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 대체 외국인 선수 대니(31세·200cm)

현대캐피탈 대체 외국인 선수 대니(31세·200cm) ⓒ 현대캐피탈


"연봉 5천만 원 선수인데, 이적료만 3억을 요구했다. 배보다 배꼽이 너무 크다."

현대캐피탈 배구단 김성우 사무국장이 한숨을 쉬며 내뱉은 말이다. 그는 지난 1월 임동규 코치 등과 함께 톤(34세·200cm)을 대체할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유럽과 남미를 오가며 동분서주했다. 심신이 지치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그럼에도 모두 실패했다.

김 국장은 "우리가 영입하고자 접촉했던 선수가 5명이었다"며 "소속 구단들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이적 불가'라며 완강하게 거부했다"고 밝혔다.

현대캐피탈의 대체 외국인 선수 영입 과정은 현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드래프트) 제도의 맹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됐다. 그리고 이는 현대캐피탈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력 저하와 부상·태업 등으로 외국인 선수를 교체해야 할 상황은 모든 구단에게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달 쓰는데 이적료 3억', 배보다 배꼽이 너무 크다

지난 7일과 8일, 대체 외국인 선수 영입 과정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김 사무국장을 전화로 인터뷰 했다.

우선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다. 자유계약제와 달리, 트라이아웃 하에서는 교체 대상 선수가 정해져 있다. 지난해 트라이아웃에 참가 신청을 한 외국인 선수(162명) 중 7개 구단 감독들이 선호하는 순서를 합산해서 뽑은 40~50명의 '1차 선발 명단' 중에서만 영입이 가능하다. 줄 수 있는 연봉도 훨씬 적고 제한적이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현대캐피탈은 총 5명의 영입 후보군을 놓고 5개 구단과 협상을 벌였다.

영입을 원했던 1순위는 하파엘 아라우조(27세·206cm)였다. 현재 폴란드 1부 리그 엠케이에스 벵진 팀에서 주전 라이트로 뛰고 있다. 브라질 청소년 대표 출신의 장신 공격수다. 지난해 5월 국내에서 실시한 트라이아웃에는 초청 대상 24인 명단에 들지 못했다.

하파엘은 연봉이 4만5천 달러(5천만원)밖에 안 된다. 그러나 벵진 구단은 이적료만 30만 달러(3억4천만 원)를 요구했다. 현대캐피탈은 'OK' 사인을 보냈다. 어쩔 수 없었다. 현재 정규리그 2위를 달리고 있고, 중요한 시기라 승부를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벵진은 말을 바꿨다. "구단 사정상 보내주기 어렵다. 돈을 아무리 줘도 이적은 불가하다. 미안하다"고 답했다.

김 국장 일행은 다음 후보인 닐스 클랍비크(33세·200cm)를 영입하기 위해 터키 리그로 갔다. 지난해 트라이아웃에서 초청됐던 선수다. 네덜란드 국가대표 왼손잡이 라이트로 터키 리그 6위 팀인 이네괼에서 주 공격수로 맹활약 중이다. 소속 구단에서 이적을 강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다시 루마니아로 건너갔다. 미로슬라프 그라디나로프(33세·202cm)를 보기 위해서였다. 배구 강국인 불가리아 국가대표팀의 주전 선수다. 특히 장신의 레프트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일본 리그 경험도 많다. 현재는 루마니아 리그 1위 팀인 갈라티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소속 팀이 우승을 다투고 있다는 이유로 역시 거부했다.

'이적 거부' 백태... 말 바꾸고, 구단주가 잠적

 현대캐피탈 대체 외인 영입 1순위 하파엘(왼쪽)... 마지막 후보 안토니오(오른쪽)

현대캐피탈 대체 외인 영입 1순위 하파엘(왼쪽)... 마지막 후보 안토니오(오른쪽) ⓒ FIVB


김 국장 일행이 직접 경기 장면을 보지 않고, 영입 협상을 한 선수도 있었다. 로날드 히메네즈(28세·196cm)다. 콜롬비아 국가대표 출신으로 프랑스 2부 리그 투르쿠앵 팀에서 라이트 주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소속 팀은 현재 리그 2위다. 히메네즈도 득점 랭킹 2위, 서브 2위에 올라 있다. 기록이 워낙 좋고, OK저축은행이 모하메드 영입 과정에서 이미 확인을 한 상태라 경기력을 따로 검증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소속 구단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이적료를 70만 달러(8억 원)를 준다고 해도 이적 불가"였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핵심 선수를 절대 보내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 국장 일행은 마지막 희망을 안고 남미까지 날아갔다. 안토니오(32세·203cm) 때문이다. 트라이아웃 초청자 명단에는 들지 못했지만, 브라질 청소년 대표 출신으로 장신의 레프트라는 점이 끌렸다.

현재 아르헨티나 리그 1위 팀인 볼리바르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다. 지난해 10월 세계클럽수권에서도 좋을 활약을 펼쳤다. 같은 팀의 주 공격수는 2013~2014시즌부터 2년 연속 KB손해보험에서 활약한 에드가(29세·212cm)다. 에드가는 아르헨티나 리그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안토니오는 영입 조건도 좋았다. 볼리바르와 계약할 때 바이아웃(이적 허용 의무 조항)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을 원하면 볼리바르는 계약된 이적료를 받고 무조건 보내줘야 한다.

그런데 안토니오를 내주기 싫은 구단주가 갑자기 잠적해 버렸다. 이적동의서에 사인을 해줘야 할 구단주가 출근을 안 해버린 것이다.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트라이아웃, 교체 대상 후보군 대폭 늘려야"

5개 구단이 현대캐피탈의 영입 제안을 거부한 이유는 동일했다. 소속 팀이 1~2위로 선두를 다투거나 플레이오프 경쟁을 하는 중요한 시기인 데다, 해당 선수가 팀의 주전으로 맹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체 외국인 선수 한 명을 영입하려면 이적료만 30만 달러가 들어간다는 것도 증명됐다. V리그의 남은 일정을 감안하면, 겨우 2달 활용하는데 3억 원이 넘는 돈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영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등을 감안하면, 트라이아웃 때 선발된 선수보다 훨씬 더 들어간다. 문제는 그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해외 구단들이 이적에 동의를 안 해준다는 점이다.

김 사무국장은 "솔직히 이번에 경험을 하고 나니까, 트라이아웃 제도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해외 구단들도 우리 트라이아웃 제도 때문에 대체 외국인 선수 후보군이 별로 없다는 걸 다 알고 있었다"며 "그러니 배짱을 부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라이아웃 취지가 외국인 선수에게 들어가는 과도한 연봉을 줄이자고 한 것인데, 막상 교체하려고 하면 선수를 구하지도 못할 뿐더러 돈이 훨씬 더 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교체 대상 후보군을 트라이아웃 신청자 중 50~70명으로 제한을 둬야 할 이유가 없다"며 "신청자 전원으로 늘리는 등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니, 20살부터 국가대표... "톤보다 공격력 낫다"

결국 원했던 5명이 모두 불발되자, 어쩔 수 없이 현재 소속 팀이 없는 대니(본명 다니엘 갈리치)를 낙점했다. 한 달 정도 V리그 경기를 뛰면서 실전 감각을 찾으면, 포스트시즌(준플레이오프 이상)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니(31세·200cm)는 별로 기대할 게 없는 선수인가. 그렇지는 않다. 경력도 만만치 않다. 대니는 현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주전 레프트다. 20살 때인 2006년 유럽선수권 예선전부터 크로아티아 국가대표로 발탁돼, 현재까지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해 왔다.

프로 선수 생활도 18살 때인 2004~2005시즌부터 크로아티아 리그의 믈라도스트 자그레브 팀에서 시작했다. 이후 이탈리아 리그 쿠네오, 스페인 리그 카이 테루엘 등에서 뛰었다.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유럽배구연맹(CEV)컵에서 활약한 경험도 많다.

2015~2016시즌부터는 튀니지 리그 팀에서 뛰었다. 그러나 소속 구단이 올 시즌 연봉 지급을 계속 체불하자, 지난해 12월 초 팀에서 나왔다. 그 후 최근까지 2달 동안 자그레브 팀에서 개인 훈련과 연습 경기 등으로 몸 관리를 해왔다. 이 점이 최태웅 감독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2달 동안 실전 경기를 뛰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 감독은 "9일 대한항공전에 대니를 출전시킬 것"이라며 "대니가 레프트이기 때문에 국내 선수들의 포지션 변화 없이 톤 자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니와 톤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파워와 공격력은 톤보다 좋다"며 "서브 리시브 등 수비력은 비슷해 보인다"고 촌평했다. 그러면서 "톤보다 낫기를 바라고 그럴 걸로 예상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현대캐피탈 경쟁 팀들과 배구팬들은 대니의 데뷔전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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