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삼각편대, 바로티-서재덕-전광인(왼쪽부터)

한국전력 삼각편대, 바로티-서재덕-전광인(왼쪽부터) ⓒ 박진철


한국전력에게 흥행 특별상을 줘야 한다. 자신을 괴롭혀 모두를 웃게 만들기 때문이다.

2016~2017시즌 V리그에서 한국전력은 13일 현재 29경기를 치른 가운데, 13번을 5세트까지 가는 풀세트 접전을 펼쳤다. 13번의 5세트 경기 중 10승 3패를 기록했다. 승률이 77%에 달한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손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풀세트까지 가면 이겨도 승점을 2점밖에 얻지 못하고, 패한 팀에게도 1점을 나눠줘야 한다.

한국전력은 현재 19승 10패, 승점 50점으로 3위다. 2위 현대캐피탈(18승11패·52점)보다 승수와 승률이 높은데도, 승점에서 밀려 3위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4위 우리카드(15승14패·49점)보다 4승을 더 했음에도 승점 차이는 고작 1점에 불과하다. 한 번 삐끗하면 4위로 추락할 수 있는 상황이다. 풀세트 경기를 너무 많이 한 대가이다.

봄 배구인 포스트시즌(준플레이오프 이상) 진출을 위해서는 최소한 정규리그 4위를 해야 한다. 그것도 3위와 승점 차이를 3점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한국전력이 풀세트 경기를 절반만 줄였어도, 지금의 봄 배구 걱정도 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은 5세트와 인연이 매우 깊다. 지난 2011~2012시즌 V리그에서 신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던 대한항공은 정규리그에서만 14번의 5세트 경기(9승 5패)를 펼쳤다. 이는 프로배구 V리그 출범 이후 특정 팀이 한 시즌에 기록한 최다 풀세트 기록이다. 플레이오프까지 포함하면 16번의 풀세트 경기를 했다.

한국전력이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 2경기만 더 풀세트 경기를 하게 되면, 프로 출범 이후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프로야구보다 늦은 귀가, '재밌는데 지친다'

체력적인 손해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지난 3일과 8일에는 2번 연속 밤 10시 30분까지 풀세트 경기를 펼쳤다. 웬만한 프로야구 경기보다 늦게 끝난 것이다.

같은 홈 구장(수원 실내체육관)을 사용하는 여자부 현대건설이 똑같이 5세트 접전을 벌이다 보니 한국전력의 경기 시작도 1시간여 늦춰지면서 발생한 일이다. 선수들도 힘들지만, 팬들도 지친다. 현대건설과 한국전력 경기를 모두 관전한 팬들은 5시간 30분 동안 10세트를 지켜본 뒤에 집으로 돌아갔다.

한 배구팬은 일행과 귀갓길에 "5세트 보는 맛이 재밌고 쫄깃한데, 내가 지친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국전력 구단 관계자와 팬들은 피가 마르지만, 다른 팀 관계자와 팬들은 보는 맛이 쏠쏠하다. 일각에선 '절전'을 솔선수범해야 할 한국전력이 가장 많은 전기를 쓰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한국전력은 주전과 비주전의 경기력 차이가 크기 때문에 주전 선수들이 교체 없이 전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체력 소모가 다른 팀보다 클 수밖에 없다. 이는 고스란히 풀세트 경기가 많아지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신영철 감독 "봄 배구만 가면, 챔프전까지 자신 있다"

한국전력은 과도한 5세트 경기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지만, 배구팬들에게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그리고 약팀에게 자비롭기까지 하다. 팀별 상대 전적을 살펴보면, 강팀에게 강하고 약팀에게 약한 '강강약약' 현상이 두드러진다.

1위 대한항공과는 2승 2패로 호각세를 이루고 있다. 2위 현대캐피탈에게는 5전 전승을 기록했다. 전통의 강호 삼성화재에게도 4승 1패로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하위 팀에게는 한없이 승점을 나눠줬다. 최하위 OK저축은행에 6개 팀 중 가장 많은 승리(2승)와 승점(5점)을 헌납했다. 6위 KB손해보험에게도 OK저축은행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승점(8점)을 선사했다.

은혜를 베푼 자의 여유인가.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과 선수들은 자신감이 넘쳐난다.

신 감독은 12일 기자와 통화에서 "포스트시즌에 올라가기만 하면 챔피언결정전까지 갈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 팀의 전력과 기세로 보면, 단기전에는 해볼 만하다"며 "5세트 경기도 많이 했지만 승률도 좋고, 선수들의 자신감에 싸여있다. 26일 삼성화재전까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10일 우리카드전이 정말 중요한 경기였는데, 선수들 눈빛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였다"며 "앞으로도 그런 자세로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라고 강한 믿음을 보였다.

체력적인 부담에 대해서는 정신력을 강조했다. 그는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 먹기에 달렸다"며 "피곤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피곤하고, 컨디션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정신력으로 밀어붙이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년 꼴찌, '창단 최초 챔프전'을 꿈꾸다

팀 주포인 전광인도 우리카드전 승리 직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지금이 그 기회"라며 "우리는 포스트시즌에 올라가기만 한다면 자신 있다"고 말했다.

자신감의 근거는 있다. 한국전력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완성형 레프트를 2명이나 보유하고 있다. 전광인(27세·194cm)과 서재덕(29세·194cm)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가대표 주 공격수다. 그리고 국내에서 공격과 수비력을 겸비한 완성형 레프트에 가장 가까운 선수들이다.

한국전력이 3라운드까지 1~2위를 다투며 승승장구한 데는 전광인의 부상 회복과 서재덕의 공격력 강화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두 선수의 존재는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전력은 배구 겨울 리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984년 제1회 대통령배 배구대회부터 참가해 온 역사가 깊은 팀이다. 그러나 2015~2016시즌 V리그까지 32년 동안 겨울 리그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다. 우승은커녕 최하위를 맴돌기만 했다.

2014~2015시즌 V리그에서 전광인, 서재덕, 쥬리치(212cm·그리스) 삼각편대의 활약으로 플레이오프(PO)에 진출한 것이 역대 최고이자 거의 유일한 기록이다.

그리고 다시 왕좌를 꿈꾸는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만년 꼴찌의 반전 드라마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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