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탄핵반대 집회의 풍경.
 탄핵반대 집회의 풍경.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지지 집회에서 군의 개입을 촉구하는 구호가 계속 나오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하라!"는 구호도 나오고 "군대여 일어나라!"는 구호도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6일에는 박근혜 지지자들이 서울 국방부 건물 맞은편인 전쟁기념관 앞에까지 가서 군대의 궐기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지난 2월 4일 덕수궁 앞 집회에서는 '새 박사'로 유명한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가 휠체어에 앉은 모습으로 "군대여 일어나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있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박근혜 지지자들이 군의 궐기를 촉구하는 것은 그만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 다수가 박근혜 대통령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로 인한 절망감 때문에 막연하게나마 군대에라도 의지해보는 것이다. 

군부 쿠데타, 이미 때는 늦었다

작년 10월 하순부터 겪어봤듯이 박 대통령은 과도한 권력욕을 가진 인물이다. 대통령 직무집행능력과 관계없이 대통령직에 대해 지나친 집착을 보이고 있다. "검찰 조사도 받겠다. 특검 조사도 받겠다"던 대국민 약속은 간데없고 오로지 청와대를 지키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체면이나 위신 같은 것은 없고, 청와대 대문을 지키는 데만 온 정신을 쏟고 있다.  

그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5·16 쿠데타 이후에 군에 복귀할 것처럼 했다가 대통령선거에 나섰고, 한두 번만 하고 그만둘 것처럼 했다가 3선 개헌까지 했다.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아예 유신 독재 체제를 선포해버렸다. 권력에 대한 집착이라는 면에서, 박근혜는 아버지를 쏙 빼닮은 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지지자들이 굳이 군의 궐기를 촉구하지 않더라도, 작년 10월 하순부터 지금까지의 3개월 반 동안, 박근혜는 상황을 뒤집을 묘안을 수도 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합법과 불법의 영역을 오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없이 했을지 모른다.

그런 고민 끝에 군대 동원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어쩌면 진작 친위 쿠데타를 감행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면, 12월 9일 국회 탄핵소추 직전에 군을 동원했을 수도 있다. 

2016년 12월 9일의 국회 앞.
 2016년 12월 9일의 국회 앞.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헌법상의 국가기관인 국회가 탄핵소추(탄핵심판 신청)하고 또 다른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심판에 착수함에 따라 박근혜는 형사사건의 피고인처럼 되고 말았다. 물론 법적으론 아니지만, 사실상 그렇게 됐다. 대통령의 직무도 정지당하고 대통령의 권위도 잃고 사실상 죄인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 때문에, 군을 동원하는 것도 힘들게 되었다. 

이런 사태를 피하고자 했다면, 10월 하순부터 12월 8일까지의 1개월 보름 동안에 박근혜는 군대를 동원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을 것이다. 군대 동원이란 카드가 머릿속을 스쳤다 해도 자신감이 일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일부 군인들이 박근혜의 의사와 무관하게 친위 쿠데타를 벌이려 했다면, 그 역시 작년 12월 9일 이전에 일어났어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쿠데타를 벌이는 세력은 거사 직후에 정당성을 추인받을 방법을 미리 마련해둔다. 정당성 추인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세력은 혁명을 일으키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사후 추인의 길이 보이지 않으면 누구라도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작년 12월 9일부터는 그 추인이 힘들어졌다. 헌법재판소로 공이 넘어간 마당에 친위 쿠데타를 벌이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전이고 헌재에 대한 도전이다. 그래서 12월 9일 이후로는 쿠데타가 정당성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일부 군인들이 불순한 생각을 품기도 쉽지 않다.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경우는 사회가 무질서할 때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무질서하다고도 볼 수 없다. 촛불집회에서 표출되는 국민 여론이 황교안 권한대행을 견제하는 가운데, 나라가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질서를 명분으로 군인들이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들을 무시하고 박근혜나 일부 군인들이 친위 쿠데타를 강행하려 한다고 해도, 그들 앞에는 또 다른 바위가 버티고 있다. 그것은 수도 서울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이라는 변수다.

이제껏 대한민국에서는 두 건의 쿠데타가 성공했다. 1961년 5·16 쿠데타와 1979년 12·12 쿠데타였다. 이 두 개의 성공한 쿠데타는 어떤 형태로든가 미군의 승인을 받았다. 물론 미군의 동의 없이도 쿠데타를 일으킬 수는 있지만, 쿠데타가 성공하고 정권 장악까지 이루려면 미군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했다. 서울 한복판을 장악한 미군을 무시한 쿠데타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럼프가 쿠데타 용인? 불가능한 일

5·16 쿠데타 당시의 박정희 소장.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의 경찰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사진 왼쪽은 다른 사진.
 5·16 쿠데타 당시의 박정희 소장.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의 경찰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사진 왼쪽은 다른 사진.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저명한 언론인인 리영희는 <대화>에서 5·16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두고 "미국 정부가 반란군의 즉각 원대 복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대체로 미국이 쿠데타에 대해서 마치 모르고 있었거나 반대한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시민들은 박정희 쿠데타가 국내외적인 협공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말했다.

그런 뒤에 리영희는 "하지만 한 4~5일쯤 지나면서부터는 미국의 반응도 누그러지고 쿠데타는 기정사실화 되는 감이 있었다"고 술회했다. 미국이 사후 승인을 해주면서 5·16 쿠데타가 성사됐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승인해주지 않았다면, 또 다른 세력이 박정희를 상대로 제2, 제3의 쿠데타를 일으켰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12·12 쿠데타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이 전두환 소장에게 쿠데타를 하라고 지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국은 쿠데타 전부터 전두환 쪽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CIA 한국 지부장 보브 브루스터는 전두환 소장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미국 측은 노재현 국방장관과 유병현 합참의장에게 쿠데타 모의 움직임을 사전에 귀띔해주었다.

이렇게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미군은 전두환의 12·12 쿠데타에 대해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다. 사실상의 승인이었던 것이다. 미국이 승인해준다는 인상이 풍기지 않았다면, 전체 군부가 전두환한테 그렇게 쉽게 승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사후 승인은 제2, 제3의 쿠데타를 방지하고 전두환의 권력을 공고히 해주는 기능을 했다.

12·12 쿠데타를 보도한 <뉴스위크>. 서울 광화문광장 동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12·12 쿠데타를 보도한 <뉴스위크>. 서울 광화문광장 동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지금의 도널드 트럼프는 5·16 때의 케네디나 12·12 때의 카터와는 다른 사람이다. 그는 미국의 불필요한 대외적 개입을 싫어한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이 보장되는 선에서만 외국과 싸우려고 한다.

트럼프는 작년 4월 위스콘신주 선거 유세에서 "북한과 일본이 싸우면 끔찍한 일이겠지만, 그들이 하겠다면 하는 것"이라면서 "행운을 빈다. 알아서 잘 즐기라"고 말했다. 동맹국인 일본이 북한과 싸운다 해도 미국의 국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팔짱 끼고 그냥 있겠다는 게 트럼프다. 그런 사람이 박근혜를 위한 군부 쿠데타를 승인하는 정치적 부담을 떠안으려 할까.

트럼프가 쿠데타를 승인할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에, 미국의 승인이 없을 거라는 점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친위 쿠데타를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주한미군이 승인하지 않는 쿠데타를 일으키면 성공 가능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설령 일시 성공한다 해도 제2, 제3의 쿠데타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진짜 혼란으로 몰아넣는 일인 동시에 친위 쿠데타 세력의 신변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다. 

미군의 승인 없는 쿠데타가 가져올 후폭풍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자칫 그것은 주변국 군대의 개입을 부르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미군의 승인 없는 쿠데타가 한국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사실상 종결됐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고자 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한 절호의 기회가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중국은 사드, 즉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이래저래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 역시 군사 대국화의 길을 모색하며 군사적 활로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의 승인 없는 쿠데타가 성공하면 양국은 이를 한반도 군사 개입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파악할 것이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친위 쿠데타는 쉽지 않겠지만, 이런 끔찍한 결과도 염두에 두지 않고 계엄령을 선포하라느니 군대여 일어서라느니 하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불순한 구호를 외치는 것은, 박근혜·최순실 살리자고 나라를 다 불태우는 어리석은 일이다. 별생각 없이 외친 구호였다면, 더는 외치지 말아야 한다.  


태그:#박근혜, #탄핵심판
댓글3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