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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꽃길만 걸을 수 있을까?
▲ 졸업식장에 걸린 현수막 과연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꽃길만 걸을 수 있을까?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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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엄마가 되었다.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아이를 처음 만난 게 어느덧 19년 전이다. 그 사이에 아이는 제도교육을 모두 마치고 오늘 졸업을 했다. 주마등처럼스쳐 가는 아이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체구가 너무 작아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있을까 아침마다 전전긍긍했다. 어느 날 학부모 상담이 있다길래 학교에 갔더니 담임이 그런다.

"글쎄, OO이는 한글 모르는 아이 옆에서 한글을 가르쳐 주고 있더라고요. 거기다 아이들이 학용품 빌려 달라고 하면 다들 안 빌려주려고 하는데, OO이는 망설이지 않고 빌려줘요."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주위를 둘러볼 줄 알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었다니... 내심 흐뭇했다.

그 꼬마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험하디 험한 세상에 발 디딘다니 갑자기 눈물이 난다. 집안일은커녕, 심부름도 잘 안 시키며 고이고이 키웠는데. 결혼식장에서나 흘려야 할 눈물이 벌써 나오다니 주책없다.

엄마 자격 없는 엄마 밑에서 크느라 고생한 아이에게 미안해서일까. 세상 돌아가는 꼴이 이렇게 되도록 앞장서서 한 게 없다는 자괴감 때문일까. 탈 없이 커 준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는 뿌듯함 때문일까. 여럿 키울 능력이 없다는 핑계로 하나만 낳아 외로웠을 텐데도 구김살 없이 잘 커 줬다.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은 '고마움'의 눈물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나는 낳기만 했기 때문에.

집안에 특별히 미적 감각을 지닌 사람이 없었지만 아이는 미술을 하고 싶어 했다. 예고에 가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일반고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렸다. 뒷바라지라고 해봤자 밥 챙겨 주고 늦은 귀가 시 픽업해 데리고 오는 게 전부였다. 최종 실기 시험이 끝난 지 며칠 후, 아이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왔다.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그 길던 머리를 자르고 오다니, 이제 아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걸까. 당황스러웠다. 또 며칠 후에는 친구들과 모여서 외박을 한다고 '통보'했다. 허락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통보라니, 괘씸했다.

그렇게 순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예쁜 내 아기가 어느새 컸다고 자기결정권을 들이밀다니, 이제 부모 품을 떠나려나 보다. 언제까지나 내 품에 있을 것 같던 아이가 떠난다고 생각하니 실연의 아픔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마음이 휑하고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해야 할 지 막막했다. 수학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됐다고 친구들과 방을 빌려 놀고 온다는 말에 걱정이 앞섰다. 여자아이들끼리 하룻밤 지새며 술 먹고 놀 수 있는 안전한 사회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엊그제는 기다리던 최종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결과는 낙방이다.  지인들 자녀의 합격 소식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내 아이가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그래서인지 더 속이 상했다. 눈높이를 낮춰서 지원했는데도 안되다니... 애초에 미술을 괜히 하게 했나, 내가 덕이 부족했나, 그림 실력이 그렇게 부족했나, 정시를 몇 군데 더 써볼 걸 그랬나.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다그쳤다.

"정시를 너무 조금 써서 그렇잖아. 몇 군데 더 쓰지. 이제 다 끝났으니 재수 준비나 해." "엄마는 그게 할 소리야? '수고 했다'는 말이 먼저 나와야지, 안 그래도 기분 안 좋은데 재수 준비부터 하라니, 눈치가 있어, 없어?"

'떨어졌는데 수고했다는 말이 나오냐?'는 말을 꿀꺽 삼켰다.

내가 너무 했나? 나도 속이 타서 한 말인데. 아이들이 없어서 대학은 문을 닫는다는데 내 아이 하나 들어갈 대학이 없다니 약이 오른다. 대학을 꼭 가야만 하나? 대학 나와서도 취업을 못 해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들이 한둘이 아니라는데.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사회다. 아이도 보란 듯이 대학에 합격해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겠지.

졸업식 장내는 축제 분위기였다. 학년별 장기 자랑을 하고, 학교생활의 추억이 담긴 영상이 한장 한장 넘어갔다. 교사들의 덕담에는 "새 세상에 나가서도 밝고 아름다운 꿈 많은 청년이 되라"는 말이 가장 많았다.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공정한 사회여야 할 텐데 암울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

떠나는 학생은 고별사를, 남은 후배들은 송별사를 읽으며 잠시 숙연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화사한 봄빛에 아우르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제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아이들의 손에 안긴 꽃다발은 매서운 추위에도 활짝 피어 있었다. 졸업은 시작이라고 했던가. 부디, 저 해맑은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피기를,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의 사회가 하루빨리 만들어지기를 바라본다.

그래,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니? 단, 용돈은 알아서 해결하고. 나도 노후 준비하려면 빠듯하거든. 그리고, 꼭 살아남아서 꽃길을 걸어 보기를.

난, 이제 '자유인'이다(라고 쓰고 "애가 결혼해야 진짜 자유인이 되는 거야"라고 했던 어른들의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ㅠㅠ).


태그:#졸업, #꽃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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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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