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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차례상 물가가 심사이 않다
 설 차례상 물가가 심사이 않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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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엔 물가가 너무 비싸서 뭐든 조금씩만 준비해야 할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제일 만만한 계란까지 저렇게 천정부지로 올라서 금란 소리를 듣는 판에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지 뭐. 김장철 지나면 내린다던 무, 배추 값도 여전히 비싸고 차례상에서 조기가 사라진 지는 한참 되었고 설날이니 최소한 떡국 끓이고 산적이라도 하려면 소고기도 좀 사야하는데 얼른 손이 가지 않네. 조금 지나면 더 비싸 질 테니 지금 사는 게 그래도 낫겠지? 남편 월급과 애들 성적 빼고는 다 오르니 한숨만 난다. 에효~"

친구와 설 전 물가동향도 알아볼 겸 겸사겸사 장을 보러 나왔다. 계란 1판에 1만 1400원. 말로만 듣던 귀한 계란을 장바구니 안에 넣으니 등허리가 시리고 한숨이 절로 난다.

"1인당 한 판이라며. 한 판 가지고 전이고 부침이고 명절음식 할 수 있을까? 한 판 더 사야 되지 않니? 수입계란이 풀린다지만 명절 임박하면 더 비싸지지 않을까?"

"그러게. 소고기전, 동그랑땡, 생선전, 버섯전, 꼬치전, 호박전, 메밀전... 해마다 못해도 다섯 가지 씩은 했는데 그러려면 계란 한 판 어림도 없지. 더구나 떡국이나 이런저런 음식에 올릴 계란지단까지 생각하면 두 판은 필요해." 

"계란 값도 장난이 아니니 비싸다고 계란 옷 입히지 않은 누드전을 만들 수도 없고 말야."

"누드전이라니. 누드김밥은 들어봤지만 누드전도 있니? 하긴 누드전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AI 막지 못한 것이 조상 탓이라면 조상님들도 발칙하다고 하지는 못 하실 거야. 하하하."

계란이 아닌 금란. 한판에 11400원.
 계란이 아닌 금란. 한판에 11400원.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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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지난 1월 10일 기준으로 설 차례상 비용을 조사한 결과 대형마트 34만 1천 원, 전통시장 25만 4천 원이 소요된다는 보도를 내 놓았다. 25만 원에서 35만 원 사이에서 준비할 수 있다는 자료이지만 실제로 설 준비를 위해 장을 보러 가는 날을 설 2~3일 전인 1월 24, 25일 경으로 볼 때 구입가는 더욱 상승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주부들은 '무슨 무슨 물가'라고 해서 쏟아놓는 보도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신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보도를 접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명절 대목을 앞두고 미리 조사해서 발표하니까 아무래도 대목이 되면 더 오르는 게 당연하고 또 차례상 비용이라고 하면 남편 등을 포함해 가족들 대부분이 발표되는 비용으로 설 준비가 다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 25만 원에서 35만 원 사이의 비용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차례상 비용은 차례상에 올릴 단 한 접시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일 뿐 차례를 지내러 오는 가족들을 위한 음식 준비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명절을 준비를 위해 발표된 물가(25만 원~35만 원)의 몇 배를 쓰고도 그 수고와 노력 그리고 경제적 출혈(?)에 공감을 받지 못하는 주부는 늘 억울하다. 차례상의 기본 중에 기본인 무, 배추 값과 계란 값까지 올라버린 올해는 아무리 노력해도 비용을 더 줄일 수 없을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없다.

고기 보다 비싼 고사리 도라지 나물
 고기 보다 비싼 고사리 도라지 나물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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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의 경우는 결혼한 아들 내외와 세배를 하러 올 친정 식구들 그리고 혼자 계신 친정 엄마 등 적어도 10인분 이상의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식구들과 함께 먹을 떡국 떡 가격만도 3만 원 이상이고 국거리와 산적, 갈비 등 소고기, 명절 때면 소고기보다 비싸지는 고사리와 도라지, 각종 전과 떡국에 함께 넣을 만두에 과일 몇 가지를 준비하다보면 50만 원을 들고 시장에 나가도 부족하기 짝이 없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과 푸짐하고 넉넉한 마음을 나눠야 할 명절이지만 현실이 이렇다보니 조금씩 준비해서 흉내만 내자는 식으로 명절의 풍습마저 변질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예전에는 친정에 가든 시댁에 가든 명절이면 한 달은 먹을 만큼 바리바리 싸주셨잖니. 그것도 다 옛날일이 된 것 같아. 지금 우리는 애들한테 그렇게 싸주려면 한 달 생활비를 다 써도 모자랄 판이니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우리 엄마도 내가 친정에 갈 때마다 이것저것 엄청 싸주셔서 올라 올 때는 부자가 되서 오는 기분이었거든. 마음 같아서는 예전 우리 엄마들처럼 출가한 자식들이나 집에 오는 손님들도 넉넉히 먹이고 싸서 들려 보내고 싶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더라. 명절인심도 이제 다 옛날일인거지. 그나저나 계란 값은 언제 제자리를 찾는다니. 우리 아들은 계란없는 식탁은 상상도 못해. 요즘에도 그 귀한 계란을 매일 무려 2개씩 먹으면서 '알부자' 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잖니."

명절을 앞두고 영하 10도가 넘는 한파가 찾아왔다. 마음도 춥고 몸도 춥고 지갑도 추워서 설설 기게 되는 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뿐인 설마저 춥고 쓸쓸하게 보낼 수는 없기에 한 손엔 장바구니를 또 한 손엔 세일 전단지를 들고 길을 나선다. 재래시장과 할인마트를 돌도 돌아 가장 저렴하고 가장 신선한 재료를 찾아 풍성한 설을 준비하기 위해서.

주부들은 천정부지 설 물가가 두렵기만하다
 주부들은 천정부지 설 물가가 두렵기만하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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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설 명절, #설 물가, #계란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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