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 국회 근처에서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은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태극기를 펄럭이는 그들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은 흉물을 보는 것처럼 태극기를 보고 질색했다. 태극기가 자연스럽게 극우단체를 연상시킨 것이다.

나는 태극기가 이대로 완전히 '극우의 상징'으로 굳어버릴까 걱정된다. 극우단체는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들고 다닌다. 여러모로 부끄러운 광경이다. 그러나 태극기는 죄가 없다. 오히려 그 탄생은 매우 자주적이다.

청의 간섭, 자주적인 태극기를 탄생시키다

1882년, 역관 이응준이 만든 태극기. 이후에 태극기는 잠시 8괘로 바뀌기도 했다. 1883년에 정식으로 4괘로 채택된다.
 1882년, 역관 이응준이 만든 태극기. 이후에 태극기는 잠시 8괘로 바뀌기도 했다. 1883년에 정식으로 4괘로 채택된다.
ⓒ 국가기록원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사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근대적인 국기'는 없었다. 하지만 근대화 시기에 서양국가와 접촉하면서 국기 제정이 필요해졌다. 이때 청에서는 조선에게 황당한 요구를 했다. 제후국인 조선이 황제국인 청의 깃발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제후국'인 만큼 다소 격을 낮춰 쓰라고. 조선을 속국으로 여긴 오만한 요구인 셈이다.

그러나 조선은 거절했다. 그 요구가 수치스러운 것임을 안 것이다. 이로 인해 청과 조선은 외교적인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은 끝끝내 청의 깃발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기를 제정했다. 1882년, 역관 이응준은 정부의 명령에 따라 국기의 도안을 그렸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태극기 원형이다. 1883년, 태극기는 정식으로 조선의 국기로 사용됐다.

이때 태극기는 기존 8괘에서 4괘로 간소화됐다. 그리기 어렵고 복잡하다는 영국인 선장의 조언을 반영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태극기가 '서양인의 입맛대로 만들어진' 깃발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두자. 그것은 청과 같은 '강요'가 아닌 '조언'이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청의 깃발을 사용하는 것과, 새로운 국기를 사용하는 것. 어느 쪽이 '자주적'인지를 말이다. 이후 태극기는 대한제국 멸망 후에도 임시정부와 독립군 등이 사용하여 '민족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는 해방 이후에도 이어진다.

북한에서도 태극기를 썼다

전당대회 중에 연설 중인 김일성. 뒤의 태극기가 인상적이다. 이 외에도 김일성 선전물에 태극기 배경으로 나오는 것이 상당하다.
 전당대회 중에 연설 중인 김일성. 뒤의 태극기가 인상적이다. 이 외에도 김일성 선전물에 태극기 배경으로 나오는 것이 상당하다.
ⓒ 구글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태극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계신다. 이를 물어보면 태극기가 '우익적'이라는 근거를 댄다. 아무래도 최근 박사모와 같은 극우단체가 태극기를 들고 다닌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태극기 자체는 우익적이지는 않다. 그건 잘못된 주장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좌·우익을 망라하여 태극기를 들었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회주의자들도 태극기를 사용했다. 심지어 북한에서도 해방 이후에 태극기를 썼다. 여기에는 많은 분들이 놀라실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북한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했다. 1946년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 당시에 태극기를 걸었을 정도다.

놀랍게도 김일성도 태극기를 애용했다. 지금도 찾아보면 김일성이 태극기 앞에서 연설을 하는 사진, 태극기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온다. 심지어 태극기가 그려진 김일성 우표도 존재한다. 만약 태극기 자체가 '우익적'이었다면, 과연 '좌익적'인 북한에서도 사용했을까?

1948년 7월 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태극기를 폐지할 때까지, '공산주의' 북한에서도 태극기는 휘날렸다. 이후에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인공기'가 대신했지만. 그러나 인공기는 북한의 주장과 달리 그다지 '자주적'이지는 못하다. 사실상 소련에서 인공기 사용을 강요했다는 증언들이 존재한다. 이는 스탈린이 인공기를 그려서 보내줬다는 소문과도 맞물린다.

일설에는 이런 재미있는 주장도 있다. 북한에서는 끝까지 태극기를 사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에 당시 북한 주둔 소련군 정치위원 레베데프는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

"뚱딴지같은 소리."

소련군 고위층에게 핀잔을 들을 정도로, 북한은 태극기를 사용하고 싶어했다. 그만큼 태극기는 이념을 뛰어넘어서, 이미 '민족의 상징'으로 여겨진 셈이다.

태극기, '극우의 상징'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독일에서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를 들면 네오나치로 보인다. 한국에서 태극기를 들면 박사모로 보인다.

이는 상당히 웃기고도 슬픈 현실이다. 지금은 금기가 된 하켄크로이츠는 본래 게르만인이 청동기 시대부터 썼던 '행운의 상징'이다. 나치와 히틀러 등 극우가 적극 사용했기에 지금은 '나치의 상징'으로 바뀌었지만. 그 때문에 북미·유럽에서는 하켄크로이츠와 비슷한 문양에도 질색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태극기의 상황도 똑같다. 민족의 자주성을 위해 탄생된 태극기.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손에 쥐어졌던 '독립의 상징'인 태극기. 임시정부와 독립군, 사회주의자 등 좌우익을 망라했던 그야말로 '민족의 상징'이었던 태극기.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지난 25일 오후 서울광장 일대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회원을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탄핵기각' 친박 집회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지난 25일 오후 서울광장 일대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회원을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그런 태극기의 현실은 실로 참담하다. 현재 태극기는 '극우의 상징'으로 남을 지경이다. 만약 태극기를 들고 다닌다면 박사모로 의심받기 딱 좋다. 예우를 받아야 할 태극기가, 오히려 기피와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현재 극우단체들은 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들어댄다. 그리고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것을 이제 더는 좌시해서는 안 된다. 고결한 태극기는 그런 부패하고 폭력적인 집단의 상징이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제는 우리가 나설 차례다. 태극기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태극기가 부끄러운 자들에 의해서 더럽혀지는 것을 더는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제안한다. 3.1절을 맞이해서 태극기에 노란리본을 달아서 광장으로 가자!


태그:#고충열, #태극기, #3.1절
댓글2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