역까지 열차를 이었다면, 서비스업이 발달한 지금은 서비스산업의 중심이 '역'이 되었다. 이마트/롯데마트는 다양한 프로모션 행사를 용산/서울역 지하의 이마트 용산점/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선보이고 있고, 역사 대합실을 비롯한 여러 역에서는 기업들의 프로모션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서비스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관광산업은 아예 역에 '좌판'을 깔았다. 여러 관광열차부터 관광상품의 도입까지, 역은 우리도 몰랐던 사이 서비스산업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SRT 수서역에는 다양한 지역의 '지역맛집'의 분점이 역내에 들어섰고, 뒤이어 설명할 '지자체의 대표 관광지'로도 자리잡았다.

시골 간이역 역전 중 아마 가장 잘 알려진 역전이 아닐까. 보성군 득량역전 추억의 거리.
 시골 간이역 역전 중 아마 가장 잘 알려진 역전이 아닐까. 보성군 득량역전 추억의 거리.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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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워진 삶, 관광산업의 중심으로... 역전의 '부활'은 끝이 없다 

경북 봉화의 분천역은 관광열차 오트레인, 브이트레인 개통 이후 산타마을로 조성되었다. 산골 오지 한 가운데의 분천역을 찾는 승객들, 즉 관광객들이 늘어났다. 또 이들이 분천역에서만 관광을 끝내는 것이 아닌, 봉화, 울진, 태백 등 다양한 지역에서의 관광을 계획할 수 있게끔 되면서 분천역이 대표적으로, 가장 먼저 화려한 '부활'을 한 셈이다.

서울사람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할 보성군 득량면 소재지의 득량역전은 7080세대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추억'을 콘셉트로 한 추억의 거리로 단장되었다. 마치 70년대의 거리를 2017년으로 가져온 듯한 모습에 일부러 '추억의 기차'를 타고 찾는 관광객이 늘어났다. 열차가 네 번 서는 간이역이 전남권을 넘어 전국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지로 재탄생한 셈이다.

광주송정역 앞의 송정역전매일시장은 서울의 '연남동 동진시장' 못지 않은 청년창업의 성지가 되었다. 매일시장은 노인들만 잠깐잠깐 찾다가, 그마저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문을 닫는 점포가 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3 송정역시장으로 재탄생하면서 시장만의 느낌을 가지며, '핫플레이스'마냥 멋진 상품과 광주만의 맛깔난 음식, 퓨전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재탄생했다.

김천구미역 앞에는 혁신도시가 조성되었다. 한국도로공사, 교통안전공단, 법률구조공단 등이 김천구미역 바로 앞에 자리잡고 있다. 열차가 서지 않던 간이역인 원주의 반곡역 역전에도 대한석탄공사, 도로교통공단, 적십자사, 한국관광공사 등 다양한 공공시설이 입주해 무려 7년만에 열차가 다시금 멈추게 되었다. 역전이 편리한 교통을 등에 업고 이제는 '행정의 중심'으로 다시 거듭나는 셈이다.

밤차타고 내린 역전의 찬 공기, 앞으로도 '역 앞만의 에너지' 느낄 수 있기를

'역전'이라는 브랜드는 원래의 우범지역, 그리고 수탈의 상징에서 탈피해 모두가 갖고 있을 역 앞에서의 아련한 추억을 '보정할 수 있는' 멋진 공간으로, 그리고 다시금 지역산업의 중심지이자 행정의 중심지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두고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할 만 하지 않나.

역 앞의 에너지를 아시는가. 먼 길을 떠나는 이들의 설렘과 기대가, 출근길의 노곤하지만 바쁜 발걸음이, 먼 길에서 돌아온 자들의 묵직하지만 '잔뜩 얻어오는' 마음 담긴 보폭이, 퇴근길의 신나고 즐거운 발걸음이 오가는, 편도티켓을 끊은 사람의 망설임 담긴 걸음걸이가 있는, 바로 그 에너지 자체가 '역 앞의 에너지'이다.

시대가 조금씩 변할지라도, 역 자체의 긍정적인 에너지만은 계속해서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역전'의 가장 큰 존재의의 아닐까. 이제 행락객이 전국 방방곡곡을 채울 봄철이 다가오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의 역전에, 배낭을 맨 관광객들이 얼마나 보일까.



태그:#철도, #기차여행, #관광, #도시계획,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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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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