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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의 축복이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입니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야 할 크리스마스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춥고 어둡기만 합니다. 헌정사상 유례 없는 국정농단 사태가 대한민국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지만, 주범인 박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가 "부당하다"며 적반하장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분노한 민중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에도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고 캐롤 대신 하야가를 부르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습니다.

모두가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고 있던 24일 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대륙서점'에서도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른바 '나홀로 책방에'. 행사의 원래 취지는 외로운 싱글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책방을 찾은 20명 남짓의 참석자들은 파스타와 맥주 한 잔을 나누며 다함께 영화를 감상하는 등 왁자지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201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가 열린 대륙서점 전경
 201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가 열린 대륙서점 전경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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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광장으로 변한 동네 책방

영화 상영이 끝나자 책방지기 오승희씨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녀는 들뜬 분위기를 정돈하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오늘 광화문광장에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정상 광장에 나가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 형식으로 촛불을 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좁은 공간이지만 이곳 역시 하나의 광장이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 마음속에 촛불 하나씩 켜놓고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사전에 공지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이뤄진 '촛불 제안'이었지만 참석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윽고 테이블별로 모여 앉아 현 시국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사는 곳도 제각각이었지만 민주시민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어 시국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가 열린 대륙서점의 모습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가 열린 대륙서점의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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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 간의 서먹함을 없애고자 진행한 빙고게임에서도 어김없이 촛불이 주제로 등장했습니다. 질문지에는 '나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간 적이 있다', '나는 박근혜 탄핵을 간절히 원한다'는 등 현 시국을 반영한 질문이 등장했고, 참석자들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자기 의견을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예전엔 촛불집회란 걸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라 꼴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매주 광장에 나가 함께 촛불을 들고, 촛불 민심을 기사로 보도해왔습니다. 오늘 동네 책방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여러분과 함께 촛불을 얘기할 수 있어 광장에 나간 것만큼이나 뿌듯합니다."

빙고게임 질문 중 '나는 박근혜 탄핵을 간절히 원한다'라는 질문이 있어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빙고게임 질문 중 '나는 박근혜 탄핵을 간절히 원한다'라는 질문이 있어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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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는 함께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를 시청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이날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광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촛불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동안 촛불을 든 시민들의 의식이 어떻게 성숙해져 갔는지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시청 후, 행사 참가자들은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부터 2016년 박근혜 퇴진을 위해 모인 촛불에 이르기까지 위한 광장과 촛불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성찰하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록 광화문 광장에서 함께 촛불을 들지는 못했지만, 참가자들은 대륙서점이라는 작은 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울고, 박근혜 정권에 부역한 이들에게 분노를 보내며 촛불을 피워올렸습니다.

대륙서점에 모인 참석자들이 다함께 <그것이 알고싶다>를 시청하며 촛불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대륙서점에 모인 참석자들이 다함께 <그것이 알고싶다>를 시청하며 촛불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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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행사에 참석한 강경아씨는 "광장은 장소를 상징하는 표면적 의미에 불과할 뿐이다"라며 "일상과 밀접한 동네 책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주민들에게 촛불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것도 광장에 나가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었던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지역주민 이민정씨는 "솔직히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그저 새로운 인연을 만날 생각에 참석한 행사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촛불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다"며 "기회가 되면 광장에 나가 함께 촛불을 들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새삼 광장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드넓은 광장의 촛불에 비하면 오늘 우리가 피웠던 촛불은 개미만큼 작은 촛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소외된 이웃들의 아픔에 함께 울고, 불의한 이들의 행태에 분노하며 함께 목소리를 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크리스마스가 슬픈 이들을 위하여

밤 12시를 넘어가며 25일 크리스마스가 밝았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를 주고 받으며 나오려는 순간, 책방 한 귀퉁이에 마련된 '세월호 서가'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대로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서가의 책들을 모두 데려왔습니다. 책 표지에 박힌 노란 리본을 보며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대륙서점에 자리잡고 있는 '세월호 서가'
 대륙서점에 자리잡고 있는 '세월호 서가'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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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많은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의 깜짝 선물을 기다리며 설레는 밤을 보낼 것입니다. 아침이면 선물을 받고 즐거워할 아이들의 표정과 그런 아이들을 보며 뿌듯해할 부모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가족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세월호 유가족들에겐 오늘 하루가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러운 날일지도 모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절규에도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며 나 몰라라하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행태는 유가족의 가슴을 멍들게 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반드시 우리 곁에 존재한다고 믿으면서, 크리스마스를 맞아 소원 하나를 빌어볼까 합니다.

"부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박근혜 정권에 대한 처벌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주세요. 여전히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아 눈을 감지 못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눈물로 밤을 지새는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대륙서점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지난 10월 9일,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된 '30년째 같은 간판 쓰는 주인장의 속내' 기사를 참조해주세요.)


태그:#대륙서점, #동네책방, #서점, #상도동,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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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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