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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방송된 SBS <8시 뉴스>를 진행 중인 김성준 앵커.
 19일 방송된 SBS <8시 뉴스>를 진행 중인 김성준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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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뉴스를 새로 바꾸면서 이런 고민을 해봤습니다. 대통령 권력을 감시하는 데 소홀하지 않았는지 정부정책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데 부족하지 않았는지 또 국정농단 사태의 경고음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결론을 말씀드리면 소홀했고, 부족했고, 외면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못 지켜서 이번에는 국가 시스템이 침몰했습니다. 그래서 오늘(19일)부터 새로 선보이는 SBS 8시 뉴스의 출발점은 반성입니다."

SBS가 반성했다. 사과 멘트도 꽤나 솔직했다. 19일 <8시 뉴스>에 복귀한 김성준 앵커의 클로징 멘트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공범들의 국정농단을 감시하는 데 소홀했고, 부족했고, 외면했단다. '기레기'란 신조어를 탄생시킨 세월호 참사 보도도 언급했다.  이른바 언론 본연의 기능이라 할 수 있는 '감시견'으로서의 역할을 내려놨었다는 자성인 셈이다.

이날 SBS는 3개의 '단독' 보도를 내놨다. 우선 톱뉴스로 박영수 특검팀이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 혐의 입증을 위해 박 대통령 개인 계좌를 살펴보는 방침을 내놓았다고 보도했다. 삼성 관련 보도도 빠지지 않았다.

<8시 뉴스>는 특검팀이 삼성그룹 내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의 영장 청구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전했다. 지난 4월 두 달 만에 해임된 여명숙 게임물 관리위원장과 관련,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과 여명숙 위원장이 나눈 음성 파일 내용도 화제의 뉴스였다.

일단 시청자들과 언론노조 등 언론 단체들이 SBS의 쇄신 선언에 반감을 보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게다가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와 연이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거치면서, SBS 역시 늦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에 열을 올린 것도 사실이다. 특히 국민연금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건을 집중 보도하는 등 타 언론사와 차별화에 힘을 쏟았다. 한겨레와 함께 '세월호 7시간'과 관련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특종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사실 JTBC <뉴스룸>이 출범하기 전, 김성준 앵커의 클로징 멘트가 박근혜 정권 하에서 지상파 뉴스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KBS와 MBC가 '땡전뉴스'를 내보내던 때였다. 과연 김성준 앵커이자 보도본부장 자성과 다짐은 과연 지상파 뉴스의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속단은 금물이지만.

쇄신하는 SBS <8시 뉴스>, 동시간대 JTBC 따라 잡을까

개편을 맞아 새롭게 교체된 SBS <8시 뉴스> 진행자들.
 개편을 맞아 새롭게 교체된 SBS <8시 뉴스> 진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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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이 일어난 기간 동안 저는 메인 뉴스의 앵커였고, 보도국 정치부장이었습니다. 견제하고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의무를 어떤 이유든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 일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SBS 내부적으로도, 저를 비롯해 SBS 뉴스를 책임지고 만들어가야 할 간부들이 취재 후배들이 마음껏 본연의 임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때문에 몇몇 선배들이 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거꾸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직을 새로 맡은 상황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지금이라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언론의 역할을 다 해보겠습니다."

지난 15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열린 <8시 뉴스> 개편 기자간담회에 참가한 김성준 <8시 뉴스> 앵커 겸 보도본부장의 소감이다.(관련 기사 : 자존심 구긴 지상파 뉴스, 김성준 앵커가 '심폐소생'할 수 있을까) 다시 일선 뉴스룸으로 복귀한 김성준 본부장은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나 "절박함" 등의 표현으로 지상파 뉴스의 위기를 설명하면서도 "외압은 없었다"고 못 박았다. 정치부장 시절에도 직접적으로 당한 외압은 없었다는 얘기다. 

'외압'에 대한 언급은 꽤나 상징적이다. 아니, 외압의 유무는 중요치 않을 수 있다. 비공영방송인 SBS에까지 외압이 있었다면 언론의 독립성 훼손이 심각한 것이고, 없었다면 그간 무르고 물렀던 SBS의 정권 비판 보도가 문제시 될 뿐이다.

하지만 최근에도 청와대의 외압 시도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온 상태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은 지난 14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 적폐 청산을 위한 부역자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대통령의 시크릿' 편과 관련해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SBS 고위 경영진을 접촉하려 했던 것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잘 알려지다시피, 허원제 정무수석은 가장 최근에 청와대에 입성한 SBS출신 청와대 인사다. 허 수석의 접촉 시도는 결국 SBS 경영진의 거부로 무산됐다고 한다. 화제 속에 방송된 '대통령의 시크릿'편이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또 윤 본부장은 역시 SBS 출신인 김성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기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등 압력을 가해왔다고 밝혔다.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에게 세월호 보도에 대해 외압을 행사한 것과 같이 거대한 사례가 확인되지 않았을 뿐, 불편한 접촉이 박근혜 정권 하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자사 출신 청와대 인사들과 정부 여당 내 인사들의 영향력 아래서 SBS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즉 공정성과 독립성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는가에 언론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청률도 못 지키고... 참혹하다, 지상파 뉴스

최근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KBS <뉴스타임>의 촛불집회 관련 보도 화면.
 최근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KBS <뉴스타임>의 촛불집회 관련 보도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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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VS 10.266%'

지난 19일자 SBS <8시 뉴스>와 JTBC <뉴스룸>의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이다. JTBC <뉴스룸>의 시청률이 SBS <8시 뉴스> 시청률의 약 2배가량인 셈이다. 이 와중에 촛불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강한 질타를 받고 기자가 쫓겨나기까지 했던 <MBC 뉴스데스크>는 5.1%, 지난 8일부터 양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KBS <뉴스9>는 17.5%였다. 

전통적인 시청자 층이 버티고 있는 KBS <뉴스9>는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MBC나 SBS 경우 '차움-길라임' 등 JTBC의 특종이 활약한 날은 3~4%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JTBC와 <뉴스룸>의 보도경쟁력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JTBC 뉴스는 진보/보수의 구분을 넘어 신뢰성을 바탕으로 포털 생방송과 페이스북 라이브 등 매체 다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또 이번 탄핵 정국을 발판으로 뉴스 주 시청자 층에서 제외됐던 젊은 층까지 끌어들였다.

"우리의 절박함은 'JTBC에 시청률 밀려 발등에 불 떨어졌다' 정도가 아니다."

김성준 앵커의 절박함을 뒷받침하듯, SBS는 지난 7일 보도책임자들을 교체하는 조직개편 및 인사를 단행했다. 손석희와 JTBC의 기록적인 약진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언론노조 윤창현 SBS 본부장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이번처럼 윤세영 SBS 미디어그룹 회장이 담화를 통해 '보도공정성과 독립성을 위해 전권을 부여하겠다'는 내용으로 조직개편의 취지를 설명한 적이 최근에 없었다"고 평한 바 있다.

SBS의 쇄신 움직인과는 달리 MBC와 KBS는 여전히 표류 중이다. 비단 메인 뉴스만이 아니다. MBC는 아직도 '언론부역자'로 남을지 말지 고민 중인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 와중에, MBC 드라마국은 정윤회 아들 특혜 의혹까지 일었다. MBC <뉴스데스크>의 친정권·친여 성향의 편파적인 논조는 민언련으로부터 매번 비판을 받고 있다.

양 노조가 파업 중인 KBS는 갈팡질팡이다. 최근 <추적60분>의 최순실 관련 아이템들도 반영 중이고, <다큐멘터리3일>이나 <KBS 스페셜>이 촛불집회나 탄핵 관련 아이템을 방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6일 빠른 독감 유행의 원인으로 촛불집회를 언급한 <뉴스타임> 보도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지난 14일 언론노조가 밝힌 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 부역자 명단에도 KBS와 MBC 관련 인사들이 절반을 차지했을 정도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김성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 이인호 KBS 이사장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고대영 KBS 사장 ▲ 안광한 MBC 사장 ▲ 배석규 전 YTN 사장 ▲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

올해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수상한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올해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수상한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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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JTBC <뉴스룸>의 시청률 '잿팍'과 안정세는 본궤도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아니다. 최근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은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수상했고, JTBC <뉴스룸>팀은 민주시민언론상 올해의 좋은 보도상, 미디어공공성포럼 언론상, 2016 방송비평상, 민언련의 올해의 좋은 보도상,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등 연말을 맞아 방송미디어 관련 각종 상을 싹쓸이하는 중이다.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언론개혁에 대한 요구가 한층 거세지고 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정국을 거치며, 정부 편향적인 보도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언론개혁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크다. JTBC의 안정세와 SBS의 쇄신은 시청자들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시대착오적인 정권 부역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MBC와 KBS는 앞날을 쉬이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미 전통적인 'TV 보기'를 거부 중인 1020 세대에게 MBC와 KBS의 브랜드 이미지는 역대 최악이라 할 만하다.

플랫폼과 콘텐츠 전쟁인 방송·매체 환경과 젊은 시청자들의 변화상을 읽지 못한 채 정권 부역과 이데올로기에 계속 몰두한다면, KBS와 MBC에게 '밝은 미래'는 없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내부자들'의 선택과 방향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선택은 자유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태그:#뉴스룸,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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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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