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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에서 열리는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이날 오전 창원 만남의광장 앞에서 출발하고 있다.
 12일 오후 서울에서 열리는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이날 오전 창원 만남의광장 앞에서 출발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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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전부터 길을 나섰는데, 점심시간을 넘겨서도 서울이 아직 멀기만 하다. 오후 2시. 여느 때 같으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하긴 승용차보다 전세 버스가 더 많았던 고속도로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버스전용차선도 무용지물,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천안부터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고, 결국 차로 한강을 건너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결국 시 외곽에서 내려 지하철을 이용해 시청 광장에 접근하는 편을 택했다. 어렵사리 도착한 4호선 사당역.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같았는지 이미 타지방 번호판을 단 여러 대의 전세 버스가 사람을 쏟아내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고속도로 휴게소를 이용했을 텐데 길이 막혀 때를 놓쳤고, 지하철역 근처에서 챙겨온 도시락으로 먹는 둥 마는 둥 끼니를 해결했다.

대낮이었는데도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몸을 돌릴 틈조차 없었고, 메고 온 배낭 때문에 다른 승객들에게 폐를 끼칠까 싶어 노심초사했다. 콩나물시루 같은 객실 내에는 조끼를 맞춰 입거나 손팻말을 챙겨온 외지인들이 많았다. 가슴에 '박근혜 퇴진'과 '하야하라' 등이 적힌 배지를 패용한 사람들이 있었다. 민중총궐기는 이미 지하철 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서울역을 나오자 교통 통제를 하고 있는 경찰들이 한두 명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 3시를 갓 넘은 시간, 도로에는 마치 자기장에 빨려들 듯 시청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넘쳤다. 숭례문은 이미 북소리에 실린 수만 농민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입동이 지난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 위는 막걸리 잔을 들고 쏟아내는 농민들의 울분과 격정으로 마치 한여름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숭례문에서 시청에 이르는 도로는 이미 광장으로 변해있었다. 순간 이곳이 자동차가 오가는 길이었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깃발을 앞세워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대로 한가운데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 자기 집 안방인 양 도로 한복판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까지, 도로의 풍경이 바뀌어있었다.

엄청난 인파, 인터넷 연결이 안 될 정도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를 마친 노동자, 농민,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민중들의 분노, "박근혜 퇴진"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를 마친 노동자, 농민,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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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한 터라, 시청 광장의 무대가 보이는 명당자리는 애초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렇듯 사람이 많을 줄은 미처 몰랐다. 시청 광장 주변에는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이면도로는 물론, 지하철역 내려가는 계단까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우리 일행처럼 자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로 일찌감치 광장과 도로, 인도와 차도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없었다. 곳곳에서 인터넷 연결이 안 된다며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둘러봐도 앉아있는 사람들보다 서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대개 행사가 시작되면 무대와 정면 스크린을 보고 싶은 마음에 하나둘씩 일어서는 게 보통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애초 앉고 싶어도 앉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광장에 이동식 간이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줄 서는 건 둘째 치고 인파를 뚫고 화장실까지 가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각 단체의 주장을 담은 형형색색의 손팻말이 나누어졌고, 하늘을 찌를 듯 곧추선 수천 개의 깃발과 함께 광장을 뒤덮었다. 팔을 들어 함께 구호를 외칠 때면 손팻말의 물결이 흡사 거대한 매스게임처럼 느껴졌다. 크레인에 매달린 대형 스피커들을 통해 사회자의 선창 구호와 민중가요가 광장에 전해졌지만, 사람들의 함성은 수많은 음향 장비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무대 위 행사가 시작돼도 곳곳에서 '지방 방송'은 이어졌다. 각 단체별로 주장을 담아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몸부림이다. 나름대로 제작한 팸플릿들을 뿌려대며 조그만 이동식 스피커를 통해 목이 쉬도록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성과 연봉제와 국정 교과서 폐지, 쌀값 보장, 세월호 진실규명에서부터 이명박 구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구들이 봇물터지듯 터져 나왔지만, 하나같이 '박근혜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로 귀결됐다.

행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 광장 정면에 세워진 스크린 하나로는 부족했다. 귀는 열려있으되 눈이 감긴 형국이라고나 할까. 그때 광장을 둘러싼 빌딩 위에 설치된 큼지막한 스크린 광고판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쉴 새 없이 기업 광고를 쏟아내는 그곳을 통해 광장의 모습이 생중계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다. 웃음을 파는 광고와 '이게 나라냐'는 광장의 외침은 언뜻 그로테스크한 풍경이었다.

사실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잠깐 이런 상상을 했다. 집회가 시작되고 퇴진과 하야의 함성이 고조될 무렵, 그 기업 스크린 광고판들을 통해 일제히 '속보'가 뜨는 그 순간을 꿈꿨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 표명. 그걸 본 사람들이 광장에서 얼싸안고 춤을 추며 기뻐하는, 말하자면 혁명의 순간을 상상한 것이다. 조금은 엉뚱하고 황당한 생각일지언정, 열 일 젖혀두고 버스에 오른 건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12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 쓰레기 치우며 박근혜 퇴진! 12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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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반. 광장을 비우고 청와대를 향해 갈 시간이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변의 쓰레기를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서로의 손이 빗자루를 대신했고, 각자의 배낭은 기꺼이 쓰레기통이 돼주었다. 누군가는 '집회꾼'이라며 비하했다지만, 이는 집회를 두려워하는 자들의 악의적 편견일 뿐이다. 집회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시민들을 만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종일 길 위에서 보냈으니 지칠 법도 하건만, 무슨 야행성 동물처럼 사람들에게서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외침은 초저녁의 어스름을 찢을 만큼 더욱 우렁찼다. 하나둘씩 손에 촛불이 밝혀졌고, 행진곡풍의 흥겨운 노랫소리에는 거리 행진을 앞둔 사람들의 설렘과 들뜸이 묻어났다. 어둠은 기온을 떨어뜨렸을지언정 광장의 열기는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청와대를 향해 행진은 시작됐지만 줄곧 제자리걸음이었다. 이유인즉슨, 촛불 문화제가 진행될 광화문 광장까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버렸다는 거다. 아닌 게 아니라, 본 행사가 있었던 시청 광장이 외려 한산했다고 여겨질 만큼 광화문에 이르는 세종대로는 인산인해였다. 몸을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차라리 '밀폐 공간'이었다. 하물며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통로는 기대할 수조차 없었다.

시의회 건물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가는 데 무려 1시간이 넘게 걸렸다. 평상시 같으면 10분이면 족했을 거리다. 여기저기서 "밀지 말라"는, "서둘지 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파를 헤치고 지나간다는 것이 자칫 위험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태어나 처음 해봤다. 바로 그때 스피커를 통해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의 시민들이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들 환호성을 질렀고, 행진은 거대한 축제의 장처럼 변해갔다.

광장의 함성을 들었다면, 답하라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 박근혜 퇴진하라!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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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숨 돌릴 생각으로 광화문 광장을 벗어나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그곳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주변의 카페와 식당은 일찌감치 촛불 문화제를 구경하려는 '실내 관람석'으로 변해 있었다. 테이블마다 메뉴판 대신 '박근혜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 손팻말이 놓여있었다. 가게의 종업원들도 일손을 놓은 채 입구에 나와 밖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때 앳된 중고등학생들이 '청소년 혁명'이라고 적힌 깃발을 흔들며 물결처럼 앞을 지나갔다. 족히 수백 명은 넘어 보였다. 숱한 집회를 겪어보았지만, 이번만큼 아이들의 참여가 많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의 자발적 참여는 무겁기만 한 집회의 방식을 변화시켰고, 시민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익숙한 대중가요에 구호를 입힌 '떼창'이 광장을 뒤덮게 한 것도 그들이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멋있다"거나 "어른들보다 백번 낫다"는 응원과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세종문화회관 뒤편 새문안길 좁은 골목에 자리를 잡고 그들만의 간이 집회를 열기도 했다. 말이 집회지, 즉석 길거리 공연이었다. 말투로 보아 전국 각지에서 모인 듯했지만, 마치 군대가 연상될 만큼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다음 주부터는 수능을 치른 고3 선배들이 합류할 예정이라면서, '가짜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자신들의 '도심 나들이'는 계속될 거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청와대 들목인 경복궁역 교차로에 이르자 드디어 줄지어 늘어선 경찰 버스가 나타났다. 광화문을 지나 율곡로에 이르기까지 청와대 방향으로 접근하는 모든 이면도로를 막아서고 있었다. 차벽을 따라 동십자각을 향해 걸었다. 어둠이 짙어지자 넓은 도로는 사람들의 토론장으로 변해갔다. 삼삼오오 도로 위에 둘러앉아 시국토론을 하고 이따금 구호를 외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집회 참가자들 중에는 외국인들도 많았는데, 광화문 주위를 배회하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무슨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수백 미터를 늘어선 차벽의 낯선 풍경을 사진에 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경찰들이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집회 현장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대신 찍어주는 '정겨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사진들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관련 기사 : '시위대 농민' 기념사진, 무릎 굽혀 찍어준 경찰관)

경찰들이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집회 현장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대신 찍어주는 '정겨운' 모습.
 경찰들이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집회 현장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대신 찍어주는 '정겨운' 모습.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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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손팻말을 세워둔 '평화의 소녀상'을 지나 인사동 골목에 다다랐다.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 코스라는 그곳까지도 촛불의 행진은 이어졌다. 다른 곳도 아닌 인사동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는 모습은 가히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인사동의 명물이라는 '용수염'을 팔던 한 젊은 상인은 "마음은 늘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며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지는 두 개였는데, 이제 남은 건 오로지 '하야' 하나뿐이다. 때를 놓친 탓에 '2선 후퇴'나 '거국 내각' 따위의 말은 아예 광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누군가의 승낙 없이는 하야 결정조차 내릴 수 없는 꼭두각시 아니냐'는 조롱마저 난무하고 있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결국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광장의 일치된 목소리였다.

'잠이 보약'이라며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의 함성을 들었을 것이다. 여론의 추이를 떠보며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꼼수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 국민의 뜻에 맞서려는 게 아니라면,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더 이상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다. 하야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참담하다'는 국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다. 어느덧 시계는 자정을 향해가고 있었지만, 광장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태그:#민중총궐기, #박근혜_최순실_게이트, #광화문, #박근혜_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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