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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기념식및 경교장 정상 복원 촉구대회가 열렸다
 3.1절 기념식및 경교장 정상 복원 촉구대회가 열렸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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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98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공간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역사의 현장인 '경교장'을 정상적으로 복원하는 투쟁에 나서겠다는 선언이 나왔다.

선언은 경교장이 2005년 6월 13일 국가사적 제465호로 승격된 후 2013년에는 서울시 예산으로 내부복원을 마치고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지만 이는 원형복원이 아니라면서 '정상적인 경교장 복원'을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제98주년 3.1절 기념식 및 경교장 정상 복원 추진대회

윤경로 위원장이 3.1절 의미를 말하고 있다.
 윤경로 위원장이 3.1절 의미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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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평동에 위치한 경교장 1층 바불마루에서 '제98주년 3.1절 기념식 및 경교장 정상 복원 추진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경교장복원범민복추진위원회가 주최했다.

이날 본 행사에 앞서 식전공연으로 박연숙 명창이 '시국 판소리'를, 김예인은 '압록강 행진곡'을, 김숨은 '우리가 원하는 나라'을, 정대호는 '그네 낙상가'를 각각 열창했다.

대회는 송순섭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됐다. 계속해서 권오창 우리사회연구소 이사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홍갑표 전 민족정기구현회 회장 등이 3.1절 기념사를 말했다.

이어 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김인수 대표는 대회사를 통해 "김구 선생 서거 70주년이며 3.1혁명운동 100주년이며,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 까지 경교장을 정상적으로 복원하자"라고 말했다.

신재현 경교장복원범민족추진위원회 추진위원은 성명서를 통해 "오늘은 일본에 맞서 전 민족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들풀처럼 일어나 독립만세를 외친지 98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강조한 후 "서울시 종로구 평동 108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경교장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27년간 중국대륙을 전전하며 파란만장한 항일투쟁을 전개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해방 후 환국하여 마지막으로 사용한 임정청사"라고 의미를 새겼다.

신 추진위원은 계속해서 "임정환국 후 이곳에선 역사적인 국무회의가 개최되었고 반탁 운동 때는 임정포고령이 선포되는 등 삼천만 겨레의 염원이 이곳으로 모아졌으며 민족분열이 거세게 몰아치는 시기에는 남북협상을 통해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던 김구 선생이 안두희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비운의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경교장에 전시되어 있는 김구 선생이 피격당한 직후의 모습
 경교장에 전시되어 있는 김구 선생이 피격당한 직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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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추진위원은 "경교장이 임정청사로 사용된 기간은 1945년 11월 23일부터 이듬해인 46년 2월 13일까지 4개월(82일) 동안이며 김구 선생은 이곳에서 3년 7개월(1310일)간 기거하였다"면서, "그리고 서울 인구가 140만 명이었던 당시 김구 선생 장례식에는 124만 명의 조문객이 다녀간 곳"이라고 의미를 새겼다.

신 추진위원은 이후 복원과 관련해서 "1996년 경교장 소유주인 삼성의 철거 이전에 맞서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의 각고의 투쟁으로 2001년 4월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이어 2005년 5월에 국가지정문화재 제465호로 승격 지정됨으로써 경교장 복원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리고 2011년 장장 42년간 강북삼성병원으로 사용되던 경교장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서울시 예산으로 내부 복원을 마치고 2013년 3월1일 개관하여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추진위원은 "그러나 내부 복원에 불과한 경교장을 서울시는 원형복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는 서울시가 삼성과 야합하여 들어선 260억 불법 건축물 때문"이라면서 "2001년 서울시는 삼성병원의 증축공사 신청시 문화재인 경교장을 놓고 건축심의를 해야 하는 절차를 무시하고 건축허가를 삼성에게 내줌으로써 경교장 원형 복원의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따라서 제대로 경교장을 복원하려면 불법건축물을 철거해야만 하는 과제가 현실적으로 제기된다"면서, "2년 후인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 이며 임시정부 수립 100돌이 된다. 지난 22년간 경교장 소유주인 삼성 재벌과 지난한 투쟁을 전개한 우리는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정상적인 경교장 복원을 위한 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한다"고 강조했다.

김구 선생이 피습 당한 서재의 창에 안두희가 발사한 흉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밖의 모습은 당시 장례식 모습이다.
 김구 선생이 피습 당한 서재의 창에 안두희가 발사한 흉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밖의 모습은 당시 장례식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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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추진위원은 마지막으로 "정부도 말로만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유일한 임정 유적지를 원형 복원하는데 앞장서기를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경교장은 일제 강점기 금광업자 최창학의 저택으로 1938년 건립됐다. 김구 선생은 1945년 11월 23일 임시정부 요인과 수행원 1진과 귀국하며 입주했다. 같은 해 12월 1일에는 홍진 의정원 의장 등 임시정부 요인 2진이 귀국했다. 또 12월 3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첫 국무위원회가 이곳에서 개최됐다.

경교장은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시기에는 신탁통치반대운동 및 남북협상 추진 무대이기도 했다. 1949년 6월 26일에는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흉탄을 맞고 서거한 역사적인 장소다.

경교장은 김구 선생이 떠난 후 한국 근현대사와 그 맥을 같이 했다. 먼저 1949년 11월부터 1950년 5월까지는 중화민국 대사관저로 사용됐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월남대사관 등으로 사용되다 1967년 경교장 후면에 고려병원이 개원했다.

1995년에 고려병원이 강북삼성병원으로 명칭이 변경된 후 경교장은 오랫동안 병원 창고처럼 사용되었다. 2001년 4월 6일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된 후 2005년 6월 13일에는 국가사적 제465호로 승격했다. 이어 2013년 서울시 예산으로 내부 복원을 마치고 2013년 3월 1일부터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구 , #경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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