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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금순 할머니와 강덕화씨.
 권금순 할머니와 강덕화씨.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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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자기가 넉넉해야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권금순(87) 할머니를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하다.

지난 13일, 권 할머니는 충남 예산군 예산읍사무소를 방문해 20만 원을 전달했다. "엄마나 아버지가 없어 배우기 어려운 아이를 도와달라"며 내민 돈은 만 원권 19장과 오천 원권 1장, 천 원권 5장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아래 수급자)여서 할머니의 생활을 잘 알고 있는 복지팀 직원들이 한사코 말리며 주차장까지 따라 나갔지만, 뜻을 꺾을 수 없었다. 폐지를 실은 폐유모차에 노구를 의지해 사라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직원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김미경 복지팀장은 "할머니가 봄에는 나물 뜯어 팔고, 한겨울에도 매일 폐지를 주워 팔아서 모은 돈이다. 아무리 설득해도 기름보일러 대신 전기장판 한 장으로 겨울 나고, 수돗물도 아깝다며 집앞 하천물로 씻고 빨래하며 사시는데…. 할머니가 주신 성금 20만 원은 2억보다 더 큰 돈이다"라고 말했다. 예산읍은 할머니의 뜻에 따라 한부모 가정 아동 2명에게 10만 원씩 전달했다.

"그 돈 갖다 주고 나니 얼마나 개운허던지... 또 허야지"

권금순 할머니가 예산읍사무소 김미경팀장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폐지를 정리하고 있다.
 권금순 할머니가 예산읍사무소 김미경팀장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폐지를 정리하고 있다.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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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뒤인 17일, 할머니의 집으로 찾아갔다. 집은 비어 있었다. 한참 뒤 할머니가 폐지를 한가득 실은 폐유모차를 끌고 나타났다. 취재를 왔다고 하니 "아서. 넘이 들으면 숭봐"라고 손사래 치면서도 "내가 여섯 살에 울 어머니 죽구 아버지 밑에서 컸어. 우리 형제가 셋이었는디 맞기두 많이 허구, 여자라구 배우지도 못했어. 그러다가 아버지두 죽구…. 엄마 없구 아버지 없는 애들 맘 편히 공부하게 해주야 돼"라고 강조했다.

할머니는 또 "폐지 한 나흘 모이면 60근 되는디 그거 갖구 가면 3000원 받어. 그리구 뭐라두 해서 100원도 모이구, 1000원도 모이지. 적으면 적은대로 먹으면 되지, 사람이 어떻게 자기 뱃속만 채워"라고 말한 뒤 "읍에 그 돈 갖다 주고 나니 얼마나 개운허던지. 안 죽고 살믄 10원 100원 모아놨다가 또 허야지. 죽으믄 헐 수 없구"라며 활짝 웃었다.

그런 사례는 또 있다. 같은 마을에 사는 강덕화(72)씨는 지난 11월부터 저소득층 가정 보일러 수리 봉사를 하고 있다. 강씨 자신도 고혈압과 천식으로 몇 해 전 일손을 놓은 수급자 가정이다.

그는 예산읍사무소가 '저소득층 따뜻한 겨울나기 사업'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한 수급자 가정 89곳을 방문 점검해 문제가 있는 가정의 보일러를 수리해주기로 했는데, 협력단체의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고 선뜻 나섰다.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보일러기술에 전기기술까지 두루 섭렵한 그는 능숙한 솜씨로 지금까지 여덟 가정의 고장난 보일러와 전기를 고쳐줬다.

마을에 문제 생기면 어디서든 나타나는 강 반장

강덕화씨가 보일러를 고치고 있다.
 강덕화씨가 보일러를 고치고 있다.
ⓒ <무한정보>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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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보면 보일러도, 사는 것도 엉망이에요. 더구나 혼자 사는 노인이 대부분이라 수리하고 나면 따뜻하게 겨울 나시겠구나 싶어서 얼마나 마음이 좋은지 몰라. 보람 있어요."

예산읍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무료 기술 봉사만 아니라, 작은 부품들은 읍에 따로 요청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활용해 고쳐주고 있다.

"그게 뭐 별거라구. 내가 전에 일할 때 갖고 있던 게 있어서 하는 거지."

총 28가구 중 12가구가 수급 대상일 정도로 저소득 가구가 많은 대회리 14반 반장일을 오랫동안 맡아 이웃들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이번 읍사무소 사업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동네에 보일러나 전기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 왔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그거니까요. 없는 사람들끼리는 그래요. 내가 고장난 거 봐주면 할머니들은 내가 잘 못 하는 살림 챙겨주고… 같이 도와가며 사는 거 아닙니까."

장례식장이 일반화되기 전까지 동네 초상이 나면 염습까지 그의 몫이었다고 한다.

영화 제목처럼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난다. 강반장'이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기부, #폐지, #재능기부,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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