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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명칭으로 여자고등학교, 여자 중학교는 무조건 존재하지만 남자 고등학교, 남자 중학교임은 표기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했다.
일상생활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성평등' 문제를 주제로 11월 16일, 중앙대학교 203관에서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의 강연이 있었다. 이날 강연은 중앙대 사회학과 주체의 중앙사회학 특강 <지금 여기 페미니즘>의 두 번째 순서였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싼 논의에서 자주 등장한 말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강남에 거주하는 저잣거리 아녀자", "아줌마" 등이었다. 박 대통령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 역시 "대통령도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권력자라서' 생긴 문제임에도 논의는 오로지 그들의 생물학적 성인 '여성'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김홍미리 활동가는 "지난 5월 강남역에서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 일어났듯 여성혐오가 여성의 생명권을 앗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눈 멀게 하기 전략에도 사용됨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김 활동가는 강의 내내 여성혐오 발화의 대표적 예로 '김치녀'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김치녀라는 비난은 그 사람이 여성이라는 특징 외에, 오만하거나 못되쳐먹었을 다른 인격적인 가능성을 배제하며 오로지 여성임을 대표로 삼아 그를 욕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나를 안 만나주는' 사치·허영 덩어리인 김치녀를 욕함으로써 대리하는 '오인된 원한'이다"고 말했다.

또한 "'김치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남성들은 현실의 여성과 괴리된, 그럼으로써 망상에 가까운 (성 역할에 충실한) 여성에 대한 '숭배'에 사로잡혔거나, 혹은 '여성은 타락했고 나의 순정은 거절당했다. 이 모든 것이 김치녀 때문'이라는 '혐오'의 표상에 사로 잡혀 있다"고 말했다.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강의모습(사진촬영: 김선희)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강의모습(사진촬영: 김선희)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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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미리 활동가는 차별을 가능하게 하는 정서 구조를 혐오로 규정하며, "여성혐오는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기에 여성을 타자화, 객체화 해 결국 대상화함을 뜻한다"고 말했다. "올해 7월, '국민은 개돼지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등 한국사회는 집단화,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관계 맺는 것에 익숙하다. 그렇기에 고의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한 혐오는 지속될 것이며 이 혐오의 세계에서 나 역시 예외가 아님을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부적절하다는 논의 역시 존재하기에 김 활동가는 혐오 대신 '대상화'라는 말을 찾아냈다. <혐오와 수치심>의 저자 너스봄 역시 온라인 세계에서 여성혐오가 발화되는 방식에는 대상화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며 대상화를 구체적으로 도구성, 자율성의 거부, 비활성, 대체 가능성, 가침성, 소유권, 주체성의 거부 등 7가지로 정의 내렸다.

1. 어떤 타자가 필요한가 : <미소지니의 세계에서 여성의 자리>

10월, 동서 <맑은 티엔>의 광고를 두고 '몰카, 스토킹 미화' 논란이 일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광고는 남성이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음료수 맑은 티엔을 든 여성에 호감을 느끼고 사진을 찍었고, 그 후 SNS를 통해 그녀를 찾아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트위터에서 광고의 문제 여부를 둔 투표를 진행했다. 남성의 7%가 문제라고 답한 반면 여성은 90% 이상이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김홍미리 활동가는 "대상화는 타인이 이를 어떻게 경험, 생각, 고려하는가보다 내가 지금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고려하는 것이다. 스토커의 사고방식과 비슷하다. 여성들은 남성이 sns를 통해 자신을 찾고, 남성에게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투표 결과에서도 드러나듯 정작 대상화되는 여성들의 느낌은 '소름끼침'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타자의 자리는 곧 대상의 경험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상의 경험을 주체가 재단할 수 있다고 느끼는 위치에서 대상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소설책 <은교>의 박범신 작가는 성추행 파문에서 피해 여성들을 "은교"라고 불렀음이 밝혀졌지만, 정작 그는 "은교는 갈망의 대상이지 성적 대상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김홍미리 활동가는 "이 해명이 어떻게 느껴지는가"라는 질문 역시 던졌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강의자료 중 일부(사진: 김선희)
 문화예술계 성폭력, 강의자료 중 일부(사진: 김선희)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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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설가, 시인, 영화계 등에서 성희롱·성폭력·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폭로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문화예술계 성폭력'이 대두되고 있다. "여자가 아니라 작가지망생인 이들을 계속해서 여자라 호명하며 문학 전공자인 여성들에 대한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남성작가들 틈에서 여성이 아닌 작가가 되는 기회는 상실되었다"고 김 활동가는 말했다.

젠더가 표기되어야 할 경우가 있고, 표기되지 않아야할 경우가 있지만 한국 사회는 이에 대해 모순적이라는 점 역시 지적했다.

김홍미리 활동가는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가해자가 남성일 경우 젠더는 표기되지 않는다. 남성은 항상 시선의 주체지, 대상이 되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트렁크녀, 가방녀, 캣맘, 채팅녀 등을 그 예로 들었다. "재혼녀 조카 성폭행해 집행유예 받고 또 범행", "대장내시경녀 성추행 혐의로 의사 구속" 등에서도 가해자인 남성의 젠더는 표기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지적했다.

그는 "학교 역시 마찬가지"라며, 학교 명칭으로 여자고등학교, 여자 중학교는 무조건 존재하지만 남자 고등학교, 남자 중학교임은 표기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했다. 일례로, 하양여고와 대신고(남자 고등학교)가 있다.

반면, 서울의 목동고는 여고지만 처음으로 학교 명칭에서 '여'를 삭제했다. 이 학교의 원칙은 성별로 구분하는 말은 쓰지 않는 것이다.

김홍미리 활동가는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한남충'(한국남성을 지칭하는 비하적인 말)은 한 번도 대상화의 경험이 될 수 없었던 몸을 대상화하는 단어"라며 그 의의를 찾아내기도 했다.

2. 왜 여성이라는 타자가 필요한가 : 오인된 원한과 식민지 남성성

김홍미리 활동가는 일부 남성 집단이 김치녀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자신의 남자다움을 김치녀라는 도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한국적인 현상"이라며 '헤게모니 남성성'과 '여성혐오'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했는데, 헤게모니 남성성은 특정 시기에 바람직하다고 인정받는 남자의 전형을 의미한다.

"하지만 식민지, 독재 시기의 역사를 겪은 한국 남성들은 항상 헤게모니 남성성에서 빗겨나가 있었다"고 김홍미리 활동가는 말했다. "식민지 시기 헤게모니 남성성은 일본인 남성이었다. 일본인이 될 수 없는 조선인 남성은 가장이 되어야 하지만 가장이 될 수 없었다. 더욱이 한국은 남자만 징집되는 군사제도, 군사주의를 가졌는데 이 역시 여성혐오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헤게모니 남성성은 헤게모니를 취득하지 못한 남성을 주변화시키기에 그는 획득되지 않는 헤게모니 남성성의 획득을 위해 노력한다. 이는 아래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미국 사회 내 아시아계 남성(중국계 남성)> 분석에서 확인가능하다.

미국사회 내 중국계 남성을 중심으로 한, 한 사회 내 소수자가 취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한 전략의 예. 보충전략, 부정전략, 거부전략, 빗나가기가 그 예/ 강의자료 일부(사진: 김선희)
 미국사회 내 중국계 남성을 중심으로 한, 한 사회 내 소수자가 취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한 전략의 예. 보충전략, 부정전략, 거부전략, 빗나가기가 그 예/ 강의자료 일부(사진: 김선희)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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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온라인에서 여혐단어가 넘쳐 나고 여학생에 대한 성희롱적 내용을 명시한 대학 내 남학생의 성희롱 카카오톡 채팅방 내용이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역시 헤게모니를 취득하지 못한 식민지 남성들의 행동"이라며 "마초적 남성성이 남성성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는 잘못된 문화"라고 김홍미리 활동가는 꼬집었다.

이에 관련해 엄기호 박사는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남성성의 가능성/불가능성> 논문에서 "한국 남성은 여성을 대상화, 타자화하고 취득하는 방식으로 헤게모니 남성성을 취득했다. 조선의 남자들은 여자를 다룰 줄 아는 남성을 남성 공동체 내로 승인시켰다. 하지만 여성을 성적대상화 해야만 취득될 수 있는 남성성은 얼마나 비루하고 취약한가. 과연 연대로서의 남성성은 무엇인가"라며 혐오를 넘어서 어떤 남성성을 수행할 것인가에 의문을 던진 바 있다.

3. 어떻게 여성이라는 대상을 혐오할 수 있게 만드는가

김홍미리 활동가는 "지금 당장 내 옆에 앉아 있는 여성을 미워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개념녀인 넌 아니야. 저 김치녀가 문제지"라는 분할 전략·분할 지배를 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대표적인 여성혐오 방법으로 "여성 스스로도 자신의 몸을 사랑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드는 것"을 꼽았다. 2014년, 너스봄은 "나는 깔끔하고 완벽한 인간이고 악취,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너는 나보다 덜 인간적인 인간이다"라는 문장으로 혐오를 정의했다.

올해 7월 광주 광산구 의회 4선 박삼용 의원이 "생리대 용어가 거북하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김홍미리 활동가는 "이는 생리를 하는 존재인 내 몸은 거추장스럽고 내 몸은 냄새나는 몸이다"라며 냄새를 부착시키는 행동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생리를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에서 생리대는 감춰야 할 것, 숨겨야할 것이다.
 생리를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에서 생리대는 감춰야 할 것, 숨겨야할 것이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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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여성의 몸에 수치와 더러움을 부착시켜 여성이 자기 몸을 스스로 통합할 수 없게 규정하는 것이다. "하얀 피부를 가져라", "여자는 겨드랑이, 다리, 팔 털을 깎아야 한다", "종아리에 생긴 알을 없애라" 등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평생 종아리에 알이 생기지 않고, 다리에 근육이 생기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렇기에 걸그룹들은 다리 근육 절제수술을 하기도 한다.

"즉 불가능에 가까운 방식으로 몸을 만들어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내 몸은 부끄럽고 더럽고 냄새나는 존재로 규정해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비단 여성 뿐만 아니라 유대인, 여성, 동성애자, 불가촉천민, 하층 계급 사람들 등을 육체의 더러움에 의해 오염된 것으로 상상되게 하는 방법과 유사하다."

김 활동가는 "과거 독일 나치 역시 동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돼지'라고 불렀는데 이는 메갈리안 사용자를 '매퇘지'라고 부르는 현 사회 풍조와 닮았다. 또한 유대인을 독일의 남성적 자아와는 다른 여성적 존재로 규정했다. 반 유대 선전에는 '여자 같은 존재'라 그들을 칭하고 독일의 남성적 자아의 깨끗한 몸에 붙어 있는 더러운 기생충 같은 존재의 이미지가 상투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말했다.

김홍미리 활동가는 강의 내내 "혐오는 문제의 본질을 가린다"며 "혐오의 정서가 해내는 일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여성혐오의 무감각한 재생산"이라고 말했다. "여성혐오에서 우리 모두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선희 시민기자는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별인권이여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태그:#여성주의, #여성혐오, #소수자 인권, #소수자 혐오, #혐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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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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