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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8일, 한 골프대회에서 기자들을 만난 노무현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이 말했다.

"저는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대권)도전에 나서지 않겠습니다. 제가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어 차기 대통령에 가장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주목할 만한 2위' 자리도 불안 불안했던 대선 주자였다. 하지만 1년 뒤, 노 고문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험난한 대선 경쟁길의 고비마다 그의 곁에는 안희정 정무팀장이 있었고, 두 사람은 함께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그리고 2017년 1월 4일,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차차기'라는 프레임을 거둬 주십시오. 저는 이번 19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도전합니다. 지금의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노무현의 적자' 안희정 지사는 이제 본인의 드라마를 꿈꾸고 있다. 목표는 대통령, 2001년 노 고문과 동일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앞두고 지난 2010년 5월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 스튜디오에서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주최로 열린 '노무현, 열 컷의 풍경' 추모 특집 좌담회에서 안희정 민주당 충남도지사 당시 후보(노무현대통령당선자 정무팀장)가 '민주주의는 말이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앞두고 지난 2010년 5월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 스튜디오에서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주최로 열린 '노무현, 열 컷의 풍경' 추모 특집 좌담회에서 안희정 민주당 충남도지사 당시 후보(노무현대통령당선자 정무팀장)가 '민주주의는 말이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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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의 노무현, 2017년의 안희정

상황은 만만치 않다. 안 지사는 줄곧 '차차기 주자', '야권의 불펜투수'로 꼽혀왔다. 그만큼 유력 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밀린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문 전 대표는 줄곧 지지율 1위다. 그는 지지율 20% 후반에서 30% 초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대세론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안희정 지사의 가장 높은 순위는 4위(MBC·<한국경제> 1월 25~26일 공동 실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였다.

노무현 고문도 비슷한 처지였다. 당 밖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당 안에는 이인제 최고위원이라는 거대한 산이 우뚝 서있었다. <한국대학신문>이 2001년 10월 전국 18개 대학 19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1위로 뽑힌 정도가 눈에 띄는 수치였다.

많은 사람들이 노 고문을 '다음 타자'로 여겼다. 2001년 12월 10일자 인터넷판 <국민일보>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시 선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6.2%가 이인제 최고위원을 꼽았다고 보도했다. 노무현 고문은 6.5%로 겨우 4위였다. 응답자들은 다만 민주당 주자들 중 이회창 후보와 붙었을 때 경쟁력 있는 인물을 누구냐는 질문에 2위로 노 고문을 꼽았다. 어쨌든 대세는 이회창, 어떤 구도든 이 총재가 이긴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2002년 4월 27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선택을 받은 사람은 노무현 고문이었다. 3월 9일 제주에서 열린 첫 경선에서 3위를 기록한 그는 다음날 울산에서 423표를 얻어 이인제 최고위원을 29표차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세 번째 격전지, 광주에서는 차이가 더욱 벌어졌다. 당시 노 고문은 595표를 얻었고, 이 최고위원은 491표를 받았다. 노풍(盧風)의 시작이었다.

훈훈해지는 안풍, 돌풍 일으킬 수 있을까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 굿시어터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한 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대선출마 선언한 안희정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 굿시어터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한 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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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이란 바람은 아직 미미하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가 다르다. 22일 공식 출마선언를 계기로 안풍(安風)이 조금씩 훈훈하게 불어오고 있다.

MBC와 <한국경제>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 1월 25~2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 지사는 야권 후보 적합도에서 문 전 대표(26.9%)에 이어 2위(10.3%)를 차지했다. 같은 매체가 한 달 전 실시한 조사에서 안 지사의 야권 후보 적합도는 6.0%로 4위에 불과했다.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지지율도 7.9%를 기록, 12월 여론조사보다 4.7%포인트 상승했다. 문 전 대표를 제외하면 별다른 변화가 없는 야권 후보 가운데에선 눈에 띄는 대목이다.

확장 가능성면에서도 안 지사는 주목받고 있다. 그는 젊고 유연한 이미지다. 지난 19일에는 SBS 모바일 예능 <양세형의 숏터뷰>에 나와 주목을 받았고, 한때 그가 흥분한 농민을 "형님, 내가 동생이야"라며 끌어안는 동영상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비호감도 역시 낮다. MBN과 <매일경제>가 리얼미터에 의뢰, 1월 23~2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0.9%(9위)만 '최소한 이 사람만큼은 결코 찍지 않겠다'는 질문에 안 지사를 꼽았다. 반면 응답자의 34.2%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을, 24.1%는 문재인 전 대표를 결코 찍지 않겠다고 답했다.

안희정 지사 캠프는 달아오르고 있다. 박수현 대변인은 2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설 연휴 전에 변화의 계기를 만드는 게 내부 목표였는데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가 소망했던 대로 가고 있어 굉장히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제2의 노무현 드라마'를 기대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또 안 지사의 부상으로 당내 경선 흥행도가 높아져야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더욱 커져 전체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대권 출마 선언을 앞둔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 21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안희정, 부산의 품에 안기다'라는 주제로 열린 초청 강연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권 출마 선언을 앞둔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 21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안희정, 부산의 품에 안기다'라는 주제로 열린 초청 강연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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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지사는 설 연휴가 끝나면 민주당 경선 예비후보로 등록할 예정이다. 15년 전,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치는 노무현 후보를 도와 대통령으로 만든 그는 이번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태그:#안희정, #노무현,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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