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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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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 기사단이 지켜주던 아늑한 곳을 떠나야 하는 날이 왔다. ⓒ 한성은
언제 만났었는지 이제는 헤어져야 하네 
얼굴은 밝지만 우리 젖은 눈빛으로 애써 웃음 짓네 
세월이 지나면 혹 우리 추억 잊혀질까봐 
근심스런 얼굴로 서로 한 번 웃어보곤 이내 고개 숙이네
- 전람회, '졸업' 노랫말 중에서

몰타를 떠나 영국 런던으로 가는 날이다. 숙소에서 마지막 체크아웃을 하고 어학원으로 향했다. 겨우 두 달 지낸 곳이지만, 노란 집들과 색색의 몰타 발코니들이 눈에 밟힌다. 어학원 수업도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정들었던 베젤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했다. 가족처럼 지냈던 한국 친구들이 배웅을 해줬다. 여행은 언제나 헤어짐과 만남의 연속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지 않으면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없다. 마음 한쪽에서 몰타에 대한 아쉬움과 다시 시작되는 여행의 설렘이 뒤섞여 묘한 기분이 되었다.

몰타국제공항(MLA)에 도착했다. 비행기 탑승 수속은 언제나 긴장된다. 지금까지 비행기를 탈 때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터키에서는 엉뚱한 공항으로 가는 바람에 아예 비행기를 못 탔고, 그리스에서는 웹 체크인을 하지 않아서 수수료를 냈다. 그럴 때마다 정말 기운이 빠졌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몰타에는 국제공항이 하나밖에 없지만 혹시나 싶어 몇 번을 확인했다.

출발 24시간 전 웹 체크인 사이트가 열리자마자 체크인을 하고 수하물도 미리 신청했다. 저가 항공은 대부분 수하물도 추가 요금을 받는데, 미리 신청하지 않고 공항에서 접수하면 요금이 두 배로 비쌌다. 모든 접수를 마치고 항공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제대로 처리가 됐는지 확인까지 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당당하게 탑승 수속을 했다. 하지만, 내 정성이 부족했던 것일까. 수하물을 접수하려니 공항 직원이 수하물 수수료를 내란다. 이미 신청을 했다고 스위스 항공 앱을 열어 전자 티켓을 보여줬다. 그랬더니 공항 전산망에는 내 좌석만 있고 수하물은 신청되어 있지 않단다. 몰타국제공항은 워낙 작기 때문에 해당 항공사 직원이 탑승 수속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몰타국제공항 직원들이 탑승 수속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자 티켓을 보여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수수료를 내지 않으면 수하물을 실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스위스 항공에 직접 문제제기를 하란다.

왜 내게는 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해당 항공사 직원도 아닌데 여기서 항의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스위스 항공으로 이메일을 보냈더니 미안하다고 연락이 왔다. 하필 그날 전산망에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수하물 수수료는 돌려받았지만, 나의 억울함과 답답함은 여전했다. 어디 가서 용한 무당에게 굿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런던행 비행기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12시간 대기를 해야 했다. 스위스는 셍겐 조약 가입국이기 때문에 별도의 출국 심사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마침 취리히 공항은 도심까지 대중교통으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데다, 우여곡절 끝에 수하물로 보낸 23kg 배낭도 런던으로 바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가벼운 걸음으로 짧은 취리히 여행을 시작했다.

반나절 동안 가볍게 둘러본 스위스 취리히
취리히 리마트강 다리 위에서 바라본 시가지 풍경 ⓒ 한성은
스위스의 높은 물가는 이미 많이 들었었다. 스위스에 사는 친구들은 주말마다 온 가족이 독일이나 프랑스로 식료품을 사러 다녀온다고 했었다. 취리히 도심으로 가는 기차표를 13.20 프랑(1만 6000원)을 주고 사면서 스위스의 물가를 온몸으로 느꼈다. 아침 8시에 취리히 중앙역에 내려 가장 먼저 한 일은 슈퍼마켓을 찾는 것이었다. 아침도 먹지 못한 데다 취리히에서 오후까지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생수와 식빵, 치즈와 우유를 샀다. 다행히 슈퍼마켓의 식료품 가격까지 비싸지는 않았다.

가방 속에 식료품을 가득 담고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로 갔다. 개인적으로 과학, 특히 물리학을 정말 좋아한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는 아인슈타인, 폰 노이만, 볼프강 파울리 등 현대 물리학의 거장들이 수학했던 곳이다. 노벨상 수상자도 25명이나 배출했다. 그들이 거닐었을 캠퍼스를 걷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커다란 영광이었다.

학교는 제법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그런데 마침 붉은 모노레일이 도심에서부터 학교까지 운행 중이었다. 폴리반(POLYBAHN)이라고 1887년에 개통되어 현재까지 그 모습 그대로 운행하고 있는 정말 멋진 기차였다. ETH의 학생들은 이 열차를 '학생 특급열차(Student Express)'라고 불렀다.
130년째 운행 중인 고풍스러운 폴리반 열차 ⓒ 한성은
노벨상 수상자를 25명이나 배출한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에서 우아한 아침 식사를 했다. ⓒ 한성은
고풍스러운 기차 폴리반을 타고 캠퍼스에 내려 취리히 시내를 내려다보며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슈퍼마켓에서 가장 값이 싼 빵과 우유였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누가 보면 내 모교도 아닌 남의 대학교 캠퍼스에서 무슨 청승이냐 할 것 같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행복했는지 알 것이다.

소박하지만 우아했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캠퍼스를 걸었다. 본관 테라스에 걸터앉아 커피를 마시는 학생들을 보니 그들이 참 부러웠다.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내가 학생일 때는 알지 못했다. 학교에서 내가 했던 공부란 스포츠 경기 같은 것이었다. 배움의 의미와 즐거움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유럽 학생들은 학교 공부에 승자와 패자가 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늘 그렇듯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친구들이 나를 쳐다본다. 저들은 내가 얼마나 자신들을 부러워하는지 알고 있을까? 그때가 좋을 때다. 학창 시절 어른들이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 이제는 내가 그 말을 뱉을 나이가 됐다. 그때가 좋을 때다. 참으로 그렇다.

취리히에서 머무는 시간은 겨우 반나절뿐이라 연방 공과대학교를 빼면 특별한 일정 같은 것은 없었다. 학교에서 다시 폴리반을 타고 도심으로 내려와 취리히 호수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계속되던 8월인데도 불구하고 들이쉬는 공기가 시원하고 상쾌했다. 아무리 대도시라지만 역시 스위스인 건가. 폐에서 청량감이 느껴졌다. 날씨도 좋아서 리마트 강을 따라 걷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중앙역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이 모인 동굴로...
리마트 강을 따라 걸으면 청량한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든다. ⓒ 한성은
취리히의 랜드마크 그로스 뮌스터 교회 ⓒ 한성은
프라우 뮌스터 교회의 시계는 유럽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 한성은
그로스 뮌스터(Grossmunster) 교회와 프라우 뮌스터(Fraumunster) 교회를 지나 취리히 호수 근처에 다다르니 독특한 차림을 한 사람들이 보였다. 형형색색의 형광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유럽 아이들은 참 특이한 걸 좋아하나보다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갈수록 요란한 복장의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일상적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복장을 한 사람들을 보고서야 오늘이 축제일인 것을 알았다.

취리히 호수 주변에는 이미 신나는 음악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푸드 트럭들이 줄지어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보트에서도 댄스 파티가 열렸다.

이 축제의 이름은 취리히 스트리트 퍼레이드(Zurich Street Festival). 세계 최대의 일렉트로닉 축제로 매년 100만 명이 찾는 유명한 축제란다. 시간이 지날수록 셀 수 없이 많은 인파가 취리히 호수로 밀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인파에 휩쓸려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내려갈 것 같았다. 축제 무대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곧 공항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저 축제의 서막을 두 눈으로 확인한 데 만족해야 했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스트리트 퍼레이드를 즐기는 사람들 ⓒ 한성은
도심 곳곳에서 세계 최대의 일렉트로닉 축제인 스트리트 퍼레이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 한성은
축제 장소로 향하는 인파를 헤집고 도심으로 돌아나왔다. 축제 때문에 취리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반호프 스트라세(Bahnhofstrasse)의 차량 통행도 제한하고 있었다. 덕분에 편하게 취리히 시내를 걸을 수 있었다. 한여름의 햇살을 받으며 취리히 시내를 걷는 맛이 쏠쏠하다. 뾰족한 삼각형 지붕들이 '여기가 바로 스위스야!' 하고 외쳤다. 무엇보다 공기가 너무 청량해서 참 좋았다. 그래서인지 세 시간을 넘게 쉬지 않고 걸어도 힘들지가 않았다.

역으로 돌아가기 전에 리마트 강과 취리히 구도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린덴호프(Lindenhof) 공원으로 올라갔다. 린덴호프는 기원전 로마제국 시기에 조성된 공원이다. 취리히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장소가 아닐까 싶다. 공원은 작고 아담했지만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조각 분수도 있어서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공원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로 리마트 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 그림 같은 집들이 서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 저 멀리 만년설로 덮인 봉우리까지 보였다.
깨끗한 거리와 삼각형 지붕들이 내가 스위스에 왔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 한성은
린덴호프 공원에서 내려다 본 취리히의 구시가지 풍경 ⓒ 한성은
취리히에서 보낸 반나절은 참 좋았다. 그저 몇 시간 산책처럼 둘러보았을 뿐이지만, 취리히는 대도시가 주는 위압감이 없었다. 그저 동화 속에 나오는 작은 마을 같았다. 잘 정돈된 벽돌길 주변으로는 쓰레기도 하나 없었다. 취리히에 대한 인상이 너무 좋아서 나중에 다시 돌아와 오래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딱 중앙역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는 그랬다.

중앙역에 들어서니 아침에 한산하던 그 역이 아니었다. 다양한 차림으로 분장을 한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했다. 스트리트 퍼레이드 때문이었다.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중앙역에 사람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였다. 역사 안은 실외라기엔 높은 천장이 있었고, 실내라기엔 사방이 뚫려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다른 손에는 담배를 들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불이라도 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취리히 중앙역은 인파로 넘쳤고, 인파만큼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워댔다. ⓒ 한성은
그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대마초를 피워대고 있어서 냄새도 역했다. 대마초 냄새는 대마초를 피워보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다. 담배 냄새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물에 젖어 썩은 짚단을 태우는 냄새라고 해야 할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냄새다.

스위스에서 대마초를 합법화하려는 시도는 있지만, 현재까지는 엄연히 불법이다. 하지만 스위스 사람들은 대마초에 대해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스위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고, 자기도 몇 번 피워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친구의 말로는 단지 피우는 것만으로는 특별한 제재도 없단다. 중앙역에 경찰들이 이렇게 많은데 잡혀가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참고로, 대한민국 국민은 외국에 있더라도 대한민국의 법을 적용한다고 형법에 명시되어 있다. 외국 여행을 하면서 자유로운 분위기에 휩쓸려 우리나라 형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귀국 후에 처벌을 받게 되므로 늘 조심해야 한다.

대마초 냄새를 맡고 나니 갑자기 역에 모인 사람들이 위험해 보이기 시작했다. 대마초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미국에서도 대마초를 합법화하는 주들이 있다. 대마초를 피운다고 해서 나쁜 사람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날 취리히 중앙역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이 모인 동굴 같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동화 속 풍경을 보는 것 같다며 좋아했던 취리히가 단 5분 만에 술과 담배 그리고 대마초가 가득한 잿빛 도시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나는 왠지 취리히보다 더 우울할 것 같은 브렉시트(Brexit)의 도시 런던행 비행기를 탔다.
짧은 시간 동안 두 얼굴의 취리히를 만나고 다시 런던으로 향했다. ⓒ 한성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태그:#타박타박, #아홉걸음, #배낭여행, #스위스, #취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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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저에게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줍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성실한 여행자가 되어야겠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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