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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의 초점이 '세월호 7시간'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세월호 구조에 어이없이 무능했던 박근혜 대통령을 보며, 그때 의심했던 여러 가능성들이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밝혀질까 기대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김상만 녹십자아이메드 원장은 박 대통령과 최씨를 진료했던 기능의학 전문가입니다. 김 원장과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한 전문의의 '진단'을 소개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관심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참사 당일인 4월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참사 당일인 4월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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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7시간 동안에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가가 초미의 관심거리다. 수백 명의 생명이 배에 갇혀 있을 때, 왜 그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대책본부에 나타나 전혀 사태를 모르는듯한 발언을 했을까?

나 역시 초기 가설인 '정윤회 밀회설'을 믿을 정도로 세월호 참사 때의 대통령 반응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그 후 굿을 했다는 말도 있었고 심지어 인신 공양이라는 믿기 힘든 음모론도 나돌았다.

그러다가 차움 병원 출신의 대통령 자문의 김상만 교수가 청와대를 정기적으로 출입하며 의문의 영양주사를 놓았다든가, 김영재 성형외과의 이해되지 않는 진료의 흔적과 특혜에 대한 보도가 나왔다. 그 이후로 대중의 시선은 프로포폴 중독, 줄기세포 치료, 쁘띠 성형 수술 등 의료 시술로 옮겨졌고 많은 매체들이 이를 중심으로 경쟁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왜 하필 의료 시술일까? 기본적으로 의학적 처치와 이에 따른 의료적 개념들은 일반 대중이나 기자들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속하게 판단하기가 어려운 분야이기에,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중의 상상을 자극하기 좋은 요소다. 마침 관련 병원들의 의뭉스러움도 이런 가설을 진실로 믿게 만드는 심리적 요인이 되었다.

우선 의사로서 '세월호 7시간'과 관련됐을 거라 얘기되고 있는 의료적 시술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다른 객관적 상황에 비춰 얼마나 가능성이 높은 가설인지, 팩트체크를 하고자 한다.

[태반 ·백옥주사 등]

김현정의 뉴스쇼 보도 내용
 김현정의 뉴스쇼 보도 내용
ⓒ 노컷뉴스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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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청와대 구매목록에서 이미 확인된 태반주사, 감초주사, 백옥주사 등 낯선 이름의 영양주사들부터 살펴보자. 우선 왜 많은 자문의 중 김상만 원장만 주기적으로 청와대에 왕진을 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상만 원장은 의료계에선 만성피로, 부신 피로증후군 분야에 명성이 높았던 의사이고, 많은 환자들이 다른 병원에서 진단받지 못하는 피로, 통증, 어지러움 등 기능의학적 문제를 잘 해결해주는 김상만 원장을 따라다녔던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 환자 중 최순실 자매와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있었던 것이었는데 문제는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면서 생긴 것이다. 이미 언론 보도에 잘 알려진 대로 만성피로에 시달렸던 대통령은 김상만 원장의 치료가 필요했으나 태반 주사 등을 인정하지 않았던 당시 이병석 주치의의 반대로 한동안 편법적인 진료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주사들이 '세월호 7시간'과 연관이 있을까? 보도에 따르면 당시 김 원장은 녹십자아이메드병원에서 오전 진료를 마치고 오후에 천안의 골프장에서 동료 의사들과 골프를 쳤던 게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최근 보도들은 직접 의사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미리 처방된 영양주사를 간호장교가 당일 놓았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그렇다 해도 영양주사에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으로, 국가 중대 사태 발생 시 대통령의 직무공백을 부를 가능성은 낮다.

[프로포폴]

둘째, 프로포폴, 일명 우유주사의 가능성을 따져보자. 프로포폴은 수면 유도 주사로서 반감기가 매우 짧아 약 30분 정도 수면을 유지한다. 종합병원보다는 개인의원에서 선호하는 주사다. 비교적 안전하지만 주사를 투입할 때 느끼는 황홀감 등의 느낌이 있어 많은 연예인들이 습관적으로 투여하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약제이고 그래서 매우 엄격한 관리를 받는 약이다. '마약대장'이라고 불리는 기록과 폐기 과정 모두 관리를 받는 약제로서 대량 처방이나 대리 처방 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약제다. 의료인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이 프로포폴 중독이라고 가정하기 힘든 이유는 바로 이 약물 공급 과정의 어려움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월호 7시간'을 설명하기에는 반감기가 너무 짧다. 차라리 다른 수면 유도제인 미다졸람은 1시간이라도 지속하지만, 프로포폴로는 박 대통령이 보인 업무 공백을 설명하기 부족하다.

[줄기세포 치료]

무릎연골결손 줄기세포치료.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무릎연골결손 줄기세포치료.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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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제기된 줄기세포 치료 가능성이다. '그알'은 박 대통령이 당선 전부터 한 바이오 회사에서 줄기세포 시술을 불법으로 받았다고 보도했지만 '세월호 7시간'에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일부 개원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줄기세포 치료는 수면마취 후, 라이포석션이라는 지방 채취를 통해 지방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공정을 거쳐 정맥에 투입한다. 수술방과 공정시설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매우 복잡한 시술이고 폐색전증, 감염 등의 위험이 있다. 따라서 청와대 의무실 같은 곳에서 몰래 할 수 있는 시술이 아니다. 무엇보다 김상만 원장이나 김영재 원장은 이런 줄기세포 시술를 할 수 있는 의사들이 아닐뿐더러 팀으로 움직여야 시술이 가능하다. 따라서 줄기세포 시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쁘띠 성형]

넷째, 쁘띠 시술이다. 쁘띠 시술이라 함은 칼을 대지 않는 작은 성형, 피부 시술로 보톡스나 얼굴에 실을 넣어 주름을 펴는 등의 시술을 말한다. 의문의 김영재 원장이 이 분야의 대가이고, 연이어 보도되는 특혜 등의 정황으로 미루어 봤을 때 김영재 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쁘띠 시술을 담당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쁘띠 시술을 받았는가? 이것을 증명하려면 우선 언론에 보도된 김영재 원장의 당일 행적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그 같은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정리하면, 태반 ·백옥주사 등은 업무에 지장을 줄 만한 게 아니었고, 프로포폴과 줄기세포치료는 가능성이 낮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은 의료시술을 받았다'는 전제하에 그게 무엇인지 찾으라고 한다면, 의료인의 관점에선 그나마 쁘띠 시술이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쁘띠 시술을 하느라 세월호 사건에 제대로 대처 못 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대통령은 몇 달에 한 번 받는 시술을 받는 그 날에 세월호 사건을 맞았던 것이고 '하필 운이 없어서 그날' 사건이 일어났던 것인가?

반대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박 대통령이 그날 쁘띠 시술 혹은 다른 의료시술을 받지 않았더라도 과연 세월호 사건에 적절하게 대처했을까?

'7시간'이 아니라 4년 내내 뭘 했는지 보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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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가장 합리적인 결론, 세월호 그날 대통령은 무엇을 한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는 그날 4월16일 뿐 아니라 평소에도, 임기 내내 아무 일도 안 했을 것이다.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는 '그날 대통령은 낮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라는 기사를 썼다. 이런 결론이라면 너무 허무하고 맥이 빠질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시스템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복수의 언론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평소에도 집무실보다 관저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조윤선 정무수석비서관(현 문체부장관)조차도 몇 개월 동안 얼굴을 못 보고 서면 보고했단다. 최종 보고의 책임을 맡은 '문고리 3인방'과 김기춘 비서실장도 사안의 중요성 보다는 대통령의 심기만 살핀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당일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무능했고, 단절에 가까운 불통으로 일관했다. 안타깝게도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그날 온 국민을 애타게 만들었던 세월호 구조 소식, 기가 막힌 슬픔과 절망의 소식들, 마땅히 이 땅의 국민이라면 같은 공감을 하고 마음 졸였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대통령은 관저에 고립된 채 간단히 문서로 보고를 받고 관련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보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최소한의 인간적 공감도 못한 것이고, 이 일이 대통령이 두팔 걷고 나서야 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한, 심각한 인지부조화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혼의 비정상'은 그 날 뿐 아니라 세월호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자녀를 잃고 비탄에 빠진 부모들을 만나는 현장에서, 시위 중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사경을 헤맨 노인과 '사인조작' 걱정으로 한동안 장례도 치를 수 없었던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대통령에겐 공감 능력도 없고 보통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도 모른다.

대신 불필요한 세세한 것들은 지나칠 정도로 집요하다. 야당 원내대표를 만나면서 수년 전 자신을 비방했던 일을 기어이 그걸 기억해내서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고. 대선 TV 토론에서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상대 후보가 속한 정당을 아예 해체해버리고, 최순실의 심기를 괴롭힌 이름 없는 문체부 공무원의 숙청엔 지나치게 꼼꼼했다.

박근혜의 51.6%를 만든 언론, 지금은 박근혜 조롱 중

우리는 '세월호 7시간'을 쫓고 있다. 그러나 7시간이 아닌 4년 내내 이뤄진 그녀의 무능, 불통, 공감 부족, 인지 부조화가 오늘날 세월호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비극을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 땅에 다시는 세월호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가수 하덕규가 노래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정치인이, 언론이, 기업인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제자리를 찾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속히 오길 기도한다.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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