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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5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청와대 향한 분노의 촛불 26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5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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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이 좋았다. 18세기 파리의 핏물이 가득 배인 보도블록을 씻어내지 않아도 되었고, 20세기 초반의 대한민국에서 식민지 노예로 살지 않아도 되었다. 가깝게 보면, 유신의 서슬퍼런 공포정치를 겪지 않고 세상에 나와 '어리다는 이유'로 스무살이 될 때까지 피흘리던 광주와 죽어간 수많은 젊음을 모른 채 살았다.

나는 운이 좋았고, 선배들이 흘린 피의 무덤 위로 찬란하게 피어난 '민주주의'라는 꽃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삶을 즐기는 동안, 주변에 무뎌졌고 세상이 다시 어두워졌으나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한 달에 한 번도 힘들던 서울 나들이를 매주 하고 있다. 다 늦게 선을 보는 것도 데이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약속도 없이 무작정 광화문으로 간다. 오후의 햇살로 따스해진 광장에 천원짜리 매트를 깔고 앉아, 옆자리의 사람들과 깔깔대고 인사를 나누며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눈물을 흘리며 애국가를 부르는 동안 주변을 채운 어둠은 촛불로 환해진다.

이미 3천년 전에 사라진 줄 알았던 '직접 민주주의'는 다시 광장을 채웠고, 사람들은 '정치 행위'를 두려워하지 않은 채 적극적으로 광장을 즐긴다. 모두가 숨죽이며 살아가야 했던 현실이 답답했는데, 요즘은 놀라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실체를 드러내고 '최순실' 뒤에 숨어 우리를 지배하던 권력의 치졸함을 확인해야 하는 현실은 '자괴감' 그 자체이다. 하지만, 선배들이 뿌린 피로 굳건해졌다 믿었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의아한 것도 사실이다.

<국회의원 사용법>
 <국회의원 사용법>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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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론 통일'의 시국에도 자신있게 국민의 옆에 서지 못하는 제1야당 민주당에 대한 불만과 함께, 정청래 전 의원의 신간 <국회의원 사용법>을 꺼내들었다.

17대, 19대 국회의원이었던 정청래 전 의원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컷오프된 후, 국회의원으로 지내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모아 <국회의원 사용법>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을 설명하며 '국회의원을 고르는 법'이며 '국회의원을 부리는 법'이고 '국회의원이 되는 법'이라고 했다. 과연 '멀쩡한 사람도 들어가기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여의도의 삶에 대해, 그는 어떻게 얘기하고 있을까. 내심 궁금했다.

이 책에는 그가 여의도의 삶을 통해 만났던 다양한 부류의 '국회의원의 형태'가 소개되어 있다. 그저 '재미'로만 읽어 넘길 수도 있겠지만,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여의도 나라'의 그들은 '국민'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유리된 채 국민으로부터 멀어진 원인의 많은 부분을 '언론'에게 돌리고 있는데,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과연, 그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이유가 '왜곡된 언론'과 이런 언론들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은 우리의 탓인가? 다음을 읽어보자.

"이제 계파 문제가 어떻게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볼 차례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계파 싸움 때문에 정당이 제 할 일을 내팽개치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왜 지리멸렬하고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나. 지지자들의 가장 큰 불만이다. 국민은 아파 죽겠다고 생업을 접고 거리로 나서도 야당은 계파 싸움에만 열중했다. 대정부 투쟁에는 모기 소리도 못 낸다. 세월호 문제를 보자. 국민이 몸 사린다고 야당을 나무랬더니 숫자가 모자란다고 울고불고 야단이었다. 그래서 총선 때 국민이 야당을 믿고 여소야대를 만들어줬는데도 여전히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못하고 있다. 뭐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된 문제가 없다." -p.103

역시 '계파'다. 애석하게도 내가 보는 그들은 이처럼 '자기 이익'에만 매달린 채, 여의도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의 대리인'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확실하게 모순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했는데, 그들이 국민이 대리한 권력을 이용하여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들이 군림하는 것을 용서하고 있는 걸까? 힌트를 얻기 위해, 김어준이 2012년에 펴낸 <닥치고 정치>를 펼친다.

"...덕 볼 생각을 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해). 기득권 구조에 넘어가는 이유는 우리 모두 생활인이기 때문이야. 그 구조에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건 그게 나쁜 걸 몰라서가 아니야. 거기서 자신이 입을 수도 있는 혜택, 그 이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야. 기득권은 바로 그 구조를 장악하고 있으니까 줄 게 많아. ... 밥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힘으로 때리면 약한 놈은 피해야 해.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피하고 뒤에서 욕하면 돼. 그런데 밥줄 때문에 입을 다물면 스스로 자괴감이 들어. 우울해져. 자존이 낮아져. 위축돼. 외면하고 싶어.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건, 위로야. 쫄지 마. 떠들어도 돼." - p.306

최근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남으로써 더욱 더 확실해졌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우리가 '위임한 권력'으로부터 '지배' 당해왔다.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기 전에 우리를 지배하는 '기득권'은, 우리의 힘들어진 '밥벌이'를 담보로 우리를 '길들여'왔다. 길들여진 국민은 권력자가 주는 대로 먹고 길러지며 '개-돼지' 취급까지 받았다는 것은 이미 확인하지 않았는가?

우리 정치인들이 억대의 피부과 시술을 받고 단상 위에서 국민들에게 군림하는 동안, 영국 노동당의 당수인 코빈은 자기 지역구의 텃밭을 분양받기 위해 수 년을 기다려야 했고, 4선에 도전하는 독일의 메르켈 수상은 가족들의 식사를 챙겨주려 퇴근길에 손수 장을 보았다. 우루과이의 무히카 대통령은 전 재산을 나라에 기부한 채 가난한 삶을 살았고, 오바마 대통령의 큰 딸은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들은 너무나 '도덕적'이고 우리는 그렇지 못해서인가? 답은 거기에만 있지 않다.

미국의 권리장전에서 그들은 원하지 않는 정부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했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만약, 대리권력이 국민의 뜻을 거스른다면, 우리는 그들을 거부해야 한다.
▲ 권력은 국민을 위해서만 힘을 갖는다. 미국의 권리장전에서 그들은 원하지 않는 정부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했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만약, 대리권력이 국민의 뜻을 거스른다면, 우리는 그들을 거부해야 한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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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달 동안 계속되는 '촛불 혁명'은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대리자인 '국회의원'들을 건너뛴 채, 국민 스스로 광장으로 뛰쳐나오는 방식으로 폭발한 것이다. 그래서인가, 차라리 광장에선 '홀가분'하다.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 대리자들을 설득시키느라 애를 쓸 필요도 없고, 그들끼리의 이전투구에 우리의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니 더 '자유롭다'. 하지만 계속 이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이용'해야만 한다.

여기서 그들을 확실한 '대리자'로 이용하기 위한 '변화'를 제안하고 싶다. 정청래 의원은 얘기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의 국회의원 활용법이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특권의식'을 벗겨내어 스스로 여의도에서 뛰쳐나오게 하자. 우리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해야 한다. 특권의 달콤함이 그들을 괴물로 만들어, 우리를 지배하게 한 결과가 끔찍하지 않은가?
첫째,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지 말자. 그들이 누리는 물질적인 혜택은 어쩌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서적으로 그들에게 조아리지 말자. 반가움에 '인사'를 하는 것과 무언가를 기대하며 '굽신거리는 것'은 같을 수 없다.

둘째, 그들의 잘못에 대해 저항하고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만약, 그들이 '밥줄'을 담보로 협박을 한다면 주변에 크게 광고하고, 협박당한 이웃이 있다면 기꺼이 옆을 지키자. 공격의 대상은 힘없는 우리가 아니라, 그들임을 확실히 알게 하자.

셋째, 버릇없다고 욕하면 '당신이 망치는 우리의 미래'보단 낫다고 되받아치자. 내가 살아야 할 오늘이 아니라, 내 자식들이 살아야 할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알려주자.

넷째, 잘못한 정치인들은 절대로 잊지 말자. 다시 뽑아주지 말자. 쉽게 용서하지 말고,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자. 감시하기 어렵다면, 그들을 감시하는 시민 단체들에게 후원이라도 하자.

다섯째, 그들이 우리와 직접 소통하게 하자. 언론 핑계 대지 말고, 직접 국민들을 만나러 오게 하자. 만나러 오면,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두루뭉술하게 넘기지 말고, 할 말은 다 하자. 잘 한 것은 잘 했다고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제대로 꾸짖어 주자.

우리 제발, 그들을 '제대로' 사용하자. 여의도 안에만 들어가면 '집단적 바보병'에 걸려버리는 그들을 각성하게 하자. 우리는 결국 그들을 통한 '대리 정치'를 할 수밖에 없으니, 그들을 제대로 쓰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다.

최근 몇 년간 나를 괴롭혔던 것은 '미안함'이었다. 이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모두 써버려 한 톨도 남지 않은 것만 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채감이었고, 우리 다음 세대가 살아갈 대한민국의 암울함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러니 지금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은, 지금의 우리가 결정한다. 이런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게 하지 말자.

책정보: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 정청래 지음, 푸른숲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

정청래 지음, 푸른숲(2016)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국회의원 사용법, #국회의원의 특권, #촛불혁명, #최순실이라는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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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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