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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은 봄날입니다. 봄은 여인들의 옷차림에서 느낀다는데,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며칠 새 한결 따뜻해졌습니다. 남녘은 이미 봄빛으로 화사합니다.

전주 한옥마을에 봄이 찾아왔습니다. 사진은 유서깊은 전동성당입니다.
 전주 한옥마을에 봄이 찾아왔습니다. 사진은 유서깊은 전동성당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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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모양의 앙증맞은 작은 별꽃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 한 분이 고개를 땅 가까이에 대고, 뭔가를 찍고 있습니다.  예사스럽지가 않습니다.

"뭘 그렇게 찍으세요?"
"워메 꽃이 피었서라! 풀꽃이!"
"무슨 꽃인데요?"
"이거가 곰밤부리일 건디! 일찍도 피어부렸네요."

아주머니 손짓을 따라 눈 여겨 보니 아주 작은 꽃 몇 송이가 보입니다. 하도 작아서 눈여겨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것 같습니다. 별꽃으로 보이는데, 아주머니는 곰밤부리라 부릅니다.

"그거 별꽃 같은데요?"
"별꽃 맞죠! 여기선 곰밤부리라 불러요!"

곰밤부리라는 말이 좀처럼 낯설지가 않아 아주머니께 다시 물었습니다.

"곰밤불래라고도 부르지 않았나요?"
"곰밤불래? 곰밤불래란 소릴 다 아시네! 그렇게도 불렀당께!"
"이거 봄나물로도 먹는 거죠?"
"그럼요. 이거가 봄나물 삼총사여, 삼총사!"
"삼총사요?"
"이른 봄에 먹는 냉이, 달래, 곰밤부리가 최고지!"

오랜만에 들어보는 곰밤부리라는 이름이 새롭습니다. 아주머니는 뭔가를 알고 맞장구치는 나를 반기는 표정입니다.

곰밤부리가 새봄에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이를 캐다 봄나물로 무쳐먹거나 된장국을 끓여 먹으면 봄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곰밤부리가 새봄에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이를 캐다 봄나물로 무쳐먹거나 된장국을 끓여 먹으면 봄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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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가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습니다. 자란 곳이 아래쪽 함평이라 하자 자기는 영광에서 왔다면서 더욱 반가워합니다.

나는 옛 기억을 되살려 별꽃을 보고 또 봅니다. 이제 막 피어난 파르르한 모습의 풀꽃이 앙증맞습니다.

아주머니는 신이 나서 말을 잇습니다.

"이걸로요, 우리 엄니는 된장국을 끓였어요. 냉이, 곰밤부리, 거기다 파릇파릇한 보리싹을 베어 섞어 끓이면 끝내주었제! 여기다 홍어애가 들어가면 더 말할 것도 없구! 잃었던 입맛이 싹 살아나고. 와, 옛날 생각 나불구먼!"

가만히 들으니 예전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봄나물 홍어애탕과 똑 같은 말을 합니다. 듣는 것만으로도 구수한 봄나물 토장국 냄새가 풀풀 납니다. 잃어버렸던 옛 기억을 다시 찾습니다.

봄나물 삼총사에 곰밤부리도

이제 새봄과 함께 찬바람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출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따스한 기운에 온갖 새싹이 올라옵니다. 눈 속에 파묻혀있던 보리는 파릇파릇한 얼굴을 내밀고 소담하게 자라나고 있을 것입니다.

달래와 냉이는 이미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온갖 봄나물을 찾다가 숱하게 올라오는 곰밤부리도 나물 캐는 아낙네 바구니를 넉넉히 채워줄 것입니다.

앙증맞은 별꽃이 봄날 꽃을 피웠습니다. 매우 깜찍하고 귀엽습니다.
 앙증맞은 별꽃이 봄날 꽃을 피웠습니다. 매우 깜찍하고 귀엽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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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만나는 두해살이풀 곰밤부리. 별꽃이라는 이름도 예쁘지만 곰밤부리라는 이름이 더 친근합니다. 부드러운 잎사귀에 피어난 별꽃은 하얀 꽃으로 별처럼 반짝입니다. 다섯 장의 흰 꽃잎이 각각 하트 모양으로 신비롭습니다.

곰밤부리는 너무도 흔하디흔한 잡초입니다. 클로버처럼 넝쿨로 뻗어가며 이른 봄, 자잘한 꽃을 피워내어 봄소식을 전합니다. 학술적으로 별꽃이라 부르지만, 곰밤불래나 곰밤부리로 불립니다.

곰밤부리는 독성이 없습니다. 여느 봄나물처럼 먹으면 봄맛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식이섬유와 함께 비타민이 풍부하여 건강에도 좋습니다.

땅이 풀리는 봄에 곰밤부리는 나물을 아는 사람 손에 걸리면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나물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고 합니다. 잡초 속에서 찾아낸 나물도 귀한 보물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곰밤부리처럼 말입니다.

별꽃은 그냥 지나치면 몰라보는 잡초입니다. 땅이 풀리는 새봄에 기쁜 꽃소식을 전해줍니다.
 별꽃은 그냥 지나치면 몰라보는 잡초입니다. 땅이 풀리는 새봄에 기쁜 꽃소식을 전해줍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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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겨울 끝자락이 남아있지만, 슬그머니 피어난 별꽃, 곰밤부리가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혹독한 겨울을 이겨냈습니다. 질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 별처럼 반짝이는 꽃을 피웠습니다. 녀석들의 힘찬 발걸음으로 찬란한 봄이 열리는 듯싶습니다.

한참 사진을 찍은 아주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흥얼거립니다.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

흥겨운 노랫소리에 즐거움이 실려 있습니다. 예전 바구니 끼고 나물 캤던 일이 생각나는 모양입니다. 아주머니 즐거운 노래에 향수가 묻어있습니다.

봄 햇살이 따스한 봄날입니다. 봄 화단에 불쑥불쑥이 새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봄 햇살이 따스한 봄날입니다. 봄 화단에 불쑥불쑥이 새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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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꽃이 전해준 햇살 좋은 봄날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일 년 내내 오늘 같은 봄날 같으면 참 좋겠습니다.


태그:#별꽃, #곰밤부리, #봄나물,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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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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