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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국립역사박물관. 몽골 역사의 정수와 같은 유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 노시경
몽골은 원래 유목국가여서 몽골 관광지에는 우리나라 같이 명소로 이름난 문화유적지가 많지는 않다. 몽골 여행 중 몽골 역사가 담긴 문화유산을 만나게 되면 반가울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날까지 몽골인들의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몽골인들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몽골역사박물관이다.

울란바토르(Ulaanbaatar) 시내의 한복판인 칭기즈칸 광장에서 서북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니 바로 몽골역사박물관이 나왔다. 역사박물관 정문 앞에 옛 몽골 전통문자가 새겨진 비석이 이곳이 역사박물관 앞임을 알리고 있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보니 정사각형 철 구조물에 사람이 갇혀 있는 형상을 한 조형물이 눈길을 잡아당긴다.

함께 간 몽골친구에게 박물관 앞에 왜 이런 모습의 조형물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영토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은 몽골에서 더 이상 국민들을 죽이는 사형을 하지 말자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참혹했던 공산정권 시대의 기억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노력도 담겨 있다고 한다.

박물관은 외부에서 보면 작아 보이는데 내부로 들어서니 그 박물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시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몽골에는 한국 여행자들이 많아서 박물관 안에는 한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팸플릿도 있다. 입장권 뒷면에도 전시실 별 전시내용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다. 큰 자료는 아니지만 몽골역사에 대해 공부해 온 것이 부족한 걸 생각하면 훌륭한 자료이다. 다행히 전시관의 유물에 대한 설명은 몽골어 옆에 영어로도 병기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된다.

몽골역사박물관은 1924년 이 자리에 건립되었으니 몽골이 독립국가가 되자마자 바로 건립된 몽골의 대표 박물관이다. 이 몽골역사박물관에는 몽골 땅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80만 년 전부터 현대까지 몽골에 남은 5만 여 점 이상의 선사, 역사 유물이 담겨 있다. 이렇게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외국 여행자들에게 너무나 유익한 곳이다. 한 나라의 역사를 품은 명품 유물들과 그 안에 스민 정신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 여행자들에게 너무나 유익한 몽골역사박물관
사슴돌. 몽골 초원에서 발견되는 사슴돌은 기원전에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유물이다. ⓒ 노시경
나는 드디어 몽골 역사 전시실 안으로 들어섰다. 몽골의 선사시대 전시관에 들어서자 잘 다듬어진 기둥 모양의 사슴돌(Deer stone)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슴돌은 몽골의 초원에서 만나게 되는, 몽골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청동기 시대 후기인 기원전 800년 전부터 300년간 만들어진 사슴돌은 당시 몽골 땅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일종의 기념비이다.

당시 우리나라 땅에서 고인돌이 만들어졌듯이 몽골 땅에서는 마치 천하대장군 같이 키가 큰 사슴돌이 만들어졌다. 몽골과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남서부의 초원지대에서 발견된 약 900개의 사슴돌 중 약 90%가 몽골 초원에서 발견되었으니 당시 몽골은 사슴돌의 땅이었다.

키 큰 거인 같이 길쭉하게 솟은 사슴돌 4면의 표면에는 여러 가지 문양들이 양각되어 있다. 돌을 쪼아 새진 이 사슴돌의 문양에는 선사 유목민들의 삶이 나타나 있다. 나는 박물관 안의 역사유물들을 설명해 주던 몽골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높이가 3m는 되어 보이는데! 이렇게 큰 돌로 기념비를 세우려면 많은 인력이 들어갔을 것 같은데, 사슴돌은 왜 세운 거지?"
"이 사슴돌은 선사시대 몽골인들의 영웅적인 선조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큰 돌이야. 주로 너른 벌판의 돌무지 무덤 앞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제사의식과도 관련이 있었을 거야."

자세히 보니 이 사슴돌은 세 구획으로 나눠져 있고, 문외한이 알기 힘든 많은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사슴돌 상단 맨 위에 그려진 것은 해와 달 같이 보였다.

"당시에는 글이 없었으니까 이런 문양들을 통해 선사인들이 무언가를 전하려고 한 거지?"
"당시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 꿈을 후손들에게 전하려고 한 거지. 모든 선사인들 의식의 가장 위에는 당시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되던 해와 달이 있었고 그 해와 달이 가장 위에 남겨졌지. 그 아래에 작게 한 줄로 찍힌 점들은 하늘과 땅의 경계로 생각되고 있어."

"그런데 이 입석의 이름이 왜 사슴돌이지?"
"그건 입석 중단에 양식화된 모습의 사슴이 비상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야. 사슴 여러 마리가 입석의 4면 전체를 돌아가면서 조각되어 있지."

추상화된 물결무늬로 보이던 문양들이 알고 보니 사슴 문양이었다. 설명을 듣고 나서 보니 사슴의 몸통이 입석 위에 보였다. 길다란 주둥이는 하늘로 들려 있고 물결무늬같이 보이는 사슴의 뿔은 현란하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힘찬 다리가 하늘로 박차고 오르듯 힘있는 모습이 연속되고 있었다. 마치 사슴들이 사슴돌에서 튀어나올 듯이 역동적이다. 사슴 여러 마리가 날아서 하늘의 해와 달로 다가가는 것만 같다. 드넓은 초원에서 햇빛에 빛나는 사슴돌을 만났으면 더욱 경이로웠을 것 같다.
돌궐족 유물. 돌궐족이 남긴 비석과 두상, 금관 등을 통해 당시 돌궐인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 노시경
나는 선사시대를 지나 역사시대인 몽골 고대국가 전시실로 들어섰다. 전시실에는 6~8세기에 몽골 땅에 세워졌던 돌궐 제국이 있었다. 지금은 몽골 초원의 서쪽으로 이동하여 중앙아시아와 터키에 나라를 세운 투르크족이 당시 몽골 땅에 만든 나라가 돌궐제국이었다. 예상 외로 고대국가 전시실에 전시된 유물 중 가장 화려한 유물들은 돌궐 시대에 돌궐인들이 남긴 유물들이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를 생각나게 할 만큼 거대한 퀼 테긴(Kultegin) 비문이 전시실을 압도하며 우뚝 서 있다. 유능한 장군이기도 했던 퀼 테긴 왕자의 얼굴을 형상화한 대리석 두상(頭像)도 천 년이 넘는 얼굴 표정으로 관람객들을 쳐다보고 있다. 돌궐제국의 왕자 퀼 테긴이 그의 형이었던 왕 빌게 카간(Bilge Qaghan)과 함께 돌궐 제국을 다스리는 동안 돌궐제국은 중국, 거란 등 주변국가의 공격을 물리치고 번영을 누렸다.

퀼 테긴 두상의 보관 중앙에 양각되어 날개를 들고 서 있는 봉황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다. 대리석 보관도 화려하지만 퀼 테긴 두상이 중요한 것은 그의 얼굴 모습이 천 년이 지난 역사를 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터키족이 지배하는 영토가 넓어지면서 주변 민족과의 혼혈로 외모가 서구화되어 있지만 터키족의 조상인 퀼 테긴의 얼굴은 둥글둥글한 황인종의 얼굴을 하고 있다. 옆집 아저씨와 같은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묘한 친밀감이 느껴진다.

돌궐시대 빌게 카간 제사유적에서 쏟아진 7세기의 금관과 은제 사슴 조각상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유물들이다. 특히 돌궐 제국이 남긴 은제 사슴상은 몽골역사박물관의 모든 유물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2001년에 조상의 유적을 찾아온 터키 고고학발굴조사단이 아르항가이 아이막(Arhangai aimag)에서 몽골 정부와 공동 발굴하면서 찾아낸 명작이다. 은제 사슴을 보고 있으면 유목민이었던 돌궐인들이 얼마나 사슴을 숭배했는지가 느껴진다. 사슴의 은제 몸통에 상감된 금은 바로 어제 만든 듯이 빛나고 있다. 이 은제 사슴상은 집의 서재에 가져다 두었으면 싶을 정도로 욕심을 자극한다.
몽골 부족 전통의상. 거친 초원의 모습과 달리 몽골 각 부족의 전통의상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 노시경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니 몽골 내 다양한 부족들의 전통의상인 델(Deel)과 여인들의 장신구가 전시되어 있다. 겨울이 긴 땅에 사는 부족들답게 긴 두루마기 같은 옷으로 팔과 다리를 전부 가리고 폭이 넓은 소매는 행동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길게 만들었다. 가축을 기르는 유목민들답게 모든 부족들은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가죽장화를 착용하고 있다.

테를지(Terelj) 국립공원에서 델을 입고 장화도 신어보았지만 이곳에 전시된 델은 더 두꺼워 보였다. 내가 입어보았던 옷과 장화도 느낌이 묵직했는데 전시관의 옷은 더 두꺼우니 '얼마나 몸이 무거워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달아 서 있는 다양한 델들을 보고 있으니 차가운 바람이 부는 초원에서 묵직한 옷을 입고 겨울을 버티는 몽골인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머리 장식과 의복의 색상은 황량한 몽골 초원과 다르게 화려하기만 하다. 현대의 의복이 아니고 과거의 전통복장이라고 생각하면 놀랍도록 화려하다. 화려한 의상의 여인들은 자기 부족의 영화를 자랑하려는 듯 최대한 과시하려는 자세로 있다. 의상 마네킹들이 전시되고 있는 자세는 관람객을 웃음짓게 만든다. 큰 외투를 둘러쓴 한 여인은 다리를 꼬고 약간 거만하게 앉아있고 그 옆의 남자도 도도하게 짝 다리를 짚고 서 있다. 천편일률적인 마네킹들에게 전통의상을 입히지 않고 여인들의 자세에까지 신경 쓴 디스플레이가 신선하다.

몽골의 마지막 칸이자 불교의 대승인 복드 칸
몽골제국 지도. 몽골이 정복한 유라시아의 땅덩어리는 지금 보아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다. ⓒ 노시경
나는 결국 박물관 2층의 몽골제국 전시실로 들어섰다. 몽골 역사를 말하면 누구나 먼저 머리 속에 떠올리는 것이 칭기즈칸의 출현이고 그가 건설한 거대한 몽골제국인만큼 몽골제국과 관련된 내용이 이 박물관에서도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몽골 제국 전시관 벽면에 걸린 몽골제국 전성기 지도의 국토 면적은 지금 보아도 경이로울 정도로 넓다.

당시 몽골제국의 국가 상징이었던 백기(白旗)가 눈 덮인 몽골초원의 사진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다. 흰색 말꼬리로 만든 이 백기를 향해 어둠 속의 조명이 환히 비추고 있으니 그만큼 몽골제국에 중요한 상징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말총으로 만들어진 국가의 상징이 조명 속에서 묘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백기 옆에는 중무장을 한 몽골제국의 기갑병사가 우뚝 서 있다. 실제 크기의 몽골 기마병이 말을 타고 막 출전하려는 듯한 모형 곁에는 당시 몽골 제국이 사용하던 활, 화살통, 대도 등 각종 무기와 안장, 등자(鐙子) 등 마구류가 전시되어 있다.
몽골제국의 백기와 흑기. 몽골 군대의 상징인 흑기를 따라 몽골기병들이 전진하고 있다. ⓒ 노시경
몽골 제국 병사의 왼편에는 검은 말총으로 만든 흑기(黑旗)가 세워져 있다. 놋쇠로 창 모양의 상부장식을 만들고 나무막대로 세워진 이 흑기에는 수많은 말총이 기둥을 둘러싸며 장식되어 있다. 이 흑기 뒤의 그림에는 수많은 몽골기병들이 활을 쏘며 적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나의 몽골 친구는 이 흑기를 자랑스럽게 보고 있었다.

"이 흑기는 어느 때에 사용하는 거야? 전쟁 중에 사용하는 건가?"
"몽골의 칸이 전투를 할 때 기병들의 선봉에 흑기를 걸어놓지."
"무언가 상징하는 게 있을 것 같은데? 흑기가 상징하는 게 따로 있어?"
"이 흑기는 영원한 푸른 하늘을 상징하고 있지. 몽골을 여행하면서 몽골의 푸르고 푸른 하늘을 매일 봤지? 평화로운 푸른 하늘은 몽골을 상징하고, 이 흑기는 평화로운 푸른 하늘이 계속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는 거지. 몽골 제국의 기병들은 몽골 군대의 상징인 이 흑기의 전진을 따라 계속 나아가서 동유럽과 라인강까지 돌파해 들어갔지."
몽골의 마지막 칸. 몽골의 마지막 왕인 복드 칸이 밀랍인형으로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 노시경
빛나던 몽골 제국 전시실을 나오자 몽골 역사의 힘들었던 시기가 연결되었다. 몽골의 마지막 칸이자 불교의 대승인 복드 칸(Bogd Khan) 부부의 밀랍인형상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복드(Bogd)'는 몽골어로 성스럽다는 의미이니 복드 칸은 성스러운 왕이라는 뜻이다. 이 성스러운 왕은 빛나는 황금비단 옷을 입고 앉아 관람객들의 알현을 받고 있는 듯했다.

복드 칸의 얼굴색은 보기가 불편할 정도로 검붉은데,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을 잘못 표현해서 마치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창백해 보인다. 마치 그의 얼굴에 당시 힘들었던 몽골의 역사가 반영되어 있는 것만 같다.

칭기즈칸 직계 후손의 환생으로 여겨졌던 그는 쇠락하는 청나라와의 연합을 파기하고 몽골의 독립을 힘들게 추진했던 지혜로운 왕이었다. 그는 13세기 몽골제국의 영광을 복원하기 위하여 중국의 지배 하에 있던 내몽골 지역과의 통합에도 힘을 쏟았다. 하지만 1924년에 그가 입적하면서 현재의 외몽골을 영토로 하는 몽골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중국의 지배로 인해 내몽골 지역과의 통합은 현실적으로 어려웠겠지만 복드 칸의 리더로서의 혜안은 앞날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수흐바타르 동상. 몽골 독립의 영웅인 수흐바타르가 칭기즈칸 광장 한복판에 서 있다. ⓒ 노시경
나는 몽골 초원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보여주는 역사박물관을 나와 박물관 바로 앞의 칭기즈칸 광장으로 갔다. 광장에는 몽골제국의 흑기가 상징하던 몽골의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의 어두운 전시실 안에 있다가 넓은 광장을 만나니 가슴이 시원했다. 광장 한복판에는 수흐바타르(Sukhbaatar) 동상이 오른손을 높이 들어 몽골인들을 앞으로 지휘하고 있었다.

수흐바타르는 몽골인민혁명당을 조직하고 중국으로부터 몽골의 독립을 주도한 몽골 독립의 영웅이다. 원래 이 칭기즈칸 광장의 이름도 수흐바타르 광장이었을 정도로 수흐바타르는 몽골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가난한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나이에 공산혁명을 완수한 그의 불꽃 같은 삶은 아직도 몽골인들의 가슴에 깊이 남아있다. 그는 안타깝게도 젊어서 결핵으로 요절하면서 혁명 후의 몽골을 지켜보지는 못 했다.

"혁명 후에 추락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도 몽골인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일 거야. 한 국가의 지도자는 이렇게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상의 순간에 깨끗하게 사라져야 더욱 사랑을 받는 법이거든."

내 말에 몽골 친구는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흐바타르 광장은 최근에 칭기즈칸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몽골 정부가 자랑스런 칭기즈칸을 국가 브랜드로 지정하고 몽골 알리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칭기즈칸 광장의 북쪽에는 2006년에 칭기즈칸 즉위 800주년을 맞이하여 대리석으로 지어진 국회의사당이 자리하고 있고 의사당 입구의 중앙에 칭기즈칸 청동상이 있다.

국회를 경비하는 군인들과 비교해보니 옆에 버티고 앉은 칭기즈칸의 동상은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로 크기가 컸다. 칭기즈칸 청동상은 양팔을 벌린 채로 늠름하게 앉아 광장의 몽골 젊은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칭기즈칸 청동상. 칭기즈칸의 거대한 동상이 앉아서 광장의 몽골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 노시경
몽골인들은 현대에도 칭기즈칸의 기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이 칭기즈칸 동상 앞은 몽골의 신랑, 신부들이 결혼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었을 정도이고 울란바토르에 올라온 몽골인들도 항상 칭기즈칸 동상 앞에서 사진을 남긴다. 몽골인들은 칭기즈칸 동상 앞에서 몇 년 후에 보자는 약속을 하고, 다시 만나게 되면 이곳에서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한다. 내가 칭기즈칸 동상 앞에 갔을 때에도 동상 앞 계단에 수많은 몽골인들이 모여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앉아있는 칭기즈칸 청동상보다 역동적으로 만들어진 동상은 칭기즈칸을 양 옆에서 호위하듯이 서 있는 2명의 장수, 보루추(Boruchu)와 무흘라이(Mukhlai)의 청동상이다. 칭기즈칸 동상도 크지만 유명한 몽골전사인 이 장수들의 크기도 압도적으로 크다. 이 동상들의 크기는 몽골 국민들의 애정이 반영된 크기이기도 하다. 이 두 장수는 국회의사당의 입구에서 칭기즈칸을 지키며 계단 아래의 몽골 국민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칭기즈칸의 부하장수상.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칭기즈칸을 따라 초원으로 나아갔다. ⓒ 노시경
칭기즈칸이 전쟁터에서 적을 물리치고 몽골 초원을 통일하기까지 칭기즈칸에게는 전투능력과 끊임없는 노력, 칸에 대한 성심을 함께 갖춘 10명의 장수들과 뛰어난 보좌관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보루추와 무흘라이는 천리마 같이 지치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장수들이었다. 칭기즈칸은 전쟁터에서 이러한 명마와 같은 장수, 사나운 푸른 이리와 같은 장수, 그리고 전투의 선봉에서 진격하는 장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를 따르던 10명의 장수들 중 절반 이상은 신분이 아주 낮은 사람들이었다. 칭기즈칸은 부족장들보다는 능력있고 노력하는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전투에 기용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점령한 영토의 이민족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차별하지 않고 중용하였다. 칭기즈칸의 포용적인 리더십을 보여주는 이 장수들은 지금도 칭기즈칸을 지키고 서 있다.

무흘라이가 탄 말은 주인을 닮아 있다. 무흘라이가 탄 몽골의 말은 왼발을 앞으로 뻗어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무흘라이가 고삐를 잡아당기고 있음에도 이 준마는 저 푸른 초원을 달리고 싶은 것이다. 칭기즈칸의 장수, 무흘라이도 갑옷을 입은 채로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넓은 광장의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리더, 칭기즈칸을 위해 초원으로 달려나가고 싶을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미래로 이끌어주는 리더에게 충심을 다하게 된다. 부하가 리더에게 충심을 다하는 이유를 칭기즈칸의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부하와 소통하고 인재를 차별하지 않던 칭기즈칸,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보루추와 무흘라이는 칭기즈칸을 호위한 채로 말 위에서 대기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울란바토르, #역사박물관, #칭기즈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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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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