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 중 한 장면

<나, 다니엘 블레이크> 중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개인이 스스로의 의지가 없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비슷한 속담으로는 '가난 구제는 지옥 늧이라'는 것이 있다. '늧'이란 '어떤 일이 일어날 조짐이나 징조'라는 의미로 결국가난 구제에 나서는 것이 지옥에 떨어지기를 자초하는 일이란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매우 부지런함에도 불구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경우는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 걸까?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우리 나이로 환갑에 접어든 남자가 겪는 일상을 다룬 영국영화다.주인공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다.

목수였지만, 오랫동안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간호하다 심장이 나빠져서 목수일을 할 수 없게된 독거노인 다니엘이 '헬스케어 프로페셔널'이라는 직함의 여성과 하는 면접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국가로부터 고용보험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그 심사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의사로부터 일을 하면 심장에 무리가 될 테니 나아질 때까지 쉬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건강전문가'라는 생소한 직함의 여성이 다니엘더러 사지가 멀쩡하니 무작정 보험료를 지급할 수 없다고 충고한다.

이 면접과 조연들의 대사 중 '민영화'와 '미국'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국가가 책임지고 시행해야 할 의료나 공공복지와 같은 이른바 공공재가 외주화되어 일반 사기업체에게 맡겨지는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열쇠말들이다. 민영화의 결과가 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기업체의 일차적 목표는 이윤 획득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개개인의 건강을 걱정해주느라 시간과 자원을 소비할 의사가 전혀 없는 이익집단이라는 말이다.

다니엘은 목수다. 성실하게 일했고 동료들과도 잘 어울렸으며 이웃과도 정을 나누며 건강하게 살았다. 자식은 없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했고 그런 아내를 오랜 시간 간호하다가 자신도 건강을 잃었다.아무 잘 못한 것이 없는데, 게으름을 피우며 공짜를 바란 적 없는데, 국가와 사회는 그를 잉여인간 취급한다. 그가 수십 년 간 일하면서 국가에 기여한 세금을 생각해서라도 이럴 수는 없다. 그의 심장 박동이 위험 수위를 오르락내리락 할 수밖에 없다.

가난은 치명적이다.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게을러서 가난해진 사람들에게까지 시혜를 베푸는 것이 온당치 않아서 노력하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복지 혜택을 시행하지않는 것이 복지사업의 민영화가 노리는 것이다.

"절차가 복잡해서 복지수당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니엘의 이웃, 차이나가 하는 말이 나의 짐작을 확신으로 만든다. 일반 기업체가 복지사업을 통해 물불 안 가리고 추구하는 이익은 차라리 게으른 서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은 국민들의 태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차이나는 탈세를 이용한 보따리 장사를 하고 있다.

영화에는 배경음악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니엘이 장식용 모빌을 만들기 위해 나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 때 사각사각 내는 조각도 소리나 터벅터벅 걸으면서 내는 발자국 소리, 케이티가 푸드뱅크에서 너무 배가 고파 입에 들어붓기 위해 캔 뚜껑을 따는 소리, 그녀의 딸 데이지가 밑창이 떨어진 신발때문에 반 아이들이 놀린다는 말을 하기 위해 엄마품에 안기며 내던 이불 서걱이는 소리, 그 동생이 자폐적으로 하염없이 바닥에 공을 튕기며 내는 소리가 관객의 가슴에 공명을 일으킨다.

배경음악이 아닌 조연으로 등장한음악이 있다. <항해>(sailingby)다. 아득한 옛날을 떠올리는 향수어린 멜로디다. 다니엘은 미소 가득한 이웃들과 고락을 함께 하던 날들을 그리워 했을 지 모르겠다. 그가 어린소녀 데이지에게 들려주던 그런 세상을 말이다.

'가난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속담은 이제 내 귀에는 민영화에 뛰어든 대기업들을 배불리기 위한 핑계로 들린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민영화와 선별적 복지의 폐해를 입증하는 영화다. 중산층의 삶이 몰락하고 서민의 삶이 피폐해지는 이유는 불경기만이 아니다. 아무래도 앞서 소개한 속담들은 가난 구제에 소극적이었던 기득권자들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가난 구제를 하는 것이 어째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일 수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켄로치 감독, 12월 8일 개봉, 영화사 진진
민영화 미국 기업체 항해 다니엘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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