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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문화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보자기에 음식들을 한보따리 싸들었던 시대를 건너 이제는 깔끔하고 정갈하게 포장한 선물세트를 택배로 보내는 것이 일상이다. 최근에는 설 선물을 스마트폰에서 SNS로 보내는 더 간편한 방법도 호응을 얻고 있다. 시대의 변화가 설 문화에 미친 영향을 톺아본다. -기자 말   

명절을 며칠 앞두고 붐비는 남대문 시장(1977년 09월 23일).
 명절을 며칠 앞두고 붐비는 남대문 시장(1977년 09월 23일).
ⓒ 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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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보릿고개라는 말이 목구멍에 와 닿던 시절. 당시 20~30대였던 우리네 부모 세대들은 "잘살아 보겠다"며 서울로 몰려왔다. 가진 건 흙먼지가 묻은 두 주먹뿐이었다. 억척스럽게 직장도 구하고, 배우자도 만난 그들은 설 연휴 기간이면 연어처럼 고향으로 향했다.

웃음기를 머금은 그의 두 손에는 시골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식용유와 통조림이 담긴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큰마음 먹고 산 고급정장 안주머니에는 부모님께 드릴 용돈이 두둑이 담긴 노란 봉투가 들어있었다. 

부모님을 만난 그는 식용유와 통조림을 건넨다.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노란 봉투를 드리며 "시골 촌놈이 서울 가서 이만큼 성공했어요"라고 멋쩍은 허세도 부렸다. 부모는 알면서 모른 척 "네 덕에 호강한다"며 자식의 억척스러운 손을 한없이 어루만졌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그들에게, 노모는 어김없이 보따리를 건넨다. 강된장과 손수 빚은 간장, 오래 묵은 김치, 파전. 자식을 생각하면서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은 때 묻지 않았다. 때로는 열차에서 김치봉투가 터져 냄새가 날 때도 나무라는 사람 별로 없었다. 그네들 손에도 언제 샐지 모르는 보따리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리라.

식용유와 통조림, 그리고 노란봉투

1990년대가 되면서, 설 연휴 고향을 향하는 사람들의 손은 한결 가벼워졌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택배가 짐을 드는 수고를 대신 맡았다. '도어투도어(Door To Door)'라 불리는 택배 서비스는 빠르고, 편리했다.

이제 우리 세대는 택배로 설 선물을 미리 보내고, 고향으로 향한다. 부모님들도 각종 음식들을 택배로 보낸다. 굳이 음식 보따리를 들려보내지 않는다. 사람 많은 귀경길, 자식들의 수고를 덜기 위한 배려이리라. "택배 받았지?"라는 말은 안부인사 다음을 차지했다.

설 문화는 기술 발전으로 또 한 번 바뀌고 있다. 이번엔 택배가 아니라 스마트폰이다. 사람들은 최근 설 선물을 카카오톡 등 SNS로 전달한다. 택배를 사고 부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한 형태로 말이다.

최근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 SNS를 통해 명절 선물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최근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 SNS를 통해 명절 선물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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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 사람들에게 설 선물을 SNS로 전달했다는 한 리서치 회사 관계자는 "택배 배송은 받는 사람도 직접 나와 사인을 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했지만, 모바일 선물은 좀 더 간편하다"면서 "필요할 때, 받을 수 있어 거래처 사람들도 만족도가 높다"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모바일 상품권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 매출에서 확인된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는 다음카카오의 경우, 지난해 추석 연휴가 있었던 주에는 평소보다 매출액이 2배가량 상승했다. SK플래닛도 명절 연휴 때 매출이 3~4배가량 증가했다.

모바일상품권은 연휴 기간에도 꾸준한 매출을 유지한다. 일반 백화점과 택배가 명절 연휴 전에 집중적인 판매가 이뤄지고, 연휴 기간에는 하락세를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SNS 선물하기는 명절 직전부터 명절 기간 내내 상품 판매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모바일에서 손쉽게 바로 선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잘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모바일 등 IT 기술로 설 문화도 변화, 편리함이 대세지만...

명절 기간 매출액이 급증하면서, 다음카카오는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설맞이 선물 특가'코너를 별도로 운영한다. 20~30대는 물론 40~50대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SK플래닛 관계자는 "최근 모바일 상품권 서비스 시장은 5000억 원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결제와 상품 전달이 편리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용자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쩌면 이제 자식들은 설 명절 때 카카오톡으로 부모님께 선물을 전하는 시대가 대세가 될지도 모른다. 부모님들은 편의점에서 그 선물들을 수령할 것이다. 스마트폰 영상 통화로 대신하면서 "다음에는 꼭 갈게요"라며 간단한 안부 인사만 보내는 것으로 대신할지도 모른다.

편리함을 좇는 시대다. 하지만 편리함은 마음을 채우지 못한다. 편리함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끈끈함을 없앤다. 기술은 결코 사람과 사람을 잇지 못한다. 단절시킨다. 슬프게도 잔인한 시대는 '뒤로 가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70~80년대 보따리 선물 시절은 내겐 갓난 아이 때, 아주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언젠가, 부모들이 된장과 김치를 가득 넣어서 품에 안겨주는 촌스러운 분홍 빛깔의 보자기가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태그:#설, #카카오톡, #선물, #시골, #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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