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춧가루 부대' KB손해보험과 GS칼텍스를 이끌고 있는 황택의와 강소휘 (2017.2.8 경기 장면)

'고춧가루 부대' KB손해보험과 GS칼텍스를 이끌고 있는 황택의와 강소휘 (2017.2.8 경기 장면) ⓒ 박진철


찬란한 도깨비 같은 팀. 무섭지만 모두에게 박수 받는 팀이 있다. 프로배구 KB손해보험과 GS칼텍스다.

두 팀은 2016~2017시즌 V리그에서 갈 길 바쁜 상위권 팀들의 발목을 번번이 붙잡는 고춧가루 부대다. 상위권 팀들에겐 피하고 싶은 복병이다.

공통점도 많다. 올 시즌 우승을 목표로 큰 기대감을 갖고 출발했지만, 지금은 희미해진 포스트시즌(준플레이오프 이상) 진출 티켓을 바라보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초반 부진을 털고 후반기부터 경기력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도 닮았다. 황택의와 강소휘라는 신인급 선수들이 눈부신 할약을 펼치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도 같다.

황택의 성장 드라마 보는 재미 '쏠쏠'

KB손해보험은 올 시즌을 앞두고 국가대표 센터 이선규를 FA로 영입하며 알차게 준비를 했다. 그러나 주전 레프트 손현종(26세·197cm)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고, 믿었던 세터진마저 하염없이 흔들렸다. 팬들은 또다시 큰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신인 황택의(20세·190cm)가 찬란하게 등장했다. 올해 성균관대 3학년이 되는 황택의는 신이 KB손해보험에게 점지해준 선수이다.

당초 우리카드에게 갈 가능성이 더 높았다. 지난해 10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직전 시즌 최하위인 우리카드에게 가장 많은 추첨 구슬(전체 50%)을 부여했고, 확률상 우리카드의 1순위 지명이 유력했었다. 그러나 첫 번째로 나온 구슬은 KB손해보험 구슬이었다. 강성형 KB손해보험 감독은 뒤도 안 돌아보고 황택의를 전체 1순위로 지명했다.

황택의는 차세대 국가대표 세터감이라는 배구계의 기대감을 실력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가 주전 세터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4라운드부터 KB손해보험은 경기력이 급상승했다.

이전까지 최하위권을 맴돌며 우울했던 팀 분위기도 한층 밝아졌다. 외국인 선수 우드리스(28세·212cm)와 이강원(28세·198cm) 등 국내 공격수들까지 황택의의 빠르고 다양한 토스를 받으며 공격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러면서 삼성화재, 한국전력, 우리카드 등 갈 길 바쁜 상위권 팀들을 무너뜨리며 4승 2패를 내달렸다. 천적 현대캐피탈에게 비록 패하긴 했지만, 풀세트 접전을 벌이며 승점 1점을 빼앗아 갔다.

신영철 감독 "KB와 경기, 지옥 문턱 갔다 온 느낌"

KB손해보험의 기세는 5라운드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 봄 배구 탈락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삼성화재에게 또다시 일격을 가했다. 8일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승점이 절박한 한국전력을 풀세트 접전으로 몰고가며 1점을 빼앗았다.

가까스로 승리를 거둔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은 9일 기자와 통화에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봄 배구 진출에 정말 중요한 경기였는데, 지옥 문턱까지 갔다 온 느낌"이라며 "KB손해보험의 최근 경기력은 상위권 팀과 다를 바가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B손해보험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상대 팀 팬들을 제외하고 다른 팀 팬과 구단 관계자들은 일제히 KB손해보험의 승리를 고대하며 응원한다.

배구에서 세터는 '10년 농사'라고 부른다. 좋은 세터 한 명 보유하게 되면, 향후 10년 동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큰 버팀목이 된다. 그리고 이는 한국 남자배구의 미래를 밝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KB손해보험의 성적과 관계없이 배구팬들이 황택의의 성장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이유이다.

돌변한 GS칼텍스, 상위권 팀 '당황'

GS칼텍스는 젊고 우수한 레프트 자원이 가장 풍부한 팀이다. 국가대표 출신의 이소영(24세·176cm), 강소휘(21세·180cm)를 비롯해 황민경(28세·174cm), 표승주(26세·182cm)까지 있다. 라이트에서 주로 공격하는 외국인 선수 알렉사(24세·187cm)도 원래는 레프트 출신이다.

그러나 올 시즌 전반기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주전 세터 이나연(26세·173cm)과 기대주 강소휘는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한 달 이상 부상으로 결장하기도 했다.

결국 GS칼텍스 구단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시즌 중 감독 교체라는 칼을 빼들었다. 지난해 12월 8일 이선구 감독을 물러나게 하고, 차상현 신임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차 감독은 부임 이후 올스타전과 5라운드 직전의 긴 공백기 동안 팀 플레이를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시켰다. 그리고 장신 공격수로 파워가 좋은 강소휘를 과감하게 주전으로 기용했다. 강소휘는 2015년 9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GS칼텍스에 지명됐다. 이제 프로 2년 차의 신인급 선수다.

차상현 감독 "빠르고 다양한 플레이로 팀 색깔 바꿀 것"

차상현 감독은 9일 기자와 통화에서 "공백기 동안 이나연 세터에게 빠르고 다양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다"며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선수들에게도 골고루 기회를 주면서 선수 운용과 공격 루트도 다양하게 가져 가려고 했다"고 밝혔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지난 1월 6일 올 시즌 첫 풀 주전으로 출전한 강소휘는 21득점을 몰아치며, 강호 IBK기업은행에 세트 스코어 3-2로 승리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부상에서 복귀한 이나연 세터의 토스도 이전보다 빠르고 안정감이 붙었다.

GS칼텍스는 5라운드에서 더욱 무서운 기세로 다른 팀에게 공포의 고춧가루가 됐다. 지난 1일에는 1위 흥국생명을 격침시켰고, 4일에는 최고 돌풍의 팀 KGC인삼공사마저 3-0으로 완파하며 발목을 붙잡았다. 8일에도 승점 1점이 아쉬운 현대건설을 풀세트 접전으로 몰고가며 1점을 빼앗아 갔다. 전반기의 지지부진하던 경기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KB손해보험과 GS칼텍스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다. 그럼에도 마지막 남은 가능성이라도 부여잡기 위해 매 경기 혼신의 플레이를 하고 있다.

V리그 출범 이후 가장 치열한 선두권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무서운 고춧가루 역할은 팬들에게 큰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결코 쓸쓸하지 않은, 찬란한 고춧가루 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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