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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 대표이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최태원 SK 대표이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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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짝. 올해의 남우주연상 이재용
아, 아, 몰..라요.
기억이..전혀..

간단 심사평
호흡은 거칠지만 대사의 흐름이 매우 안정적이며 얼떨떨한 표정은 가히 압권이다.
메소드 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어느 영화감독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국정조사 특위' 1차 청문회에 출연(?)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연기(?)를 심사한 평이다. 또 누구는 영화 <추격자> 사이코패스 살인범의 무서운 연기를 닮았다고도 했다. 누구는 또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케빈 스페이시가 연기한 범인의 '역대급' 반전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쨌든 결론은 같았다. 누구 봐도 증인으로 출석한 이재용 부회장의 증언과 답변이 '연기'로 보인다는 것이다. 메소드 연기라는 지적도 합당하기 그지없다. 이 부회장이 철저하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로부터 돈을 헌납하라고 강요를 받은 피해자 연기에 충실히 임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실시간으로 청문회 중계방송을 시청한 트위터 사용자들의 촌철살인도 다를 바 없었다.

"이재용, 당신 그런 언변으로 글로벌 기업 삼성을 지휘한단 말이야?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삼성을 그렇게 무시했던 이유를 알겠다. 정부는 고작 저 정도 인물에게 경영권 쥐여주려고 국민연금 6천억을 날렸나 보다." (‏@wj******)
"이재용보다 신동빈이 한국말 더 잘해." (@An**********)
"이재용 사실상 경제계의 박근혜 아니냐... 태어나고 보니 아빠가 이건희였을 뿐..." (@2_***)
"오늘 청문회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답변을 지켜본 한 네티즌이 관련뉴스에 단 댓글: '이재용, 삼성 면접 보면 광탈!' 이 댓글에 대한 반응: '이재용은 원래 유전자 전형으로 합격한 거였잖아!'"  ‏(@wt*****)  

"이재용 사실상 경제계의 박근혜 아니냐"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6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국정조사 특위' 1차 청문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이재용 구속'이 적힌 손팻말을 보여주고 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6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국정조사 특위' 1차 청문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이재용 구속'이 적힌 손팻말을 보여주고 있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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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스럽습니다. 당시엔 몰랐습니다.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수사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직접 관여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보고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책임이 있으면 물러나겠습니다 등등.

아마도 청문회를 계속 지켜본 국민들은 이날을 '송구'란 단어를 가장 많이 듣게 된 하루로 기억할지 모를 일이다. 계속해서 "송구"하다던 이재용 부회장은 야당 의원들의 항의성 질책과 질문에도 책임 회피와 모르쇠로 일관했다.

핵심은, 자기 '죄'를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은 절대 하지 않는 노련함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 부회장을 향해 안민석 의원이 "머리 굴리지 말라"고 다소 거친 언사를 내뱉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부회장의 답변 태도를 두고 정청래 전 의원은 자신의 SNS에 이렇게 요약했다.

"<이재용의 10대 답변전략> 1. 답변은 애매모호 2. 최대한 공손한 말씨 3. 정확히 기억 안 난다 4. 구체어 피하고 추상어 사용 5. 곤란할 때 멀뚱멀뚱 6. 수사 중이라... 7. 부족하다 송구하다 반복 8. 송곳질문엔 침묵 9. 말은 느리게 10. 동문서답 시간 끌기."

반면 인상적인 장면도 적지 않았다. 촛불집회에 등장했다는 '이재용 구속'이란 피켓을 이 부사장의 면전에 들이댄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이런 추악한 정경유착을 바로 잡는 게 정의입니다"라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다니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를 언급했다.

"이재용 증인 황유미씨 아십니까?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가 24살에 사망한 고 황유미씨에게 500만 원 내밀고 최순실 딸 정유라에게 300억 원 내민 게 바로 삼성의 민낯입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예, 아니오로 대답하세요." (윤소하 의원)
"아이 둘을 가진 아버지로서 정말 가슴 아픕니다... 저희 종업원들..." (이재용 부사장)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목소리를 높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아이 둘을 가진 아버지로서"와 같이 연민을 자아내는 정서적인 문장을 늘어놨다. 직접적인 사과는 또 피했다.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라고도 했지만, 윤소하 의원의 서슬 퍼런 질타에 답변이 막혔다. 이 대목의 포인트는 바로 "종업원"이라는 표현이었다.

9명의 재벌 총수들이 청문회 출석을 앞두고 법률 자문단 등으로부터 과외를 받고 나왔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종업원이란 표현 역시 법률 용어의 일환일 수 있다. 이러한 이 부회장이 이재용이 모르쇠로 일관할 건 이미 예상된 수순이기도 했다. "기억이 안 납니다" 대잔치인 이번 청문회에서 "종업원"이란 표현, 그러니까 이재용이, 삼성이 노동자들을, 국민들을 어떻게 여기는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도 청문회의 의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재용이 활약한 1차 청문회... 특검이 더 중요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연금을 본인 승계 문제를 위해 사용했다는 의원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연금을 본인 승계 문제를 위해 사용했다는 의원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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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를 언제 알았는지 기억 안 난다."
"개인적으로, 전경련 활동을 안 하겠다."
"저보다 훌륭한 분 있으면 경영권 넘길 수도 있다."
"국민연금 내부 요청으로 실무자 만났다."
"국민 여러분이나 의원님들이 미래전략실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있으시면 없애겠다."

이재용 부회장의 발언 중 핵심적인 대목들이다. 최순실과의 관계는 전면 부인했고, 자발성은 전혀 없었으며, 박 대통령과의 독대에서도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전경련 탈퇴를 시사했고, 삼성 그룹 내에서 이번 게이트의 주축이라 할 만한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는 발언도 나왔다.

그런데도 "저보다 훌륭한 분이 있으면 경영권을 넘길 수도 있다"는 대목이야말로 이재용 부회장의 청문회에 임하는 자세를 대변하는 발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지금까지 자신보다 훌륭한 전문 경영인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렇게도 경영 승계에 집착한 것인가.

경영권을 넘길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재용 부회장의 발언들에 신뢰를 보낼 국민들은 없어 보인다. 다 그런 식이다. 국민연금과의 연루도 교묘히 답변을 피했다. 그렇게 모르는 것투성이인데 삼성이란 대그룹을 어떻게 경영해 나가겠느냐는 비아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비록 이재용 부회장은 '옹알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요리조리 핵심을 피해 가는 남우주연상급 연기를 펼쳤다. 반면 "새누리당도 공범이니, 재벌들도 공범이다"라던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처럼 자기 PR에 가까운 언변으로 시간을 갉아먹거나 '휘뚜루마뚜루'식의 안일한 태도를 보인 의원들도 적지 않았다.

'기억이 없는 증인들'과 증언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한 의원들. 1차 청문회의 한 줄 정리다. 물론, 주연은 단연 이재용 부회장이었고. "특검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청문회 관전평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태그:#이재용,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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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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