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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졸업식 꼭 해야만 할까?'

졸업식장서 든 생각이다. 지난 2월 9일 난 중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행복해야 할 순간, 우울했다. 학력으로 줄을 세운 의자, 학교를 위해 강제로 서야 했던 무대, 들러리로 나선 가족들... 모든 게 불편했다.

"앞자리는 선생님들과 반장, 수상자들 앉으세요!"

앞자리를 탐하던 친구는 좌절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기준에 벗어나서다. 학교가 정한 룰에 따라 맨 앞자리는 반장과 선생님이 차지했다. 뒤 열에는 수상자가 앉았다. 운 좋게 수상자로 선정돼 친구와 맞잡은 손을 놓아야 했다. 하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앉는 순서에도 서열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수상자의 얼굴이 대형 스크린에 나타났다. 교육감 상장부터 삼락회장상까지 모두 18명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고, 이름이 호명 된 아이들은 일어나 박수를 받았다. 선생님께 물었다.

"오늘 수상자 선정 기준이 뭐예요?"
"중학교 성적 전체가 높은 18명을 뽑았어."

대답을 듣고 웃을 수 없었다. 학교생활을 잘했다는 기준이 '성적'이라니, 동의할 수 없었다. 성적이 높을수록 큰(?)상을 준다는 말에 의문이 들었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인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던 학교, 그러나

즐겁고 행복한 졸업식은 불가능한 건가요?
 즐겁고 행복한 졸업식은 불가능한 건가요?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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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선 이렇게 가르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공부 잘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학교는 수상자와 앉는 순서까지 성적을 따진다. 혼란스럽다.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나는 왜 열심히 공부할까? 공부를 잘하면 자랑스럽고 행복할까? 공부를 잘한다고 학교생활도 잘하는 걸까? 그렇다면, 엘리트 집단이 일으킨 국정농단 사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깊어지는 나와 달리 졸업식은 착착 진행됐다. 저 멀리 부모님이 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함께 서 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의자는 없다. 졸업은 학교를 위한 행사지, 학생과 가족들을 위한 행사가 아니다. 다시,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할머니, 할아버지가 힘들어 하시는데, 앉을 의자는 없나요?"
"없는데 어떡하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니까 아예 준비를 안 했다고 하네."

졸업식이 끝나고 부모님이 불만을 토했다.

"뭘 그렇게 오래하냐. 너무 오래 서 있어서 다리 아파. 힘들어서 졸업식을 못보고 추운 교실에서 대기하신 학부모들도 계시더라."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있었으니 이해가 됐다. 학교에서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해야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축하해주러 온 손님들, 졸업하기까지 우리들을 돌봐주시고 교육하신 선생님과 가족들은 대상이 아니었다.

존중과 배려를 받지 못한 건,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졸업식 마지막 순서로 준비된 반별 공연이 그렇다.

졸업공연, 너무 하기 싫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졸업 할 때까지 학교를 다닐 때 정신없이 바빴다. 고등학교 준비를 위한 것도, 수업을 해서도가 아니라 이 졸업식 공연 준비 때문이었다.

공연을 준비하라는 일방적인 통보. 어떤 공연을 준비할까 학급 회의를 할 때 친구들 얼굴엔 하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학교는 학생과 선생님들이 어우러지고 동등한 공간이라는 말은 멀게만 느껴진다. 어느새 부터 우리는 소통이 아니라 무조건 선생님들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어떤 선생님들께서는 수업을 준비하셨지만 수업시간들은 공연 준비시간으로 쓰였다. 이번뿐만이 아니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 댄스, 팝송, 스포츠 등 각종 반 대항 대회를 만들었고 대부분 수업시간에는 공연 준비를 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시험 끝나고 어차피 공부 안 하려고 하잖아."

난 이렇게 되받아치고 싶었다.

'과연 그럴까요. 만약 그렇다고 해도 수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학생들을 불신하고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이 건강한 학교의 모습인가요.'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학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이런 졸업식과 이런 졸업식 준비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내가 상상하는 행복한 졸업식은 이렇다. 학생 모두가 존중과 배려 받는, 주인공이 되는 졸업식. 부모님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졸업장을 받는 졸업식. 정들었던 선생님과 친구들, 학교와 헤어지는 게 아쉬워 눈물 콧물 쏟는 졸업식. 이런 졸업식은 불가능한 걸까?


태그:#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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