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4일 서울지방법원 앞 농성장 모습.
 24일 서울지방법원 앞 농성장 모습.
ⓒ 김정현

관련사진보기


서울고법 앞 삼거리, 정곡빌딩 앞 갓길에는 얼음이 여전히 얼어 있었고 영하 11도의 날씨는 혹독했다. 24일 저녁 7시,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에 반대하는 법률가들의 촛불집회가 이틀째를 맞이했다. 집중집회가 아니어서인지 집회는 단출했다. 한 블록 위에 50여 명의 법률가가 밀집하여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그 집회를 바라보는 경찰이 족히 20여 명은 되었다.

권영국 변호사는 두 번째 줄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양 옆에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조의연 부장판사의 얼굴이 그려진 판넬이 자리했다. "이재용을 구속하라" "조의연을 파면하라"

변호사가 판사를 파면하라고 주장하고,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을 법원 앞에서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 자리로 이끈 것일까.

새벽 4시에 노숙 농성 제안... 법률가 50여 명 동참

이덕우, 권영국 변호사와 법학교수들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 앞에서 법원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기각 결정을 규탄하며 영장재청구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한 노숙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조의연 판사는 구속영장 기각으로 법원의 역사적인 역할과 책무를 외면했다"며 "법원은 진정한 정의의 수호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정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이재용에 대한 영장재발부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이재용 영장기각에 분노한 법률가, 노숙농성 돌입 이덕우, 권영국 변호사와 법학교수들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 앞에서 법원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기각 결정을 규탄하며 영장재청구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한 노숙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조의연 판사는 구속영장 기각으로 법원의 역사적인 역할과 책무를 외면했다"며 "법원은 진정한 정의의 수호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정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이재용에 대한 영장재발부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19일 새벽 4시, 법원은 특검의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새벽 네시에 들끓는 분노를 느낀 권영국 변호사는 서울지방법원 앞 노숙농성을 제안했다. 59명의 법률가들이 함께 했고, 20일 법원 앞에 천막이 섰다. 24일 5시, 농성장에서 만난 권영국 변호사는 여전히 꿋꿋했다.

"판사가 어려운 용어를 써서 결정하면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안 되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생각하게 마련이다. 전문가가 법원의 잘못된 결정을 지적하는 게 맞다. 시민들이 실체를 제대로 알 게 해야 한다."

천막은 고시원 단칸방 두 개를 붙인 크기였다. 천막 안에 열 명이 모여 있었다. 사람은 계속 늘어나고 바뀌었다. 2시간 새 적게는 세 명, 많게는 일곱 명 모임이 다섯 번 오갔다. 말없이 먹을 것을 한 아름 놓고 뒤돌아 뛰어가는 시민들로 인터뷰가 세 번이나 중단되었다. 권영국 변호사는 기자에게 빵과 마실 것을 건넸다.

"응원이라면서 먹을 것을 많이 가져다 주신다. 먹을 게 쌓여서 그러니 사양 말고 드시라." 

권영국 변호사에게 함께하는 법률가들의 수를 물었다. "어제로 191명, 오늘 새로 참여한 분들이 28명." "219명이네요." 최근 회장 선거를 마친 서울변호사협회에 투표한 변호사의 수가 8천여명이라 한다. 농성장의 활기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숫자다. 판례를 만드는 법원의 결정에 직접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법조계 분위기가 느껴졌다. 권영국 변호사는 이해하는 듯 말했다. 그는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라도 해보고 싶다"며 웃었다.

그렇기에 이 노숙 농성은 그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얼마나 당혹스러웠으면 나왔겠어요."

농성단 소속 류하경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법률가 개인 차원의 시위는 있었어도, 집단 노숙 시위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고충도 만만찮았다. 21일 법원 앞 천막이 법원 소속 청경들과 경찰기동대에 의해 파손되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서초경찰서 정보과 소속의 경찰은 "우리가 한 일이 아니지만, 법원 사유지에 천막을 쳤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류하경 변호사는 "법원 앞이라도 노숙 농성은 자유다. 파손하고 시위를 막는 건 법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법률가들은 집회 시작부터 법원과 경찰에 직접 항의를 해야만 했다.

밤이 되면서 천막에는 어둠이 깔렸다. 노트북 빛에 사람들의 입김이 비쳐 보이기 시작했다. "불을 좀 켤까?" 권영국 변호사가 일어났다. 밖에 놓아둔 발전기를 켜자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추운 날씨 탓인지 이내 꺼져버렸다. "불은 어쩔 수 없죠. 오신 분들은 방명록 써 주세요." 당번을 맡은 윤애림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가 말했다. 변호사, 교수들은 스마트폰 전등을 켜고 방명록을 적었다. 천막의 전등은 잠시 켜졌다 이내 꺼졌다.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나왔다"

24일 7시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앞 정곡빌딩에서 열린 법률가 촛불집회.
▲ "이재용을 구속하라" 24일 7시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앞 정곡빌딩에서 열린 법률가 촛불집회.
ⓒ 김정현

관련사진보기


6시 30분이 되자 법률가들은 일어섰다. 7시 집회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방한 깔개와 담요를 들고 움직이던 한 교수는 왜 왔느냐 묻자 "(법 교수임에도) 제가 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게 느껴졌다. 부끄럽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재차 이름을 물었으나 그는 이름을 밝히길 꺼렸다.

정곡빌딩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폴리스라인이 생겼고, 초에 불이 켜졌다. 하지만 광화문의 촛불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억울한 사람들이었다. 변호사를 만나러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는 "변호사님 여기 있어요? 어디 가면 뵐 수 있어요?"라고 기자에게 연신 되물었다. 농성장 옆에서 텐트 없이 노숙하던 현대 기아차 노동자들도 있었다.

연단에 선 한 변호사는 "2400원을 횡령하여 해고된 버스기사 판결이 이재용 사건이 아니었으면 회자되었을까요" 되물었다.

연단에는 강연자를 포함해 네 명의 법률가들이 자리했다. 이들이 함께 공유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헌법 교수라고 밝힌 한 법률가는 "부끄러워서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도 느껴졌다. 2000년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당시 대표로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종서 배재대 교수(헌법)는 "삼성은 법 질서를 자기가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록 수는 적지만,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이곳의 법률가들은 솔직했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를 고민 끝에 표현한 어떤 법률가들이 모여 있었다. 유례없는 법률가들의 법원 앞 연대 노숙농성이 가능했던 이유다.

권영국 퇴진행동 법률팀장(변호사) 인터뷰
- 노숙 농성을 제안하고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법원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구속 요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법원이 잘못된 결정을 했으며, 구속되어야 할 사람은 구속되는 것이 맞다는 취지다. 세간의 비판처럼 법의 정의가 돈과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부당한 법원의 결정에 대해서 규탄하고 이를 시정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법원이 잘못된 결정을 했으므로, 특검은 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 법원은 구속요건에 따라 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법의 정의에 부합한다. 법 앞의 평등이라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의 정의, 상식이 실현되는 것을 촉구한다."

- 법원은 기각 사유에서 특검의 범죄 사실관계 소명이 부족하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을 보면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제 3자 뇌물죄와 단순 뇌물죄 두 가지로 나눠 죄를 묻고 있다. 제 3자 뇌물죄는 장시호의 재단 출연금을 위한 16억원, 단순 뇌물죄는 최순실-정유라(공동재산)에 대한 지원을 말한다. 여기 대통령이 개입해 있다는 것인데, 제3자 뇌물죄의 구성 요건은 청탁의 입증이 필요하다. 반면 단순 뇌물죄는 청탁 여부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 대가성, 직무 관련성 입증만 되면 된다.

대가가 있냐 없냐는 법리 판단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판결이 아닌 영장 실질 심사다. 이 과정에서 법리를 구체적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법원은 이 지점을 소명 부족으로 본 것 같다.

430억 상당을 주고 받은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사람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었다. 법원에서도 삼성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불공정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객관적인 사실관계의 흐름을 보면 기업이 제3자에게 일방적으로 기부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삼성은 별도의 공익재단이 있다. 기업 회계는 정밀하지 않으면 세무상의 문제가 된다. 이 자체가 청탁에 대한 대가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상당한 이유가 된다."

- 유례 없는 일이라서 신중하게 검토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전두환 정권 하에서 일해재단에 기업이 기금을 강제로 상납한 전례가 있다. 이와 관련한 판례를 보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했다는 대가성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포괄적인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었다. 누구든 대통령에게 뭘 주면 기대하는 심리가 생기는 건 자연스럽다는 취지다.

법원이 뇌물수수자에 대한 조사가 없었다는 지적을 한 것도 <오마이뉴스> 취재를 통해 드러났다. 뇌물죄 조사 과정에서 수수자를 조사하지 않은 것도 유례가 없다며 법원을 두둔하는 의견도 있다.

뇌물죄에 있어서는 공여자와 수수자를 반드시 동시에 수사해서 수사절차를 밟지는 않는다. 이는 기존에도 마찬가지였다. 소명 정도에 따라 공여자를 구속할 수 있고, 수수자도 구체적인 근거가 있다면 별도로 먼저 구속하여 조사할 수 있다.

현재는 대통령이 불소추 특권을 통해 수사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특검이 뇌물수수 혐의자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특검이 하기 싫어서 안 한 게 아니다. 수수자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탓하는 것은 무책임하며 논리 모순이다. 법원이 고려하지 않은 것은 수사 절차가 공정하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문제다."

- 형사소송법 상에는 피의자에 대한 불구속 원칙이 있다. 그럼에도 이재용이 구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다음 각 호의 경우에 구속할 수 있다. △ 주거가 불명확할 때 △ 도주 염려가 있을 때 △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 세 가지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구속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상 위 세가지 경우는 중대성을 고려해 그 요건을 갖추면 구속할 수 있다. 언급했듯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대가관계 없이 수백 억을 지원하는 건 있을 수 없으며, 중대한 사안이다. 정황이 있고 실제 청탁이 이뤄진 바, 국민연금에게 4300억에서 많게는 1조 가량의 손실을 입힌 것으로 추산된다."

- 중대성만 갖고 구속할 수는 없다. 법원이 피의자의 주거와 생활환경을 고려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는가.
"생활환경은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간접적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증거인멸 우려가 쟁점이다. 법원은 이에 대해선 불구속 결정문에 아무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위증에 대한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위증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대단히 높다는 반증이다. 김종, 최순실, 김기춘, 조윤선. 모두가 특검에 위증으로 고발되었고, 강력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실제 이재용 부회장은 특검에 와서도 진술을 번복했고, 조사를 받은 다른 삼성 임원들과 말이 맞지 않다.

아시다시피 삼성은 이미 증거 인멸 전력이 많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비자금 문제를 폭로했던 당시도 비자금을 조성한 차명계좌를 엄청나게 폐기했다. 증거인멸로 처벌받은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총수의 권한이 강한 그룹에서는 조직적 증거폐기 우려가 대단히 높다. 결정권자를 격리해야 할 필요성이 클 수 있다."

- 법원의 불구속 사유를 법리적으로 모두 반박했다. 하지만 재계나 경제지 등은 총수 구속 시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우려한다.
"실제로 SK 최태원이 구속되어도 기업이 무너졌는가. 기업활동이 망가지거나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 사례가 없다. 늘 경영과 소유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총수가 소유권에 기대어 독점 권한을 행사하는 기형적 형태를 방조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합리적인 경영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대표이사가 있으니 총수 구속이 기업활동에 부정적이라는 것은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다."

- 판사가 삼성장학생이라는 허위보도가 나도는 것을 우려하며, 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판사는 법을 적용해서 판단하는 사람이다. 조의연 부장판사는 법 상에 분명히 적시된 증거인멸의 우려는 고려하지 않고, '생활환경'과 같이 법에 없는 요건을 제시했다. 이는 구속사유요건을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로, 판사의 고유 권한을 넘어선 행위다.

이런 상황이니 판사 개인 성향을 고려하게 되는 건 자연스럽다. 총수들은 대부분 구속시키지 않은 사례가 많은 판사다. 롯데 신동빈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했었다. 최순실-안종범 구치소 압수수색 영장도 기각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들은 기업 총수를 구속하면 기업들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생각하는 듯 하다. 이중잣대다.

재벌에 대해서는 기업경영을 고려하고. 주거 및 생활환경이 좋은 사람은 구속시키면 안되고, 노동자들이나 농민들이 싸우면 즉각 구속한다. 노동자는 가정이 없는가. 그런 식으로 기준을 달리 보지 말라는 것이 법 앞의 평등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해야만 한다. 경제적인 지위를 고려하지 마라는 것이다. 판사는 내심 다른 기준을 형성하는 것이고, 판사에 의해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만들어진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법률가들의 양심, 법의 정의가 이번 기각 결정으로 심각하게 훼손당했다고 생각한다. 돈과 권력에 의해서 법의 정의가 훼손되고, 법 앞의 평등이 사문화되었다는 것에 분노한다.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1인 매체 <또바기>에도 게재됩니다. (ddobaginote.tistory.com)



태그:#이재용, #불구속, #법률가, #법조인, #노숙농성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을 씁니다. 세상을 봅니다. http://ddobagi.me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