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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황교안 권한대행이 특검 연장 요청을 받고 시간만 끌던 10일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권한대행이 특검 연장 요청을 받고 시간만 끌던 10일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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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황교안 권한대행이 특검 연장 요청을 받고 시간만 끌었던 그 기간 동안 말이다. 결국 자유당의 반대에 손 한번 못써보고 무기력하게 특검을 종료시켜야 했던 그 열흘 동안 우리는 무슨 기대를 가졌던 것일까?

80일.

헌법 재판소에서 고작 4명으로 시작한 대통령 대리인단이 15명이 되고, 재판정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헌법 재판관을 조롱하고 공공연히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90일.

천하의 보수 논객 이문열이 "촛불은 이제 시대의 정신이 되었다"며 "죽어라. 그래서 진정한 보수의 가치와 이상을 담보할 새로운 정신으로 태어나라"고 보수를 채찍질하던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126일.

우리 모두가 촛불을 들고 동의했던 '올바름과 틀린 것'의 대결이자 '낡은 것과 새 것'의 대결이 어느새 좌우의 대립으로 등치된 기막힌 현실앞에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126일은 우리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처음 촛불이 타올랐던 그 때부터 정확히 126일 동안 우리가 바라던 만큼 세상은 바뀌었을까?
▲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 처음 촛불이 타올랐던 그 때부터 정확히 126일 동안 우리가 바라던 만큼 세상은 바뀌었을까?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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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촛불이 타올랐던 그 때부터 정확히 126일 동안 우리가 바라던 만큼 세상은 바뀌었을까? 지금 이 질문을 던지는 까닭은 최순실, 김기춘, 조윤선, 이재용의 구속으로 환호했지만 실은 그것은 어쩌면 오롯이 특검이 제 몫을 다한 결과일 뿐 각자의 영역에서 모두가 제 역할을 잘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일종의 착시였다.

한 때 박근혜를 지지하는 단 5%를 제외하고, 상식적인 시민 95%를 민주공화국으로 단결시켰던 힘은 사회 곳곳의 적폐를 척결하고,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거대한 파도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어느새 일상으로 침전된 느낌이다.

특검활동의 종료와 헌법재판소의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탄핵을 반대하는 세력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비록 그 수가 촛불 시민의 수보다 적다고는 하지만, 소수의 불의한 집단이 공포와 교묘히 결합한 폭력으로 상황을 뒤집는 광경을 우리는 이미 해방 정국에서, 박정희 사후의 서울의 봄에서 익숙히 봐 왔다. 

126일이 오롯이 우리만의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은 '적폐'로 불리는 세력의 중추들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명확하다. 가장 구체적인 사례는 바로 황교안의 특검 연장 거부이다.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뿐인 황 대행은 "북한의 안보위협과 어려운 경제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당당히 특검 연장을 거부했다.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열흘을 끄는 모습에선 교활함마저 엿보인다.

외교부의 윤병세 장관은 어떠한가? 지난 14일에도 부산시 등에 공문을 보내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이전을 촉구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벌써 세 번째다. 외교부는 더 나아가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도 이전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한일위안부 협상의 파기는커녕 굳히기로 가는 모양새다. 한민구의 사드배치 강행도 같은 맥락이다.

홍용표 장관은 또 어떤가? 지난 20일 개성공단 폐쇄 1년을 맞아 그가 한 말은 경악 그 자체였다. 개성공단 폐쇄를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성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자금의 70%가 노동당으로 흘러가 핵 개발 자금으로 쓰였다던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거짓말로 국민을 현혹했던 그 때로부터 그 뻔뻔함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개성공단 재개를 말하는 사람을 타이르는 모습에선 피해자를 유린하는 잔혹함마저 보인다.

존재감도 없던 김관진 안보실장은 트럼프 백악관의 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을 만나 한국과 미국은 중국의 반대를 고려하지 않고 사드를 배치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에겐 중국의 우려와 국민의 목소리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닌 듯하다.

결국 '적폐'들은 여전히 박근혜 시대를 살고 있으며, 자신들의 행동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광장으로 결집하는 광기의 세력

통일외교안보 분야에 대해선 적폐 청산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지만, 사태는 점점 더 악화돼 왔다.
▲ 성조기 휘날리는 보수단체 행진 통일외교안보 분야에 대해선 적폐 청산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지만, 사태는 점점 더 악화돼 왔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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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통일외교안보 분야는 다른 분야와 달리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일들이 많았기에 전문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적폐 청산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강력히 주문해왔다. 그럼에도 사태는 점점 더 악화돼 왔다.

급기야 사드배치를 위한 부지 교환 계약이 이루어졌다. 저들의 거침없는 폭주에는 '적폐' 청산에 소극적인 야당의 무기력함도 한 몫을 했다. '권한 대행'을 무력화하는 것이 국정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신중론이 얼마나 무지한 생각이며, 윤병세를, 김관진을 그리고 홍용표와 한민구를 그대로 둔 지금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 우리는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청산의 대상들이 그 적폐를 그대로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결과, 126일 동안 숨어있던 수구세력들이 하나 둘씩 광장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저들의 견고한 바리케이드가 나름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숨죽이던 저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광장으로 모여드는 데 박근혜 키즈인 적폐세력들이 가장 큰 역할을 해냈음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적폐를 그대로 두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비정상적인 적폐의 역습은 보통사람들의 일상마저 침해하기 시작했다.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 할인해주겠다는 가게는 하루 500통이 넘는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지하철에선 노란 리본을 단 젊은이들이 공격당한다. 마음에 맞지 않으면 헌재 재판관도, 유력 대선 후보도 암살과 협박의 대상이 된다. 이제 거리는 공포와 광기로 채워지고 있다.

적폐 청산의 시기를 놓친 후과는 이렇게 크다. 정확히 짚어야 할 것이 또 한가지 있다. 126일 동안, 광장에선 시민들은 '종북몰이'와 '북풍'이란 미망에서 벗어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야권 대선 후보들이 보여준 '수세적 태도'이다.

종북 프레임은 '안보관'을 문제 삼지만 안보가 어디 북한의 위협만 있는가?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모든 것이 안보 위협이며, 사드 배치 하나 때문에 '한한령'까지 유발시키는 것이야 말로 심각한 안보위협이다. 이런 점을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우선 북풍만 피하고 보겠다는 안이한 태도가 왜곡된 안보진영의 논리를 강화하고, 적폐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키워준 것은 아닐까?

운명의 한 달, 정의와 평화를 위해 최선 다해 싸우자

3월은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이른바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테러지정국 재지정 논의가 고개를 들 것이고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 혐의도 추가될 것이다. 당연히 북한은 강하게 반발할 것이고, 그 이후는 박근혜 정부에서 익숙히 보아온  장면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당장 닥쳐 온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은 안보 불안이 절실히 필요한 적폐 세력의 요구와 미국의 강경 입장이 맞물려 유례없는 긴장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보수집회는 더욱 광기를 머금고 기승을 부릴 것이다. 야당과 야권후보들은 이런 상황이 되도 전략적 모호성과 수세적 태도로 일관할 것인가?

탄핵 인용과 무관하게 저들은 안보를 팔아 생명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방향타를 잡았다. 보수의 아름다운 퇴장과 새로운 보수의 태동은 분단국에선 사치와 같다.

북풍은 허구적 여론에 불과하다. 지금과 같이 광장이 열리고 상식적인 토론이 넘치는 국면에선 절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김진태 의원이 촛불의 배후를 북한이라고 했다가 호되게 비난을 받은 일은 이를 입증한다. 정부가 안보에서 무능할 때 북풍은 맥을 못 춘다.

박근혜 정부는 4년 동안 총체적으로 안보와 외교의 무능을 드러냈다. 그 무능한 정부가 자신의 무능을 또 다른 무능으로 덮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의 태도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런 정부의 무능을 덮어주는 결과를 빚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졸속으로 추진된 사드 배치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전략적 모호성으로 가려주고, 북한 붕괴를 염두에 둔 한탕주의식 대북정책으로 강행한 개성공단 폐쇄 또한 현실의 문제를 들어 이를 바로잡기 어렵다는 식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지금 바로 박근혜 외교안보팀의 위험천만한 행동을 전지하고, 적폐 청산에 주저 없이 나서야 한다. 북풍에 대한 수세적 태도를 버리지 않고서는 적폐의 역습을 막을 수 없다.

탄핵 인용 이후 다시 60일이 지나는 동안 선거운동 외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대통령 후보만 넘쳐난다면, 이 나라는 다시금 어두운 시대를 맞게 되가 될 것이다.

그것은 선거 결과와 무관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반도평화포럼 사무차장입니다.



태그:#탄핵, #적폐, #특검, #촛불, #선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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