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김병준 국무총리 지명자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자신이 물러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여야 합의하면 나는 사라지는 것이다"며 "여야 합의 독촉이고, 한편으로는 박 대통령은 압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병준 국무총리 지명자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자신이 물러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여야 합의하면 나는 사라지는 것이다"며 "여야 합의 독촉이고, 한편으로는 박 대통령은 압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수정 : 9일 오후 12시 43분]

지난 2일 신임 국무총리 내정이 발표된 직후, 김병준 교수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한 지인은 그에게 "박근혜 대통령에게 여야합의부터 받아오라고 해야지, 왜 이런 상황에서 덜컥 수락하셨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게 아니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이 불가능한 가운데, 그 타개책으로 사임 또는 탄핵, 그리고 온건책으로 거국중립내각이 논의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신임 총리를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린 것이다. 더욱이 그 대상자가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역임한 '노무현 정부'의 핵심인물이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중립적 인사'라고 강변하지만,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이간책(離間策)일 뿐이었다.

'총리 지명'은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이 '95초 녹화 사과'로 시작된 '대응 프로그램'의 하나로 풀이된다. 그 이후 최순실씨와 최씨의 측근인 고영태씨가 공개적으로 의혹을 부인하고 나선 데 이어, 당분간 귀국하지 않겠다던 최씨가 갑자기 귀국했고, 이어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 등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물러났다.

또 대통령이 새누리당 고문단과 전직 총리 등 사회 원로들을 만나 사태 수습 조언을 듣는 모습을 만든 데 이어 신임 국무총리를 지명했고, 그 다음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지난 4일 '특검 조사까지 수용'의사를 담은 2차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 측은 나름대로, 야권이 단일대오를 만들지 못하면서 야당마다 전략 다르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대선후보들과 당 지도부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빈 틈'을 공략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노무현의 정책실장 김병준'이 있었다.

2차 담화에서 책임총리 언급 안 한 박근혜, '사실상 지명철회'도 사전통보 없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 관련 대국민 담화를 마친 뒤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 관련 대국민 담화를 마친 뒤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이후 상황도 어그러졌다. 총리에 대한 사전 여야 합의는 애초부터 난망한 것이었지만,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취해지던 국회에 대한 사전통보 조차 없었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야당은 볼 것도 없다며 인사청문회도 열지 않겠다고 했고, 새누리당에서조차도 지명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4일 박 대통령의 두 번째 담화는 그 절정이었다. 김 내정자가 그 전날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경제·사회 분야를 맡겼다며 "헌법이 규정하는 국무총리의 권한을 100% 행사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날 담화에서 박 대통령이 이를 지원하는 언급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병준'이라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다.

언론에는 그가 당혹해 한다는 정도로 알려졌지만, 실제는 그보다 심각했다. 그는 오후 4시에 퇴근해버렸다. "박 대통령이 계속 국정을 장악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청와대는 그 뒤 "오늘은 사과에 집중하고, 책임총리에 대한 얘기는 영수회담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하겠다"고 알려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운신할 공간을 만들 수 없었다.

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난 7일도 마찬가지였다. 박 대통령은 "
여야 합의로 총리를 추천하면 그에게 내각 통할을 맡기겠다"는 말만 두 번 반복했다. 김 지명자는 자신이 전날 '여야가 합의로 총리를 추천하면 나는 자연히 소멸된다'고 한 발언과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사실상 총리지명을 철회한 것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김 지명자에게 사전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

박 대통령 측의 일련의 대응이 성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일단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 논의 틀을  합의 총리나 거국내각으로 묶어 놓았다. 야권이 확실히 이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해도 '현직 대통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총리의 내각통할권의 정확한 범위', '외치와 내치의 분리기준'을 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대선 승리 가능성이 비교적 높아진 상황에서 야권이 총리를 누구로 할지 합의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박지원 "여야 합의 총리? 시간벌기용"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7일 오전 국회를 방문해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 박지원 만난 한광옥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7일 오전 국회를 방문해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현 정치판의 최고수로 통하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제안을 "국회에 합의하라고 던져놓은 시간벌기용"으로 규정했다.

8일 오후 만난 김 지명자는 온갖 비판을 당할 줄 알면서도, 국회 인준 가능성이 굉장히 낮을 것을 알면서도 총리 제안을 수락한 이유를 "마이크를 잡고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우리 정치를 우리 사회를 양극단이 지배하는 상황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무대에 올라가서 소리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열정적으로 "속에 있는 게 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세상이 이 지경이 되니 또 다시 살아났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사퇴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 국회와 청와대 양측에 압박이 된다고 했다. 여야가 합의 총리를 만들어내지 못할 때 '내가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 압력이 될 것이고, 박 대통령에게는  국정통할권을 총리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자신이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거국중립내각과 검찰 수사를 수용하도록 만들었다면서 총리 지명을 수락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달리 보면, 거국중립내각은 그가 지명받기 이전부터 제기된 것이었고 총리 지명과정 없이 박 대통령이 바로 의사를 표시했으면 되는 얘기였다. 그랬다면 오히려 박 대통령이 진정성을 인정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수사 수용 역시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건의 주모자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크게 보면 결국 박 대통령은 2일 총리 지명 발표 이후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었고, 이 과정에서 김 지명자는 그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소비돼 버리고 말았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가 지난 3일 오후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총리 내정과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입장 밝히는 김병준 총리 내정자 김병준 총리 내정자가 지난 3일 오후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총리 내정과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태그:#김병준, #박지원, #박근혜, #거국내각, #국무총리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비선실세' 최순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