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탄핵 촛불을 밝히느라 주말이 없어진 지 4개월째다. 광장은 자연스럽게 민중의 민주주의 교육의 현장이자, 삶의 자리가 되었다. 맨 처음으로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텐트촌이 생겼다. 설치미술가 최병수의 조형물로 광장은 자연스럽게 야외 조각 미술관이 됐다. 언제부터인지 어릴 적 봤던 서커스단을 연상시키는 천막 극장도 생겼다.
'궁핍미술관'이라는 천막미술관도 들어섰다. 광장은 온통 무대이자 객석이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상황에 따라 관객도 되고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민속춤 시 낭송회, 상황극, 등 즉석에서 매일매일 다양한 문화 행동이 펼쳐진다. 블랙리스트 작가들이 열린 광장에 꽃피운 예술로 관객과 작가들은 금지된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향유한다.
다정하게 손을 잡은 커플이 노란 리본 스티커를 얼굴에 붙이고 미술관에 들어와 셀카를 찍는다. 대여섯 살 쯤 되어 보이는 딸의 손을 잡고 들어 온 젊은 아빠가 현장에서 판매 중인 시집 <천만 촛불 바다>를 산다. 손 피켓을 손에 든 사람들은 온몸으로 그들이 바라는 나라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주말마다 광장에 모여 새로운 민주주의의 역사를 써 나가고 있는 당신과 나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꺼지지 않는 민주공화국의 실체이며 이 나라의 참 주인이 아니던가. '천만 촛불 바다'는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에 의해 영상으로 시로, 그림으로 글로 기록되어 새로운 민주 역사의 살아있는 증거로 남겨질 것이다.
블랙리스트 시인들이 천만 촛불에 대한 응답을 <천만 촛불 바다>(실천문학사)로 엮어 선보였다. 고은, 강은교, 박노해, 공광규 시인 등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광장에서 촛불을 든 예순 한 명의 시인이 시로 천만 촛불에 답했다. 시집 말미에 박근혜 정권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 6367명도 수록해 기록으로 남겼다.
고은 시인은 '다 나오셨네'에 광장의 풍경을 노시인의 따뜻한 눈길로 담아냈다.
다 나오셨네 - 고은 온몸으로 보아 우는 몸으로 보아 저 촛불 바다 젖먹이 세 살 난 아기도 스물아홉 살 엄마가 조심스레 이끄는 아기 수레 타고 나왔네 아기 수레 나아갈 때 여기서도 저기서도 열어주시네 열두 살 초등학교 코흘리개도 나왔네 열다섯 살 중학생 열일곱 살 고등학생도 나왔네 다 나왔네 회사원도 학장도 나왔네 백한 살 할머니도 늙은 아들 손잡고 나오셨네 다 나왔네 다 나오셨네 혹에 나오지 못하였거든 집집마다 뜻을 걸고 일터에도 막을 걸었네 몇 백만 촛불 바다 이 위대한 혁명 이 세계사 처음의 평화혁명 이 촛불의 파도 위에 나왔네 이승의 나도 저승의 나도 나왔네 누구도 어느 누구도 나오셨네 아 이 세상 어떻게 아름다움이겠는가 시인은 언어라는 제한된 수단으로 시를 쓰지만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선 시민들은 온몸과 뜨거운 가슴으로 시대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어떤 언어가 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촛불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촛불을 든 당신이 바로 최고의 절창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광장에 촛불로 선 순간 그저 마음과 눈길로 느끼는 모든 것은 언어가 담아 낼 수 없는 감동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시대의 절창을 노래하고 싶다면 촛불의 향연에서 촛불을 밝혀 들 일이다. 촛불을 들고 함께 희망을 노래하면 당신과 우리의 꿈이 현실로 눈앞에 펼쳐질 것이기에.
이게 나라다- 박노해눈발을 뚫고 왔다추위에 떨며 왔다촛불의 함성은 멈추지 않는다100만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어둠의 세력은 포위됐다불의와 거짓은 포위됐다국민의 명령이다범죄자를 구속하라눈보라도 겨울바람도우리들 분노와 슬픔으로 타오르는마음속의 촛불은 끄지 못한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우리는 멈춰서지 않는다나라를 구출하자정의를 지켜내자공정을 쟁취하자희망을 살려내자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나는백만 촛불 중의 하나가 아니라백만 촛불의 함성과 한몸이 된크나큰 빛이 되어 나 여기 살아있다이게 나라다이게 민주다이게 역사다촛불아 모여라될 때까지 모여라 덧붙이는 글 | 천만 촛불 바다/ 실천문학사/ 10,000
*이 책의 수익금 읿부는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업에 전달 및 문화예술인둘의 권리증진 사업에 사용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