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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 오덴세에서 태어나 70세까지 독신으로 살면서 주옥같은 동화작품을 남겼다.
▲ 안데르센 동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 오덴세에서 태어나 70세까지 독신으로 살면서 주옥같은 동화작품을 남겼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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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여행을 준비하며 덴마크에 대한 책 몇 권과 안데르센의 동화집 한 권을 챙겨 넣었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 <인어공주>, <미운 오리 새끼> 등과 같은 아름답고 교훈적인 동화들을 썼다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생각해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의 동화집을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이 동화 작품인 데다가 그의 원작을 기반으로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다양한 버전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던 터라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으면서 웬만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언제나 독서 대상에서 제외되어왔던 작품들... 덴마크로 여행 가면서 그래도 그의 동화를 한번은 제대로 읽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덴마크가 낳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그 외에도 '죽음에 이르는 병'을 쓴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와 자유교육을 통해 근대 덴마크 교육은 물론 국가의 기반을 마련한 그룬트비도 있다. 그리고 내가 이번 꿈틀 비행기에 오르게 된 동기를 생각할 때는 누구보다 먼저 그룬트비에 대한 책을 읽어야 옳았다.

그러나 7박 9일의 결코 길지 않은 덴마크 여행 기간 책 속의 덴마크를 공부하느라 내 눈앞에 실재하는 덴마크를 제대로 만나고 오지 못할 것 같아 다른 책은 모두 여행 다녀온 뒤로 미뤄두었다. 책속의 덴마크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두고두고 만날 수 있으니까... 안데르센은 그래도 동화작가니까 오가며 조금씩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여행을 떠나며 챙겨 넣었던 그의 동화집은 7박 9일 내내 가방 속에 그대로 모셔져 있다가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읽을 수 있었다. 코펜하겐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과거 고등학교 수학여행에 버금가는 빡빡한 일정으로 다양한 교육기관과 유관기관을 방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모둠별 미션을 수행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안의 덴마크를 찾기 위해 꿈틀 비행기에 오른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님을 포함한 29명의 참가자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나누었던 고민과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만으로도 7박 9일이라는 여행 기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코펜하겐의 상징, 안데르센 동화작품 중에서 동상이 세워진 것은 인어공주뿐이다.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 인어공주상 코펜하겐의 상징, 안데르센 동화작품 중에서 동상이 세워진 것은 인어공주뿐이다.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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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삶도 동화처럼 행복했을까?

'성인과 어린이를 위한 동화집'이라는 제목이 달린 40여 편의 그의 동화는 여태까지 내가 생각해 왔던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들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물론 세상에 잘 알려진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인어공주>나 자기비하와 자기연민에 빠진 사람을 다독여주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교훈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부싯깃 통>에서처럼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왕과 왕비를 잔인하게 죽이는 남자와 부모를 죽인 사람과 결혼하게 된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공주의 이야기, <장다리 클라우스와 꺼꾸리 클라우스>처럼 돈에 눈이 어두워 도끼로 사람을 죽이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죽은 사람을 팔러 다니는 잔혹하고 엽기적인 살인의 이야기가 무수히 많이 등장하여 과연 이것이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왜 안데르센은 이런 동화들을 썼을까?

작가들에게 있어서 그의 작품은 그의 분신과도 같다고들 한다. 작가가 쓰는 모든 글에는 어떤 식으로든 작가 자신이 들어있다. 40여 편의 동화 속 여기저기 숨어있는 안데르센의 분신들을 찾아 조각조각의 퍼즐을 맞추어 나가다 보면 안데르센이라는 인간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혹자는 그를 허영심이 가득한 출세지향주의자라고 한다. 혹자는 그가 불우한 환경과 추한 외모로 인해 평생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또한 사랑했던 여인들 모두에게 거절당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못했던 여성과의 절망적 사랑으로 인해 동성애에 빠져들었다고도 한다.

그에 대한 이런 평가들은 모두 사실일 수도 있고 말하는 사람의 판단이나 편견에 따라 특정 부분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전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일대기를 통해 정신병을 앓았던 할아버지, 구두 수선공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면서 교육받지 못한 데 대한 좌절감과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족으로 헛된 환상을 좇다가 안데르센이 11살 때 병들어 죽은 아버지, 순박하고 신앙심이 깊었으나 출신이 불확실하고 문맹에 가까웠으며 남의 집 가정부로 일하느라 가정을 돌볼 수 없었던 어머니, 아버지 사망 2년 후 어머니와 재혼했으나 안데르센의 교육에는 관심이 없었던 새아버지. 안데르센의 어머니를 비천한 여자로 생각했던 새아버지의 가족들... 이런 것들이 출생 때부터 성장기의 안데르센을 둘러싸고 있었던 환경이었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 생각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할아버지의 정신병이 자신에게 유전될지도 모르며,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 전에 사생아로 낳은 이복누이가 언젠가 자기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안데르센은 어려서부터 매우 예민했으며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될까 봐 두려워하며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대신 공상을 하거나 이야기를 쓰거나 인형 옷을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안데르센의 삶에서 나를 되돌아 보다

교사로서 보낸 20여 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어린 안데르센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을까? 냉정하고 혹독한 환경에 상처받아 아무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어린 안데르센이 선생님의 정당한 지도에 인상을 썼다고, 도무지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아이답지 않게 우중충하다고, 무심한 교사와 친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며 교실 한구석에서 붙박이 가구처럼 잊혀 지내왔을까? 이런 질문과 함께 아프게 떠오르는 몇몇 얼굴이 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안데르센은 체계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학습 결손 시 적절한 조치를 제때 받지 못함으로 인해 심한 학업부진 상태였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본 후원자의 도움으로 상급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에도 위축되어 끝없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작은 꾸중만 듣게 되면 금세 깊은 좌절에 빠져들었고 사소한 모욕에 대해서도 견딜 수 없어 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는 어려서부터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스스로도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어디를 가든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일 소개장을 지니고 다니며 당대의 문학 거장들과 접촉하려 시도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주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편지는 물론 일기와 자서전도 끝없이 기록했던 안데르센. 그가 허영과 출세욕에 눈이 먼 사람이었다는 것이 근거 없는 혹평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신분차별이 지금보다 훨씬 더 심했던 그 시기, 의지력과 천부적 재능은 물론 교육비를 기꺼이 부담해 줄 부유한 후원자가 있어야 겨우 신분 상승을 꿈이라도 꿔 볼 수 있었던 그 시기에 뛰어난 재능과 야심을 가진 채(존중받으며 살고 싶다는 자기애는 고귀한 신분의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비천한 신분에 속한 사람이 품고 있으면 흔히 야심이라고 불린다) 비천한 가정에서 태어난 개인에게 주어진 선택권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주어진 환경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거나, 주어진 환경에 대한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사회로부터 응징당하거나,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후원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여 약간의 신분 상승을 이루어 내거나,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거나... 정도가 아니었을까? 이 네 가지 옵션 중 안데르센은 세 번째 것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끊임없이 상대적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뿌리 깊은 열등감은 덴마크 영주의 저택에 머물고, 스웨덴에서 대중의 갈채를 받고, 독일 바이마르시의 법원 관계자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고, 1857년 영국 방문 시 찰스 디킨스와 함께 지내며 당대 최고의 문필가 모임에서 명사 대우를 받는 등 그의 인생 최고의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극복되지 못했다. 안데르센의 열등감과 세상에 대한 분노는 그의 동화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작 자신들은 식사 때마다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병째로 취하도록 포도주를 마시면서도 추위 속에 빨래 일을 하며 약간의 술로 추위를 견뎌내는 어머니를 술주정뱅이에 쓸모없는 여자라 욕하는 시장이 나오고(<쓸모없는 여자>), 자신의 모습을 대리석에 아름답게 새긴 예술가의 작품에는 감탄하면서도 그의 사랑은 경멸에 찬 표정으로 매몰차게 거절하는 귀족의 딸(<프시케>), 정원 울타리 밖에 피어 언제나 정원 안에 꽃피기를 꿈꾸는 엉겅퀴(<엉겅퀴꽃>),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사람을 정원사로 두어 기쁘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정원사가 자만할까 봐 경계하는 주인 나리(<정원사와 주인 나리>) 등에서 안데르센의 이러한 열등감과 분노는 여지없이 드러난다.

덴마크가 아니었으면 <인어공주>가 나올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비웃음의 대상이 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가 첫 번째나 두 번째가 아닌 세 번째 옵션을 선택한 것을 다행스러워하며 축하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가 첫 번째나 두 번째를 선택했다면 전 세계 어린이들의 유년기를 풍성하게 해주는 그의 여러 동화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증오한 청년 안데르센의 손에 현대의 행복 국가 덴마크의 기초를 일구는 중대한 역할을 할 예정이었던 수많은 그룬트비가, 세상과 인간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들을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었던 수많은 키에르케고르가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

물론 그가 네 번째 선택을 하였다면 그가 덴마크를, 더 나아가 세상을 더욱더 좋은 곳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의 통찰력이나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며 그렇기에 그런 선택을 하고 그 신념을 지켜가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더 나아가 숭배를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숭배받을 만하지 못한 사람은 세인의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만약 그가 그룬트비처럼 신앙적으로, 교육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유복한 환경 속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모두의 관심과 기대 속에 행복한 유년을 보내며 성장한 안데르센에게서도 많은 아름다운 작품들이 탄생할 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평생을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리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성공을 목표로 질주하는 가련한 안간힘을 지켜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불운했던 안데르센의 삶을 생각하며 덴마크 사람들이 십계명처럼 여기는 옌틀로운(편집자 주:1933년 악셀 산드모스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덴마크 마을 엔트를 다스리는 법칙)을 떠올려 본다.

2.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지 마라.
3.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지 마라.
8.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마라.

덴마크는 3이나 4밖에 갖고 있지 못한 안데르센에게 왜 너는 10을 가지지 못 했느냐고 다그치지 않는다. 그가 가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준다. '너는 왜 이것을 안 하니?' 라고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니?'라고 물음으로써 덴마크는 세계적인 동화작가를 얻었다.

그는 1867년 자신의 고향 오덴세에서 명예시민으로 추앙되었으며, 1875년 8월 4일 사망하여 현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보어와 함께 코펜하겐 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코스이자 덴마크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장소인 에시스텐스 묘지(Assistens Cemetery)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도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그가 남긴 동화를 읽으며 꿈을 키우고 상상의 나래에 펼쳐나간다.


태그:#안데르센, #덴마크, #옌틀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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