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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열차와 분당열차, 그리고 개헌열차. 세밑을 달리는 세 개의 열차가 2017년 대선 정국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수백만의 촛불시민혁명 끝에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었고, 대통령의 파면을 겨냥한 국정조사와 특검,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내년 대선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야당의 정당지지율이 40%를 넘나들고, 정부 여당의 지지율은 그 반토막도 안 되는 수준으로 주저앉았지만, 여전히 정권교체를 가늠하는 일은 위험하거나 섣부르거나 둘 중 하나다. 정상에 오른쪽은 내려가는 일만 남았고, 바닥을 친 쪽은 올라가는 일만 남은 까닭이다.

고지를 정복한 자는 스스로 지킬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 한 고지를 탈환하려는 자에게 성을 빼앗기게 마련이다. 정치에서 고지를 정복하는 일은 아군의 실력 덕택이라기보다, 종종 적의 실책이나 내부의 부정 부패가 곪아 터져 어부지리로 얻는 경우도 많은 법이다.

만약 '손석희의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 PC를 입수해 보도하지 못했다면? 광장에 수백만의 시민이 몰려 나와 촛불을 들지 않았다면? 이런 가정을 해보면, 지금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누구의 힘으로 얻어낸 것인지 주체가 명확해진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그토록 입을 틀어 막고자 했던 '언론의 힘'이 이뤄낸 것이었고, 촛불시민의 함성 덕택이었음이 분명해진다. 이런 사실을 잊고서 정치권의 향방이나 대선을 예측한다는 것은 아전인수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촛불혁명에 숟가락 하나 올려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대선주자들이 민심을 예단해 앞서 나가다간 '한방에 훅'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의 대선 전망을 아래 글에서 다섯가지 키워드로 풀어보고자 한다.

제1 키워드 : '탄핵', 열차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박근혜 탄핵안 가결 선포하는 정세균 의장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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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열차가 야권에 더 유리한 목적지로 향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차고 넘치는 탄핵사유를 뒤집고 헌재가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할 만한 '법리'를 찾기도 어려울뿐 더러, 탄핵 기각은 '정치적 자살'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대통령 지지도 4~10%, 해체 위기의 새누리당 등 사실상 정치적 식물상태에 빠진 '박근혜와 그의 몸종들'을 굳이 헌재가 위험을 무릅쓰고 정치적으로 회생시켜 줘야 할 이유가 없고, 실익이나 도덕적 정당성은 더더욱 없다.

더구나 국회의 탄핵의결 직전, 이미 대통령이 '4월말 하야'를 받아들이겠다며 사실상 정치적 책임을 인정한 마당에 헌재가 굳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대통령의 직무복귀'를 결정할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올 확률'만큼이나 낮다. 결론이 뻔한 심판을 시간을 질질 끌 이유도, 명분도 없기에 신속한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박한철 헌재소장의 퇴임일인 1월 말이나 늦어도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이전에 헌재의 탄핵인용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 탄핵열차가 향하는 목적지가 야권이 애초 '발권'한 목적지가 될 것인지는 좀 더 세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이 탄핵열차의 '순항'이 새누리당 비박계가 몸을 실은 결과로 얻은 '티켓'인데다 최순실 국정조사나 특검에 임하는 비박계의 전투태세는 결코 야권에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을 향해 "촛불에 타 죽고 싶으냐"고 한 비박계 하태경 의원의 발언은 탄핵정국에서 최대한 민심을 잡으려는 비박계의 술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탄핵에 관해서는 야당과 비박계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 어려울 만큼,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탄핵동참을 넘어 박근혜 정부와 선긋기를 통해, 박근혜 정부 탄생과 최순실 국정농단의 책임론으로부터 재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제2 키워드 : '보수신당'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29명이 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정한 보수가치를 실현하겠다"며 집단탈당 및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을 공식 선언하고 있다. 창당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정병국·주호영 의원과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혁보수신당이 오늘 새로운 길을 향해 출발한다"고 밝혔다.
▲ 비박계 의원 29명 집단탈당...'개혁보수신당' 창당 선언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29명이 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정한 보수가치를 실현하겠다"며 집단탈당 및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을 공식 선언하고 있다. 창당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정병국·주호영 의원과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혁보수신당이 오늘 새로운 길을 향해 출발한다"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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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열차에서 분당열차로 발 빠르게 갈아타면서 비박계는 옛 새누리당 보수세력의 결집까지 넘보고 있다. 12월 22일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아직 결성되지도 않은 비박계 '보수신당'(18.7%)은 친박계 새누리당(13.2%)보다 5% 이상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무당파층이 18%에 이르는 데다, 친박 새누리당에서 지지층이 더 빠져나갈 것으로 보여, '보수신당'은 지지세를 더 넓혀 나갈 가능성이 높다. 거의 모든 새누리당 대선주자들이 모여들어 있는 데다, 신당이 내건 기치를 볼 때 '안보만 보수'를 표방한 걸 제외하면, 경제, 교육, 복지는 야당과 차별화하기도 어렵다.

보수신당을 이끄는 한 축인 유승민 의원은 신당이 "개혁에 방점"을 둘 것이라면서,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서도 "야당과 합리적 협력을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보수신당이 사드배치에 '찬성'하고 개성공단 재가동에 '반대하거나 신중한' 입장임을 고려할 때 보수적 안보색채는 뚜렷하다. 대북관계를 개선하거나 한중관계를 배려하기보다 한미동맹 강화에 더 무게 중심이 가 있다는 점에서, 야권과의 협력관계는 '국내정치' 문제로 제한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말하자면 신당이 '보수결집'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보수신당의 행선지를 눈여겨보게 하는 또 하나의 '키맨'은 김무성 전 대표다. 대선불출마를 선언하고 보수정권재창출의 '킹메이커'를 자임한 김 전 대표는 개헌을 고리로 한 정계개편까지 염두에 두며, 세력을 끌어모으고 있다. 반기문을 포함한 대선후보를 끌어들여 대선경선을 흥행시키는 것이 김무성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야권의 정권교체에 가장 강력한 걸림돌이 김무성이다. '개혁보수신당'이 새누리당 지지세를 상당한 수준으로 회복하고 반기문 영입에 성공해 대선 경선에 흥행한다면, 정권교체는 빨간 불이 켜질 수도 있다.

반 총장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유승민 의원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신당의 문은 열려 있지만 치열하게 토론하고 경쟁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반 총장과의 일전을 불사할 뜻을 내비쳤다. 이렇다 할 대선주자 한 명 못 내고 있었던 새누리당에서 비박계가 신당 창당을 결행하고 반 총장의 신당 합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여야의 '대선경선 흥행' 여부가 대선판도를 좌우할 변수로 부상할 조짐이다.

개헌이나 정계개편, 후보단일화나 연대 없이, 현행 헌법하에서 이 상태로 대선을 치를 경우, 다자구도의 치열한 3파전 혹은 4파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직선제 개헌을 한 후 치른 4자 대결(13대 대선)에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는 36.6%를 얻어, 통일민주당의 김영삼(28%), 평민당의 김대중(27.1%), 공화당의 김종필(8.1%)을 누르고 당선됐다. 청와대와 친박계의 '막장 공천' 끝에 야권이 '압승'한 올해 4.13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은 정당득표 33.5%를 얻어 더불어민주당(25.5%), 국민의당(26.7%), 정의당(7%)을 눌렀고, 선거 전 탈당했던 이들이 돌아오면서 결과적으로 1당을 차지했다. 4자구도에서 보수층의 지지기반은 아무리 못해도 33~37%를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정당구도를 87년 대선 당시와 비교할 때, 개혁보수신당(민정당), 더불어민주당(통일민주당), 국민의당(평민당), 친박새누리당(공화당)의 4자구도에서 펼쳐질 대선은 어떨까?

망해가는 새누리당에 '조문'간다고 하면서 비대위원장을 맡은 인명진 내정자가 얼마나 '친박당'을 탈색시키고 비박계의 신당열차행 '탑승'을 저지할 수 있겠느냐가 변수로 남긴 했다. 하지만 신당이 개혁보수 '세일즈'에 성공하고, 반기문의 영입으로 세력을 넓힐 경우, 야권이 분열된 상태로는, 87년 대선패배의 악몽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국면에서 문재인 전대표가 말하듯이 "정권교체가 확실하다"고 장담하는 건 섣부르거나 위험한 아전인수식 해석에 불과한 것이다.

제3 키워드 : '반기문', 보수신당? 국민의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기자회견 하고 있다.

반 총장은 대권 도전 여부를 묻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변하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 불살라서라도 노력할 용의가 있다"는 등의 말을 되풀이해 사실상 대권 출사표를 던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기자회견 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기자회견 하고 있다. 반 총장은 대권 도전 여부를 묻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변하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 불살라서라도 노력할 용의가 있다"는 등의 말을 되풀이해 사실상 대권 출사표를 던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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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의 풍향계를 가늠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변수는 '반기문 바람'이다. "이 한 몸 불사르겠다"며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고, 비박계 보수신당과 국민의당이 서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형국이라 그의 움직임에 따라 대선판도가 출렁일 수밖에 없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증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도 그에겐 유리하게 작용한다. 탄핵 이후 "우리 국민이 배신당했다"면서 그간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새누리당과의 관계를 지우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 총장은 국민의당보다 '개혁보수신당' 쪽으로 '사주단자'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 38석에 묶여 있는 국민의당보다 개혁보수신당으로 옮길 경우 판이 더 커질 수 있고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신당행을 결행할 경우 '친박당'에서 정진석 전 원내대표 등 추가 탈당자가 대거 옮겨 올 가능성이 높지만, 국민의당행은 리스크가 커서 추가 탈당을 유도하기 쉽지 않다.

충청권에 일정한 지분이 있는 새누리당이 더불어민주당과의 치열한 결전에 유리하고, 관료로서의 보수적 성향을 고려할 때 호남기반의 국민의당은 반 총장과 기질적으로 맞지 않다는 점도 보수신당행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되는 요소다. 반기문을 고리로 국민의당과 보수신당이 연대나 연합을 할 경우, 판이 더 커질 수도 있다. 반기문이 정계개편의 '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의 검증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반기문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미지수다. 시사저널이 최근 보도한 '박연차 23만 달러 수수설'은 시작에 불과하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과 '남은 문제'도 있다. 이런 저런 '설'들이 반기문의 발목을 잡을 경우, 조기에 좌초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반기문 없는 보수신당열차가 '경적'를 멈출 것 같지는 않다.

제4키워드 : '개헌', 강력한 대선 이슈가 될 것인가  

최근 여야 3당이 국회에 개헌특위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2017년 새해부터 정치권이 개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여야 3당이 국회에 개헌특위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2017년 새해부터 정치권이 개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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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1월부터 '개헌특위'를 출범시킨다. '개헌'이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헌에 부정적인 문재인 전 대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선주자들은 개헌에 비교적 적극적이다. 문 전 대표도 대선공약으로 개헌을 제시하고 정권출범과 동시에 추진하면 된다고 하지만, "헌법이 무슨 죄냐. 사람이 문제지"라고 한 속내를 볼 때, 문 전 대표가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한 '4년중임 대통령제 개헌'을 선호해왔던 문 전 대표가 내각제나 분권형대통령제 개헌을 주장하는 다른 대선주자들과 개헌방향을 놓고 합의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또 개헌을 할 경우, 대통령 임기를 사실상 3년 반으로 줄여야 하는 점도,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었을 경우의 개헌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문재인의 이런 '개헌관'은 새해 개헌 정국에서 다른 대선주자들의 '협공'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작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수사와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개헌논의가 시작되면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쇄신'요구가 빗발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게이트'를 거치며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력의 폐해를 생생하게 목격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선 국민 한사람의 수준보다 못한 대통령이 나라를 주무르고 국민을 핍박하고 탄압해온 그동안의 행태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국민보다 못한 대통령의 실체를 목도하면서, 시민은 이제 진정한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민이 직접 주권을 행사해야겠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행사하는 '대리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촛불혁명을 이뤄낸 국민은 이제 이 나라가 '대통령중심제'가 아니라 '국민중심제'라며 당당히 거리로 나선다. 대통령 '중심제'가 더 이상 시민의식에 맞지 않는 권력구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에 대한 보다 큰 저항은 의회 내부 혹은 제도정치권으로부터 터져 나온다. 이런 저항은 '3김시대' 이후 압도적인 정치적 영향력이나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가 없는 정치판에서 특정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다른 정당 혹은 인물이 복종하거나 권위를 인정하는 문화가 소멸하고 있는 데서 연유한다. 대통령이 '될' 사람, 혹은 '된' 사람보다 능력이나 자질 면에서 더 월등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부지기수인 상황이다. '제왕적인 권력'을 소유한 대통령은 특정 정파의 대통령일 뿐, 패배한 정당과 그 지지자들에게는 더 이상의 대통령으로서 그 권위와 지위를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권력의 크기는 가히 '제왕적'이어서, 의회 다수당이 반대하는 인물에 대한 임명권을 최대한 행사하고, 공권력을 동원한 반대파들에 대한 '합법적 폭력'을 자행하는 걸 서슴지 않는다. 정치적 갈등이 확대재생산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격상시키기 보다, 특정 정파와 그 지지자들 '만'의 대통령으로 위상을 스스로 '추락'시킨 대통령 자신의 책임도 크다. 훌륭한 자질과 인품을 가진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하는 '선거제도'의 문제도 한몫한다.

대통령중심제가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점도 '대통령제'에 회의적이게 하는 요소다. 현재 정당구도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과반수 이하의 소수당을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정당과 국회의 도움이 없이는 '식물 대통령'이 될 공산이 크다.

다수파 야당과 소수당인 여당이 타협에 실패할 경우, 행정부와 입법부는 끊임없이 갈등을 겪게 돼 있다. DJP 연합이 깨진 김대중 정부,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겨우 넘었던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노무현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올해 4.13 총선 이후 소수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 박근혜 정부도 다수파 야당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대통령 권력'만을 앞세워 정부와 의회가 대립각을 세웠던 것도 대통령제의 폐해로 지목된다. 바로 이 괴리가 대통령제도의 존폐를 둘러싼 의견의 차이를 불러오는 것이다.

다수당 기반의 대통령은 '제왕적'이지만, 소수당 기반의 대통령은 '식물적'이라는 현실을 간과한 채, 소수당 소속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제왕적'이었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대통령제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이다. 뒤집어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성공적이었느냐는 질문을 해 볼 때,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공적이지도 못했다'는 지적은 대통령제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대목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정국에서 제기됐던, 의회 다수당이 총리를 추천하고 내각을 운영하는 책임총리제(분권형대통령제)나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직선으로 선출하는 대통령에겐 상징적인 권력만 부여하고 실질적인 내각운영은 의회에 맡기자는 것이 개헌의 핵심 내용이다.

물론 이런 개헌은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으며 개헌이 이뤄질 경우 2020년 총선이 '선거제도 개혁'의 타깃이 될 것이다. 대선주자들 사이에 개헌 시점을 놓고 대선전이냐 후냐 하는 차이점이 있지만, 개헌은 이미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것이 대선 후보를 '선택'하는 결정적인 변수까지 될지의 여부는 촛불민심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에 달려 있다.

제5 키워드 : '촛불', 민심에 응답해야

지난 24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즉각퇴진 9차 범국민행동’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과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을 모아두고 있다.
▲ 시민들 소망 담은 '촛불' 지난 24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즉각퇴진 9차 범국민행동’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과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을 모아두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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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탄핵 결정이 끝나 대선이 시작되면, 촛불민심은 또 한 번 분출할 것이다. 대통령 한 사람 바꾸는 것을 넘어서 이 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개헌이 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국민의 실질적 삶을 개선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개헌이 필요 없다면, 왜 이 나라의 대통령은 하나같이 임기 말년에 실패를 거듭해 왔는가. 왜 지금까지 이 나라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외면하거나 실패해 왔는가. 촛불을 든 시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묻고 또 물을 것이다.

광장에서 만나는 10대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촛불을 들고 선 시민들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촛불은 자질 부족의 대통령과 그 측근이 나라를 주무르고 국민을 핍박한 데 대한 분노이면서, 국민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는 데 대한 절망감이 폭발한 결과다.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들의 현실에 귀 기울이는 정치는 고사하고, 아예 딴 세상에서 그들만의 이권놀음에 열중하고 있었던 '몰정치'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촛불은 단지 한 사람의 대통령을 바꾸고, 정권을 바꾸는 선에서 끝나지 않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현실정치는 정권교체조차 녹록지 않아 보인다. 촛불민심을 배반하는 정치가 펼쳐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보수세력은 나라를 이 지경까지 '바닥'으로 처박았음에도 책임질 생각은커녕, 신당으로 탈을 바꿔 쓰고 '정권재창출'을 외친다. 야권의 정치력 부족으로 또다시 '국민주권'을 강탈당할지도 모른다.

4.19 혁명과 87년 항쟁에서 좌절되었던 '시민 민주주의'가 2017년 대선을 기점으로 꽃피게 하기 위해선 촛불민심이 피워낸 시대정신을 읽는 혜안, 보수세력을 능가하는 '정치적 실력'을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 만약 87년 처럼 분열이 실패를 만들고, 광장의 촛불이 배반당한다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만 해도 두렵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갈상돈씨는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입니다.



태그:#탄핵열차, #신당열차, #개헌열차, #촛불, #정권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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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 연구로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요신문 기자, 고려대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교수,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갈상돈 박사의 뉴스브리핑'을 담당하기도 했다. 현재 사단법인 지방혁신연구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시사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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