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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전국이 촛불로 들끓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묵묵부답입니다. 문득 박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작성해봤습니다. 부디 이 편지가 청와대로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시작으로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그날까지 공개편지 보내기 운동을 하면 어떨까 제의해봅니다. - 기자 말

친애하는 박근혜 대통령 귀하.

안녕하십니까. 저는 수원대학교 사학과에 재학 중인 김경준이라고 합니다.

요즘 정말 안녕하신지 다시 한 번 안부를 여쭙고 싶습니다. 주말만 되면 청와대를 포위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마음이 편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소음 탓에 좋아하는 드라마도 제대로 못 보고 계신 건 아닌지, 밤새도록 광장을 지키는 국민들 때문에 매일 잠도 제대로 못 이루시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귀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덕분에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까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토요일만 되면 전국에서 국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귀하의 퇴진을 촉구하는 피켓과 촛불을 든 채로 말입니다. 평소에 시사·정치에 대해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수능을 앞둔 고3 학생들도 대학보다 나라가 먼저라며 거리로 뛰어나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들 모두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귀하에게 표를 던진 것이 부끄러운 사람도 있고,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이 부끄러운 사람도 있을테지요.

저 역시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저는 평생 동안 집회, 촛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8년에는 전국적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있었습니다.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광장으로 나갈 때 저는 망설이다가 끝내 나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불이익이 생길까봐 두려웠습니다. 무엇보다 '나 하나쯤 안 나간다고 별 일 있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터지자마자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런 안일한 생각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는 사실을요. 결국 귀하와 같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나라를 쥐고 흔들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광장에 나가기를 두려워하고 망설였던 저와 같은 방관자들 때문이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도 생각나더군요. 한동안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괴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큰 깨달음을 주신 귀하께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3일 저녁,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6차 박근혜 퇴진 촉구 범국민 촛불집회 현장
 지난 3일 저녁,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6차 박근혜 퇴진 촉구 범국민 촛불집회 현장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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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상 최초로 국민대통합 이뤄낸 대통령

요즘은 어딜 가도 온통 귀하에 대한 얘기 뿐입니다. 저희 집은 평소 밥상머리에서 대화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최순실 사태가 터진 이후로 언제부턴가 밥상머리가 '100분 토론' 현장이 됐습니다. 집 밖에 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군 생활했던 선·후임들과 만나 옛 추억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다가도 어느새 화제는 귀하에 대한 얘기로 옮겨갑니다. 그러다보면 의기투합해 함께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기도 합니다.

집회 현장에서 지켜본 국민들은 참으로 질서 있고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분노로 가슴은 불타올랐지만 차분한 이성으로 평화시위를 이끌어내는 모습에 퍽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 된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헌정사상 최초로 '국민대통합'을 이룩한 귀하의 업적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더불어 집회가 벌어지는 광화문 일대의 상권도 '촛불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거야말로 '창조경제'의 실현이니 귀하께서는 국민들과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계시는군요.

귀하는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어용언론에 놀아나는 개·돼지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집회 현장에 취재를 왔던 MBC 기자들이 성난 군중의 항의에 쫓겨나는 반면, JTBC 기자들에게는 환호를 보내는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JTBC 기자들이 지나가면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듯 길까지 열어주며 배려하더군요.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국민 모두가 자발적으로 행동한 결과입니다.

언론이 국민의 눈치를 보며 감시자의 역할을 수행하니,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사법부 역시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앞서 열린 6차 집회에서 법원은 청와대 앞 100m까지 행진하겠다는 국민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사법부도 더 이상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입니다. 언론과 사법부가 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귀하의 공이 참으로 크고도 깊습니다.

지난 3일 열린 제6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집회에서 시민들이 경복궁 영추문 일대를 지나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지난 3일 열린 제6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집회에서 시민들이 경복궁 영추문 일대를 지나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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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공개와 제3차 대국민담화는 '신의 한 수'

귀하께서는 "바람이 불면 촛불도 꺼진다"는 누구의 말마따나 찬바람에 촛불이 꺼질까 걱정이 되셨나봅니다. 이 와중에 공개한 '국정교과서'는 참으로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습니다. 당신의 탁월한 묘수에 무릎을 치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사고를 일원화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서술을 대폭 늘리는 등 누가 봐도 '사적인' 집필의도를 만천하에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배려 덕분에 촛불은 이제 횃불로 발전했습니다.

제3차 대국민담화 역시 당신의 크나큰 업적으로 길이길이 칭송받을 것입니다. 스스로 못 물러나겠다며 국회에 공을 넘기자마자 비로소 국회의원들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누가 탄핵에 찬성하고 반대하는지, 누가 국민의 뜻을 진정으로 받들고 있는지, 누가 나라를 망치는 주범인지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폭로됐습니다. 귀하께서는 사법부에 이어 '입법부'도 정신 좀 차리라고 경고를 보내셨습니다. 무엇보다 구태의연한 정치현실 속에서 귀하 혼자 물러나봐야 변하는 게 없다는 큰 깨달음을 우리 국민들에게 주셨습니다. 덕분에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귀하에 대한 탄핵을 촉구하는 압박을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꿋꿋하게 당신을 응원합니다. 귀하야말로 이 땅에서 친일독재정권의 망령을 완전히 청산하고자 스스로를 희생하는 용단을 내린 '구국의 영웅'이십니다. 그러니 눈치보지 말고 망설이지도 말고 꿋꿋이 다음 행보를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세월호 7시간 의혹, 청와대 비아그라 반입 의혹, 국정교과서 공개, 제3차 대국민담화에 이어 또 어떤 핵폭탄급 이슈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귀하를 지지하는 일부 국민들도 뒤돌아서게 만드는 결정적 한 방을 선사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만 된다면 새로 집필하게 될 역사교과서에서 당신은 '민주화의 일등공신'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지난 11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지난 11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대한민국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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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박 대통령께 추천하는 드라마 <대왕 세종>

귀하께선 드라마를 좋아하신다고 하더군요. 오죽하면 인기리에 방영한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배역까지 가명으로 쓰신다고. 그래서 귀하께 드라마 한 편을 추천합니다. 2008년에 방영한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입니다. 86부작이라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요새는 딱히 하시는 일도 없잖아요. 청와대 관저에 편안하게 앉아 '정주행' 한 번 하시죠. 그런데 과연 다 볼 시간이 있을까 걱정이 되긴 합니다. 국민들이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꼭 챙겨보셨으면 하는 한 장면을 특별히 요약해서 소개해드립니다.

<대왕 세종> 65화의 한 장면입니다. 여진족의 약탈과 정부의 가혹한 세금 징수로 고통 받는 변방의 백성들이 광화문 앞에서 횃불 농성을 벌입니다. 이때 세종(김상경 분)이 등장해 호위무사들에게 명을 내립니다.

"경호를 물려. 과인이 백성들을 직접 만나겠다."

폭도들을 진압해야 한다는 신하들에게 세종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자신의 백성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 떠는 자는 군왕이라 할 수 없다."

백성들을 마주한 세종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백성을 하늘로 알고 섬기겠다 호언을 하고도 그대들의 굶주림조차 살피지 못한 과인을, 아니 함께 주려주지 못한 과인을 용서치 말라. 적의 도발로부터 그대들의 육신을, 가솔들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해, 아니 그 슬픔을 나누는 일조차 인색했던 과인의 용렬함을 용서치 말라. 이 부덕한 군주를 그대들의 손으로 벌하라."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 65화의 한 장면. 광화문 앞에서 농성하는 백성들 앞에 임금 세종(김상경 분)이 직접 나서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있다.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 65화의 한 장면. 광화문 앞에서 농성하는 백성들 앞에 임금 세종(김상경 분)이 직접 나서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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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세종이 그랬듯, 광화문의 국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구국의 결단'을 귀하에게서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다시 한 번 귀하의 현명한 판단을 기원하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참, 답장은 대통령의 '자진 하야'로 대신 받겠습니다.


태그:#박근혜, #대왕세종, #박정희, #최순실, #국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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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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