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23일 오후 7시 반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최근 <국가란 무엇인가>의 개정신판을 펴낸 유시민 작가의 출간기념 강연회가 열렸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 시국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강의장은 일찌감치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은 청중들로 가득했다.

강의장은 3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이었지만, 몰려드는 청중들로 인해 결국 1층 카페에 빔프로젝터를 설치하는 등 '분산 수용'이 이뤄졌다. 페이스북을 통해 진행된 실시간 생중계 방송 역시 조회수 1.5만명을 웃도는 등 이번 행사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윽고 행사 시간이 되자 주인공인 유시민 작가가 등장했다. 청중들의 박수갈채가 동시에 쏟아졌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무대 위에 오른 그가 마이크를 잡자 청중들은 일제히 그의 입을 주목했다.

 발언하는 유시민 작가의 모습
 발언하는 유시민 작가의 모습
ⓒ 김경준

관련사진보기


"민주주의 가르쳐준 최순실에게 고마움 느낀다"

"굳이 책에 있는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겠다"며 그는 40여 분에 걸쳐 '국가와 민주주의와 나'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그는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민주주의를 정치체제로 채택한 국민국가의 형태로 편제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과연 완벽한 제도인지, 올바른 방향으로만 갈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는 말로 강의의 서두를 열었다.

그는 독일의 사례를 언급하며 "민주주의라고 해서 무조건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민주주의를 올바르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의미를 고민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의식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나치의 역사를 통해 민주주의를 잘못 운용한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부족했다는 것이 유 작가의 판단이다.

실제로 우리는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은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지금 그 대가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아래 박근혜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독일 국민들에게 히틀러가 그랬듯 박근혜 게이트는 우리들에게 잘못된 선택에 따르는 대가를 치른다는 뼈저린 교훈을 안겨준 셈이다. 유 작가는 "최순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박근혜 게이트가 폭로된 이후 4개월 동안 쌓인 집단적 경험은 민주주의에 관한 '족집게 과외'가 이뤄진 셈이나 다름없다. 최순실은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이며 민주주의는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 그 제도를 잘못 운용할 경우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상세하게 가르쳐줬다.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 각성하지 않았나." 

이어 그는 "최순실의 죄는 밉지만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준 사람이니 한 번 만나면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재치있게 마무리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유시민 작가가 새로 펴낸 <국가란 무엇인가> 개정신판 표지
 유시민 작가가 새로 펴낸 <국가란 무엇인가> 개정신판 표지
ⓒ 김경준

관련사진보기


탄핵·대선 등 시국 이슈에 대한 질문 쏟아져

1부 행사 격인 강연이 끝나자, 박혜진 아나운서의 사회로 유 작가와 청중들 간의 대담이 이뤄졌다. 대담은 사전에 접수한 질문들과 함께 즉석에서 청중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유 작가가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강의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만큼이나 그에게 쏟아지는 질문들의 면면은 다채로웠다. 그러나 대부분 현 시국과 관련된 질문들이 지배적이었다.

특히나 올해는 최대 이슈인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탄핵 심판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될 경우 조기 대선마저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선 주자들의 행보 역시 급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광폭행보를 보이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필두로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그의 뒤를 바짝 좇고 있는 형국이다. 자연스레 대선 주자들에 대한 유 작가의 생각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대선 주자와 관련해 그에게 던져진 첫 번째 질문은 '지도자의 화법'에 관한 문제였다. 이는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안희정 지사의 '선한 의지' 발언을 의식한 질문이기도 했다. 최근 안 지사가 공개석상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도 선한 의지를 갖고 잘해보려고 한 것"이라는 뉘앙스로 발언을 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던 탓이다.

논란이 커지자 안 지사는 곧바로 사과했으나 여론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결국 20%까지 치솟아올랐던 지지율은 10%대로 급락하고 말았다. 박 아나운서는 "대선 주자들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지도자의 화법은 어때야 한다고 보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유 작가는 대뜸 "언론에 불만이 있다"고 열을 올렸다. 그는 "지도자의 화법에 대해 언론이 스스로 특정 기준을 세워놓고 기준에 어긋나는 후보에 대해 공격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안 지사의 발언 뒤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않은 채, 겉만 보고 공격하는 건 전형적인 반지성주의"라고 비판했다.

 대담 중인 박혜진 아나운서(좌)와 유시민 작가(우)
 대담 중인 박혜진 아나운서(좌)와 유시민 작가(우)
ⓒ 김경준

관련사진보기


그는 유독 언론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얼마 전 그는 <SBS 스페셜>에 출연해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숨죽이고 있던 언론에 대해 질타하기도 했다. 마침 한 여성 청중이 "언론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지 궁금하다"고 질문하자, 작심한 듯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갔다.

그는 "나쁜 신문은 안 보면 된다"며 "자주 가는 가게 사장님이 나쁜 신문을 보고 있으면 '그런 신문 왜 보시냐'고 한 마디라도 하라"고 조언했다. 특히 종편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퇴출시킬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방송광고시장을 시장주의적으로 개편해야된다고 본다. 시청률 기준으로 보면 JTBC가 채널A와 TV조선의 2.5배 수준의 광고수입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룰이 이상해서 똑같이 받는다. 강제적으로 언론을 퇴출시킨다고 하면 '좌빨이다', '사회주의다', '독재주의다'라고 하니까 시장원리로 퇴출시킬 수는 없을까. 방송광고시장에 자본주의 원리를 확실하게 도입하는 법 개정 청원운동을 해볼까도 고민 중이다."

그는 언론의 소비자인 시민의 주체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요즘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짜 뉴스'에 대한 그의 생각 역시 시민들이 조금만 더 깊게 고민하고 행동한다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가짜 뉴스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어떻게 일일이 쫓아다니며 막겠는가. 그러나 이게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하는 진짜 뉴스들도 많다. 남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옳지 못한 행동을 한다는 건 인지할 수 있지 않은가. 정보 소비자들이 그 가짜 뉴스와 다른 뉴스를 비교해보는 걸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정치인 유시민에서 작가 유시민으로

유시민은 2003년 16대 국회의원으로 직업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국민참여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정의당) 창당에 깊이 관여하며 진보정당의 입을 대변해왔다. 그러다 2013년 2월 19일 돌연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작가로서의 새 삶을 시작했다. 그는 이제 '유시민 전 장관'보다는 '유시민 작가'로 불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작가가 된 뒤 그는 오히려 정치인 시절보다 더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등 시대적 통찰을 담아낸 베스트셀러들을 꾸준히 펴내며 두터운 독자팬들을 확보했다. 특히 JTBC의 시사토론프로그램인 <썰전>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며 의표를 찌르는 발언들로 인기를 모았다.

그 결과 촛불 정국에서 '책임총리론'이 고개를 들자 그를 책임총리로 임명하라는 누리꾼들의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3만 명 이상이 서명운동에 동참하며 화제가 됐지만, 정작 그는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왜 직업 정치인의 길을 포기하고 작가의 길을 선택했을까.

그는 "직업 정치를 해봤는데 별로 잘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나에게 맞는 것 같지도 않았다"고 고백했다.

"20대 때 학생운동 10년, 직업정치인으로 10년. 그렇게 20년을 보내고나니 억울했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은 따로 있는데. 왜 작가의 길을 걷느냐고 묻는다면 '나에게 맞는 삶을 살고 싶어서'라고 답할 수 있겠다. 사람들과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이 일이 좋다."

한편으로 그는 정치의 의미를 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하고자 했다. 그는 "정치란 국가의 기능과 작동방식에 영향을 미치려는 활동이다"라며 "투표를 하는 것도 정치고 인터넷에 댓글을 다는 것도 정치다"라고 말해 직업 정치인만이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국가의 기능과 작동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일을 해나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해 앞으로도 정치 문제에는 꾸준히 관심을 갖고 참여할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가 직업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포기한 것에 아쉬움을 표하는 청중도 있었다. 박 아나운서는 "사전에 접수된 댓글을 보니 '유시민이 다시 정치하게 하려면 책을 사주지 말아야 한다', '돈 없어 굶어봐야 한다'는 댓글들도 있었다"고 하자 현장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그와의 대담은 시종일관 유쾌하게 진행됐다. 달변이기도 했지만 <썰전>을 통해 갈고 닦은 예능 감각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그는 "정치인으로 지낼 때보다 지금이 오히려 정치적 영향력이 더 커진 것 같다"며 "<썰전>을 진행하며 대선 주자들에게 출연을 요청하면 아무도 거절하지 않고 나온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대해 재치있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한 청중이 "박사모 어르신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바람에 이젠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기가 싫어졌다"며 "다가오는 3.1절에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묻자 그는 "태극기 밑에 '3.1절이라서', '박근혜 탄핵과 상관없음' 하고 적어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답해 또 한 번 객석에 웃음을 안겼다.

일상의 비민주적관행과 먼저 싸워야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많은 말을 쏟아냈지만, 공통의 키워드들이 존재했다. '일상', '참여', '민주주의'가 그것이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올바르게 운용하기 위해서 당장 우리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도 모르게 자행하고 있는 비민주적관행을 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비민주적관행이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일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폭력이기도 했다. 어쩌면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에 더욱 심각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선배들이 강요하는 '사발식'을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 직장인들도 타인에 대해서 독재적인 행태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 가정에서도 절대 꽃으로라도 애들을 때리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한다."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당위성을 모르겠다"는 질문에는 '지하철 무임승차론'을 비유로 들어 설명했다. 그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면 얼마나 좋냐"며 "나 한 사람 무임승차한다고 지하철이 서지는 않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면 지하철은 멈출 수밖에 없다"는 말로 적극적인 참여를 주문했다. 또 "원래 시작이 어렵지 하다보면 익숙해진다"며 "촛불 집회도 처음엔 어색할지 몰라도 꾸준히 나가다보면 즐기고 있을 것"이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워주기도 했다.

대담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되자 그는 "아무리 똑똑한 국민이 많아도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 국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당부하며 끝맺었다.

 유시민 작가와 포토타임을 갖는 청중들
 유시민 작가와 포토타임을 갖는 청중들
ⓒ 김경준

관련사진보기


오늘에 더욱 유효한 질문 '국가란 무엇인가'

작년 초 인기리에 종영한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이다. 요동정벌을 위해 대규모 부대를 이끌고 출병한 이성계는 압록강을 앞에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진군을 강행할 경우 고려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회군은 곧 반란이었다. 개성에 인질로 묶인 가족들의 목숨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회군을 종용하는 정도전에게 이성계는 말한다. "왕이란 백성을 먼저 보살펴야 하는 것 아니겠소. 헌데 내 선택은 언제나 가족일 거요." 그는 가족을 지키는 쪽을 택하고자 했다. 그러자 정도전은 '국가(國家)'라는 두 글자를 내밀며 답한다.

"장군, 나라 국(國)자는 창으로 땅과 백성을 지키라는 것이지요. 이게 나라입니다. 나라 국에 가(家)를 더하면 땅과 백성을 창으로 지켜내어 가족을 이룬다. 이것이 국가입니다. 장군의 울타리가 삼한 땅 전체에 뻗는다면 그것이 국가, 그리고 그것이 바로 왕입니다."

국가와 지도자의 올바른 의미와 역할에 대해 명징하게 드러낸 이 장면은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안겼다. 그러나 현실 속 국가는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생명권 보호'라는 국가가 수행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의무조차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권력자들은 권력을 사유화했고, 국정을 마음껏 농단했다. 그들에게 국가란 공고한 기득권을 지켜주는 방패였고, 국민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 모든 진실이 담긴 박근혜 게이트의 진실이 밝혀질 때마다 국민들은 분노하고 경악했다. 국가는 언제든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철통 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가 느껴야만 했던 배신감은 더욱 컸다. 국민들은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면서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본연의 의미와 역할을 상실했기에,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다. 자, 이제 다시 그대들에게 묻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댓글1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애국선열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자 하는 역사학도 / 以茶靜心 以武健身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