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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문자가 왔다.
 학교에서 문자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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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문자가 왔다. 2015년 2월 말, 진학설명회가 있으니 고3 학부모는 가급적 참석을 하라는 거다. 학교 가면 매번 성적 상위권 학부모들 들러리를 서는 느낌이 들어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친한 엄마가 같이 가잔다. 휴가까지 내고 간다니. 마음이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같이 가기로 했다.

진학설명회에서 3학년 주임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는다.

"학생부종합전형으로 갈 경우는 전공을 빨리 정하는 게 좋습니다. 동아리 활동이나 봉사활동 독서활동까지 진학할 학과에 맞춰서 일관성을 갖도록 하는 게 유리합니다. 독서활동은 중학교 때부터 같은 분야로 시키시면 더 좋습니다."

이상하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직업은 매번 바뀌는 게 당연한데 진학할 학과에 맞춰서 동아리활동과 봉사활동 독서 분야까지 일치시키라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고등학교 땐 자기가 전공할 분야에 대해 좁고 깊게 공부하기보다는 폭넓게 공부하며 교양을 쌓는 게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성인들도 매순간 자신의 진로를 가지고 고민을 한다. 그런 방황이 20대에 끝이 나는 것도 아니고 30대, 40대에도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겨우 10대인 아이들에게 한 전공에 맞는 활동만 하고 그런 책만 읽기를 권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어머님들이 잘 모르셔서 그렇지 의외로 여러 가지 전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연세대학교는 다자녀 전형이 있습니다. 자녀가 셋 이상인 분들은 이 전형을 꼭 살펴보시는 게 필요합니다. 이게 내신등급으로는 얼마 차이가 안 되는 거 같지만, 진짜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아주 근소한 차이라서 이 전형에 해당하는 어머님들은 꼭 챙겨 보시는 게 좋습니다."

고개 숙이고 열심히 받아 적던 내가 머리를 들었다. 우리 집도 아이가 셋이다. 그러니 다자녀 전형에 해당이 된다. 아니, 무려 연세대라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자녀 전형에 큰 별표를 했다. 그런데 형제 셋인 학생들이 이 전형에 다 몰리면? 다시 공부 잘하는 순서대로 뽑을 텐데? 에고, 아무래도 헛물만 켠 거 같다.

"그리고 적성고사라고, 이 경우에도 내신 등급을 좀 올려서 갈 수 있는 아주 좋은 전형입니다. 적성고사를 치르는 대학으로는 가천대가 있습니다."

적성고사라니? 학과 적성에 맞는 아이를 뽑는다는 말인가? 성적으로 뽑는 게 아니고? 뭐 이런 전형이 다 있나? 도대체 적성고사는 무슨 문제로 시험을 보는 거지? 선생님께 질문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진다. '고3 엄마가 뭐 저런 것도 모르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질문을 해도 될까? 궁금한 마음에 숨 한번 크게 쉬고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적성고사는 도대체 무슨 시험을 보는 거예요? 이 학과에 적성이 맞는가 그런 시험을 보나요? 그럼 공부를 어떻게 하죠?"
"적성고사는 문제집이 따로 있습니다. 그냥 좀 쉬운 수능을 본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과목은 국영수 세 과목으로 짧은 시간에 풀게 됩니다. 서점에 가면 적성고사 문제집이 여러 권 나와 있습니다."

헐, 적성고사가 적성을 알아보는 게 아니다. 이름을 잘못 지었다. 괜히 사람 헷갈리게 시리.

김칫국만 마신 진학설명회, 아이가 진정한 배움을 알아가길

학교에선 입시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특별반을 꾸려서 논술특강을 하고 포트폴리오를 작성을 위해서 학생별로 파일을 모았다. 자기소개서 작성 대회와 논문대회 그리고 영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했다. 졸업한 선배들을 학교에 불러들여 재학생들의 부족한 학업을 도와주는 프로그램까지 있다.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고 엄마들이 질문한다. 듣다 보면 성적 상위권 부모들의 고민이다. '성적은 좋은데 더 좋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식의 고민. 저런 걸 공개적으로 질문하고 싶나? 자랑 아니야? 역시나 마음이 상한다.

학교에선 아이들 입시를 돕기 위해 진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처음 듣는 프로그램이다. 결국 우리 아이와는 상관이 없는 것 아닌가 싶다. 좋은 프로그램은 상위권 10%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학교의 이름을 빛내줄 학생의 수는 일반고에서는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방과후 야자 시간에 학교 독서실을 사용할 수 있는 학생 수를 전교등수 10%에서 잘랐다. 기말이나 중간고사 성적이 떨어지면 독서실에서 짐을 빼야 했고 성적이 오르면 독서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책가방을 챙겨 독서실로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다짐했지만 한 번도 독서실에 들어가진 못했다.

진학설명회에 다녀와서 아이에게 물었다.

"졸업한 선배들한테 공부 배우는 거 넌 안 해?"
"엄마 몰랐어? 나는 평소에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야. 밖에 나가서 상이라도 받아와야 우리 학교 학생이야."

아이는 배시시 웃는다. 나도 웃었다. 아이는 아직 젊고 푸릇푸릇한데 나이든 사람처럼 초탈한 웃음을 보인다. 분노도 없다.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 하는 아이를 보니 이미 이런 상황에 적응한 모양이다. 학교의 대접에 초탈한 웃음을 보이는 아이가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며칠 뒤, 아이가 담임 선생님 이야기를 꺼낸다. 반 친구들을 한 명씩 불러 토요 자율학습과 야자를 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묘하게도 불만 불평이 아니다.

"엄마 내가 고3 때까지 담임 복은 있는 거 같아."

웃음이 나온다. 아이는 여전히 공부하는 모습을 내게 잘 들키지 않으면서도 담임 선생님에게는 수험생 대접을 받고 싶은가 보다. 아이 속을 내가 어찌 알겠나? 다만 언젠가 아이가 대입이니 고3이니 하는 수험생 흉내 내기 말고 진정한 배움의 기쁨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고3 엄마로 살며 느꼈던 감정을 글로 옮겼습니다.



태그:#고3 엄마, #수능, #입시, #합격, #진학설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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