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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혁명적이었다. 엘빈 토플러가 정보 혁명을 제3의 물결로 지칭한 이유를 충분히 증명하고 남을 만큼 우리 생활은 새로운 물결로 뒤바뀌었다. 스마트폰 하나면 안방에서 쇼핑이 가능하고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한밤중 몸에 이상이 생겨 그 증상이 무엇인지 인터넷을 찾으면 정보들이 주르륵 쏟아진다. 참으로 신기하고 편리하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쏟아지는 정보들 중에는 거짓 정보도 많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우려했던 정보조작이 이루어지고, 가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우리를 혼란시키고 민주주의를 오염시킨다.

최근 한국에서 판을 치는 가짜뉴스가 그 단면을 생생히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사이버 공간을 누비는 각종 유언비어와 루머들. 박 대통령 지지 세력은 '탄핵기각설', '탄핵연기설', '3월 대란설' 등 가짜뉴스를 만들어 SNS와 인터넷 포털을 장식한다. 이는 전시의 유언비어를 방불케 한다.

가짜 정보의 사용은 하나의 이론이나 의문을 퍼트리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세 콘스탄틴 대제가 가짜 문서를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게 증여하고 이를 근거로 특권과 영토를 보장받았다. 또한 19세기 말 프랑스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드레퓌스 사건 때는 앙리 대장이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부당하게 제압하기 위해 완벽히 꾸며낸 서류를 이용하기도 했다.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면서 가짜뉴스는 어떠한 사안을 악의적으로 기만하는 무기로 작용한다. '가짜'는 악의를 가진 사람들이 선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다. 특히 선거에서 상대편의 신뢰를 떨어뜨리기 위해 고의로 생산하고 SNS나 인터넷 포털을 통해 퍼뜨린다.

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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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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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2015년 파리 테러 이후 각종 가짜뉴스가 인터넷상에서 판을 치기 시작했다. "한 여성이 네 개의 테러에서 살아남았다. 이민자들이 칼레(Calais)에서 불꽃놀이 축제를 했다. 바뇰레(Bagnolet)에서 총살과 소동이 있었다"는 등 각종 루머가 성행했다. 이 가짜 정보는 때때로 앵톡스(intox, 영어로는 hoax)라고 불리며 '기만작전'이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아주 그럴싸하게 만들어져 돌아다닌다.

프랑스 대선 앞두고, 가짜뉴스 판독하는 프로그램도 생겨나
이러한 앵톡스는 오는 4월과 5월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더욱 번성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의 사생활이나 정책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가짜 정보와 루머들이 입에서 귀로, 사이버 상으로 퍼져 나가 선거판을 교란시킨다.

프랑수와 피옹 공화당 후보 선거대책 본부는 "일부 주제에 대한 정보 조작이 피옹의 제안을 희화화하거나 가짜 정보가 유권자들을 혼란하게 한다"며 가짜뉴스에 대처하기 위한 사이트를 만들었다. 엠마뉘엘 마크롱 역시 같은 취지에서 가짜 정보를 전담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다.

프랑스 언론계도 가짜뉴스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먼저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에 해당하는 프랑스 엥포(France Info)는 가짜 정보를 판독하는 "참과 거짓(Le vrai du faux)"이라는 프로를 진행한다. 이 프로의 진행자 앙뚜완느 크렝프(Antoine Krempf)는 2015년 파리 테러 이후 급증하고 있는 많은 루머들을 판독했다. 이 프로에서 그는 3명의 초등학교 5, 6학년생과 질의응답을 하고 조언도 해준다.

또한 프랑스 앵포는 르몽드와 함께 지난해 9월 16일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를 포함한 주요 SNS 업계와 20여 주요 언론 관계자들이 글로벌 비영리 단체인 퍼스트 드래프트 뉴스(First Draft News)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의 목적은 기자와 시민들이 가짜뉴스와 맞서도록 관심을 고조시키고 인터넷에 공개되고 있는 정보 중 가짜 정보를 걸러내 정보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르몽드를 비롯하여 리베라시옹, 렉스프레스, 뱅미뉘(20 Minuits), AFP 통신, BFM-TV, France Televisions, France Media Monde 프랑스 8개 언론사는 지난 2월 6일 SNS에서 만연되고 있는 가짜뉴스와 전면전을 펼치기 위해 페이스북과 따로 손을 잡았다.

특히 르몽드는 Decodex라는 해독기를 설치했다. 이는 정보내용이 편집상 문제를 일으킬 때 알고리즘 상에서 작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가짜뉴스 필터링 시스템'이다. 르몽드 편집국장 제롬 페놀리오(Jerôme Fenoglio)는 "오래 전부터 SNS에서 고의적으로 조작된 정보나 루머가 돌아다니고 있다. 이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으며,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 선거 캠페인 이전인, 2015년 파리 테러에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네티즌들이 신뢰 있는 정보를 선별할 수 있게 일 년 전부터 장치 마련을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해 왔다. 그것이 이번에 탄생한 Decodex다"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인 기욤 브로사르(Guillaume Brossard)는 2명의 동료와 함께 'Hoaxbuster'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흘러 다니는 소문이나 거짓 정보의 전파를 막기 위해 마련된 이 웹사이트는 특히 이슬람 혐오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 주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 주요 언론사는 콘텐츠 플랫폼 업체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여론을 왜곡하는 가짜뉴스를 차단하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고, 민간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2월 6일 JTBC <뉴스룸>은 친박단체가 발행했다는 300만부 인쇄물이 "국정개입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가짜뉴스"이며 수억원 대의 제작비용도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2월 6일 JTBC <뉴스룸>은 친박단체가 발행했다는 300만부 인쇄물이 "국정개입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가짜뉴스"이며 수억원 대의 제작비용도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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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고작 경찰이 '허위·악의적인 가짜뉴스 제작과 유포행위를 포함한 사이버 범죄를 오는 5월 17일까지 특별단속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전부 아닌가. 가짜뉴스가 날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데 보수언론은 꿀 먹은 벙어리다.

어디 그뿐인가. 일부 보수언론은 가짜뉴스를 적극적으로 보도까지 함으로써 진짜뉴스로 탈바꿈시키는 용감무쌍한 일마저 저지르고 있다. 언론이라기보다 보수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진영논리를 일삼는 주체를 자처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보수 언론이 이렇게 뒷짐 지고 한가하게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가짜뉴스가 성행하면 사람들은 머지않아 모든 정보를 의심하고, 나아가 언론 자체를 불신하게 될 것이다. 보수언론은 가짜뉴스 사태를 남의 일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일로 받아들여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언론의 오염이 심각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걷잡을 수 없이 뒤숭숭하게 된다. 더 늦기 전에 가짜뉴스와 전면전을 펼쳐라. 언론이 건강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바람 앞의 등불이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사명을 보수언론은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뉴스토마토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보완한 글입니다. 글쓴이 최인숙은 시앙스포(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입니다.



태그:#가짜뉴스, #대선보도, #르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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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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