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수만 관객을 동원하며 열풍을 일으킨 재개봉 영화는 2월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제외하면 2월 재개봉작이 1월 재개봉작인 <반지의 제왕>시리즈, <빌리 엘리어트>에 비해 다소 덜 알려진 영향도 있었다. 박스오피스 5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린 2월 재개봉작은 모두 3편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 <제리 맥과이어> <블랙>이었다. 3편 모두 재개봉작 대박으로 여겨지는 1만 관객선은 넘지 못했다.

3월엔 보다 대중성 있는 재개봉작 여러 편이 관객을 찾는다. 그 가운데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진한 삶을 담아낸 영화 네 편을 가려 뽑았다. 각기 미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영화로 관객들에겐 세계 각국의 예술적 성취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네 작품을 아래에 소개한다.

[하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 ⓒ (주)노바미디어


"난 트레이너를 원해요. 동정도 필요없고, 호의도 필요없어요"

어느 외진 복싱체육관, 서른 한 살의 여자가 한 늙은 트레이너를 찾아온다. 트레이너는 복싱을 시작하기엔 너무 늙어버린 이 여자를 받지 않으려 하지만 여자는 트레이너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해보인다. 트레이너와 선수의 관계가 된 둘은 맹훈련을 통해 훌륭한 선수와 세컨드(선수 보조원)로 거듭난다. 챔피언벨트 코앞까지 다가선 이들은, 그러나 예기치 못한 불운을 맞이한다.

감독과 주연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2005년작인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전반부를 한 여성이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는 성장영화로, 후반부를 끈끈하고 애절한 가족애가 흐르는 작품으로 그려냈다. 베아트리스 달의 열연으로 유명한 <베티블루 37.2>를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데 이 영화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바로 이 같은 절절한 분위기를 추억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레이너를 연기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그의 친구 전직복서 스크랩을 연기한 모건 프리먼, 그리고 주인공에 낙점된 힐러리 스웽크의 연기와 이들이 빚어낸 조화도 일품이다.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같이 속도감 있는 전개에 열렬한 감동이 쫓아오지 않을지라도 이 영화가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확실하게 관객 가슴에 채워진 빗장을 풀어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8일 재개봉한다.

[둘] <라빠르망>

 <라빠르망>의 재개봉 포스터.

<라빠르망>의 재개봉 포스터. ⓒ 디스테이션


9일 재개봉하는 사랑에 대한 짤막한 필름.

1996년작으로 유럽을 넘어 미국과 아시아 등지에서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아 할리우드에서 조쉬 하트넷 주연의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로 리메이크 됐지만 원작의 수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감독인 질 미무니는 <라빠르망> 이후 별다른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이 영화로 인연을 맺고 실제 부부가 된 뱅상 카셀과 모니카 벨루치는 지난 2013년 이혼하기까지 유럽 최고의 스타커플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촬영 당시 30대였던 두 주연 배우를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건 매력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이들을 비롯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토탈 이클립스>에서 눈에 띄는 연기를 선보인 로만느 보링거가 출연, 영화에 생명력을 더하는 비범한 연기를 펼친다. 여러모로 이야깃거리가 많은 영화로 멜로는 물론 스릴러와 드라마 팬들까지도 사로잡을 수 있는 다채로움도 강점이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세련된 연출, 매력적인 배우들의 조화가 수준급인 <라빠르망>은 사랑이란 것의 여러 면모를 등장인물의 특색있는 캐릭터를 통해 형상화했다. 일명 아트영화가 인기를 누렸던 1990년대 후반 개봉해 적지 않은 관객을 모았다.

[셋] <일 포스티노>

 시심을 일깨우는 영화 <일 포스티노>가 재개봉한다.

시심을 일깨우는 영화 <일 포스티노>가 재개봉한다. ⓒ 영화사 진진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날 찾아왔다.
난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것이 겨울이었는지 강이었는지
언제 어떻게인지 난 모른다.
그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다.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길에서
그 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파블로 네루다

설명하면 진부해질까 두려운 것은, 이 영화도 시와 마찬가지다.

[넷] <패왕별희>

 장국영의 열연이 돋보인 <패왕별희>

장국영의 열연이 돋보인 <패왕별희>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중국영화계의 기수 가운데 하나로 꼽힌 천 카이거의 대표작. 기구한 운명의 두 경극배우를 주인공 삼아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홍콩자본과 합작해 만든 이 영화는 칸 영화제 그랑프리와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1990년대 중국영화가 거둔 최고의 쾌거로 기록됐다.

<패왕별희>는 다른 무엇보다 배우 장국영의 열연으로 오래도록 기억된다. 고운 선 탓에 경극에서 여자 역할을 맡게 된 두지(장국영 분)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동료이자 친구 시투(장풍의 분)에 연정을 품고, 아편에 빠져 사는 모습은 많은 관객에게 안타까움을 샀다. 영화는 그의 비극적 운명 너머로 중국 현대사의 절절한 아픔을 녹여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3년 4월 1일,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장국영의 기일을 앞두고 재개봉이 결정됐다. 우수어린 낭만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린 장국영의 팬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30일 재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라빠르망 패왕별희 일 포스티노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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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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