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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이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로비에서 청소노동자들(민주노총 서경지부 세브란스병원분회)이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선전전이었다. 벌써 49일째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다. 그중 한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팻말에는 청소노동자들의 편지가 붙어 있었다.

"민주노총이 생기기 전 올해 7월까지 우리 청소노동자들은 10여 년을 최저임금을 받아왔습니다. 지금도 기본금 150(만원)을 못 받습니다. 그랬던 우리 노동자들이 헌법에 보장된 당연한 권리인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이 민주노조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병원과 용역회사가 모의하고 주고받았던 업무일지, 반장들의 탈퇴·협박 등 병원에서 발생한 수많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해야 합니다."

침묵시위는 팻말로 호소하는 성토 대회였다. 올해 7월 13일 세브란스병원분회가 출범하면서 시작된 4개월 동안의 이야기였다. 지난 10년간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온 세월의 연장선상이었다. 노조원들의 '4개월'은 심리적 압박과 물리적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동자들 주변에 정체 모를 남성들이 나타났다. 노동자들의 선전전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노동자들의 얼굴을 마구 찍어갔다. 서경지부 활동가가 조금 크게 이야기하자, 캠코더까지 들이댔다. 처음에는 남성들이 왜 자꾸 노동자들을 촬영하는지 의아했다. 얼마 후, 자연스레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채증인가?

남성들의 사진 촬영은 고소·고발용 증거를 모으려는 목적이었다. 이미 3명의 활동가와 8명의 청소노동자는 세브란스병원으로부터 특수건조물침입,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된 상황이었다. 로비 선전전의 결과는 값비쌌다. 지금도 증거자료를 수집하는 중이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병원 보안요원들도 유인물을 나눠주는 두 활동가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병원과 업체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조 활동마저 정말 '불법'으로 생각하는 걸까? 이해하기 어려웠다.

연대 가는 길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연대 장소로 가고 있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연대 장소로 가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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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에 연대를 갔었어요. 고대 안암병원 청소노동자들이 현재 투쟁 중이거든요. 우리 분회는 지금 두 달 내내 안암병원으로 연대를 가고 있어요. 지난주에는 고대 의과대학 본관 로비에서 선전전을 했어요. 점심시간에요. 용역업체 관리자들이 사진을 찍었어요. 저도 같이 마주 서서 찍었어요. 진짜 요란하게 채증을 하더라고요."

장위3동주민센터 정류장에서 1111번 버스를 기다리다, 최수연 분회장님이 나한테 해준 이야기였다. 순간, 내가 세브란스병원 로비에서 봤던 청소노동자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런데 두 곳의 청소 용역업체가 모두 똑같은 회사였다.

분회장님은 오늘도 지난주처럼 고려대병원분회 투쟁 현장으로 연대를 간다. 고려대 백주년기념 삼성관에서 선전전이 예정돼 있었다. 박순옥 부분회장님과 김명숙 조합원도 함께였다. 국회 본회의 시작 4시간 전이었다.

때마침 연두 빛깔의 1111번 버스가 나타났다. 우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나란히 앉은 분회장님과 부분회장님은 곧바로 분회에 닥친 문제들을 이야기했다. 대책을 세우는 중이었다. 아직까지 뾰족한 대안은 없는 듯싶었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나는 두 간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다, 내 옆에 앉은 명숙 조합원에게 질문 하나를 했다. 나와 명숙 조합원 사이에 꽤나 오랫동안 흐른 정적이 깨진 순간이었다. 고려대병원분회 연대 활동에 몇 번 참석했었는지 여쭤봤다.

"이번이 세 번째예요. 상황이 되면 (연대 활동에) 꼭 참석하려고 노력해요. 그래도 매번 나가지 못하니까, 조합원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죠. (연대 활동에) 참석 못할, 급한 일들이 있다 보니까요."

한 번 깨진 적막의 틈새에서 명숙 조합원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명숙 조합원은 자신이 겪는 일들을 거침없이 말했다. 청소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이중적인지를 꼬집었다.

"우리는 지저분한 것들을 다 치우는 사람들이잖아요. 세상을 정화하는 존재인데…. 그런데 왜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지 모르겠어요. 지저분한 건 싫어하면서 그걸 치우는 우리를 왜 깔보는지…. 그때마다 많이 서러워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서…."

명숙 조합원이 잠깐 창밖을 바라보다,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현재 고대 안암병원 노동자들의 호소를 가볍게 무시하는 대학과 병원의 모습을 비판했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고려대 백주년기념 삼성관으로 걸어가고 있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고려대 백주년기념 삼성관으로 걸어가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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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조합원과 대화를 하다 보니, 버스가 벌써 고대 앞 정류장에 섰다. 급하게 하차했다. 고려대 정문 앞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수업시간이기 때문일까? 우리는 백주년기념 삼성관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른 대학사업장의 조합원들이 이미 와 있었다. 고려대학교와 동덕여자대학교분회의 청소노동자들이었다. 서경지부 활동가들도 있었다. 우리가 오자, 다른 조합원들은 선전전 준비를 시작했다. 투쟁 당사자인 고대 안암병원 청소노동자들도 곧 자신의 일터에서 선전전을 진행할 것이었다.

노동자들이 선전전을 하는 이유

곧 한 남성의 음성이 백주년기념 삼성관 주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서경지부 활동가 박현수 조직차장이었다. 무언가 호소하는 듯싶었다. 몇몇 학생들이 길을 가다, 잠깐씩 소리의 진원지에 눈길을 줬다. 관심의 눈빛이리라. 도대체 무슨 일로 열댓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를 분주히 탐색 중이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박현수 조직차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박현수 조직차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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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조직차장은 고대 안암병원에서 벌어진 일들을 낱낱이 폭로했다. 물론 대부분은 이미 세상에 밝혀진 이야기들이었다. 고려대가 한 용역업체와 20년간 수의계약 맺어왔다는 의혹이었다. 조합원들은 20년간 지속돼 온 수의계약이 혹시나 부당노동행위의 시작점이 아니었을지, 의심 중이었다. 20년 간의 수의계약은 고대 내부 규정상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얻으려고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최소한의 사람답게 대우받을 권리조차 빼앗아가는 것이 고려대 재단의 입장입니까?"

 한 민주노총 조합원이 팻말을 들고 있다.
 한 민주노총 조합원이 팻말을 들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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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조직차장 주변에는 십여 명의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광운대분회 조합원들도 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채였다. 다들 매서운 겨울 한파에 외투로 중무장한 상태였다. 팻말 사이로 비친 서경지부 조합원들의 표정은 가지각색이었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하나같이 간절함이 묻어났다. 조합원들은 팻말로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무언으로 전달했다.

"고대 이미지 먹칠하는 악질기업 퇴출하라!"
"노조탄압 수당체불 불법기업 퇴출하라!"
"학칙, 규정 준수하는 공개입찰 진행하라!"
"20년간 비밀거래? 공개입찰 시작하라!"

 한 학생이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선전전 모습을 사진 촬영하고 있다.
 한 학생이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선전전 모습을 사진 촬영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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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학생들이 잠깐 걸음을 멈춘 채 팻말의 내용을 유심히 읽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어가는 학생도 보였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곧 자리를 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 번 쓱 쳐다보고 지나갔다. 아무도 없는 선전전 현장은 외로워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검정색 유니폼을 입은 한 사내가 선전전 현장으로 다가왔다. 복장 뒤편에는 'CAMPUS POLICE'(캠퍼스 폴리스)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진짜 경찰인지, 학교 보안요원인지 헷갈렸다. 사내는 잠시 선전전 상황을 살펴보더니, 곧장 스마트폰으로 사진 촬영을 했다. 그러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상부에 현재 선전전 상황을 보고하는 건 아니었을까, 나는 추측했다.

"어느 곳에 가든 노동자들은 아파요"

 민주노총 서경지부 김병연 조직차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김병연 조직차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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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겨울 바람이 점점 온몸을 휘감았다. 어디선가 민중가요가 흘러나왔다. 투쟁 의지를 들끓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노래였다. 그야말로 전운이 감돌았다. 그때 서경지부 활동가 김병연 조직차장이 백주년기념 삼성관 건물 쪽에 대고, 이야기했다. 민중가요가 순간 영화 배경음악처럼 느껴졌다.

"(업체는)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노동하는 우리와 같은 노동조합 조합원들을 미친 듯이 괴롭히고, 비인간적으로 대우(합니다.) 이제는 노동조합의 생명인 교섭권마저 박탈하려 (합니다.) 고려대학교가 20년 동안 불공정한 수의계약으로 부당 이익(을) 취하게 도와준 그 업체(입니다.) 이제 고려대학교에서 그 불명예 지워달라는 겁니다. 총장님, 우리 청소노동자들한테 '갑질' 하지 말고, 이런 업체한테 '갑질' 좀 해주십시오. 용역업체는 맨날 '갑사'가 시키는 데 어쩌겠느냐고 하는데, 정작 '갑사'인 고려대학은 왜 권한이 없다고 합니까?"

반대편에서는 서재순 고려대분회 부분회장님이 유인물을 학생들에게 건네줬다. 나도 1부 받아서 읽어봤다. 현재 고대 안암병원 청소노동자들이 겪는 상황을 적어놓은 것이었다. 아까 들은 내용이었다. 상당수는 걸어가면서 유인물의 내용을 확인했다. 유인물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반으로 접은 채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일부는 아예 유인물을 외면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최수연 분회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최수연 분회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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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합원님들, 날씨 많이 춥죠잉?"

그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고려대 학내로 퍼져갔다. 분회장님이었다. 목도리가 매섭게 불어오는 찬바람에 나풀댔다. 분회장님은 잠시 목을 가다듬으셨다. 잠시 허공에 대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연 입김이 풍선 부풀어 오르듯 뿜어졌다.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분회장님의 호소가 학내에 공명했다.

"우리 고대 안암병원 청소노동자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힘든 일을 합니다.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습니다. (…) 고려대학교 이사장님·총장님,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을 한 번만 봐주세요. 왜 사람들이 저렇게 일할 시간에 다른 학교로 와서 연대를 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주세요. 피켓에 적혀 있는 글씨 하나하나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조합원들 사이로 지나갔다. 고려대를 탐방하는 학생들 같았다. 조합원들의 표정과는 상당한 괴리가 느껴졌다. 학생들은 잠시 팻말에 눈길을 주다, 이내 앞장서서 걸어가는 인솔자를 따라갔다.

 학생들이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선전전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학생들이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선전전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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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선전전은 한 시간 만에 끝이 났다. 곧 분회장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바로 고대 안암병원 청소노동자들의 선전전 사진이었다.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선전전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사진을 확인한 분회장님이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회사가 노조탄압을 하잖아요. 고려대라는 백을 믿고 하는 것 같아요. 고려대랑 업체가 20년 동안 수의계약을 맺었잖아요. 그건 고려대가 뒤를 봐줬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수의계약 자체가 특혜죠. 이게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비슷한 일이지 않나요? 우리는 일이 해결될 때까지 계속 연대할 겁니다."

고대 정문 쪽에 다다랐을 때, 나는 잠시 뒤를 돌아봤다. 백주년기념 삼성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방금까지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요구한 공간이 맞나, 싶을 만큼 한적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싶었다. 뿔뿔이 흩어져가는 노동자들의 뒷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곳에 가든 노동자들은 아파요"란 한마디를 남긴 채였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최수연 분회장이 지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최수연 분회장이 지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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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6년 12월 9일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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