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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보자. 3일 앞으로 다가온 11월 12일 민중총궐기. 광화문은 지난 5일보다 더 붐빌 것이다.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걸 눈으로 본 민중들은 12일에 혼자서, 혹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거리로 나올 것이다. 분명 20만 명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다.

모든 의제가 나올 것이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숨진 고 백남시 농민 사태부터 사드배치 강행 논란, '위안부' 역사문제 강제합의, 개성공단 전격폐지 의혹과 세월호 사태 진상규명까지(이것보다 더 많은 일이 있었다니 이번 정권도 참 다사다난했다). 그날 광화문에선 많은 피해자들, 나아가 박근혜게이트 국정논단에 실망한 전국적 피해자들이 한 자리에 설 것이다.

여기까지가 낙관론이다. 마치 30여년 전처럼 다시금 사람들이 뭉쳐 퇴진구호를 외친다, 그 이상을 떠올릴 수 없다. 현재 청와대 100m 앞까지 시위를 허가하라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가능할 리 만무하다. 결국 우린 이전의 시위처럼 광화문을 메울 것이고, (지독하게 말해) 2008년 촛불시위에서 '그칠 수 있다'. 지금처럼 지극히 '평화적이고 합법적'일 경우엔 더더욱.

나는 11월 12일이 두렵다. 그날의 뜨거운 분노, 사람들의 공감, 그리고 그후에 이어질 일련의 과정이 두렵다. 12일 경찰과 충돌하면 그건 그것대로 불법시위라 욕먹으며 오히려  큰 반작용에 부딪칠 것이다. 합법적이고 평화로운 시위라면 인파는 더 많이 모일테지만  퇴진구호만 외치고 사이좋게 파하는, 100만이 와도 아무 상관없을지 모를 시위(示威, 위력을 보여주는 것)가 될 것이다.

상대가 불법적인 까닭이다. 우리가 아무리 합법적으로 몇 백만이 모여 평화적으로 퇴진구호를 외쳐도 박근혜 대통령은 듣지도, 퇴진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상대가 비합리적이고 헌법을 위배하는 국정을 펼쳐왔는데 어찌 그로부터 합리적 의사결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결국 시위가 어떤 양상을 띠어도 그게 박근혜 대통령의 결정 하나에만 매달리는 식이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학생과 시민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을 규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 분노의 함성 "박근혜 하야하라" 학생과 시민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을 규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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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에 엄습할 무기력이 두렵다. 이렇게 모여도 아무 것도 안 바뀐다는 열패감이 그날을 기점으로 급속히, 들불처럼 번질지 모른다. 물론 인내심을 가지고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에 사소한 성취마저 없다면 사람들은 부조리한 상황 자체에 무력해지고, 그걸 외면하며 정치혐오는 더 짙은 색으로 빗발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구호의 대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합리적인 요구를 하겠다면 그걸 들어줄 합리적 대상을 찾아야 한다. 우습지만(?) 지금으로선 국회가 그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할 것이다. 검찰은 자신을 임명하는 청와대의 입만 바라보고 임전무퇴 모르쇠 식으로 청와대가 눌러앉는다면 투표권이라는 '합법적이고 합리적' 장치를 이용해 국회를 압박하는 게 가장 강하고 보편적인 방법일 수 있다.

이를 시위현장에서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모의선거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그 자리에서 행해지는 자유발언과 문화공연 외에도 모의선거를 단행해 국회에 대한 군중의 인식을 가시화해줄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한국 시민들이 경찰과의 충돌에 부정적인, 그래서 이를 기피해야 하는 상황이니만큼 민주적인(?) 퍼포먼스로써 모의선거 의제를 내고 토요일 하룻동안 표를 받아 공표하면 어떨까 싶다.

결국 지금 당장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 같은(이마저도 불투명하다니!) 국회에 위력을 가해야 하는 셈이다. 그래서 시위현장에서 '박근혜 퇴진하라'라는 구호만큼 '새누리 해체하라'나 '국회가 탄핵하라'라는 말이 필요하다. 야당 입장에선 이 시국에 새누리당에 면죄부를 주기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일정보협정까지 단행할 정도로 이 정권이 가만 있을 생각이 없는 형국에 오히려 정권교체를 고려한다면 지금 빅근혜 대통령이 저지르는 '속단'들을 먼저 제지해야 한다.

11월 12일이 두려운 건 시위에 다녀왔다고 할 때마다 '그런 데 왜 가냐','너만 손해다','아무 것도 안 바뀐다'고 말하는 엄마 때문이다. 그 말이 진짜가 될까 두려운 탓이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한민국이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정농단이라는 시국 자체를 그냥 참고 넘어갈 수 있을까. 이건 분노 이전에 수치스러움이 앞설 문제다. 12일이 더 강하게 타오르기를, 그리고 그 불꽃에 정계가 (제발제발) 응답하기를 바랄 뿐이다.


태그:#민중총궐기, #11월12일, #시위, #국회,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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