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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현장에서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끝내 입적한 정원 스님의 빈소를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생판 모르는 남'이었던 정원 스님을 기리는 '촛불시민'들이 있었다. 

10일 오후 정원 스님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찾아간 기자가 현장에 머무른 시간은 약 2시간 반. 조문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빈소는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됐다.

 광장을 밝히는 대학생들이 모인 단체'청년광장' 회원 30여 명이 10일 오후 정원 스님의 빈소를 찾았다.
 광장을 밝히는 대학생들이 모인 단체'청년광장' 회원 30여 명이 10일 오후 정원 스님의 빈소를 찾았다.
ⓒ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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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로 이루어진 단체 '청년광장'의 회원 30여 명이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빈소를 찾았다. 피켓에는 "박근혜 퇴진! 그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외치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으며 각기 다른 그림과 문자로 새로운 사회를 향한 그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들로 인해 조용했던 빈소가 잠시나마 분주해졌다.

뉴스를 보고 조문하기 위해 홀로 빈소를 찾은 김동민(23) 씨는 "주말에 일하느라 집회에 참여를 한 번밖에 하지 못했다. 조문을 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녀와 함께 조문하러 온 장동규(48) 씨는 어떤 마음으로 조문하러 오게 된 것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그 상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이 너무 당연하게 조문을 가야하기 때문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지인들과 빈소를 찾은 방용미(35) 씨는 빈소에 들어설 때부터 눈시울과 코가 붉었다. 눈물을 멈추지 못하던 그는 꾸준히 집회에 참여했다고 했다. "집회를 주말마다 갔어요. 이번(7일) 집회에도 갔었는데 스님을 직접 뵌 것은 아니었지만 한 공간에 있었던 거잖아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을 돌리고 말을 이어간 그는 "인간적으로 안 올 수 없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라고 한 후 더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원 스님은 11차 촛불집회가 열렸던 지난 7일 분신했다.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나의 죽음이 어떤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우주의 원소로 돌아가니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말라"는 말과 함께 "경찰은 내란사범 박근혜를 체포하라. 경찰의 공권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9일 숨을 거두었다.


태그:#정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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