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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실기시험 장면. 해당 사진은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
 미술 실기시험 장면. 해당 사진은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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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대한 상황묘사."

목원대학교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가 이번에 택한 신입생 실기 시험 주제다. 지난 17일, 입시를 치른 목원대 지원자들이 트위터 등 SNS에 당시 상황을 전하며 논란이 일었다. 목원대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문제가 제기되자 입을 연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아이들이 시의성 있는 주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만화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보고자 하는 의도로 문제를 냈다. 일부에서는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해 부정적인 인식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잊지 말자'는 취지였다." (<중앙일보> 보도 중)

필자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지금도 미술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경력 때문에 이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연락을 받고 며칠간 고민을 떨칠 수 없었다. 얼핏 보기엔 '당연한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는 상황이지만 그것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야 했다. 미술과 미대 입시 밖에서 바라보는 일반론적 시선을 가지고 비평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목원대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가 택한 입시 미술의 형식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학과 실기 시험은 통칭 '상황묘사'라 불리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석고소묘나 정물화가 아니라 학교 측에서 제시한 주제를 토대로 상상해서 해당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그림이다. 그게 학교 측의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이미 해당 학과 입시 그림은 그렇게 스타일이 굳어져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 대학교의 입시요강 브로셔에서 '상황묘사'의 예로 설명된 작품(주제: 개천에서 용난다)
 한 대학교의 입시요강 브로셔에서 '상황묘사'의 예로 설명된 작품(주제: 개천에서 용난다)
ⓒ 대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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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첫 번째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해당 학과 입시 그림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맥락을 제거하고 비극을 극대화 시킨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아직 어떤 식으로도 매듭을 짓지 못한 '현재 진행형'의 사건, 그것도 정치와 첨예하게 연결된 사건을 주제로 삼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 고민했어야 한다.

실기시험이 12월에서 1월에 치러진다는 시기적 특성상 '주제'를 기반으로 실기시험을 치르는 학교들은 줄곧 이전 한 해 동안 있었던 시의성 있는 사건이나 이벤트를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입시생에게 특수한 상황을 묘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일반적으로 모두가 경험했을 만한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 공평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3학년도 입시에서 '월드컵'을 주제로 택한 학교가 많았던 것이 좋은 예다. 당시 월드컵이라는 주제가 대부분의 입시생이 어떤 방식으로든 직접 경험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험의 주제로 삼기 무난했다고 본다. 하지만 목원대는 무리수를 두었다. 세월호 참사는 직접 경험한 이들과 간접 경험한 이들의 간극이 너무나도 크다.

그렇다면 두 번째 문제는 '세월호'에 대한 경험을 구분해 보았는지의 여부에서 찾을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를 제외하면 우리는 모두 세월호 참사를 미디어를 통해 간접 경험했다고 봐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직접 경험한 사건과 미디어를 통해 한 번 걸러진 상태로 간접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모든 시험이 그렇지만, 입시는 사실상 강제로 특정 주제를 그려야만 하는 상황을 만든다. 좋든 싫든 해당 주제에 대한 그림을 그려야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상황 말이다. 이러한 사실을 견지한다면 '만약 유가족이나 생존자가 목원대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에 지원했다면'이라는 가정을 반드시 했어야만 한다. 간접 경험한 우리에게도 트라우마인 사건을 직접 경험한 이들에게 그리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다.

지난 2016년 12월 31일 오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언덕에서 본 세월호 인양 작업 현장 풍경.
 지난 2016년 12월 31일 오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언덕에서 본 세월호 인양 작업 현장 풍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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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대학의 실기시험은 그 형태가 어떤 모습이건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석고상을 그리던 옛날과 달리 입시의 형태가 많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형태 묘사나 구도, 색감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학생을 선별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세 번째 문제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만에 하나, 평소 일베를 하며 세월호에 대한 비하를 일삼던 입시생이 자신의 관점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단순 교통사고로 전락시키는 그림을 그렸다고 가정하고, 그 입시생이 그림을 누구보다 잘 그렸다면 해당 입시생을 떨어뜨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다. 이건 일종의 사상검증이 될 수 있다. 가령, 어느 기업이나 공무원 시험에 '세월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치자. 이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이며 어떤 문제를 내포하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다시 목원대 관계자의 변으로 돌아와 본다. '시의성 있는 주제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만화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보고자, 또 기억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앞선 세 가지 고민 없이 문제를 냈다면, 그것은 대학교수로서 사유를 멈춘 것이다. 사회적 직무유기다. 게다가 목원대는 2014년에도 "세월호 침몰 당시 인명구조 상황을 만화로 표현하라"는 주제를 출제하지 않았나.

극작가 이자크 디네센은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게 된다"고. 그러나 적어도 아직은, 세월호는 쉽게 이야기로 만들거나 종이 한 장에 그림으로 이야기를 함으로써 견뎌내고 무뎌질 수 있는 크기의 슬픔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세월호는 아직 지혈조차 못하고 있는 상처다.



태그:#세월호, #미대입시, #목원대, #논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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