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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생명울배움터는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생명의 교육을 일구기 위한 동력을 얻기 위해 '나' 자신부터 교육하고자 '공적 글쓰기'를 주제로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었습니다. 올해는 '한국사'를 공부합니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이 땅이 나아갈 길에 대해 수렴과 응집의 점을 찍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떤 걸음을 걸어왔는지, 지난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가늠하려 합니다.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 '역사 - 과거 현재 미래'는 9월 24일부터 2017년 1월 21일까지 총 19회로 진행합니다. - 기자 말

2016년 12월 9일,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당일 오후, 국회 정문 앞 집회 현장에 있었다. 집회장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으로 표결에 참여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국회의장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하는 순간, 집회장의 시민들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승리를 축하했다. 진정 그곳은 기쁨의 눈물과 환호성이 뒤섞인 축제의 장이었다. 반면 스크린 속의 의원들은 차분했다. 그것은 덤덤하게 국민의 명령을 수행하는 대리인으로서의 모습이었다. 정치 지도자와 국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탄핵안이 가결된 날, 국회의사당 정문 앞 역사적 현장
 탄핵안이 가결된 날, 국회의사당 정문 앞 역사적 현장
ⓒ 이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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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에서의 기쁨을 뒤로 하고, 2016교육문화연구학교 '역사-과거현재미래'에 참여하고자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이 시국에 이런 공부를 하다니. 이보다 더 절묘할 수 있을까. 감격에 겨워하던 순간, 지하철 안의 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 요기 베라의 명언을 이용해 한 어학원이 연간 회원권을 광고하는 문구였다. 그러나 적어도 이 순간 만큼은, 우리를 향한 하늘의 음성으로 들렸다. 역시나. 많은 이들이 각종 기사와 SNS 등을 통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기억하자고 외치고 있다.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대표는 이날 2016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쁨의 소회를 나누었다. 사실 최 대표는 232만 명의 시민이 쏟아져 나온 12월 3일 촛불 집회 이후에는 침묵을 지키고 싶었다. 232만, 헌정 사상 최대 집회 참여 인원의 무게를 약화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꿨다. 아직 싸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삶의 전투력과 의지를 계속 고양시켜 나갈 것인가.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최 대표는 민(民)이 성숙하게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이 싸움을 끝까지 즐기자고 했다.

그 마음을 담아 참가자들은 함께 '내 나라 내 겨레'를 목청껏 불렀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나
피맺힌 투쟁의 걸음 속에
고귀한 순결함을 얻은 우리 위에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앞길에서 훤히 비치나
찬란한 선조의 문화 속에
고요히 기다려온 우리 민족 앞에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
이 땅에 순결하게
얽힌 겨레여


 가사의 의미를 담아 노래를 부르는 참가자들
 가사의 의미를 담아 노래를 부르는 참가자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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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책임은 하나됨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날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고 토론하는 두 번째 시간이었다. '11장-다하지 못한 고려의 책임'부터 '18장-중축이 부러진 역사'까지 읽고, 고려 시대의 역사적인 뜻이 무엇인지를 토론했다. 이에 대해 함석헌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민족 단련에서 실패한 탓에 고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자포자기한 가운데 멸망의 길을 입 닫고 걸어가라는 것은 아니다. 실패하였기 때문에 도리어 자기를 고치고, 문화를 다시 일으키고, 민족을 새로 통일한 의무를 더 무겁게 지게 되었다...고려시대가 만일 그것을 하기만 하였더라면 한국 역사는 적어도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려 5백년은 책임 많은 한 시대였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182쪽)

우리 선조들이 일궜던 이 땅. 이곳에서 진정 모두가 하나됨을 회복하는 책임이 고려에게 주어졌다. 함석헌 선생이 보기에 후백제, 후고구려가 다시 일어난 이유는 민중의 가슴 속에 아직 망한 나라의 원한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민중을 돌보며 하나된 마음을 갖게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민중을 돌보기보다 기득권을 누리고 제 살 길을 찾았다. 그 결과, 민중은 외부세력에 의해 끊임없는 고난에 시달렸다. 반복되는 고난 끝에 결국 고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참가자들은 고려가 실패한 이유와 그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고려의 책임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함께 묻고 답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탄핵 정국의 의미를 곱씹으며 토론을 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탄핵 정국의 의미를 곱씹으며 토론을 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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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교육문화연구학교는 매 시간 다양한 방식으로 모둠에서 토론한 내용을 나누고 있다. 이날은 촛불집회의 자유발언과 같이, 마이크만을 잡고 각 모둠의 토론 내용을 발표하기로 했다.

기득권 세력의 사대주의가 원인이다

김덕영(36)씨의 모둠은 '고려의 역사적 책임은 민중의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모아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라는 함석헌 선생의 이야기에 모두가 공감했다고 한다. 이어 김씨는 고려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이유로 기득권의 사대주의를 꼽았다.

여진이 자주 침략을 하자, 숙종은 윤관을 시켜 만주를 점령하려 한다. 이에 윤관은 함경남북도 지방을 평정하여 아홉 성을 쌓고 두만강을 건너 지금의 간도 지방까지 여진을 쫓고 돌아왔다. 그러나 여진이 아홉 성을 돌려달라는 제안을 하자, 윤관이 싸우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조정의 온 신하는 그냥 돌려주기로 결정한다. 이에 더해 윤관을 벌해야 한다는 상소까지 올린다. 결국 숙종의 아들 예종은 이에 무릎꿇고 말았다. 아홉 성을 돌려주고 윤관은 벼슬을 깎았다.

함석헌 선생은 조정의 신하들과 이들에 대한 민중의 태도를 이렇게 정리한다.

"내세우는 것은 사대주의요, 속셈은 될수록 현상유지를 하여 자기네의 지위를 잃지 말자는 것이다...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섰으니 어느 정도 혁명이 된 셈이지만, 민중의 가슴 밑바닥을 본다면 아직 멀었다. 그 발효성의 침전물을 언제나 한번 깨끗이 걷어내버릴 수 있을까? 그것이 되기까지 민중은 늘 불평이다. 민중은 그것을 해줄 사람을 암암리에 기다리고 있다."

그는 고려의 지도자 그룹과 민중의 절묘한 교합이 없었음을 안타까워 했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앞둔 1년 동안 이순신 장군이 전라 좌수영에서 마음을 고양했듯이, 촛불 정국에서 계속 마음을 고양하며 절묘한 교합의 때를 기다리겠다는 다짐을 했다.

 김덕영씨는 이순신 장군처럼 마음을 끝까지 고양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김덕영씨는 이순신 장군처럼 마음을 끝까지 고양시키겠다고 다짐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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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후(30)씨는 모둠에서 나눈 내용을 네 단어로 정리했다. '통일, 기득권, 뜻, 망각'이 그것이다.

그는 역시 기득권 세력의 사심에 의해 진정한 통일이 실패했다고 했다. 원나라에 점령을 당하고 나서도, 임금이나 신하나 하나같이 나라를 되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하고, 아주 합병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자기를 지키는 것에 급급해서 역사적 소임을 망각한 것이다.

정씨는 나라 잃음의 설움을 우리 역사에서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민중 안에 있는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펼쳐낼 진정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길후씨는 역사의 교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길후씨는 역사의 교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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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다

원나라의 쇠약해짐을 목도하고 만주를 회복하는 이상을 실현해내기 위해 북벌을 주장한 최영. 중국에 사대를 천명하고 위화도 회군을 했던 이성계에게 패한 그가 죽던 날, 함석헌 선생은 "온 서울 안이 저자를 걷고 슬퍼하며, 듣는 사람은 길거리의 아이, 촌아낙네까지도 모두 눈물을 흘리며, 시체가 길가에 있으매 지나가는 사람도 말에서 내려 슬퍼하기를 마지않았다"고 기록한다.

구한글(18) 학생은 마이크를 잡고 울분을 토해냈다. 민중은 뜻을 찾고 옳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데, 지도자들의 실책으로 인해 고려가 실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욕망만을 주장하는 기득권 세력에 안타까워하며, 민중과 지도자의 통합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통탄했다.

"그러나 실패의 반복됨은 민중이 마음을 잘 모아가라는 뜻입니다. 고구려의 피맺힘을 듣습니다. 발해의 울부짖음을 듣습니다. 역사의 심판을 믿고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한글 학생은 완수하지 못한 고려의 책임을 지금 이 순간 이뤄내고 싶다는 다짐으로 힘차게 발언을 마쳤다.

 탄핵안 가결 기념으로 돌린 떡을 받아 온 참가자
 탄핵안 가결 기념으로 돌린 떡을 받아 온 참가자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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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책임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강한종(36)씨는 조장된 불안에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함석헌 선생은 북벌론에 동조하던 민중들의 마음을 이성계가 바꿀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압록강에 비치는 갈대를 가리켜 저것은 무서운 호랑이다라고 하였으므로 민중은 물러갔다." 민중이 불안을 느껴야 통제하기 쉽기 때문에 헛된 불안감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제 몫은 사람들이 허구를 깨닫고 본질을 바라볼 수 있게 이상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고려 실패의 일차적 책임은 지도자들에 있다. 현재 탄핵 정국의 책임도 지도자들에 있다. 그러나 탄핵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모든 책임을 지도자들에게 떠맡길 수는 없다. 민중 역시 이상을 현실로 살아낼 수 있는 결기가 필요하다.

"전 이제 고구려인으로 살겠습니다. 고구려인처럼 살지 않으면 옆에서 지적해 주세요."

강씨는 이상을 가슴에 품고 살고 싶은 열망을 이렇게 표현했다. 얼마 전, 도올 선생의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거기서 만주 벌판을 달리던 고구려인의 기상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만주 벌판이 두 팔 벌려 손짓을 하고 있는데, 고려의 지도자들처럼 현상 유지에 급급하느라 산송장과도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강한종씨는 고구려인과 같은 기상으로 살고 싶다
 강한종씨는 고구려인과 같은 기상으로 살고 싶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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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책임은 자기 성찰에서 시작한다

이밀알(33)씨는 촛불집회를 보며 하늘은 결정적 순간에 각성하도록 하는구나 싶었다. 민중은 서로 아끼며 잘 살아 왔는데 지도자들의 이권 다툼이 그것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선한 민중은 거기 순응하고 산다. 다만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다는 시점이 오면, 민중은 그게 아니라는 자각을 한다. 그런데 자각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이상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민중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한 번도 그 경지에 다다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각 이후 맑은 정수에서 치열한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고려의 지도자들이 가졌던 현실 안주 자세는 박근혜뿐 아니라 우리 모두 안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 안의 박근혜'를 경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에 만족하고, 나 홀로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자기 성찰을 온 민중 안에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 당면한 우리의 과제이자 고려의 책임을 완수하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이밀알씨는 치열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밀알씨는 치열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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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경험해야 맑은 정수를 경험할 수 있다

최 대표 역시 자기 성찰은 맑은 정수에서만 가능하다는데 동의했다. 그러나 맑은 정수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예외없이 비극을 겪어야만 한다고 했다. 내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비극을 경험하지 않으면, 잡다하게 뒤섞인 왜곡된 욕망들로 인하여 맑은 정수에 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 안의 박근혜는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비극을 가로막는 시대적 과제의 표현이다. 최 대표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의 화법은 주변에서 수도 없이 보게 된다고 했다. 또한 외모와 패션에 치중했던 대통령의 삶을 보며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외모 지상주의의 최극단을 목도한다고 했다. 이처럼 남이 아닌, 우리 안에 존재하는 욕망이 깨어지는 비극을 겪지 않으면 우리는 좀처럼 맑은 정수에 이르기 요원하다. 탄핵안 가결 이후 더욱 끝까지 싸워야 하는 싸움이 바로 이것이다.

비본질로 점령당한 우리의 삶. 오직 진실만을 붙들겠다는 마음을 계속 벼려내지 않으면, 현상 유지의 두려움이 그 성찰을 막아내고 만다. 고려의 지도자들이 그러했듯 말이다.

공부하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기 성찰을 해낼 수 있는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최 대표는 단호하게 제대로 공부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두려움은 실체가 없는 것이며 아무런 영향력이 없음을 믿어야만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두려움이 허구라는 것을 배우고, 헛된 존재 앞에서 벌벌 떨지 않을 수 있도록 제대로 공부해가야 한다. 이를 자기 삶에서 해석하고 훈련하며 창조적으로 변화해 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공부. 그 공부가 하나됨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

최 대표는 삼국이 하나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신라가 통일을 했을 때 드디어 하나라는 자각을 시작했고 고려는 역시 후삼국을 통일하고 나서 하나됨의 과업을 이뤘어야 했다. 그런데 그 이상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최 대표는 원래 하나였던 문(文)과 무(武)가 고려 시대부터 분리되고 그 갈등이 확연히 부각됨과 동시에 문은 자기 존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문이란 무엇인가. 최 대표는 말과 글로 맺는 언약이며, 이를 통해 모든 존재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현실을 해석하고 어디로 갈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삶의 모든 물질적 경험의 의미와 가치를 규명하며 그 물적 삶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것이 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삶의 물적 경험이 끊임없이 하나 되어 가도록 연결하고 가야할 곳으로 이끌어주는 등불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문은 결정적 순간에 하나됨을 파괴하는 역할을 해 왔다. 원래 하나였던 무를 업신여기고 핍박했으며, 백성을 짓밟고 빼앗는 역할에 앞장섰다. 심지어 문끼리 학문으로 서로를 죽이기까지 했다. 결국 이렇게 하나됨의 이상은 소멸하고 말았다.

최 대표는 지금은 문이 선한 자기 역할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했다. 교육문화연구학교를 통한 우리의 만남이 고려가 다하지 못한 역사적 책임, 즉 문의 온전한 역할을 나의 삶에서 제대로 해낼 수 있기를 고대하며 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지금의 촛불은 문을 했다는 이들에 의해 피해를 받은 이들입니다. 문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문과 무는 원래 한 몸입니다. 문은 무를 짓밟아서는 안 됩니다. 문과 무를 겸비한 우리가 되어,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문을 새롭게 일으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최봉실 대표는 문의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최봉실 대표는 문의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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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두려움을 넘어선 절호의 기회

교육문화연구학교 다음 날, 우연히 한 기사([정희진의 어떤 메모] 쉽게 쓰여진 시, 한겨레신문 12월 10일)에서 '우리 안의 최순실'이라는 표현을 보았다. 우리의 공부와 같은 생각을 만났다는 반가운 마음에 글의 일부에 한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대통령과 최씨 일가는 모든 뉴스의 블랙홀이 되었다. 그들과 정치권을 비난하면 그럭저럭 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박-최씨 일가의 악취가 워낙 기이하지만 한국인들은 정치권과 재벌, 사회 전반의 부패와 몰상식에 익숙하다는 것을. 웬만한 더러움에 징하게 강하다는 것을...촛불이 '국민 대 박근혜'의 전선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 축제는 근본적으로 '우리 안의 최순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의 싸움이어야 한다."

232만 명이 거리로 나왔던 날, 탄핵안 가결이 선포된 그날. 우리는 민중의 하나됨을 체험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불의한 지도자가 물러나는 것만으로 역사적 책임을 완수했다고 할 수 없다. 진정한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과 집단의 치열한 자기 성찰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자기 안에 쌓여 있는 시대의 욕망과 싸워야 할 때이다.

그러나 그 싸움은 어렵다. 그 안에 두려움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우리를 강력하게 억압한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앞에서 굴복할 수 없다. 100만이 넘는 촛불의 외침은 두려움을 넘어선 순간이다. 미완으로 남아 있는 고려의 역사적 책임을 지금 완수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혁명의 순간이다. 사적인 욕망을 끊어내고 우리 모두가 온전한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순간이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카페로 오시면 교육문화연구학교를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의 소감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바로가기(http://cafe.daum.net/kyungdang/coIz/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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