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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소가 누운 형상’이라서 생긴 이름이 우도다. 세빈백사, 야항어범, 우도봉, 동안경굴 등 우도 8경을 뽐낸다.
▲ 우도 ‘소가 누운 형상’이라서 생긴 이름이 우도다. 세빈백사, 야항어범, 우도봉, 동안경굴 등 우도 8경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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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매년 또는 2년에 한 번씩 방문했지만, 우도는 6년 만에 다시 찾는다. 올레길이 광풍처럼 인기를 끌 때, 3박 4일 동안 올레길 모두를 빠른 속도로 대충이나마 걸어보기 위해 왔을 때 우도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동안 우도는 얼마나 변해있을까? 흉악한 사건으로 인해 올레길은 이전보다는 시들해졌지만, 제주도는 여전히 북적댄다. 내국인 자리를 중국인 관광객 유커들이 메워주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우도와 성산 일출봉만을 탐방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선택과 집중인 셈이다. 하지만 사진은 사계를 모두 보여주려고 한다.

삼다도 제주도에 여전히 많은 것은 용암 돌이다. 집의 담벼락뿐 아니라 논과 밭의 경계도 이 돌을 사용한다. 초록, 푸른색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유채꽃의 노란 빛, 용암바위의 거무스럼한 색채의 조화로 인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분출하는 공간이 바로 제주도이다. 거지, 담, 도둑 세 가지가 없다는 곳이 제주도 아닌가?
▲ 삼다도 제주도에 여전히 많은 것은 용암 돌이다. 집의 담벼락뿐 아니라 논과 밭의 경계도 이 돌을 사용한다. 초록, 푸른색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유채꽃의 노란 빛, 용암바위의 거무스럼한 색채의 조화로 인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분출하는 공간이 바로 제주도이다. 거지, 담, 도둑 세 가지가 없다는 곳이 제주도 아닌가?
ⓒ 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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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항을 떠난 우도랜드호는 우도의 '천진항'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한 무더기의 관광객들을 쏟아내고 다시 떠났다. 섬 속의 섬, 아름다운 비경과 정갈한 맛의 활어가 풍부한 우도다.

우도는 천진리, 오봉리, 조일리, 서광리로 구성되어 있다. 맨 먼저 우도봉과 우도등대공원을 찾아가기로 작정했다. 아직 햇볕이 남아있을 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우도봉을 방문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도봉을 왕복하는 길은 절경이다. 탁 트인 전망은 제주도 어느 곳이라도 모두 비쳐줄 듯 광활하다. 멀리 검은 모래와 작은 용암 바위로 유명한 검멀레 해안을 비롯해서 후해석벽(後海石壁) 등 우도 8경의 모든 공간을 다 보여줄 듯 화려하고 정교한 풍광이 펼쳐진다.

우도봉과 우도등대공원 우도봉을 오르내리는 데에는 왕복 1시간이 걸린다. 중턱만 올라도 우도의 8경이 모두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다양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우도봉과 우도등대공원 우도봉을 오르내리는 데에는 왕복 1시간이 걸린다. 중턱만 올라도 우도의 8경이 모두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다양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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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봉에서 바라본 제주해역 바다 우도는 용암지대로 되어 있어 어느 곳이나 풍화작용에 의한 주상절리가 있다. 두 척의 유람선이 가르는 하얀 물살이 풍치를 더해준다.
▲ 우도봉에서 바라본 제주해역 바다 우도는 용암지대로 되어 있어 어느 곳이나 풍화작용에 의한 주상절리가 있다. 두 척의 유람선이 가르는 하얀 물살이 풍치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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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는 제주도 북제주군 우도면 소재지의 섬이다. 성산포에서 북동쪽으로 3.8km 해상에 떠있다. 면적은 5.9㎢이고 해안선 길이는 17㎞, 섬의 높이는 대부분 30m 이내로 구릉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섬 전체가 용암지대이고, 해식애가 발달되어 있다. 우도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어서 일직 공무원에게 여러 기본적인 데이터를 확인했다. 2016년 11월말 기준으로 인구는 948세대 1793명이 거주하고 있다. 1년에 관광객은 얼마나 찾아올까? 11월 20일 기준으로 209만 7000명의 관광객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우도를 찾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제주도 전체를 찾아오는 관광객 수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가 될까? 2014년 말 기준 제주도를 찾은 관광객 총수는 1227만 3000명이었고, 그중에 내국인은 894만 5000명, 외국인이 332만 8000명이었다. 2016년에도 비율은 크게 변화가 없는 듯 보인다. 약 1500만 명의 관광객 중 209만 명의 관광객들이 우도를 찾는 것으로 보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도를 찾았다.(참고로 2016년 11월 기준, 제주관광공사 입도통계자료로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1589만 8425명이었고, 제주도를 찾은 외국 관광객은 337만 6537명이었음.)

'서빈백사' ‘우도 8경’ 중의 하나로서  산호모래 해수욕장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희귀한 ‘홍조단괴 해빈’으로 밝혀져 2004년 천연기념물 제 438호로 지정되었다.
▲ '서빈백사' ‘우도 8경’ 중의 하나로서 산호모래 해수욕장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희귀한 ‘홍조단괴 해빈’으로 밝혀져 2004년 천연기념물 제 43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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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봉을 내려오니 4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초겨울이라 해가 일찍 지려고 어둑어둑하다. 급히 다음 행선지인 '서빈백사(西濱白沙)'를 찾아갔다. 이곳은 그동안 세계에서 세 곳만 있다는 산호해수욕장으로 알려졌었다.

우리나라 유일의 산호모래사장으로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고 깨끗한 모래사장이 에머랄드빛 바다와 조화를 이루어 가히 판타스틱한 풍경을 자아낸다. 하지만 10여 년 전에 산호사 해수욕장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희귀한 '홍조단괴 해빈'으로 밝혀져 2004년 천연기념물 제 438호로 새롭게 지정되었다.

차귀도 일몰 우리나라에서 7대 일몰 명소에 손꼽힐 정도로 제주 ‘차귀도의 일출과 일몰’은 유명하다. 새해 1월 1일 일출장면도 대장관이다. 새해 첫날은 안면도 꽃지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약 300여 명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 차귀도 일몰 우리나라에서 7대 일몰 명소에 손꼽힐 정도로 제주 ‘차귀도의 일출과 일몰’은 유명하다. 새해 1월 1일 일출장면도 대장관이다. 새해 첫날은 안면도 꽃지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약 300여 명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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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빈백사’에서의 일몰 해가 진다는 것은 하루의 끝맺음과 휴식을 의미한다. 삶에서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큰 의미를 지닌다. 쉰다는 것은 ‘호모 루덴스’라는 놀이인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자연도 움직임과 쉼의 연속이 동일패턴으로 진행된다.
▲ ‘서빈백사’에서의 일몰 해가 진다는 것은 하루의 끝맺음과 휴식을 의미한다. 삶에서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큰 의미를 지닌다. 쉰다는 것은 ‘호모 루덴스’라는 놀이인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자연도 움직임과 쉼의 연속이 동일패턴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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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아름다운 일몰은 역시 차귀도가 최고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장관인 곳은 서빈백사의 낙조다. 해가 진다는 것은 하루의 끝맺음을 의미한다. 삶에서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큰 의미를 지닌다. 하루 24시간의 마무리는 삶에서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간에 노동을 끝내고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와 내일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회상과 반성의 시간을 가져다준다.

쉰다는 것은 '호모 루덴스'라는 놀이인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자연도 움직임과 쉼의 연속이 동일패턴으로 진행된다. 생태위기를 가져온 근본 원인은 '인간중심주의' 때문이다. 그것을 탈피하려면 자연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차귀도의 낙조를 보면 인공은 보이지 않고 순수자연만이 눈에 들어오며 자연의 생명존중에 고개 숙이게 된다. 쉼은 그만큼 새로움의 출발점인 것이고 일몰은 그러한 순환원리를 가장 단순하게 보여주는 자연현상인 것이다.

비양도 ‘봉수’ 제주에서 봉수시설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군사적 통신수단으로 사용된 것은 조선조 세종 때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1895년 봉수제가 폐지될 때까지 우도에서도 망루라고 하여 5인1조로 근무를 하였다.
▲ 비양도 ‘봉수’ 제주에서 봉수시설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군사적 통신수단으로 사용된 것은 조선조 세종 때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1895년 봉수제가 폐지될 때까지 우도에서도 망루라고 하여 5인1조로 근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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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게 서있는 ‘비양도 등대’ 간조에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등대까지 갈 수가 있으나 마침 만조 때라 등대 가까이 갈수가 없었다.
▲ 외롭게 서있는 ‘비양도 등대’ 간조에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등대까지 갈 수가 있으나 마침 만조 때라 등대 가까이 갈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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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아오자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비양도로 들어갔다. 서울에 유명 횟집이름으로 많이 활용되는 브랜드명이다. 제주도에는 비양도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우도와 다리로 연결된 비양도이고, 다른 하나는 한림 건너편에 있는 비양도이다.

전자의 비양도에는 봉수대와 작은 등대가 명소이다. 봉수는 '봉(횃불)'과 '수(연기)'의 합성어다. 군사목적으로 봉수를 사용한 것은 고려시대부터라고 기록에 전하는데, 제주에서 봉수시설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군사적 통신수단으로 사용된 것은 조선조 세종 때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1895년 봉수제가 폐지될 때까지 우도에서도 망루라고 하여 5인1조로 근무를 하였다. 봉수를 내려오면 바로 비양도 등대가 관광객들에게 미소를 짓는다. 간조에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등대까지 갈 수가 있으나 마침 만조 때라 등대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경안동굴 제주도와 우도를 홍보하는 홍보물에 가장 많이 올라와있는 장면이다. 우도봉 영일동 앞 검은 모래가 펼쳐진 ‘검멀레’ 모래사장 끝자락 절벽아래 ‘콧구멍’ 이라고 하는 동굴에는 커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 경안동굴 제주도와 우도를 홍보하는 홍보물에 가장 많이 올라와있는 장면이다. 우도봉 영일동 앞 검은 모래가 펼쳐진 ‘검멀레’ 모래사장 끝자락 절벽아래 ‘콧구멍’ 이라고 하는 동굴에는 커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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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관아 연희각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조선목관아는 지금의 제주시 관덕정 주변에 분포되어 있었다. 1991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해 2002년 현재의 모습인 연희각, 우련당, 귤림당 등으로 복원했다. 연희각(延曦閣)은 제주목사가 집무하던 곳으로 상아(上衙)의 동헌, 목사의 정아(正衙) 등으로 불리었다. 제주목사가 근무했으니 ‘배비장전’의 무대배경이기도 하다.
▲ 제주목관아 연희각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조선목관아는 지금의 제주시 관덕정 주변에 분포되어 있었다. 1991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해 2002년 현재의 모습인 연희각, 우련당, 귤림당 등으로 복원했다. 연희각(延曦閣)은 제주목사가 집무하던 곳으로 상아(上衙)의 동헌, 목사의 정아(正衙) 등으로 불리었다. 제주목사가 근무했으니 ‘배비장전’의 무대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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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평포구 유채꽃 올레 2코스는 온평포구에서 통오름, 독자봉, 김영갑 갤러리, 신풍, 신천 바다목장 올레를 거쳐 표선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도는 노정이다. 제주도의 상징인 유채꽃이 담벼락을 이루는 용암바위로 둘러싸인 가운데 환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 온평포구 유채꽃 올레 2코스는 온평포구에서 통오름, 독자봉, 김영갑 갤러리, 신풍, 신천 바다목장 올레를 거쳐 표선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도는 노정이다. 제주도의 상징인 유채꽃이 담벼락을 이루는 용암바위로 둘러싸인 가운데 환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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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내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세 가지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신화(설문대할망, 삼성신인, 영등할멈 등등)가 제주도민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은 '설문대할망' 설화일 것이다. 거인설화로 설문대할망이 치마에 흙을 담아 옮기다가 실수로 흘린 곳이 바로 한라산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설문대할망이 발을 옮기다가 치마에서 흙을 조금 흘린 곳이 우도일까?

둘째,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주상절리 등의 아름다운 자연물과 풍광을 들 수 있다. 우도8경에 포함되는 '동안경굴'도 그중 하나이다. 셋째는 역사와 판소리계 소설을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추사 김정희 유배지, 4.3항쟁 역사유적지, 그리고 미녀설화를 배경으로 하는 '배비장타령' 등의 고향이 바로 제주도라는 공간이다.

성산일출봉 중간 전망대에서 조망 계단을 오르면서 만났던 기암괴석들이 발아래 놓인 상태로 성산읍 일대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왔다.
▲ 성산일출봉 중간 전망대에서 조망 계단을 오르면서 만났던 기암괴석들이 발아래 놓인 상태로 성산읍 일대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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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천진항에서 배를 타고 성산항으로 귀환했다. 급히 차를 몰고 성산일출봉을 찾아갔다. 입구에 2007년 7월 2일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상징조형물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가파른 등산로와 수많은 계단이 등반하는 이들을 숨 가쁘게 만드는 과거 등반경험 때문에 각오를 다졌는데도 불구하고, 세찬 초겨울로 접어드는 찬바람이 사진기마저 냉동상태로 만들어버렸다. 손이 곱아 셔터를 누르기도 어렵게 만들어서 더욱 힘들게 느껴졌다. 계단을 따라 오르다보면 등경돌 등 독특한 기암괴석들이 관광객들의 호흡을 조절하게 해준다.

성산일출봉 정상 분화구  분화구의 직경은 600m이지만, 그 둘레는 1,704.86m에 이른다.
▲ 성산일출봉 정상 분화구 분화구의 직경은 600m이지만, 그 둘레는 1,704.86m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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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는 오름으로도 불리는 성산일출봉은 약 5000년 전 얕은 수심의 해저에서 수성화산 분출에 의해 형성된 전형적인 응회구이다. 이 응회구는 사발 모양의 분화구를 잘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안절벽을 따라 다양한 내부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성산일출봉의 면적은 1688㎢이고, 높이는 180m에 달한다. 분화구의 직경은 600m이지만, 그 둘레는 1704.86m에 이른다. 중간의 전망대에서 바라다보니 저 멀리 성산읍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도의 명물 '땅콩 아이스크림'. 우도의 특산물로는 톳, 활소라, 땅콩, 통마늘, 넓미역 등이 유명한데, 그중에서 땅콩을 넣어 만든 아이스크림이 관광객들을 강렬하게 유혹한다.

제주도의 미각여행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경우로, 다금바리 자연산 회나 은갈치 회를 전복 코스요리와 곁들여 맛보는 여행이다. 워낙 비싸므로 대개 갓돔이나 참돔, 돌돔, 광어회를 맛보는 것도 좋은 미각여행의 차선책으로 볼 수 있다.

둘째는 옥돔구이를 곁들여 '갈치조림'을 맛보는 식도락여행이 있다. 계절에 따라 전어회도 나온다. 이때 따라 나오는 전복, 가재, 새우 등의 풍성한 해물이 들어간 '해물탕' 국물 맛이 일품이다. 셋째는 쫄깃하고 기름진 제주 토종 '흑돼지 오겹살' 구이와 좁쌀 막걸리 한 잔, 그리고 제주산 감자전분으로 만든 구수한 별미 '꿩 감자국수'를 곁들인 제주 토속 한정식을 맛보는 것도 좋은 음식여행이 될 것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렌트카를 반납한 후 할인 받은 대한항공 마지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황급하게 제주공항으로 달려갔다. 

물회를 곁들인 갈치조림 요리 제주도의 미각여행은 세 가지로 압축되는데, 옥돔구이를 곁들여 ‘갈치조림’을 맛보는 식도락여행도 즐겁다. 계절에 따라 전어회도 나오고 간단한 해물탕도 등장한다.
▲ 물회를 곁들인 갈치조림 요리 제주도의 미각여행은 세 가지로 압축되는데, 옥돔구이를 곁들여 ‘갈치조림’을 맛보는 식도락여행도 즐겁다. 계절에 따라 전어회도 나오고 간단한 해물탕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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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의 명물 ‘땅콩 아이스크림’ 우도의 특산물로는 톳, 활소라, 땅콩, 통마늘, 넓미역 등이 유명한데, 그 중에서 땅콩을 넣어 만든 아이스크림이 관광객들을 강렬하게 유혹한다.
▲ 우도의 명물 ‘땅콩 아이스크림’ 우도의 특산물로는 톳, 활소라, 땅콩, 통마늘, 넓미역 등이 유명한데, 그 중에서 땅콩을 넣어 만든 아이스크림이 관광객들을 강렬하게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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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시간이 멈추어 있는 곳이 우도와 차귀도 등 자연이다. 쉰다는 것은 ‘호모 루덴스’라는 놀이인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자연도 움직임과 쉼의 연속이 동일패턴으로 진행된다. 생태위기를 가져온 근본 원인은 ‘인간중심주의’ 때문이다. 그것을 탈피하려면 자연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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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와 외국 여행 등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최근 3년 사이에만 해도 방학을 이용하여 서유럽,북아프리카,티베트,중남미와 지중해의 40개국을 돌아다녔다. 한국문화탐방기로 <한국문학의 발자취를 찾아서>(2002)와 세계문화탐방기로 <박태상의 동유럽문화예술산책기>(2002)를 펴냈으며 <내일신문>에 2년동안 매달 한 차례 칼럼을 기고했다. 각 나라의 독특한 문화탐방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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