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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범바위
▲ 인왕산 범바위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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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청룡 우백호라는 말이 있다. 풍수와 도참에서 쓰는 말이다. 서울의 좌청룡은 낙산이고 우백호는 인왕산이다. 실제로 인왕산엔 호랑이가 많았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호랑이가 출몰하여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한양에서 개성과 평양을 거쳐 대륙으로 가는 길에 무악재 고개가 있다. 현대사에는 미아리고개가 '한 많은 미아리 고개'로 각인돼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무악재 고개가 '한 많은 고개'다.

바리바리 조공을 보내고 거들먹거리는 사신을 맞이해야 했던 허리 부러지던 고개였다. 왕세자를 볼모로 보내고 오랑캐를 맞아야 했던 피 토하던 고개. 지방 수령들이 수탈한 봉물이 선물이란 이름으로 한양에 있는 고관대작 저택으로 향하던 길이었으며 고양과 파주의 나무꾼들이 도성의 기와집 구들장을 덥혀줄 나무 짐을 지고 넘던 고개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부보상들이 많이 넘나들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다 보니 호랑이에게 피해를 당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무악재 박정희 친필이다
▲ 무악재 박정희 친필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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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생명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나라가 지켜준다는 공화국시대에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왕조시대에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호랑이 밥이 될 것인가? 힘없는 백성들이 꾀를 냈다. 호랑이가 불을 무서워하지 않은가. 10여 명이 고개를 넘거나 땅거미가 짙어질 무렵엔 횃불을 들고 넘었다.

이 방안도 한계가 왔다. 고개를 꼭 넘어가야 하는데 해는 떨어지고 10명은 모아지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개 아래에서 하룻밤 묵거나 혼자 넘어가야 한다.

이때, 설마를 믿었던 사람들이 고개를 넘다가 희생당하는 사건이 속출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고개 아래 지금의 독립문 근처에 군사를 주둔시켜놓고 백성들을 앞뒤에서 호위하여 넘겨주도록 했다. 이때, '모아재'라는 별명도 얻었다.

여기에서 문제가 터졌다. 군사들이 백성들로부터 돈을 뜯기 시작한 것이다. 일명 월취전(越峙錢)이다. 지금이야 없어졌지만 불과 2~30년 전만 하더라도 일선 경찰들이 선호하는 부서가 있었다. 교통경찰이다. 길거리에 돈이 굴러다니기 때문이다.

월취전이 쏠쏠하다는 소문이 돌자 총융청 군사들의 선호처가 되었다. 경쟁이 치열하니까 뇌물이 돌고 투자했으니까 본전을 뽑아야 한다.

"인왕산 호랑이보다 월치 군사들이 더 무섭다."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나라에서 녹봉을 받는 군사들이 왜 통행세를 뜯냐는 것이다. 결국 월취 군사들은 해산되고 월취전은 사라졌다.

인왕산 호랑이
▲ 인왕산 호랑이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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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공원에서 단군성전을 지나 인왕스카이웨이를 오르다 보면 삼거리가 나온다. 호젓한 드라이브 코스로 연인들에게 사랑받는 길이다. 이 삼거리에 조형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조악한 호랑이 조형물이 하나 세워져 있다. 말끔한 것으로 보아 그리 오래된 구조물이 아닌 것 같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청와대와 경복궁을 지키는 호랑이
인왕산 호랑이가 돌아왔다

호랑이가 청와대를 지키기 위하여 돌아왔다고? 호랑이를 능멸해도 유분수지 지나가는 길고양이가 웃겠다. 호랑이도 아닌 것이 호랑인 척하고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를 잡기 위하여 호랑이가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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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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