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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가 직접 쓴 '벽문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가 직접 쓴 '벽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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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의 아들이 만들어 준 문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의 아들이 만들어 준 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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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학씨가 만들어 선물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 문패.
 강동학씨가 만들어 선물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 문패.
ⓒ 남해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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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숙이 할머니는 가셨지만 '울림'은 크게 남아 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는 1922년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사시다가 지난 6일 하늘나라로 가셨다.

남해여성회(회장 김정화) 등 단체들이 '시민사회장'을 치렀다. 8일 남해여성인력개발센터 앞에 있는 '숙이공원'(평화의 소녀상)에서 영결식이 치러졌고, 할머니 시신은 화장해서 '추모누리'에 묻혔다.

할머니는 가셨지만, 애틋함은 남아 있다. 할머니는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의 자녀(손주)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야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래서 정부 등록은 2012년에 마무리 되었다.

할머니는 한글을 깨우치지 않았다고 한다. 김정화 회장은 "할머니는 한글을 모르셨지만, 당신의 이름 석자는 외워서 적을 수 있었다"며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찾아갔더니 '내가 치매에 걸린 게 아니다'며 그 증명으로 손바닥에 이름을 적으셨다"고 말했다.

할머니 집 문패 이야기는 애틋하다. 문패는 모두 3개다. 첫 번째는 벽에 써놓았던 '벽문패'였다. 박숙이 이름에다 바깥에 네모를 그려 놓은 문패다.

정부 등록 이후인 2013년 1월 19일 할머니를 찾았던 김정화 회장은 "그날이 처음 방문이었다"며 "방문 옆 벽에 '박숙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고, 할머니께서 직접 쓰신 '벽문패'였던 것"이라 말했다.

그는 "식민지 땅에서 그것도 가난한 집 딸이라 글공부 기회마저 빼앗겼던 것"이라며 "어깨 너머로 80살이 넘어 배운 한글교실에서 이름 석자를 그리듯 배워서 벽에 쓰셨던 것 같다"고 했다.

두 번째 문패는 2014년 9월, 가슴으로 낳아 기른 아들이 합판으로 만들어 문 앞에 걸어둔 것이다. 김 회장은 "할머니께서는 당신을 찾아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주시려고 아드님에게 해달라고 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강동학(미술학도)씨가 2015년 8월에 만들어 준 문패다. 할머니의 사연을 들은 강씨가 '그림문자'로 만들어 선물했던 것. 고인은 이 문패를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 집에 있는 문패와 의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 집에 있는 문패와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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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집 마당 한 켠에는 주인을 잃은 의자가 쓸쓸하게 놓여 있다. 할머니는 '박숙이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마당'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오면 의자에 방석을 깔고 앉아 강연하기도 했다.

지난 8일 장례를 치른 뒤, 김정화 회장과 이경희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와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 등 장례위원들이 할머니 집을 찾기도 했다.

김 회장은 "장례를 마치고 나서 찾은 할머니 댁에는 주인은 없고, 문이 잠겨 있었다. 돌아오지 못한 주인을 기다리는 문패만 덩그렇게 있었다.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모습이 눈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박숙이 할머니는 평소 '목포의 눈물', '타향살이', '눈물젖은 두만강'을 곧잘 불렀다고 한다.

할머니는 청소년들한테 "일본에 빳빳하게 고개 들고 살아야 한다. 나라 없는 백성이 얼마나 불쌍한지 아느냐. 다른 나라에 고개 숙이는 백성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을 해주었다.

할머니는 숙이공원 소녀상 아래에 유골을 담은 단지를 묻어 달라는 유언을 했지만, '장사법' 규정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김정화 회장은 "할머니가 청소년들한테 강조했던 말이 귓전에 맴돈다"며 "부디 아픔이 없는 곳에서 영면하시길 빈다"고 말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장례위원들이 집을 찾아 문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장례위원들이 집을 찾아 문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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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 묘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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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 묘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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