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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기념관 앞에서 (위), 항저우 임시정부청사 앞에서 (아래) 역사에서 미래찾기 사진
▲ 윤봉길 기념관 앞에서 (위), 항저우 임시정부청사 앞에서 (아래) 역사에서 미래찾기 사진
ⓒ 장병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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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같은 중국 여행

2016년 12월 23일 아침, 나는 중학 생활을 마무리하는 선물 같은 중국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목포역으로 향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임시정부청사를 실제로 가 본다는 생각으로 내 마음에는 약간의 설렘이 있었다. 이렇게 장병준기념사업회에서 추진한 '역사에서 미래 찾기' 여행은 31명의 친구들과 함께 출발 기념사진을 찍으며 시작되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외침 - 현충원, 독립기념관, 서대문형무소

6박 7일의 여정 중 처음에 우리가 간 곳은 대전현충원에 있는 독립운동가 장병준 선생님의 묘였다. 차창 밖으로 끊임없이 펼쳐졌던 독립운동가들의 비석을 보며 이렇게 많은 이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안 장산도에서 태어나 목포, 서울, 중국 상하이 등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을 펼쳤던 장병준 선생님의 묘에서 우리 중 한 친구가 대표로 헌정시를 읽고 다 함께 묵념을 하고 나오는데, 하늘에서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하늘의 눈이 마치 독립운동가들의 순수한 애국심과 그들이 원했던 자유와 평화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현충원을 나와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에 갔다. 나는 그 곳에서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저질렀던 만행과 잔혹했던 고문의 현장, 그리고 비인간적인 수용시설을 보며,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독립을 외쳤던 유관순 언니의 만세 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하늘을 향해 우는 어린아이 - 난징대학살기념관

서울을 떠나 드디어 중국 남쪽의 수도, 난징을 향한 비행이 시작되었다. 공항에서부터 거리까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난생처음 발을 내디딘 중국이 낯설기도 했지만 이웃나라 중국에 와 보게 되어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우리가 처음 간 곳은 난징대학살기념관이었다. 일본군은 1937년 12월 13일부터 약 45일간 난징에서 30만 명의 민간인들을 학살, 강간, 납치하였는데, 난징대학살기념관은 이 사건을 기억하고 일본의 악덕한 만행을 세계에 알리고자 만든 기념관이다.

삼각형 모양의 기념관 내부와 외부 모두 어두웠다. 기념관 벽에 걸러져 있는 수많은 사진, 그림들, 그리고 그렇게 많은 관람객들이 있었음에도 유지되었던 엄숙함이, 그 가슴 아픈 이야기를, 일본의 잔인성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중에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이 있다. 학살의 회오리가 지나간 후, 죽고 다친 사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그 위에 죽어 있는 엄마의 위에서 하늘을 향해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나타낸 그림이 바로 그것이다. 그림에는 초등학교 5학년인 내 동생보다 더 어린아이가 죽은 엄마를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마치 내 동생처럼 느껴져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내내 마음이 아팠다.

빗속의 중산릉 - 항일 독립정신과 쑨원의 '삼민주의'

중국에서의 둘째 날, 비를 맞으며 우린 중산릉으로 향했다. 중산릉은 중국의 신해혁명의 주역인 쑨원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쑨원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동상이 있는 커다란 건물에는 학교에서 배웠던 민족, 민권, 민생이라는 삼민주의를 뜻하는 글씨를 볼 수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왜 하필 중국에서의 두 번째 날,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을 설립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던 쑨원의 무덤을 보는 것일까 하고 처음에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조별 발표 준비를 하면서 깨달았다. 쑨원이 '민족, 민권, 민생'을 생각하면서 중화민국이라는 나라를 만들려고 했던 것처럼,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임시정부의 요인들도 일제의 지배를 벗어난 우리 민족의,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국민이 살기에 좋은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는 것을.

아아, 독립을 위해 오르내린 험난한 계단이여 -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아름다운 호수인 서호, 그리고 화려한 연출의 중국의 쇼인 홍성가무쇼 등을 보고 나서 우리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에 갔다. 항저우와 상하이에 있는 임시정부청사에 모두 들렸는데, 가는 청사마다 올라가는 계단이 비좁았고, 그들의 삶의 터전 또한 좁고 남루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1일 운동의 영향으로, 일제의 눈을 피해 중국에 만들어졌다. 처음 그들의 본거지였던 상하이, 항저우, 전장을 지나 그리고 머나먼 충칭까지. 그렇게 멀고 먼 길을, 일제의 탄압과 추적을 피해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임시정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독립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떠올려 본다. 그때의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임시정부청사 계단을 오르내리며, 문득 오늘을 사는 나는 지금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져 본다. 임시정부 사람들이 그랬듯이 수많은 의거와 독립운동을 해도 바로 조국의 독립이라는 결과가 오지 않았다. 실패, 실패, 또 실패. 무려 36년 동안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하며 일제에 항거하던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나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개인은 작지만 장병준 선생님과 같은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을 이어 그들의 작은 몸짓, 희생 등이 일제라는 견고한 벽에 작은 흠집을 내고 결국은 독립을 쟁취한 것처럼, 오늘의 나 개인은 작지만 그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윤봉길 의사의 따뜻한 시계 - 상하이 훙커우 공원

상하이에서 둘째 날, 우리는 훙커우 공원에 갔다. 아침에 간 훙커우 공원은 우리 동네 공원을 연상케 했다. 음악을 틀어놓고 체조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가 엄마 향해 아장아장 걷고 있는. 그런 일상적인 공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도시락 폭탄'으로 유명한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장소라는 것. 우리는 훙커우 공원을 가로질러 윤봉길 의사 기념관으로 향했다. 조그마한 건물에는, 윤봉길 의사의 흉상과 그의 비장한 모습이 담긴 영상이 있었다. 일왕의 생일에 열렸던 전승기념잔치에서 단상을 향해 폭탄을 던졌던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저 조국의 독립. 그것 하나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의거 전, 김구 선생님을 만난 윤봉길 의사는 김구 선생님에게 자신의 6원짜리 시계와 김구 선생님의 1원짜리 시계를 바꾸자고 하였다. 왜 그러냐는 김구 선생님의 물음에, 윤봉길 의사는 "저의 시간은 앞으로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이를 생각했던 윤봉길 의사의 마음씨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따뜻한 마음씨는, 조국을 향한 것이지 않았을까. 이내 자기 몸을 희생하여 조국의 독립을 이루고자 했던 그런 마음. 윤봉길 의사의 의거 장소를 지나며 다시금 기념관을 봤을 때, 윤봉길 의사가 나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어지러운 나라 상황 속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라고, 자신이 했던 것처럼 나라를 사랑했던 마음을 가지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 역사, 현재를 넘어 미래로

중국에서의 마지막 저녁에 있었던 조별 발표회는 내게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첫째 날 역사학자이신 한철호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학교에서 가르쳐 준 대로만 바라보았던 시각을 버리고, 다양한 방향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 인식을 토대로 나와 친구들은 역사에서 미래를 찾으려면 먼저, 과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과거를 먼저 바라보고, 현재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열여섯, 내가 만들어 갈 나의 역사

난징, 항저우, 상하이 등 항일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쫓아다닌 6박 7일 간의 '역사에서 미래 찾기' 탐방을 하면서 나는 '현재를 넘어 미래로'를 외치며 오늘 나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앞으로 내가 살면서 혹시 실패와 절망의 순간이 있더라도 희망을 내려놓지 않고 고난을 이겨낸 독립운동가들이 그러했듯이, 나에게 주어진 고난에 좌절하지 않고 나도 당당히 나의 역사를 만들어 가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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