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새들생명울배움터는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생명의 교육을 일구기 위한 동력을 얻기 위해 '나' 자신부터 교육하고자 '공적 글쓰기'를 주제로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었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사'를 공부합니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이 땅이 나아갈 길에 대해 다시 한 번 수렴과 응집의 점을 찍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떤 걸음을 걸어왔는지, 지난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가늠하려 합니다.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 '역사 - 과거 현재 미래'는 2016년 9월 24일부터 2017년 1월 21일까지 총 19회로 진행합니다. - 기자 말 

드높던 기개는 땅에 떨어지고 고결한 뜻은 흐려져 간 쇠잔의 역사. 지난 7주에 걸쳐 <조선상고사>와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으며 만난 우리의 역사다.

백만 촛불이 들고 일어났을 때, 금방이라도 바뀔 것만 같았다. 기나긴 내리막의 역사도 곧 승리의 역사로 전복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천 년 이상을 지속해 온 관성은 그리 쉽게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대로 불씨가 잦아들고 마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 우리의 삶도 모처럼의 변화의 기회를 잃고 마는 것은 아닐까.

이전 같았으면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만나고 배우며 알게 되었다. 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문제다.

"다시 힘을 내어라 나의 손을 잡아라 뒤돌아보지 말고 나아가야지
푸른 나무들도 등을 미는 바람도 너를 위한 몸부림에 힘겹다
- <다시 힘을 내어라>(작사·작곡 박강수)

박강수님의 <다시 힘을 내어라>라는 노래의 한 대목이 뇌리를 맴돈다. 푸른 나무들도 등을 미는 바람도 '너를 위한' 몸부림에 힘겹단다. 나무와 바람이 나 때문에 힘겹단다. 나무와 바람뿐일까. 내가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세상에 눈감아 버리려 할 때, 그런 나 때문에 힘겹게 싸우고 있는 것이 이들뿐일까.

이날 우리 앞에는 한 권의 책이 '나를 위해' 미치듯 몸부림치고 있었다.

<한국통사>, 우리를 멈춰 세운 책

박은식 선생의 필명은 태백광노(太白狂奴)다. 그는 나라 잃은 망국노의 심경을 담은 이 필명으로 망국사를 써 내려갔고, 아플 '통(痛)'자를 써서 <한국통사(韓國痛史)>라고 했다. 연대상으로는 대원군의 섭정이 시작되는 1864년부터 한일합병 직후인 1911년까지 50여 년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대표는 책을 읽은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다른 역사책을 읽을 때는 감정이 동하지 않았는데, 이 책은 담담하게 팩트만 전달하는 문장에서도 그냥 읽히지가 않습니다. 찢어지는 박은식 선생님의 심정이 한 마디 한 마디, 한 문단 한 문단 안에 꾹꾹 눌려 담겨서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행간에 머무르고 거주하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의 발목을 붙든다. 이 역사를 살려 놓고 가라고 원혼이 되어 매달린다. 담담한 한 문장, 한 문단을 읽어도 다음 행으로 넘어가는 게 힘든 것은 행간마다 광노(狂奴)의 비통한 혼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최봉실 대표는 감정에 북받쳐 책을 읽어 내려가기 힘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최봉실 대표는 감정에 북받쳐 책을 읽어 내려가기 힘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관련사진보기


책을 읽은 참석자들의 마음은 같았다. 안타까움, 비통함, 분노의 심정들이 토론하고 발표하는 한 사람 한 사람, 한 마디 한 마디에 묻어났다. 역사책이라는 것이 이렇게 절절한 것이었던가. 이토록 심장을 찌르는 것이었던가.

역사란 그런 것이다. 우리를 멈춰 서게 하는 것만이 역사라 부를 수 있다. 목적을 잃은 채 질주하는 폭주기관차와 같은 삶을 멈춰 세우기 위해 무수한 의열지사들이 철로에 뛰어들었다. 이 사실 앞에 멈춰 서서 비통한 심정으로 혼을 달래고 뜻을 묻는 것이 역사책을 읽는 것이다.

그들의 혼, 나무와 바람까지도 우리를 위한 몸부림에 힘겹다. 왜 굳이 우리인가. 우리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이 역사 살려낼지, 매장시킬지 우리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지금 무지한 자, 모두 유죄

이날은 <한국통사> 2편을 읽고 토론했다. 흥선대원군의 개혁과 쇄국정책으로부터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을 거쳐 을미사변에 이르기까지, 격동하던 개항기의 사건들을 돌아보며 우리의 대응에 어떤 문제가 있었으며, 어떻게 난국을 해쳐나가야 했을지 고민했다.

"살펴보건대 대원군이 섭정함에 주위 사정과 제반 조건이 중흥을 기대할 수 있었으나 학식의 부족함이 참으로 애석하다" <한국통사 75P>

첫 장부터 탄식이 흘러 나왔다. 대원군은 걸출한 개혁가였고, 민중의 지지가 있었으며, 감히 도전할 다른 세력도 없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어떤 변화도 끌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결정적으로 학식이 모자란 것이 천추의 한이라는 것이다.

"무릇 프랑스인이 온 까닭은 포교 때문인데 이들을 죽인 것은 학살이며, 미국인이 온 까닭은 통상인데 이를 거부하고 싸운 것은 완고한 것이었다. 만일 그때 국교를 체결하고 정치 예술 교육 산업의 장점을 받아들여 백성들을 계몽하고 실력을 배양했다면 자립할 강국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호의로 대할 때 우리는 적의로 답했고, 그들이 대화로 나올 때 우리는 무력으로 답하면서, 우리 문물과 무력이 이미 충분하다고 자만하여 완고 오만으로 시기를 놓치니 대원군의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함이 참으로 통탄스럽다." <한국통사 90P>

대원군의 무지함으로 비극의 서막이 올랐다. 박은식 선생은 대원군 이후 위정자들의 죄는 더 무겁다고 했다. 대원군 당시의 무지는 대원군만이 아닌 나라 전체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후에도 여전히 반성을 모르고 당쟁에만 몰두하다가 나라를 파탄내고 만 것은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중죄였다.

참석자들 역시 같은 마음으로 대원군과 위정자들의 무지를 한탄했다. 문호를 열고 좋은 것을 교류해야 할 시기에는 문을 걸어 잠갔고, 경계하고 신중해야 할 시기에는 넋을 놓았다. 다른 나라가 호의로 손을 내밀 때는 무력으로 뿌리치더니, 내가 필요할 때는 다른 나라가 친구가 되어 줄 거라고 착각했다.

김재광(35)씨는 이들의 무지함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자기 권력을 지키는 데 여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유죄입니다. 그가 시대를 오판했던 것이 단지 정치적 분별력이 떨어져서 아니라 자기 권력에 눈이 어두워서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피고인 신분으로 전락한 한 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서 비운이라고 부주의라고 실력 부족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권력에 눈이 멀어 정치적 시대적 오판을 했고 뭇 백성을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오늘날의 그 자는 권력에 눈이 멀어 범죄행위를 저질렀고 뭇 백성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둘 다 유죄입니다."

본질이 아닌 일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지도자의 본질은 나라를 건실하게 꾸려가는 데 있지 자기 권력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가정을 세우는 일에도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한 나라를 일으켜야 할 자가 제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으면 달리 무엇에 힘을 쓸 것인가. 정작 해야 할 온갖 일들에 무지하고 우둔하게 된다.

명권영(15) 학생은 책을 급하게 읽다보면 책을 읽는 목적을 잊을 때가 있다고 했다. 왜 읽는지도 모른 채 진도만 빼는데 급급한 모습이라니, 뭐하는 짓인가 싶다.

권력에 매달려 살면, 사리사욕에 급급하면 그렇게 아둔해진다. 한 쪽에 쏠려 있으면, 매몰되어 있으면 정작 중요한 일에 바보가 된다. 본질이 아닌 것에 정신을 팔아 선택한 것이 무지다. 무지가 나라를 망쳤으니 무지한 자, 모두 유죄다.

   명권영 학생은 본질이 아닌 것에 집착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명권영 학생은 본질이 아닌 것에 집착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관련사진보기


위로부터의 혁명과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만나면

1884년, 김옥균 등 유능한 개화파 관료들이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켰다. 일본을 이용해 친청파와 친러파를 제거하고 개혁을 단행하여 강대국으로 발돋움하자는 웅대한 계획이었으나 실패했다. 외세를 이용해 외세를 축출한다는 생각부터가 패착이었다. 그들은 지나치게 일본만 의존했을 뿐, 위로는 임금의 신임을 얻지 못했고, 다른 관료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아래로는 민심을 잃어 사방에 적들뿐이었다. 결국 그들만의 세상은 '3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혁명이라 함은 천하의 온갖 어려움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므로,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시작해야 하며 남의 도움과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 만일 자력 없이 남의 힘을 빌린다면 비록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간섭과 요구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독립이라는 것도 자력으로 쟁취해야 기초가 튼튼하고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남의 힘으로 얻게 된다면 독립이라는 것도 이름뿐이고 그나마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니 이런 점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한국통사 124P>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혼란은 가중되었다. 친청, 친러, 친일 세력의 각축은 가열되었다. 내부의 힘을 결집해 독립할 생각은 않고 저마다 외세의 힘을 빌려 서로 싸우기만 하는 모습에 참석자들의 탄식이 깊었다.

양권진 학생(19)은 "두 영걸(대원군과 명성황후)이 한 시대에 나와 서로 싸우는데 소진하고 말았다"는 박시백 작가의 평을 소개하며, 하나가 되어 자력을 다져갈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한 것에 한탄했다. 명성황후는 청을 끌어들였고, 대원군은 일본을 끌어들여 서로 싸우다가 결국 일제 침탈의 빌미를 제공하고 만 것이다.

김옥균과 개화당의 결정적 패착은 일본을 끌어들인 것인 동시에 정작 끌어들였어야 할 대상은 외면한 데 있다.

김덕영(36)씨는 진순신(陳舜臣)이라는 중국인 소설가의 분석을 소개했다. 진순신은 그의 소설 <청일전쟁>에서 김옥균이 일본을 끌어들이느라 동분서주할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전봉준을 찾아갔어야 한다고 했다. 외세가 아니라 민중을 만났어야 했다는 말이다. 황당해 보이면서도 무게 있는 상상이다. 위로부터의 혁명과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조우. 이런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난 오랜 세월, 역사는 왕조의 전유물이었다. 혁명은 소수 지배계급의 몫이었다. 그런데 국난의 위기에서 최후에 나라를 지켜내는 것은 언제나 민초들이다. 힘은, 저력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했다. 그냥 시민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이다. 그냥 힘이 아니라 '조직된' 힘이다. 이러한 단서들을 유념해야 한다.

"동학당이 정치를 개혁하고 민생을 보호한다는 원래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배우지 못하고 미천한 오합지졸들이었다. 그러므로 지방에서 분풀이와 폭정에 대한 응징을 행했지만 담력과 학식이 부족했던 탓에 중앙 정부의 개혁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다." <한국통사 138P>

민중을 미천한 오합지졸, 동학혁명을 동학난이라고 한 박은식 선생의 표현에 대해 순간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바로 지금 정치권의 인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고, 촛불 계엄령 선포를 주장하는 따위의 인식에 대한 반발심이 이 대목에서 불쑥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나 박은식 선생 당시 언어 사용의 문제와 민중을 위한 진정성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실패한 혁명을 가리켜 '난'이라 했을 뿐, 오히려 민중 개개인이 깨어 학식과 실력, 조직력을 갖추어 혁명을 성취해 내기를 바란 그 염원을 읽어야 할 것이다.

또한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이 나라의 민중은 당시 농민들보다 깨어 있으며 결집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민중의 한 사람으로 나는 깨어있는가. 연대하고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묘비 앞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깨어 있어야, 연대하고 있어야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묘비 앞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깨어 있어야, 연대하고 있어야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다.
ⓒ 이순철

관련사진보기


실력, 몸으로 안 하면 못 견디는 간절함

최윤철(44)씨는 4차 산업혁명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공학과 인문학의 균형 있는 공부가 절실함을 강조했다. 산업전선에서 뛰는 그는 옛날과는 다른 양상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훨씬 다각화되어 있다.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의 급변하는 물결에 휩쓸려 무지의 늪을 허우적댄다. 힘을 갖추려면 기술에 대한 이해가 절실한데도, 심각성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그는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이 자리가 비록 역사를 공부하는 자리지만 경제와 산업의 위기 앞에 내 분야가 아니라고 외면하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박은식 선생의 충고도 그것이다.

"본 왕조가 도학을 숭상하고 장려한 것은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너무 편중하다보니 그러한 데서 오는 피해가 크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 그러한 것의 폐단은 우둔하고 나약하여 자만심으로 가득차게 하는 데 있었다. …… 배우되 허를 숭상하고 실을 버리니 정치·법률·군사·농업·공업·재정 등 실용적인 학문은 공리적인 것이라 배척하고 배우지 않았다. …… 사람의 몸에 비유한다면 신체 한쪽만 위하고 전체 몸을 돌보지 않는다면 병신이 되는 것이니, 국가도 학문을 장려하되 한 학문만 편중하면 다른 학문은 피폐되고 나라가 병들게 되는 것이다." <한국통사 161-162P>

1894년, 일제의 개입은 있었지만 근대화를 향한 나름의 노력으로 '갑오개혁(甲午改革)'이 단행되었고, 여기에는 갑신정변 및 동학농민혁명의 개혁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실용적인 학문을 하찮게 여겨 배척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소위 학식 있다는 선비들은 나라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이 역시 선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문제였으니, 결국 평민과 아이들까지도 실학과 산업을 경시하는 풍조가 개혁과 혁명을 좌절시킨 것이다.

   최윤철 씨는 4차 산업혁명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공학과 인문학의 균형 있는 공부가 절실함을 강조했다.
 최윤철 씨는 4차 산업혁명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공학과 인문학의 균형 있는 공부가 절실함을 강조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관련사진보기


"학식을 더한다." 

박규준(39)씨는 해야 할 일을 한마디로 압축했다.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석한 두뇌로 사서삼경을 줄줄 외던 선비들이 국망기 초야에 묻혀 두문불출했다. 혹여 그들이 나라의 부름에 응했다고 한들 나라를 구할 실력이 있었을까. 공부를 하더라도 어떤 공부를 하느냐, 누구와 함께,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사람과 함께 공부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가 말한 '학식을 더하는 것'은 관념적인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뚫고 나가는 저력을 쌓는 것이다. 그것이 실력(實力)이다. 실력은 열매를 맺어내는(實) 힘이다. 책임을 완수해 내는(實) 힘이다. 끙끙대며 경험과 감각으로 굳혀 가는(實) 힘이다. 이 힘은 얄팍한 머리가 아니라 묵직한 발에 있다. 그러므로 실력은 실천(實踐)이다.

"실천한다는 것은 몸으로 하지 않으면 못 견뎌서 하는 것입니다. 계속 좌절하는 이유는 그만큼 간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쪽이 이깁니다. 일본이 청에 이긴 것도 그만큼 간절해서였습니다."

최봉실 대표는 실천은 몸으로 하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사무치게 간절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일본이 열강과의 패권 다툼에 얼마나 간절하고 치열했는지를 보면, 우리의 대응이 얼마나 안일하고 미적지근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안일함이 부른 사상 최악의 참사와 국정 농단

1985년 을미년, 조선의 국모가 시해되었다. 전 국민이 경악을 금치 못한 참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응은 미적지근했고 제대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듬해 병신년에는 국모의 복수를 빙자해 이완용 일파가 국왕을 러시아 공사관에 가두고 권력을 휘둘렀다. 임금을 우롱하고 국권을 팔아치운 사상 최악의 국정 농단 사건이었다. 국격은 땅에 떨어졌다. 조선의 허약한 실상을 본 열강의 경제 침탈이 노골화되기 시작했고 이완용은 균형 외교랍시고 우리의 자원과 이권을 열강에 골고루 분배했다.

박현지(33)씨는 남의 잘못을 적당히 이해해 주고 넘어가려고 하다가 "너는 화도 안 나느냐?"는 말을 들었다. 잘잘못을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고 참고 넘어가는 일이 익숙한 것이다.

화를 내야 할 상황에 화를 내지 않고, 아파해야 할 순간에 참고 견딘다. 그렇게 조금씩 감각을 잃어가다 나중에는 아픈 줄도 모르게 된다. 아픈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언젠가 참사를 부르고 만다.

그는 화를 냈어야 했다. 사실관계를 명료하게 밝혀 시비를 가려야 했다. 누군가 나에게 잘못하고 있다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내 목소리가 또렷해야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대변해 줄 수 있는 법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그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말고 화를 냈어야 했다.

"친절함 말이다. 그 지독한 예의 바름 말이다. 끝까지 고결한 침착함 말이다. 그게 꼴 보기 싫었다."

구한글 학생(19)은 주권과 자원, 민초들의 생계와 목숨까지도 친절하게 외세에 내 주고 있는 이 나라 고관들의 '예의 바른' 외교 문서에 분노했다.

동방예의지국, 고요한 아침의 나라, 백의민족. 그런 나라, 그런 민족의 역사적 소명도 있겠지만 지금 보니 애처롭기만 하다. 솔직히 무기력하다고 하자. 따지고 들기에 목소리는 작고, 대들기에 힘은 없고, 큰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적당히 눈치 보며 살려고 했다고 하자. 착하다, 예의바르다, 조용하다. 이런 입에 발린 말로 상처를 덮지 말고, 솔직한 말로 썩어 문드러져 가는 진상을 드러내자.

다부진 민족이 될 수는 없을까? 격정의 나라가 되면 안 되는 걸까? 이글대는 태양이, 요동치는 폭풍이 될 수는 없을까?

그러려고 했다. 이 민족이 바로 그런 민족이었으며, 다시 그 격정을 회복하기를 포기한 적이 한순간도 없다. 고구려의 기개가, 화랑들의 임전무퇴의 각오가, 사육신의 절개가, 의병들의 결기가, 독립운동가들의 투혼이, 민주열사들의 의기가 아픈 역사를 가만히 방치해두지 않았다. 장렬한 역사의 순결한 계승자들이 혼탁한 시대의 도처에서 살을 찢고, 피를 뿌려 가며 국혼을 깨웠다.

양권진 학생(19)이 속한 토론 모둠은 모둠명을 "술(述)이 들어간다. 역사가 나온다"라고 정했다. 술(述)은 역사적 저술들, 기록들, 자취들을 말하는 동시에 들이마시듯이, 취하듯이 배우는 것을 함의한다. 이 배움을 절절하게 맞이하여 새로운 역사, 승리의 역사를 내보낼 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이름에 담았다.

그는 <한국통사>의 절절한 텍스트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이 기회에 중심을 다져 가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아(我)가 되어 장렬한 승리의 역사를 내보내기 위해서는 이 통한의 역사를 우리 안에 끌어안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술이 들어간다. 역사가 나온다."

   양권진 학생은 <한국통사>의 절절한 기록(述)이 들어오는 이 기회에 중심을 다져 가자고 했다. 아픈 역사를 끌어안고 승리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를 함께 다짐한다.
 양권진 학생은 <한국통사>의 절절한 기록(述)이 들어오는 이 기회에 중심을 다져 가자고 했다. 아픈 역사를 끌어안고 승리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를 함께 다짐한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관련사진보기


가보세 가보세 끝까지 가보세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나니
<가보세謠>

"이 노래는 갑오년에 가야 할 곳에 가야지 다음 해인 을미년까지 미적거리면 그 다음 해인 병신년을 만나 영영 못 가고 일을 그르치고 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보'는 투전의 9수의 발음과 같다. 그러니까 '가보'는 행운을 의미하며 '가보세'는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다" <전봉준, 혁명의 기록 246P>

2014년(갑오년) 세월호가 침몰했다. 2015년(을미년) 메르스 참사가 터졌다. 2016년(병신년) 최순실 국정 농단이 드러났다.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이 사실은 본질상 한 사건이었다. 권력을 유지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여념이 없던 위정자들의 무지와 무능은 대한민국을 세계 유일의 메르스 참사국으로 만들었다. 국가의 수뇌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린 비선실세들의 국정 농단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월호의 생명들을 수장시키고 있었다.

'가보세요'는 동학 혁명의 실패를 예언한 애가(哀歌)로 불렸다. 그러나 오늘 이 노래는 희망의 찬가다. 왜냐하면 아직도 갑오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갑오년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픔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진실이 미궁에 빠진 채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가오는 19대 대선은 결이 다르다. 민족적 각성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국민들도, 정치계도, 언론계도 혁명의 결기에 차 있다. 물론 그만큼 저항도 사나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문제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카페로 오시면 교육문화연구학교를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의 소감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바로가기(http://cafe.daum.net/kyungdang/coIz/342)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