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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0일을 사흘 앞둔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사흘 앞둔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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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는 '세월호 참사' 다섯 글자가 명확히 박혀 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1000일이 다 돼서야, 대한민국은 비로소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분기점은 지난 해 총선이었다.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으며,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중심에 놓고 보면, 지난 해 총선은 변호사 박주민이 국회의원 박주민이 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국회에 세월호 대변인이 입성했기 때문이다.

"총선 직전까지 정말 암담했다. 새누리당이 200석을 얻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사필귀정이란 게 진짜 있구나, 정의가 실현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많은 유가족 희망... 절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노력해야"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사흘 앞둔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박 의원은 피곤한 듯, 고개를 이쪽저쪽 돌리며 기자를 맞았다. 그는 "특히 지난 일주일 맥을 못 추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박 의원 뒤편에 놓인 간이침대가 눈에 띄었다. 베개 대신 쓰는 작은 생수병도 함께 놓여 있었다. 

전날(5일) 박 의원을 만나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휴대폰을 가득 메운 그의 일정표가 눈에 띄었다. 박 의원이 왜 이날 피곤함을 호소했는지, 그의 잠들어있는 사진이 왜 인터넷을 달궜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박 의원은 "지금이 더 힘을 쏟아야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세월호 가족) 분들이 '한줄기 빛, 터널의 끝이 보인다'라고 말씀하시며 희망을 품고 계신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다."

박 의원은 1000일 동안의 시간을 "정말 정신없이 보냈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지난 해 8월) 유가족들이 야당을 비판하며 '사생결단 단식'에 나섰을 때"라고 꼽았다.

"국회의원이 된 후, 가족 분들이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을 상대로 단식을 하지 않았나. 그때 너무 힘들었다. 가족 분들이 힘들어 쓰러질 것 같은데, 당장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었다."

아래는 세월호 참사 1000일 맞아 박 의원과 한 인터뷰 전문이다.

-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앞두고 있다. 그 동안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으로 직업도 바뀌었는데, 지난 3년은 정말 정신없는 시간이었을 것 같다.
"정말 정신없이 보냈다. 2년 가까이 (세월호) 가족들 곁에 있었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정치를 하게 됐다. 입당, 출마, 선거에 이어 당선 이후에도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주말이건 명절이건 쉰 날이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 처가가 성주이데 , 심지어 추석 때 처가에 가서도 집회에 참석했다. 성주가 처가인 걸 어떻게 아셨는지, 사드대책위에서 부탁을 해오셨더라. 저녁 먹다가 나와서 발언했던 기억이 난다."

- 처가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
"구경하러 오셨더라(웃음)."

"자는 모습? 예전이 더 비참... 새삼스럽다"

세월호참사 범국민철야행동 이틀째인 2015년 5월 2일 오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유가족들과 경찰이 밤샘 대치하는 가운데 세월호가족대책위 법률대리인인 박주민 변호사가 앉은 채로 잠들어 있다.
▲ 앉은 채 잠든 세월호가족 법률대리인 박주민 변호사 세월호참사 범국민철야행동 이틀째인 2015년 5월 2일 오전 서울 안국동네거리에서 유가족들과 경찰이 밤샘 대치하는 가운데 세월호가족대책위 법률대리인인 박주민 변호사가 앉은 채로 잠들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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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0일 동안, 박 의원을 떠올리면 개인적으로 두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경찰들에 둘러싸여 길바닥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제 기억엔 정부의 세월호 참사 특별법 시행령(2015년 5월 국무회의 의결, 사실상 특조위를 무력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에 반대하며, 가족 분들과 농성할 때였던 것 같다. 광화문 앞에서 이틀 정도 밤을 샜고, 토요일이 돼 다른 대오와 행진하다가 경찰에게 막힌 상황이다. 경찰이 가족 분들을 연행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맨 앞쪽에 앉아 있었는데, 3시간 가깝게 앉아 있다 보니 깜빡 잠들었나 보다."

- 최근 언론을 통해 자고 있는 모습이 많이 나와서….
"2014년 국회 본청 처마 밑에서 4개월 정도 노숙했다. 이후 광화문, 청운동사무소 등에서 더 비참하게 노숙했다. 시멘트, 아스팔트에서 비 오면 비닐을 덮고 잤다. 그땐 화제가 안 됐는데…. 요새 자는 모습은 다 실내이지 않나(웃음). 새삼스럽다."

- 최근 그런 모습 때문에 주변에서 건강은 좀 괜찮은지 대신 물어봐달라고 하더라.
"건강은 괜찮다고 자부했는데, 지난해 12월 31일 집회 이후부터 오늘(6일)까지 굉장히 피곤하다. 일주일 정도 맥을 못 췄다. 예전에는 일정을 마친 후 집에서 책, 자료를 조금이라도 보고 잤는데 지금은 바로 잠든다. 피로가 쌓였나보다. 입당, 공천 과정에서 힘들었고, (늦게 공천이 확정되다 보니) 선거운동 기간이 많지 않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선 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 고 김관홍 잠수사의 영결식에서의 모습도 떠오른다. 당시 눈물을 많이 흘리셨는데, 세월호 참사는 참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한 것 같다.
"모든 분들의 사연이 다 가슴 아프다. 어느 하나만 꼽아 이야기하기 어렵다."

- 박 의원 개인적으로도 문득 고통이 밀려들어올 것 같다. 트라우마에 시달리진 않나.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가족들과 함께 한 변호사가 총 세 명이다. 나머지 두 분은 심리상담도 받고, 치료도 받았다고 하더라.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 상담이나 치료를 받진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국회의원이 된 후, 가족 분들이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을 상대로 단식을 하지 않았나(지난 해 8월,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통과와 관련해, 야당의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사생결단 단식'을 진행했다). 그때 너무 힘들었다. 가족 분들이 힘들어 쓰러질 것 같은데, 당장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었다."

- 인양 날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1000일이 다 되도록 인양도 안 되고 있는 현실이 참 씁쓸하다.
"하아…. 박근혜 정부가 참사에 대응하는 태도는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어떻게든 이 사건의 영향력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인양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고, 떠밀려서 결정했다. 그러니 검증되지 않은 업체와 가장 값싼 방법을 택했다. 그러다보니 이후 공법을 변경하고, 추기비용이 발생했으며, 시간도 소비했다. 변경한 공법도, 사실 가족들이 처음 제시한 방법 중 하나였다.

정부의 태도를 보며 답답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국민을 보호하고 생명과 안전을 챙기며, 제도를 개선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해 처먹는 데 신경을 쏟았다. 그것에 방해되는 세력은 철저히 배제됐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은폐하는 데 능동적이고 효율적으로 행동했다. 가족들을 막고, 언론을 탄압하고, 특조위를 질식시키고, 유언비어를 유포했다. 그런 것들은 정말 능동적으로 잘했으면서, 구조와 인양은 못했다. 가족 분들의 아픔을 보듬지 못했다."

"인양, 비포(before)가 없다... 국회 감독 필요"

- 시기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은 인양 과정에서 중요한 증거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하고 있다. 상황이 좀 어떤가.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인양 후 논란이 커질 것이다. 그런 의심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가족들이 인양과정을 전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가족 분들은 인양 전에 자비를 들여 수중 선체 촬영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걸 해수부와 해경이 막았다. 2015년 낚시어선 돌고래호를 인양했을 때, 그 조그마한 배에도 훼손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때 (돌고래호 사망자의) 유족들은 그 흔적이 '인양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사고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알 수가 없다'며 항의했다. 그래서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가 필요하다. 세월호 가족들도 그래서 수중 촬영을 요청했던 거다. 어쨌든 지금은 비포가 없는 거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사흘 앞둔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사흘 앞둔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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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배가 올라온 뒤에도 많은 논란이 있을 것 같다.
"(인양 후) 어떤 흔적이 있어도 이게 인양 과정에서 생긴 건지, 침몰과정에서 생긴 건지 증명할 수 없다. 절차에 참여하지도 못하게 하고, 누가 봐도 상식적인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고…. 선체 일부를 자르려고 한 것도 가족들에게 상의하지 않고 진행했다. 동거차도에 가 있는 가족들이 멀리서나마 발견하고 항의하니 그때서야 선체 일부를 자른다고 알려왔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니 믿을 수 있겠나. (정부가) 바보거나, 바보가 아니면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과정이 매끄러워야 논란이 덜 발생하는 건데….
"인간이 대규모 참사의 진실을 입체적이고 철저하게 분석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요한 게 절차의 합리성이다. 합리적인, 타당한 절차를 거쳐야 그에 따른 결과를 믿을 수 있다."

- 가습기살균제 특별법과 함께, (제2의 특조위 출범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도 신속처리안건(330일 후 본회의 자동 상정)으로 지정됐다(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 하지만 330일은 너무 긴 시간이고, 그 사이에 세월호가 인양될 가능성도 있다. 대안이 필요할 것 같은데.
"법 통과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정당 간 협상이 필요한데, 친박이든 비박이든 세월호 문제와 관련해서는 굉장히 부정적이다. 비박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김무성·주호영·권성동·하태경 의원 등 모두 부정적이다. 그래서 협상이 잘 될 것 같진 않다. 때문에 (인양과 관련해) 국회 차원의 철저한 감독이 필요할 것 같다. 농해수위를 중심으로 업무보고를 자주 받고, 현장점검을 통해 (정부의 독주를) 통제해야 한다."

- 최근 '네티즌수사대 자로'의 <세월X> 영상이 이슈였다.
"제대로 보진 못했다. 사실 잠수함 충돌설은 참사 초기부터 제기됐던 문제여서, 그 내용을 잘 안다. AIS(선박자동식별시스템) 항적을 해경으로부터 받아낸 사람이 나다. 이후 항적 관련해 전문가들을 만나기도 했다. 현재 섣불리 (자로의) 영상이 맞다, 틀리다 이야기하긴 어렵다. 충돌설은 선체가 인양되면 바로 알 수 있다. 또 자로나 다른 분들이 갖고 있지 못한 자료들, 즉 생존자 상당수를 인터뷰한 내용을 저와 가족들은 갖고 있다. 그런 것들로 여러 가설들을 검증해야 할 것이다."

"유족, 시체장사·빨갱이 소리 들어가며 견딘 1000일"

- 세월호 참사와 대통령 탄핵까지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참 악연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 박 대통령은 자신이 굉장히 힘들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탄핵 법정에서도 대리인이 나와 박 대통령이 인격살인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세월호 가족들은 어땠나. '시체장사 한다', '자식 팔아 돈 번다', '종북', '빨갱이' 소리 들어가며 1000일을 견뎠다. 그런 유언비어가 돌 때마다 정부와 여당에 브리핑이라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들은 차갑게 외면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 자신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참 가증스럽다고 생각했다. 2014년 11월, 가족들이 국회 본청 처마 밑에서 농성하고 있을 때,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에 들어가던 박 대통령은 그들의 외침을 외면했다. (2014년 5월 가족들이 청와대를 찾았을 때)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고 이야기했던 대통령이었지만, 그 이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리고 얼마 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작년인지, 재작년인지도 잘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

- 인터뷰하기 전, 유가족 한 분과 통화했다. 박 의원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라.
"사실 단순히 '돕는다' 정도의 생각이었으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접했을 때, 우리나라의 모순이 응축된 참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가족 분들이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가족들에게 큰 부채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런 생각만으로 이렇게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 가족 분들도 보면, 세월호 문제에만 집중하지 않고, 어디든 앞장서서  계신다(웃음)."

- 가족 분들이 예전보다는 밝아지신 것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많은 분들이 '한줄기 빛, 터널의 끝이 보인다'라고 말씀하시며 희망을 품고 계신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다."

- 여소야대를 만든 지난 총선이 주요한 분기점이었다. 세월호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박 의원의 당선도 정말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 같다.
"총선 직전까지 정말 암담했다. 새누리당이 200석을 얻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사필귀정이란 게 진짜 있구나, 정의가 실현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조금 늦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인터뷰 ②]로 이어집니다.


태그:#세월호, #참사, #1000일, #박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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