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몇 년 전의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과 혼인하여 한국에 살고 있는 여성들과 인권교육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함께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만화영화 '샤방샤방 샤랄라'보고 일상을 이야기했다. 만화영화 속 주인공의 엄마는 필리핀에서 태어난 여성이다. 초등학생인 주인공이 엄마의 존재가 학교에 알려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과 함께 친구들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엄마의 당당한 모습,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사건을 계기로 한껏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모습이 담긴 영화다. 영화를 본 후 각자의 일상을 나누던 중에 한 여성이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당황스럽고 슬펐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여성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한국인 남성을 만나 혼인한 후 한국에 산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냈다. 아이들은 밝고 건강하게 자랐고, 주변에 일본인 친구들도 있어 그럭저럭 잘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큰아이가 다짜고짜 말했다.

"엄마 나빠, 엄마는 왜 나쁜 사람이야? 왜 나쁜 나라에서 태어났어?"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쏟아낼까? 저녁이 되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늘 큰아이는 학교에서 임진왜란을 배웠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곡식 등을 빼앗아 갔다는 사실. 일본은 조선의 원수이고 나쁜 나라, 이순신은 그런 전쟁에서 백성을 구한 영웅이라는 것을 배웠다. 큰아이는 수업 시간 내내 움츠릴 수밖에 없었고, 친구들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의 엄마가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친구들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아! 이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실에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베트남에서 왔다는 여성의 눈치를 살폈다. '과연 베트남에서는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 후로 사람들을 만나 역사이야기를 할 때면 종종 나의 경험, 아니 그녀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어떻게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몇 년이 흐른 후 평화교육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는 선생님들을 만났다. 선생님들은 역사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전쟁, 그것이 침략전쟁이든 방어전쟁이든 그 많은 전쟁이야기 속에서 반전의 정신을, 평화의 중요성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전쟁영웅을 칭송하며 반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했다. 그때 그 고민이 또 고스란히 전해왔다.

역사,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역사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존재의 가감(加減)없는 입증이며, 후대를 위한 성찰과 토론, 전진을 위한 자료다.

이미 국경은 사라졌다. '자국(自國) 중심의 역사기록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떠나라. 우리는 우리끼리 잘 먹고 잘 것이라는 외침'은 이제 실현 불가능하다.(물론 미국처럼 막강한 국제적 힘을 가진 나라는 좀 다를 수 있다. 현재 여러 나라가 공존의 약속이 깨질 것을 두려워하는 상황처럼.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 두려움이란 '너는 살고 우리는 죽는다.'가 아니라 '공멸(共滅, 함께 죽다)'이라는 것이다.) 지구 공동체인 우리는 이제 평화를 추구하며 공존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

이미 모두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역사를 남기는 사람의 관점이 역사기록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누구의 관점이 맞는가를 따지는 것 또한 무의미해진 일이다. 모든 존재와 그 존재의 생각 자체가 역사다. 내가 그(나와 생각이 다르거나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를 품을 수 없다면 그의 이야기도 존중해 줘야 한다. 그 또한 나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다양하다. 수천수만 가지 살아 움직이는 인권(인권의 주체인 사람)의 수만큼 존재해도 좋다.

 유엔인권보호체계. 유엔 총회 산하에는 '인권이사회', '안정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가 있다.
 유엔인권보호체계. 유엔 총회 산하에는 '인권이사회', '안정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가 있다.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관련사진보기


우리가 무엇보다 관심을 둬야 하는 것은 누가 어떤 관점으로 역사를 기록하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역사의 논쟁에 초대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제연합(UN)의 구조에서 알 수 있듯 지구공동체의 현재의 관심은 인권과 안전 그리고 공존을 위한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발전이다. 역사 속에서 답을 찾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답은 아마도 수학문제의 답처럼 바로 대입하면 수학식이 참이 되는 답은 아닐 것이다.

역사는 매 순간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발전하고 있으므로. 모두가 찾는 답은 바로 현시대의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한 답을 찾는 방법 그 자체일 것이다. 과거의 기록을 통해 성찰의 힘을 기르고, 다양한 당사자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이성적 토론과정을 통해 또 다시 안전과 평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전진할 수 있는 답을 찾는 과정,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며, 실천해야 하는 과정이다. 또한 후대에 남기는 역사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태은 시민기자는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